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옮겨온 글 ▣
예전 블로그에 써두었던 글을 옮겨 왔다. 문장은 그때 그대로 두고, 읽기 편하게 조금만 매만졌다.
공장을 뜯는 일은 몸으로 밀면 됐다.
서류는 그게 안 됐다.
그해에 제일 넘기 어려웠던 건 벽이 아니라 종이였다.
벽은 깨면 깨지는데 종이는 깨서 되는 일이 아니었다.
앉아서 써야 하는 일이고, 쓰려면 알아야 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쓸 줄 아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 일이었다.
그게 제일 중요한 조건이었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현장 일은 사람을 사서 시킬 수 있다.
서류는 그게 잘 안 된다.
우리 공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아는 사람이 써야 하니까.
그러니 밖에서 사오는 게 아니라 안에 있는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분은 우리 공장을 처음부터 봐오신 분이었다.
땅을 알아볼 때부터 계셨고, 건물이 올라가는 것도 보셨고, 기계가 들어오는 것도 보셨다.
그러니 우리 공정을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나 말고 한 사람 더 있었던 셈이다.
그게 아니었으면 그 서류는 안 됐을 것이다.

■ 두 축이 있었다
해썹이 요구하는 서류는 크게 두 축이었다.
하나는 기본 조건을 어떻게 지키고 있는지를 적는 쪽이다.
작업장을 어떻게 나눠뒀고, 청소를 무엇으로 얼마나 자주 하고, 물은 어디서 와서 어떻게 검사하고, 벌레는 어떻게 막는지.
다른 하나는 우리 제품을 만드는 과정 자체를 뜯어서 적는 쪽이다.
어느 공정에서 무엇이 위험해질 수 있고, 그중 반드시 잡아야 하는 지점은 어디이며, 그 지점을 무엇으로 어떻게 지키는지.
앞쪽은 공장에 관한 얘기고 뒤쪽은 제품에 관한 얘기였다.
둘 다 있어야 했다.
처음에는 그 두 축이 왜 따로 있는지 몰랐다.
공장이 깨끗하면 된 거 아니냐 싶었다.
그런데 공장이 깨끗해도 제품을 잘못 만들면 사고가 나고, 제품을 잘 만들어도 공장이 더러우면 사고가 난다.
막는 자리가 다른 거였다.
그래서 두 축이 따로 있는 거였다.
그 말을 듣고 나서 공장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전에는 공장이 하나의 공간이었다.
그 뒤로는 그릇과 내용으로 나눠 보게 됐다.
그릇을 아무리 닦아도 내용이 상하면 끝이고, 내용을 잘 만들어도 그릇이 더러우면 끝이다.
그래서 심사도 두 쪽을 다 본다.
공장을 보는 눈과 공정을 보는 눈이 따로 있는 거다.
한쪽만 좋아서는 통과가 안 되는 구조였다.
■ 순서가 정해져 있었다
그 과정에 순서가 정해져 있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먼저 담당할 사람을 정하고, 만들 제품이 뭔지를 글로 적고, 누가 어떻게 먹는 물건인지를 적고, 만드는 순서를 흐름도로 그리고, 그 흐름도가 실제 공장과 맞는지 현장에서 걸어가며 확인한다.
거기까지가 준비다.
그다음부터가 본론이었다.
공정마다 무엇이 위험해질 수 있는지를 따지고, 그중 반드시 관리해야 하는 지점을 정하고, 그 지점에 기준을 걸고, 그 기준을 누가 어떻게 확인하고, 벗어났을 때 뭘 하고, 이 체계가 제대로 돌아가는지를 또 확인하고, 그 전부를 기록으로 남긴다.
적어놓고 보면 일곱 가지다.
우리는 그 일곱 가지를 품목마다 따로 해야 했다.
그 순서를 처음 받아 읽을 때는 무슨 말인지 반도 몰랐다.
위해요소니 중요관리점이니 한계기준이니 하는 말이 다 낯설었다.
낯선 말이 나오면 사람이 겁을 먹는다.
그래서 그 말들을 내 말로 바꿔서 공책에 적어뒀다.
위해요소는 뭐가 잘못될 수 있나.
중요관리점은 그중에 꼭 막아야 하는 데가 어디냐.
한계기준은 거기서 어디까지는 괜찮냐.
모니터링은 그걸 누가 어떻게 보냐.
그렇게 바꿔 적고 나니 겁이 좀 줄었다.
용어가 어려운 거였고 내용이 어려운 건 아니었다.
그 뒤로 어려운 서류를 만나면 그 방법을 쓴다.
용어를 내 말로 바꿔 적어본다.
바꿔 적을 수 있으면 아는 거고, 못 바꾸면 아직 모르는 거다.
그렇게 가르면 겁먹을 자리와 공부할 자리가 갈린다.

■ 품목이 둘이라 두 번이었다
해썹은 공장에 한 번 찍어주는 게 아니라 품목별로 받는다.
우리는 액상차와 과채음료 두 가지를 올렸다.
그러니 제품설명서도 두 개, 공정흐름도도 두 개, 위험을 따지는 표도 두 개였다.
비슷해 보이는데 공정이 달랐다.
액상차는 재료를 우리고 졸여서 걸러 담는 쪽이고, 과채음료는 즙을 내고 섞어서 담는 쪽이다.
들어가는 재료가 다르고 지나는 설비가 다르니 위험해지는 자리도 달랐다.
한쪽을 다 쓰고 나서 다른 쪽을 쓰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처음부터 다시 따져야 했다.
그 작업이 두 배로 늘어난 셈이라 그때는 속이 상했다.
한 품목만 올릴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조 대표님이 반대하셨다.
지금 둘을 같이 올려놓으면 나중에 하나를 더 붙일 때 그 틀을 쓸 수 있다고.
처음 한 번 만드는 게 어렵고 두 번째는 쉽다는 얘기였다.
그 말이 맞았다.
뒤에 품목을 손볼 일이 생겼을 때 그 틀이 그대로 쓰였다.
그러니 힘들 때 하나 더 해두는 게 결국 남는 장사였다.
그 판단은 내가 못 했다.
해본 사람만 할 수 있는 판단이었다.
그런 판단을 몇 번 옆에서 보면 그다음부터는 내가 비슷하게 할 수 있게 된다.
배운다는 게 그런 식이었다.
설명을 들어서 배운 게 아니라 결정하는 걸 옆에서 봐서 배웠다.
그래서 나는 요즘 누구한테 뭘 가르칠 때 말로 설명하기보다 같이 해보려고 한다.
말로 하면 들은 사람이 반만 가져간다.
같이 해보면 그 자리에서 손에 남는다.

■ 흐름도를 그리는 일
제일 오래 붙들고 있었던 게 공정흐름도였다.
재료를 받는 데서 시작해서 병에 담겨 나가는 데까지를 한 장에 그리는 건데, 그리다 보면 빠진 데가 자꾸 나왔다.
받아서 어디에 뒀는지, 씻기 전에 어디를 지났는지, 식히는 동안 어디에 놔뒀는지.
머릿속으로는 다 아는 일인데 선으로 그려놓으면 선이 끊긴 데가 보인다.
선이 끊긴 자리가 내가 설명 못 하는 자리였다.
그걸 그려놓고 공장을 걸어봤다.
종이에 그린 대로 실제로 걸어가 보는 일이었다.
걸어보니 종이와 다른 데가 몇 군데 나왔다.
내가 편해서 지름길로 다니던 자리가 종이에는 없었다.
그걸 고치는 데 또 며칠이 갔다.
그 며칠이 아까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종이와 실제가 다른 공장은 심사에서 바로 걸린다.
그러니 그 며칠은 심사를 미리 받아보는 시간이었다.
우리 손으로 먼저 걸러낸 거였다.
그러고 보면 서류를 쓰는 일이 공장을 점검하는 일이었다.
적으려고 보면 안 맞는 데가 나오고, 안 맞는 데를 고치면 공장이 나아진다.
서류가 공장을 끌고 가는 구조였다.
그걸 알고 나서 서류가 덜 미웠다.
그 전에는 서류가 심사받기 위한 숙제였다.
그 뒤로는 공장을 들여다보는 도구가 됐다.
같은 종이인데 쓰는 사람 생각에 따라 그렇게 달라진다.
그러니 그 서류를 억지로 만든 데와 쓰면서 만든 데는 몇 해 뒤에 달라질 수밖에 없다.
억지로 만든 데는 심사 때만 꺼내고, 쓰면서 만든 데는 매일 꺼낸다.
매일 꺼내는 종이는 손때가 묻는다.
우리 점검표에는 손때가 묻었다.

■ 반드시 잡아야 하는 지점
그다음이 어느 지점을 반드시 잡아야 하는지 정하는 일이었다.
공정이 열 몇 개인데 전부를 똑같이 조일 수는 없다.
그중에 여기만은 놓치면 안 되는 자리가 있다.
우리 쪽은 열을 쓰는 공정이 그 자리였다.
거기에 온도와 시간을 기준으로 걸었다.
그 범위 안에 있으면 통과고 벗어나면 안 된다.
그러면 누가 그걸 보나.
어떤 간격으로 보나.
무엇으로 재나.
벗어난 게 확인되면 그 물건을 어떻게 하고, 설비는 어떻게 하고, 그 사실을 어디에 적나.
한 지점을 정하면 그 뒤로 질문이 줄줄이 붙었다.
그 질문에 전부 답을 적어야 서류가 끝났다.
그걸 적다가 한 가지를 알게 됐다.
내가 그 공정을 지키고 있다고 믿었던 근거가 사실 없었다.
늘 그렇게 해왔다는 것 말고는 없었다.
늘 그렇게 해왔다는 건 기록이 아니다.
기록이 없으면 지켰는지 안 지켰는지를 아무도 모른다.
나조차 모른다.
그 생각을 하니 좀 아찔했다.
몇 해 동안 물건을 만들어 팔았는데, 그게 제대로 만들어진 건지를 증명할 방법이 내게 없었던 거다.
문제가 없었던 건 운이 좋았던 쪽에 가까웠다.
그 말을 조 대표님께 했더니 다들 그렇게 시작한다고 하셨다.
다들 그렇게 시작하는데, 계속 그렇게 가는 데와 바꾸는 데가 갈린다고.
그 말이 위로이기도 하고 경고이기도 했다.
시작이 허술한 건 흠이 아니지만, 허술한 채로 계속 가는 건 흠이라는 얘기였다.

■ 매뉴얼, 수불부, 점검표
동시에 요구되는 서류의 양이 어마어마했다.
매뉴얼, 공정 관리, 원료 수불부, 위생 점검표.
해썹이 요구하는 서류 체계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방대했다.
원료가 언제 얼마 들어왔고 어디서 왔고 성적서를 확인했는지를 적는 장부가 따로 있었다.
청소와 소독을 언제 무엇으로 했는지 적는 표가 따로 있었다.
냉장과 냉동 온도를 적는 칸이 따로 있었다.
물을 검사한 결과를 보관하는 자리가 따로 있었다.
만든 제품을 검사한 결과를 적는 양식이 따로 있었다.
문제가 생겼을 때 물건을 거둬들이는 절차를 미리 적어둔 문서도 있어야 했다.
한 가지 공정을 쓰려면 그 공정을 누가 언제 어떻게 하고 뭘 확인하는지를 전부 글로 적어야 했다.
내가 머릿속으로 하던 걸 전부 문장으로 바꾸는 작업이었다.
그 양식들을 처음 받아 봤을 때 숨이 막혔다.
이걸 매일 다 적으면서 언제 물건을 만드나 싶었다.
그런데 몇 주 해보니 적는 데 걸리는 시간이 줄었다.
처음에만 오래 걸리는 일이었다.
칸이 정해져 있으니 쓸 말을 고민할 필요가 없었고, 손에 익으면 하루 몇 분이었다.
번거롭다고 느꼈던 건 익숙하지 않아서였던 셈이다.

■ 말문이 막히던 자리
그 서류를 쓰면서 내가 뭘 하고 있었는지를 처음으로 또렷하게 봤다.
머릿속에서 감으로 하던 걸 숫자와 문장으로 바꿔놓으니, 내가 잘하던 부분과 대충 하던 부분이 다 드러났다.
어떤 공정은 설명이 바로 나왔고 어떤 공정은 말문이 막혔다.
말문이 막히는 건 내가 그걸 제대로 모르고 하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몇 분 끓이냐고 물으면 대충 이쯤이라고 대답했다.
대충 이쯤이라는 건 서류에 적을 수가 없다.
그래서 그 부분을 다시 공부했다.
몇 번 재보고 적어보고 맛을 보고 다시 재봤다.
인증 준비가 공부가 되어버린 셈이었다.
그리고 그 공부가 제품을 바꿨다.
대충 이쯤에서 끓이던 걸 정해놓고 끓이기 시작하니 맛이 일정해졌다.
전에는 만들 때마다 조금씩 달랐다.
그걸 손맛이라고 불렀는데, 사실은 관리가 안 되던 거였다.
손님 입장에서는 같은 제품이 매번 다른 게 좋을 리가 없다.
같은 맛이 나오게 만드는 것이 품질이라는 걸 그때 알았다.
그걸 알고 나서 손맛이라는 말을 조심해서 쓴다.
손맛은 한 그릇을 잘 만드는 재주고, 품질은 천 그릇을 같게 만드는 체계다.
집에서 먹을 거면 손맛이 좋고, 팔 거면 체계가 있어야 한다.
그 둘을 섞어서 쓰다가 손해 보는 사람을 그 뒤로 몇 번 봤다.
■ 서류는 그분이 쌓으셨다
그 수백 장의 서류를 조 대표님이 밤낮으로 매달려 빈틈없이 완성해주셨다.
컨설팅을 받고 있었지만, 거기서 받은 건 틀과 지적이었다.
그 틀을 우리 공장 얘기로 채우는 일은 누군가 해야 했고, 그걸 그분이 하셨다.
나는 현장을 뜯고 있었고, 그분은 서류를 쌓고 계셨다.
낮에 전화로 물어보시고 밤에 정리하시는 식이었다.
그 공정에서 온도를 몇 도로 맞추는지, 몇 분 돌리는지, 끝나고 뭘 보고 판단하는지.
내가 말로 대답하면 그게 다음 날 문서가 되어 돌아왔다.
그 서류를 받아 볼 때마다 민망했다.
내 공장 얘기인데 내가 쓴 게 아니었다.
그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건 현장을 기준에 맞추는 일이었고, 그건 밤에도 했다.
현장과 서류라는 두 개의 무거운 짐을, 둘이서 나눠 짊어지고 쉼 없이 달렸다.
그 몇 달 동안 그분이 몇 시에 자셨는지 모른다.
새벽에 보낸 파일이 와 있는 날이 많았다.
낮에는 본업이 있는 분이었다.
그러니 우리 서류는 그분 밤 시간에서 나온 거였다.
그 얘기를 하면 그분은 일이니까 한 거라고 하셨다.
일이라고 해도 그 시간에 할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그 인증을 내가 받았다고 말하지 않는다.
현장은 내가 했고 서류는 그분이 했다.
둘 중 하나가 없으면 안 되는 거였으니 반반이다.
그런데 인증서에는 내 이름만 적혀 나온다.
종이에 안 적히는 사람이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그래서 이렇게 적어두는 거다.
적히지 않은 쪽을 적어두는 게 받은 사람이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해 가을에 그 서류가 한 뭉치로 정리됐다.
그걸 들어보니 무거웠다.
종이가 무거운 게 아니라 그 몇 달이 무거웠다.
그 뭉치를 작업장 선반에 올려뒀다.
심사가 끝난 뒤에도 거기 있었고, 해마다 한 권씩 늘었다.

■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다.
원료가 언제 얼마 들어왔고 어느 날 몇 개를 만들었고.
처음에는 그게 번거로운 일로만 느껴졌다.
만드는 시간을 적는 데 쓰는 게 아깝게 느껴지던 시기였다.
그런데 그 기록이 몇 해 뒤에 어떤 일을 해줬는지는 그때 몰랐다.
몇 해치가 쌓이고 나니 그게 우리 공장의 역사가 됐다.
어떤 달에 뭐가 많이 나갔고 어떤 해에 원료값이 올랐는지가 종이에 다 있었다.
감으로 알던 걸 종이로 보면 틀린 데가 꽤 나온다.
그걸 보고 다음 해 계획을 짰다.
기록은 과거를 적어두는 일처럼 보이는데 실제로는 다음 해를 정하는 일이었다.
■ 적히지 않는 자리
그 몇 달을 지나고 나서 한 가지가 남았다.
글로 적어보면 자기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이 갈린다는 것.
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막상 적으려면 안 적혔다.
적히지 않는 자리가 바로 내가 모르는 자리였다.
그래서 그 뒤로 뭔가를 제대로 알고 싶으면 적어본다.
설명이 안 나오면 아직 모르는 거다.
그 방법이 해썹 서류를 쓰면서 생겼다.
그리고 하나 더 있다.
적어도 다 안 적히는 게 있다는 것.
손끝으로 아는 것들은 끝까지 문장이 안 된다.
그런 자리가 남는다는 걸 알고 나서 나는 사람을 가르칠 때 종이만 주지 않는다.
옆에 세워놓고 같이 해보게 한다.
종이는 틀을 주고, 손은 종이에 안 적힌 걸 준다.
그 두 개를 같이 줘야 사람이 일을 배운다.
"書不盡言 言不盡意"
(서부진언 언부진의)
공자가 말했다.
글은 말을 다 담지 못하고, 말은 뜻을 다 담지 못한다.
그러자 묻는 이가 되물었다.
그렇다면 성인의 뜻은 끝내 알 수 없는 것입니까.
공자가 답했다.
그래서 성인은 상을 세워 뜻을 다하고, 괘를 만들어 그 뜻을 드러내고, 말을 붙여 그 말을 다하게 했다.
글로 다 안 담기는 걸 알았기에 다른 방법을 하나 더 두었다는 뜻이었다.
— 『주역(周易)』 계사상전(繫辭上傳).
글로는 말을 다 담지 못하고 말로는 뜻을 다 담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적기를 그만두라는 말은 아니다.
다 안 담긴다는 걸 알고 적어야, 안 담긴 자리를 따로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머릿속 공정을 문장으로 옮기던 그해에 나는 적히는 것과 적히지 않는 것을 처음으로 구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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