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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일상

[법인 설립] 법인까지는 생각이 없었다

by 사람들생각 2025. 3. 26.

▣  옮겨온 글 ▣

예전 블로그에 써두었던 글을 옮겨 왔다. 문장은 그때 그대로 두고, 읽기 편하게 조금만 매만졌다.


 

예전에는 추위를 덜 타고 더위를 많이 타는 편이었다.

그런데 나이가 드니 몸이 계절을 느끼는 방식이 달라진 모양이다.

겨울엔 유독 춥고 여름엔 유독 덥다.

거리에서 마주치는 젊은 친구들의 가벼운 옷차림을 보면 분명 봄인데, 내게 닿는 바람은 아직 왜 이리 서늘한지 모르겠다.

나이가 드는 것도 계절이 바뀌는 것도, 어느 날 문득 알아차리게 되는 종류의 것이다.

그래도 아침에 문을 열면 공기에 섞인 흙냄새가 전과 다르다.

겨울에는 없던 풋풋한 것이 코끝을 스친다.

 

10월의 상주 가는길



■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원래 나는 법인까지는 생각이 없었다.

개인사업자로 공장을 올리고 해썹 인증까지 받았으니,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빈손으로 내려와서 몇 해 만에 내 건물에서 내가 만든 걸 만들어 팔고 있었다.

로컬 매장에 들어가 있었고 온라인에도 올라가 있었고 수입도 자리를 잡았다.

그 이상을 생각할 이유가 없었다.

개인사업자로 여기까지 왔으니 앞으로도 개인사업자로 가면 되는 거였다.

법인이라는 단어는 내 머릿속에서 다른 쪽 서랍에 들어 있었다.

서울에서 사업할 때 법인을 안 해본 것도 아닌데, 그때 기억이 좋지 않았다.

크게 벌이다가 크게 무너진 경험이 있는 사람은 규모를 키운다는 말 자체를 경계하게 된다.

다시는 크게 하지 않겠다고 내려온 사람이었다.

하지만 조 대표님의 생각은 달랐다.

그 차이가 또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다.

그분은 내가 다 됐다고 생각하던 그 자리를 출발선으로 보고 계셨다.

같은 자리를 두고 한 사람은 끝이라고 하고 한 사람은 시작이라고 하면, 둘 중 하나가 틀린 게 아니라 한쪽이 더 멀리 보고 있는 거다.

그때는 그걸 몰랐다.

그 말씀을 처음 들은 자리가 공장 사무실이었다.

사무실이라고 해도 작업장 구석에 책상 하나 놓은 자리였다.

거기 앉아서 법인 얘기를 듣고 있으니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직원도 없고 혼자 포장하고 혼자 택배를 묶는 사람이 법인이라니.

규모와 자격은 다른 얘기라는 걸 그때는 몰랐다.

규모가 되면 자격을 갖춘다고 생각했는데 순서가 거꾸로였다.

자격을 갖춰야 규모가 될 기회가 온다.




■ 문턱에서 걸리는 날

사업을 하다 보면 아무리 좋은 제품을 만들어도, 거래처의 문턱에서 걸리는 순간이 온다.

처음 그걸 겪었을 때는 무슨 소린지 몰랐다.

물건을 보여드리고 가격을 말씀드리고 샘플까지 보냈는데, 돌아오는 답이 사업자 형태를 묻는 거였다.

법인이신지 개인이신지.

개인이라고 하면 그 뒤로 연락이 끊겼다.

그런 일이 한두 번이면 운이 없었다고 넘길 수 있다.

그런데 여러 번 겹치니까 그게 운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법인을 요구하는 곳이 생각보다 많았다.

어느 정도 규모가 되는 데는 거래 상대를 고를 때 그걸 먼저 본다.

담당자가 결재를 올리려면 서류가 맞아야 하고, 그 서류 양식에 법인이 들어가 있는 곳이 많았다.

그쪽 사람이 나쁜 게 아니었다.

자기 회사 규정을 넘을 수 없는 거였다.

그걸 알고 나니 억울한 마음도 사라졌다.

한 군데는 담당자분이 미안해하시면서 솔직하게 말씀을 해주셨다.

물건은 괜찮은데 우리 쪽에서 개인사업자와는 계약서를 못 쓰게 되어 있다고.

그 말을 듣고 전화를 끊고 한참 앉아 있었다.

나쁜 소리를 들은 게 아닌데 기분이 가라앉았다.

내가 못 만들어서가 아니라 서류 한 칸 때문에 못 들어간다는 게 이상하게 더 답답했다.

실력이 문제라면 실력을 올리면 되는데, 자격이 문제면 실력을 올려도 그대로니까.

그 무렵에 수첩에 적어둔 게 있다.

문의를 넣었다가 답이 없던 곳, 샘플까지 보냈는데 연락이 끊긴 곳.

숫자로 적어보니 생각보다 많았다.

그 목록을 보면서 처음으로 법인이라는 단어를 진지하게 들여다봤다.

그중 몇 군데는 꽤 공들여 찾아간 데였다.

샘플을 보낼 때 포장을 두 번 다시 했고, 설명을 적은 종이도 같이 넣었다.

물건이 나쁘다는 소리를 들은 게 아니라 아무 소리도 못 들었다.

그게 제일 사람을 맥빠지게 한다.

못 만들었다는 소리는 고칠 수 있는데, 아무 소리도 안 들리면 어디를 고쳐야 하는지를 모른다.

 

상주 가로수 길



■ 아는 것과 하는 것

세금 혜택이나 대외적인 신뢰 면에서도, 여러모로 법인이 유리하다는 건 알고 있었다.

들어서 알고 있었고, 서울에서 어깨 너머로 본 것도 있었다.

하지만 아는 것과 직접 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걸리는 부분이 한둘이 아니었다.

돈이 묶이는 게 아닐까.

세금이 더 나오면 어쩌나.

한번 법인을 만들면 되돌릴 수 없는 거 아닌가.

직원도 없는데 법인이 말이 되나.

질문이라기보다 걱정의 덩어리였다.

그 덩어리를 혼자 들고 있으면 절대 안 풀린다.

덩어리는 풀리는 게 아니라 커지기만 한다.

며칠 그 생각만 하다가 결국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걸기까지가 또 며칠이었다.

물어보면 하라고 하실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어떤 답이 올 줄 알면서도 묻기를 미루는 건, 그 답을 듣고 나면 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피하고 있는 건 질문이 아니라 일이다.

그걸 알고 나서 전화를 걸었다.

그 며칠 동안 혼자 알아본 것도 있었다.

인터넷에 법인 전환이라고 쳐보면 자료가 쏟아져 나왔다.

그런데 읽어도 내 경우에 맞는 얘기인지를 알 수가 없었다.

좋다는 글과 하지 말라는 글이 같이 있었다.

그럴 때 결국 필요한 건 자료가 아니라 내 상황을 아는 사람이었다.

 

길가에 만발한 10월의 꽃



■ 매듭을 하나씩

조 대표님은 내 주저함을 하나씩 짚어가며 풀어주셨다.

걱정을 한 덩어리로 받지 않으시고 하나씩 떼어서 답을 주셨다.

이건 이렇게 되고, 이건 걱정하실 게 아니고, 이건 실제로 그렇게 되긴 하는데 그만큼 얻는 게 이거라고.

막연하게 느끼던 불안의 매듭을 차분하게 정리해주셨다.

설명을 다 듣고 나니 남은 건 두 가지였다.

하나는 정말 불편해지는 것, 하나는 분명히 좋아지는 것.

그 두 개를 저울에 올려놓고 보니 기울기가 명백했다.

불안이라는 건 대개 이름이 없을 때 제일 크다.

이름을 붙이고 나면 그 크기가 보인다.

그날 내가 한 일은 결정이 아니라 이름 붙이기였다.

그 통화에서 기억에 남는 말이 하나 있다.

불편해지는 건 분명하다고 먼저 인정해주셨다.

좋은 점만 늘어놓지 않으신 게 오히려 믿음이 됐다.

불편한 걸 불편하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하는 권유는 무게가 다르다.

그 뒤로 누가 뭘 권할 때 나도 그렇게 말하려고 한다.

이건 이게 번거롭고 이건 이게 좋습니다, 그렇게.

그 설명 중에 제일 크게 들어온 건 세금 얘기가 아니었다.

회사와 나를 분리해두는 게 나를 지키는 일이라는 설명이었다.

개인사업자는 회사가 어려워지면 그게 바로 내 집까지 간다고.

나는 그걸 한 번 겪어본 사람이었다.

그 말씀을 듣고 나서는 번거로움이 다르게 느껴졌다.

벽을 세우는 데 드는 품이었으니까.




■ 한계가 보이기 시작한 시점

결국 더 많은 거래처에 닿기 위해서는 법인이라는 자격이 필요했고, 그것을 피해 갈 방법은 없었다.

개인사업자로 버틸 수 있는 한계가 보이기 시작한 시점이기도 했다.

그 한계가 숫자로 보였던 건 아니다.

매출이 줄어든 것도 아니었고 거래처가 떨어진 것도 아니었다.

다만 더 갈 수 있는 길이 어딘가에서 끊겨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 거래하는 데와는 아무 문제가 없는데, 그 바깥으로는 나갈 수 없는 울타리 안에 있는 기분.

그 느낌을 처음 받았을 때는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열심히 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여기가 끝이라는 얘기로 들렸으니까.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라 자격 문제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자격은 갖추면 되는 거다.

갖출 수 있는 건 한계가 아니라 할 일이다.

그렇게 생각이 바뀌니까 마음이 편해졌다.

그러고 나서 내가 지나온 걸 한 번 세어봤다.

사업자등록, 귀농창업 지원 대상자, 공장, 해썹.

전부 처음에는 나와 상관없는 줄 알았던 것들이었다.

그런데 하나씩 보면 전부 자격이었다.

자격이라는 건 가진 사람과 못 가진 사람을 가르는 담이 아니라, 통과하면 열어주는 문이었다.

문이라는 걸 알고 나면 두드려볼 수 있다.

담이라고 믿고 있으면 평생 앞에 앉아만 있는다.

그 차이가 그 몇 해 동안 내가 배운 것 중에 제일 값이 나가는 거였다.

그리고 자격이라는 건 쌓이면 이어진다는 것도 알게 됐다.

사업자가 있어야 지원 대상자가 되고, 지원을 받아야 공장이 서고, 공장이 있어야 인증을 받는다.

하나가 없으면 그 뒤가 전부 막힌다.

그러니 법인도 그 줄의 다음 칸이었던 셈이다.

지금 당장 필요해서가 아니라 다음 칸이기 때문에 해야 하는 일.

그걸 몇 해 지나고서야 그렇게 정리할 수 있게 됐다.




■ 걱정부터 세던 버릇

돌아보면 그 무렵 내가 세고 있던 건 전부 걱정이었다.

세금이 더 나올까, 돈이 묶일까, 되돌릴 수 없을까.

그런데 그 걱정들을 하나씩 확인해보니 대부분은 실제로 일어나지도 않는 일이었다.

일어난 것도 있었는데, 그건 불편한 정도였고 감당할 수 있는 크기였다.

걱정의 크기와 실제의 크기가 다르다는 걸 그때 또 배웠다.

신용이 안 좋아서 지원을 못 받는 줄 알았던 것도 같은 버릇이었다.

확인해보니 아니었다.

법인은 큰 데나 하는 거라고 생각한 것도 같은 버릇이었다.

확인해보니 또 아니었다.

같은 실수를 두 번 하고 나면 세 번째에는 조금 의심하게 된다.

안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 때, 그 느낌이 어디서 왔는지를 한 번 들여다보게 됐다.

대개는 근거가 없었다.

근거 없는 느낌이 어디서 오는지도 조금은 알게 됐다.

한 번 크게 깨진 자리에서 생긴다.

그 자리에서 몸이 기억한 공포가 전혀 다른 일에도 똑같이 올라온다.

그러니 그건 판단이 아니라 기억이다.

기억을 판단으로 쓰면 평생 그 자리에서 못 나간다.

 

길가의 갈대

 

 

■ 안 해본 걸 해야 가는 자리

하기로 마음을 먹고 나니까 한 가지가 또렷해졌다.

안 해본 걸 하지 않으면 안 가본 데는 못 간다.

당연한 말인데 그게 몸으로 느껴진 건 그때였다.

공장을 지을 때도 그랬다.

한 번도 건물을 올려본 적이 없는 사람이 건물을 올렸다.

해썹도 그랬다.

의무도 아닌 걸 받겠다고 다 지은 공장을 뜯었다.

그때마다 전에 안 하던 걸 했고, 그러고 나면 전에 없던 게 생겼다.

법인도 같은 일이었다.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

공장과 인증은 내가 가진 걸 좋게 만드는 일이었고, 법인은 나를 다른 자리에 옮겨놓는 일이었다.

자리가 바뀌면 보이는 것도 바뀐다는 걸 그 뒤에 알게 됐다.

물론 전부 들어가 보라는 뜻은 아니다.

들어가도 되는 자리와 안 되는 자리를 가리는 게 먼저다.

그걸 혼자 가리려니까 나는 늘 틀렸다.

서울에서 무너진 게 그래서였다.

겁이 안 나는 걸 겁이 안 난다고 들어갔고, 그게 제일 위험한 자리였다.

이번에는 가리는 걸 물어보고 했다.

들어갈 자리인지 아닌지를 아는 사람에게 묻고 들어갔으니, 전과는 다른 일이었다.

그래서 법인을 만들기로 한 그날의 결정은 내가 용감해졌기 때문이 아니었다.

판단을 혼자 하지 않게 됐기 때문이었다.

용기는 성격이고 판단은 방법이다.

성격은 잘 안 바뀌는데 방법은 바꿀 수 있다.




■ 생각이 없던 자리에서

돌아보면 그해에 내가 한 제일 큰 일은 서류를 낸 게 아니었다.

생각이 없다고 그어놓은 선을 지운 거였다.

법인까지는 생각이 없었다는 그 문장이 몇 해 동안 내 울타리였다.

그 울타리는 누가 세운 게 아니고 내가 세운 거였다.

세운 사람이 나니까 지울 사람도 나밖에 없었다.

다만 거기에 금을 그어준 사람은 따로 있었다.

혼자 있으면 자기 울타리가 안 보인다.

울타리 안에 사는 사람한테는 그게 세상의 크기로 보이니까.

그걸 밖에서 봐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나한테는 그 사람이 조 대표님이었다.

요즘 누가 사업 얘기를 꺼내면 나는 숫자보다 사람 얘기를 먼저 한다.

돈이 없어서 못 하는 경우보다 몰라서 못 하는 경우가 훨씬 많고, 모른다는 걸 모르는 경우가 그중에 제일 많다.

그걸 깨주는 건 결국 옆에 누가 있느냐다.

흔히 어른들이 술 좋아하는 사람 곁에 있으면 술이 늘고, 노름하는 사람 곁에 있으면 노름에 손을 댄다고 빗대어 말하곤 한다.

나한테 그분은 그 반대쪽에 있는 사람이었다.

그 덕에 사업을 할 수 있는 단단한 기틀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생각하면 그분이 그 말씀을 꺼내신 시점이 절묘했다.

공장이 서고 해썹까지 받아 숨을 고를 때였다.

그때가 사람이 제일 안 움직이는 시기다.

힘들 때는 어쩔 수 없이 움직이고, 잘 안될 때는 급해서 움직이는데, 괜찮을 때는 그냥 있고 싶어진다.

괜찮을 때 다음 칸을 밟게 만드는 게 제일 어려운 일이다.

그걸 해주는 사람이 옆에 있었다는 게 그 몇 해의 차이였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랴"

 

옛날 집집마다 장을 담갔다.

메주를 쑤어 띄우고 항아리에 담아 몇 달을 두는 일인데, 그 과정에서 벌레가 꼬이는 일이 드물지 않았다.

그렇다고 장을 안 담그는 집은 없었다.

한 해 먹을 간장과 된장이 거기서 나오는데, 벌레 몇 마리가 무섭다고 항아리를 비워둘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생기면 걷어내고 덮어두고 자리를 옮기며 그 해 장을 담갔다.

그래서 이 말은 겁이 없으라는 뜻이 아니라, 겁나는 것 때문에 꼭 해야 할 일을 접지는 말라는 뜻으로 쓰여 왔다.

 

— 한국 속담.

 

걸리는 것이 몇 가지 있다고 해서 해야 할 일을 접으면 아무것도 담지 못한다는 뜻이다.

걱정은 대개 이름이 없을 때 제일 크고, 하나씩 떼어내 확인하면 걷어낼 수 있는 크기로 줄어든다.

그러니 먼저 할 일은 겁을 지우는 게 아니라 겁의 목록을 적어보는 쪽이다.

 

법인까지는 생각이 없었다던 그해에, 내가 적어본 걱정은 대부분 걷어내면 되는 것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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