▣ 옮겨온 글 ▣
예전 블로그에 써두었던 글을 옮겨 왔다. 문장은 그때 그대로 두고, 읽기 편하게 조금만 매만졌다.
종이에 날짜가 찍혀 나오는 날이 있다.
그 날짜를 보면 그 앞의 몇 달이 한꺼번에 떠오른다.
2019년 10월 28일이 나한테 그런 날짜다.
그날 받은 종이가 두 장이었다.
두 장이 된 이유도 그 앞의 몇 달에 들어 있다.
그 몇 달 동안 벽을 깨고 서류를 쌓았다.
그걸 다 하고 받은 종이였으니 가벼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뒤로 날짜를 기억한다.
공장 허가 난 날, 사업자 낸 날, 그리고 이 날.
그 세 날짜가 내 앞의 몇 해를 가르는 선이었다.
사업자를 낸 날은 시작한 날이고, 공장 허가가 난 날은 만들 수 있게 된 날이고, 이 날은 믿어달라고 말할 수 있게 된 날이었다.
만들 수 있는 것과 믿어달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다른 일이다.
그 사이를 건너는 데 몇 해가 걸렸다.
그리고 그 선을 넘고 나니 전에 안 걸려오던 전화가 걸려왔다.
같은 물건을 같은 공장에서 만드는데 그랬다.
물건이 좋아져서가 아니라 믿을 근거가 생겨서였다.
사는 쪽은 맛을 보기 전에 먼저 근거를 본다는 걸 그때 알았다.

■ 심사 날
기나긴 준비 끝에 마침내 심사 날이 왔다.
제대로 준비했다는 자신감은 있었지만, 혹시 사소한 곳에서 실수가 나오지 않을까 걱정이 앞섰다.
날짜가 정해지고 나니 잠이 잘 안 왔다.
새벽에 일어나 공장에 가서 구석을 보고 온 날이 여러 번이었다.
밤에 가서 불을 켜고 혼자 한 바퀴 돌았다.
바닥을 보고 벽을 보고 문을 열어보고.
며칠 전부터는 더 할 게 없는데도 갔다.
할 게 없어서 간 거였다.
그 며칠 동안 머릿속으로 질문을 만들어봤다.
내가 심사하는 사람이라면 뭘 물을까.
그렇게 생각해보니 약한 자리가 몇 군데 보였다.
보이는 자리는 그 며칠 사이에 고쳤다.
그런데 고치고 나서도 잠은 똑같이 안 왔다.
아직 모르는 자리가 있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모르는 걸 걱정하는 건 고칠 방법이 없다.
그 며칠에 아내가 한마디를 했다.
떨어지면 또 하면 되지 않느냐고.
맞는 말이었다.
그런데 그 말이 그때는 위로가 안 됐다.
또 하려면 또 몇 달이 들어가니까.
지금 생각하면 그 말이 제일 정확한 말이었다.
떨어져도 다시 하면 된다는 걸 알고 있으면 사람이 덜 떤다.
그걸 알면서도 못 받아들이는 게 사람이다.

■ 하루가 걸렸다
심사는 하루 종일 걸렸다.
서류를 보시고 현장을 보시고 질문을 하셨다.
공정 하나를 짚어서 이건 어떻게 관리하시냐고 물으시면, 서류에 적힌 그대로 대답하고 현장에서 보여드렸다.
적어놓은 것과 실제가 같아야 통과라는 걸 그날 알았다.
서류만 좋아도 안 되고 현장만 깨끗해도 안 됐다.
그 두 개가 같은 얘기를 하고 있어야 했다.
그러니 서류를 따로 만들고 현장을 따로 치우는 방식으로는 애초에 통과가 안 되는 구조였다.
질문이 꽤 구체적이었다.
이 공정에서 온도를 못 맞추면 어떻게 하시냐고 물으셨다.
서류에 적어둔 대로 대답했다.
그러면 그 기록은 어디 있느냐고 또 물으셨다.
가져와서 보여드렸다.
그 과정이 몇 번 반복됐다.
한 번은 대답이 조금 막혔다.
서류에 적힌 문장과 내가 하는 말이 조금 달랐던 자리였다.
그때 등에 땀이 났다.
적어둔 걸 내가 다 외우고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다행히 현장에서 보여드릴 수 있었고, 보여드린 게 서류와 같았다.
그 자리를 넘기고 나서 알았다.
서류를 외워서 넘기는 게 아니라 그대로 해왔으면 넘어간다는 것.
외운 사람은 막히는 순간 끝이고, 해온 사람은 막혀도 보여줄 게 있다.
그 뒤로 어디서 심사를 받을 때 그 기준으로 준비했다.
외울 생각을 하지 않고, 적은 대로 해두는 쪽으로.

■ 숨길 게 없어서 편했다
심사를 받으면서 한 가지가 편했다.
숨길 게 없었다는 점이다.
적어놓은 대로 해왔으니 어디를 열어 보여드려도 상관이 없었다.
그게 생각보다 큰 차이였다.
숨길 게 있으면 심사 내내 그 자리를 신경 쓰게 되고, 신경을 쓰면 다른 데서 실수가 난다.
그날 내가 한 일은 사실 대답뿐이었다.
준비는 그 앞의 몇 달에 다 끝나 있었다.
심사장에서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그날 알았다.
그게 처음에는 허탈했는데 생각해보니 당연했다.
심사는 그날 하루를 보는 게 아니라 그 앞의 몇 달을 보는 거였다.
하루를 잘 보이려고 꾸미는 건 애초에 통하지 않는 구조였다.
그래서 심사 전날 할 수 있는 최선은 그냥 자는 거였다.
나는 그걸 못 했지만.
그래도 그 며칠이 아주 헛되지는 않았다.
구석을 몇 번 돌아보면서 몇 군데를 고쳤으니까.
걱정이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쪽으로 쓰이면 그건 나쁘지 않다.

■ 90점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특히 서류 부분에서 해썹이 요구하는 수준 이상으로 세세하게 준비해주신 조 대표님 덕분에 90점이 넘는 높은 점수를 받았다.
덕분에 다음 해 정기 심사를 면제받는 특권까지 얻게 되었다.
그 얘기를 듣고서야 숨이 쉬어졌다.
한 번 받고 끝나는 게 아니라 받은 뒤에도 계속 봐야 하는 거였는데, 첫해에 그걸 한 해 벌어놓은 셈이었다.
그 문턱을 넘었을 때의 안도감과 성취감은 말로 쉽게 표현하기 어렵다.
결과를 알려드렸을 때 조 대표님이 수고했다고 하셨다.
그 말이 그렇게 좋았다.
그 한마디를 듣기 위해 몇 달을 뛴 것 같은 기분이었다.
칭찬에 약한 사람이라는 걸 그때 알았다.
그 전까지 몇 해 동안 누가 잘했다고 해준 적이 별로 없었다.
혼자 일하면 그런 말을 들을 자리가 없다.
그래서 그 한마디가 그렇게 컸던 거다.
그날 저녁에 공장 앞에 앉아서 한참 있었다.
해가 넘어가는 걸 보면서 그 몇 달을 되짚었다.
목록을 받고 막막했던 밤, 벽을 깨던 날, 새벽에 와서 혼자 돌던 날.
그게 다 지나가 있었다.
그러고 보면 제일 힘들었던 자리는 공사도 서류도 아니었다.
할까 말까 저울질했던 그 며칠이었다.
결정 뒤에 오는 일은 그냥 순서대로 하면 되는 거였다.

■ 두 장이 나왔다
인증은 품목별로 받는다.
그래서 우리는 두 장을 받았다.
과채음료와 액상차.
한 공장에서 두 품목을 올렸으니 서류도 두 벌이었고 인증도 두 건이었다.
유효기간은 그때 기준으로 삼 년이었다.
받아놓고 끝이 아니라 기간이 지나면 다시 봐야 하는 구조였다.
처음에는 그게 번거롭게 보였는데, 지나고 보니 그래서 값이 유지되는 거였다.
한 번 받고 영구히 간다면 받은 지 오래된 종이와 방금 받은 종이가 같아진다.
기간이 있으니 들고 있는 동안은 그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그리고 유지한다는 게 생각보다 할 일이 많았다.
기록을 계속 남겨야 하고, 물 검사를 주기대로 받아야 하고, 온도계를 해마다 확인해야 하고, 벌레 막는 걸 점검해 적어둬야 한다.
받는 것보다 지키는 게 길다는 걸 그 뒤에 알았다.
받는 건 한 번이고 지키는 건 매일이다.
그래서 인증을 받고 반납하는 데가 생각보다 많다고 들었다.
받을 때는 받는 게 목표니까 전부 쏟아붓는다.
그다음부터는 그게 일상이 되어야 하는데, 일상으로 만드는 건 또 다른 능력이었다.
우리는 그걸 기록으로 버텼다.
매일 적는 걸 거르지 않으면 유지가 된다.
거르기 시작하면 한 달 뒤에 무너진다.
그걸 직원들에게도 그렇게 말했다.
오늘 바쁘면 한 줄만 적으시라고.
안 적는 것과 한 줄 적는 것의 차이가 몇 해 뒤에 크다고.
안 적은 날은 없는 날이 되고, 한 줄 적은 날은 있는 날이 된다.
몇 해가 쌓이면 그 차이가 공장의 나이가 된다.
서류상 나이는 사업자 등록증에 적혀 있지만, 실제 나이는 기록이 몇 해치 쌓였느냐로 정해진다고 나는 생각한다.

■ 그 점수는 반반이었다
돌아보면 그 점수는 내 점수가 아니었다.
서류는 그분이 쌓으셨고 현장은 내가 뜯었으니 반반이었다.
그런데 마크는 내 이름으로 나왔다.
그 뒤로 그 마크를 볼 때마다 그분 생각이 났다.
받을 때는 내가 받은 것 같았는데 몇 해 지나고 보니 받아주신 거였다.
그래서 요즘 어디서 해썹 얘기가 나오면 그 말씀부터 한다.
혼자 하려면 작은 데는 못 한다고.
현장은 몸으로 되는데 서류는 아는 사람이 있어야 된다고.
그게 엄살이 아니라는 걸 해본 사람들은 다 안다.
그 말을 하고 나면 대개 다음 질문이 온다.
그런 사람을 어디서 구하냐고.
거기서부터는 내가 답을 못 한다.
나는 운이 좋아서 만난 거라서 구하는 방법을 모른다.
다만 하나는 말씀드린다.
그런 사람이 옆에 있을 때 알아보는 눈은 길러둬야 한다고.
좋은 사람이 옆에 있어도 못 알아보면 없는 것과 같다.
그분이 처음 뭘 해보라고 하셨을 때 내가 안 했으면 그 뒤가 없었다.
그러니 운의 절반은 알아보는 쪽에 있다.
그리고 알아보려면 자기가 뭘 모르는지를 알고 있어야 한다.
다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좋은 사람을 만나도 그냥 지나친다.

■ 마크 하나의 무게
해썹 인증을 받고 나니 주변의 시선이 확연히 달라졌다.
로컬 매장의 좋은 자리에 해썹 마크를 당당하게 찍은 제품을 진열할 수 있었다.
그때만 해도 시골 지역에서 해썹 인증을 받은 업체가 많지 않던 터라, 그 마크 하나에 사람들의 신뢰가 확 달라졌다.
같은 진열대에 비슷한 물건이 여러 개 있는데, 그중에 마크가 있는 걸 고르신다는 얘기를 매장 쪽에서 전해 들었다.
디자인도 전문가에게 맡겨서 제대로 뽑아냈다.
전에는 내가 대충 짜서 인쇄소에 넘긴 거였는데, 이번엔 제대로 된 분께 맡겼다.
그분이 잡아주신 포장은 확실히 달랐다.
글자 크기와 여백만 바뀌었는데 물건이 달라 보였다.
안이 같은데 겉이 달라지니 값이 달라 보인다는 걸 그때 배웠다.
그 뒤로 포장에 돈을 아끼지 않았다.
안을 잘 만드는 데 쓴 돈과 겉을 제대로 만드는 데 쓴 돈이 둘 다 필요하다는 걸 알았으니까.
안만 좋으면 손에 집히지 않고, 겉만 좋으면 두 번 안 산다.
처음 집게 하는 건 겉이고 다시 집게 하는 건 안이다.
그 둘을 그 무렵에 동시에 갖게 된 셈이었다.
안은 인증으로 증명했고 겉은 디자인으로 바꿨다.
그러니 그해에 달라진 건 물건이 아니라 물건을 보는 눈이었다.
그 전에는 맛만 생각했다.
그 뒤로는 맛과 안전과 모양을 같이 생각하게 됐다.
식품업을 한다는 게 그 세 개를 동시에 하는 일이라는 걸 그해에 배웠다.
■ 전화가 걸려오는 쪽으로
온라인에서도 오프라인에서도 주문이 꼬리를 물었고, 매출이 함께 올랐다.
그 무렵부터 매장에서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전에는 내가 전화를 걸어 넣어달라고 하는 쪽이었는데, 물건이 빠졌으니 채워달라는 전화를 받는 쪽으로 바뀐 거다.
그 방향이 바뀌는 게 사업에서 얼마나 큰 차이인지는 양쪽을 다 해본 사람만 안다.
걸 때는 아쉬운 쪽이고 받을 때는 아쉽지 않은 쪽이다.
같은 물건인데 겉과 마크가 달라졌다고 방향이 바뀌었다.
조 대표님의 아낌없는 지원으로 공장을 올리고 해썹 인증까지 받았으니, 호랑이에 날개를 단 기분이었다.
못할 것이 없었다.
■ 이름이 적힌 자리
그 인증서에 적힌 영업자 이름은 법인이 아니었다.
공장 영업신고를 일반사업자 이름으로 해뒀으니 인증서도 그 이름으로 나왔다.
인증은 사람한테 주는 게 아니라 영업장에 주는 거라, 신고가 누구 이름으로 되어 있느냐가 그대로 따라온다.
그래서 그 종이에는 내 개인 사업자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게 당시에는 당연했다.
공장을 지을 때 신고를 그 이름으로 했고, 그 이름으로 거래를 하고 있었으니까.
인증을 준비하는 몇 달 동안 쓴 서류도 전부 그 이름으로 나갔다.
그래서 인증이 나올 때도 그 이름으로 나오는 게 맞았다.
순서를 바꿀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다만 그 순서 때문에 나중에 한 가지 일이 더 생겼다는 건 그때 몰랐다.
받는 일 하나가 끝나면 그 뒤에 딸린 일이 꼭 하나 붙는다.
제도를 몇 번 거치면서 그게 늘 그렇다는 걸 알게 됐다.
명의를 바꾸는 건 또 별개의 절차였다.
영업자가 바뀌면 신고를 고쳐야 하고, 신고가 바뀌면 인증도 그 이름으로 옮겨야 한다.
그 일은 나중에 했다.
그래서 처음 받은 두 장에는 지금 쓰는 이름이 아니라 그 전 이름이 적혀 있다.
그 종이를 지금 보면 그게 오히려 그해를 증명해주는 것 같다.
그 시기에 내가 어떤 이름으로 일하고 있었는지가 거기 남아 있으니까.
종이에 적힌 이름이 바뀌는 데는 다 사정이 있다.
그 사정을 적어두지 않으면 몇 해 뒤에 본인도 왜 그랬는지 기억을 못 한다.
그래서 이렇게 한 줄 적어둔다.

■ 그 종이가 열어둔 것
안 해도 되는 걸 왜 했냐는 질문에 지금은 답을 할 수 있다.
작은 데가 자기를 증명할 방법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큰 데는 이름으로 증명하고, 오래된 데는 세월로 증명한다.
나는 둘 다 없었다.
그러니 기준을 통과했다는 걸 보여주는 것밖에 없었다.
그리고 하나 더 있다.
그 과정을 하면서 내 공장이 정리됐다.
기준에 맞추려고 구역을 나누고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는데, 그게 결국 나한테 편했다.
뭐가 언제 들어왔고 어떻게 나갔는지가 종이에 남으니까 머리로 외울 게 줄었다.
인증은 밖에 보여주려고 받은 건데, 정작 제일 달라진 건 안쪽이었다.
그리고 그 안쪽이 달라지니 사람을 쓸 수 있게 됐다.
구역이 갈려 있고 적는 양식이 있으니, 처음 온 사람에게 여기서 이걸 하고 이 칸에 적으시라고 하면 끝이었다.
전에는 내 머릿속에 다 있어서 사람을 쓸 수가 없는 공장이었다.
인증을 받고 제일 크게 달라진 게 그거였다고 생각한다.
마크는 밖에서 보는 것이고, 양식과 구역은 안에서 쓰는 것이다.
밖에서 보는 것 때문에 받았는데 안에서 쓰는 게 더 컸다.
그 종이가 그 뒤로 몇 개의 문을 열어줬는지는 지금 안다.
그때는 마크 하나 받는 일로만 보였다.
돌아보면 그게 받침대였다.
받침대는 올라가 있는 동안에는 안 보이고, 없는 사람과 비교해볼 때만 보인다.
그 뒤로 어디에 서류를 낼 일이 생기면 그 두 장이 먼저 들어갔다.
그게 있으면 설명이 짧아졌다.
작은 회사한테는 설명이 짧아지는 게 돈이다.
그러니 그해에 뜯은 공사비와 쏟은 몇 달은 몇 해에 걸쳐 돌려받은 셈이다.
한 번에 돌려받은 게 아니라 조금씩 돌려받았다.
그래서 돌려받는 동안에는 그게 돌려받는 건지도 몰랐다.
"桃李不言 下自成蹊"
(도리불언 하자성혜)
한나라 장수 이광은 말이 적은 사람이었다.
공을 세우고도 내세우지 않았고, 상을 받으면 부하들에게 나눠주었으며, 물이 모자라면 병사들이 다 마신 뒤에 마셨다.
그가 죽었을 때 그를 알던 사람이나 모르던 사람이나 모두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사마천은 그를 기록한 끝에 당시 사람들이 쓰던 속담 한 줄을 붙여두었다.
복숭아와 오얏은 말을 하지 않아도, 그 아래에는 저절로 길이 생긴다.
열매가 좋으면 사람이 알아서 찾아오고, 찾아온 발길이 쌓이면 길이 된다는 뜻이었다.
— 『사기(史記)』 이장군열전(李將軍列傳).
좋은 것은 스스로 떠들지 않아도 사람이 알아본다는 뜻이다.
다만 이 말에는 조건이 하나 붙어 있다.
열매가 실제로 좋아야 한다는 것.
말을 안 해도 되는 건 안이 찬 쪽이고, 안이 비면 말을 많이 해야 한다.
그해에 받은 마크 하나가 내 말을 줄여준 것도 그래서였다고 생각한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