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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일상

[해썹 인증] 미리 해 두는게 낫겠다.

by 사람들생각 2025. 3. 22.

▣  옮겨온 글 ▣

예전 블로그에 써두었던 글을 옮겨 왔다. 문장은 그때 그대로 두고, 읽기 편하게 조금만 매만졌다.


 

안 해도 되는 일을 굳이 하겠다고 나설 때가 있다.

그때는 왜 그러냐는 말을 듣는다.

몇 해가 지나서야 그게 왜였는지 설명이 된다.

나한테는 그런 일이 하나 있었다.

그 일을 하겠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들은 말이 대개 비슷했다.

왜 사서 고생을 하느냐는 거였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안 하면 안 해도 되는 일이었으니까.

그런데 그 일을 하고 나서 몇 해 동안, 그게 받침대가 되어 있는 걸 여러 번 봤다.

받침대는 올라가 있는 동안에는 안 보인다.

없는 사람과 비교해볼 때만 보인다.

그래서 그해에 왜 그랬냐는 질문에 지금은 이렇게 답한다.

그때는 나도 몰랐고, 아는 사람이 옆에 있었다고.




■ 건물은 섰고 안이 비어 있었다

공장은 다 지어졌는데 안이 텅 비어 있었다.

벽이 있고 바닥이 있고 전기가 들어오는데 그걸로 뭘 만들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 겨울에 기계를 알아보러 다녔다.

어떤 걸 어디에 놓을지, 물은 어디로 들어와서 어디로 나갈지, 사람이 어느 길로 다닐지.

공책에 선을 긋고 지우고 다시 긋는 일을 몇 달 했다.

봄이 되면서 기계가 하나씩 들어왔다.

들여놓고 자리를 잡고 시험 삼아 돌려봤다.

물건이 처음 나온 날은 밤까지 공장에 있었다.

병에 담아서 상표를 손으로 붙이고 한 줄로 세워놨다.

스무 병쯤 됐던 것 같다.

그걸 세워놓고 한참을 봤다.

빌린 작업장에서 남의 기계로 만들던 때와는 다른 기분이었다.

그 전까지는 남의 설비를 빌려 쓰거나 손으로 만들어 팔았다.

빌려 쓰면 시간을 맞춰야 하고, 손으로 하면 양이 안 나온다.

내 기계로 내 시간에 만든다는 게 그렇게 다른 일인 줄 몰랐다.

그 봄에 처음으로 주문이 들어온 만큼 만들 수 있게 됐다.

그게 사업에서 얼마나 큰 변화인지는 못 만들어서 거절해본 사람만 안다.

그게 그 무렵이었다.

그해 봄은 유난히 바빴다.

물건을 만들어보고 고치고 다시 만들어보는 일을 반복했다.

끓이는 시간을 조금 바꾸면 맛이 달라지고, 담는 온도를 바꾸면 색이 달라졌다.

그걸 종이에 적어가며 맞춰 나갔다.

그때는 그게 그냥 내 감으로 하는 일이었다.

몇 달 뒤에 그 감을 전부 숫자로 바꿔 적어야 하는 일이 생길 거라는 건 그때 몰랐다.

 

공장으로 들어 오는 진입로



■ 조 대표님이 꺼낸 말

공장의 모양새가 갖춰지자 조 대표님이 한마디를 건네셨다.

이왕 식품 사업을 제대로 시작할 거라면, 처음부터 해썹 인증을 갖추고 출발하라고.

남들에게 인정받으려면 그만큼의 기준을 스스로 세워야 한다고.

그 한마디가 나를 해썹이라는 낯설고 험난한 도전 앞에 세웠다.

처음엔 무슨 말인지 잘 몰랐다.

식품 쪽에 안전 관리 인증이라는 게 있다는 건 들어봤는데, 그게 나 같은 작은 데에도 해당되는 줄은 몰랐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큰 공장에서 하는 얘기라고만 생각했다.

그 말씀을 하실 때 그분은 이미 다음을 보고 계셨던 것 같다.

지금 받아놓으면 뒤에 따라오는 것들이 수월해진다는 걸 아셨던 거다.

나는 그때 그게 안 보였다.

눈앞에 기계를 들여놓는 것만 보고 있었다.

그분은 늘 그런 식이었다.

내가 지금 하는 일을 거들어주는 게 아니라, 지금 하는 일이 다음에 뭐가 되는지를 말해주셨다.

그걸 처음에는 잔소리로 들었다.

지금 당장 할 일이 산더미인데 몇 해 뒤 얘기를 하시니 답답했다.

몇 해 지나고 보니 그 말들만 남았다.

그 무렵에 내가 제일 자주 들은 말이 두 개였다.

지금 해두라는 말과, 순서가 있다는 말.

지금 해두라는 말은 돈이 들어서 싫었고, 순서가 있다는 말은 조급해서 싫었다.

싫었던 두 말이 결국 그 몇 해를 만들었다.

듣기 싫은 말을 해주는 사람이 옆에 있는 게 복이라는 걸 그때는 몰랐다.

듣기 좋은 말만 해주는 사람은 많았다.

잘하고 있다는 말은 듣고 나면 기분이 좋고 남는 게 없다.

지금 이걸 해두라는 말은 듣고 나면 기분이 나쁘고 몇 해 뒤에 남는다.

 

현장 바닥 공사



■ 받을 의무가 없는 품목이었다

그 말을 듣고 알아봤더니 우리가 만들려는 건 의무 대상이 아니었다.

제도에는 꼭 받아야 하는 품목이 정해져 있다.

어묵이나 냉동식품, 빙과류, 과자와 빵, 김치, 레토르트, 음료류 같은 것들이 거기에 들어간다.

우리가 주력으로 준비하던 액상차는 거기서 빠져 있었다.

액상차는 다류로 분류되는데, 다류와 커피는 그 의무 품목에서 제외되어 있었다.

그러니 안 받아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한 가지가 더 있었다.

그 무렵에 과채음료도 같이 준비하고 있었는데, 그쪽은 음료류에 들어간다.

음료류는 의무 품목에 들어 있지만 규모에 따라 적용되는 구조였고, 우리 같은 작은 데는 당장 걸리는 게 아니었다.

그러니 둘 다 안 받아도 되는 상태였다.

다만 둘 다 만들 생각이라면 언젠가 한 번은 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도 그때 알았다.

그 두 가지가 왜 다른 칸에 들어가는지도 그때 알아봤다.

액상차는 재료를 우리거나 졸여서 만든 걸 물에 타는 쪽이고, 과채음료는 과일이나 채소의 즙이 얼마나 들어갔느냐로 이름이 갈린다.

같은 병에 담겨 나가도 안에 뭐가 얼마나 들었는지로 칸이 달라지는 셈이다.

그 칸이 달라지면 지켜야 하는 것도 달라진다.

그걸 모르고 그냥 만들다가 표기를 잘못 쓰면 나중에 문제가 된다.

그 얘기를 들으면서 식품업이 생각보다 촘촘한 판이라는 걸 알았다.

병 하나에 붙는 상표에도 적어야 하는 게 정해져 있었다.

무슨 유형인지, 뭐가 얼마나 들었는지, 어떻게 보관하는지.

그걸 임의로 쓰면 안 된다는 걸 그때 배웠다.

전에 손으로 써서 붙이던 시절에는 그런 걸 몰랐다.

모르고 한 것과 알고 안 한 것은 다르지만, 걸리면 똑같이 걸린다.

맛있게 만드는 것과 규정에 맞게 만드는 것은 아예 다른 일이었다.

그리고 그 칸이 해썹에서도 갈린다는 게 중요했다.

의무 품목에 들어가느냐 빠지느냐가 그 칸으로 정해지니까.

우리는 한쪽은 아예 빠져 있고 한쪽은 규모 때문에 아직 안 걸리는 상태였다.

그러니 안 받을 명분은 충분했다.

명분이 충분한데도 받기로 한 게 그해의 결정이었다.

그래서 나중에 누가 왜 받았냐고 물으면 대답이 좀 길어진다.

의무라서 받은 게 아니라고 설명해야 하고, 그러면 왜 받았냐는 질문이 또 따라온다.

의무가 아닌 걸 받은 사람은 그 이유를 매번 설명해야 하는 셈이다.

그 설명을 몇 해 하다 보니 내 생각도 정리됐다.

결국 하나로 모인다.

의무로 하는 일은 최소한만 하게 되고, 하겠다고 해서 하는 일은 그 이상을 하게 된다.

같은 인증을 받아도 그 둘은 공장이 달라진다.

 

사무실 공사중



■ 처음엔 안 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처음엔 솔직히 안 할 생각이었다.

돈이 들고 시간이 들고 공사를 또 해야 한다는데, 안 해도 되는 걸 왜 하나 싶었다.

그 무렵 나는 건물을 올리느라 몇 달을 쏟아부은 상태였다.

이제 겨우 안을 채우고 물건을 만들어볼 참인데, 또 뜯는다는 얘기가 들리니 기운이 빠졌다.

솔직히 말하면 조금 억울했다.

남들은 안 하는데 왜 나만 하냐는 생각도 들었다.

그 얘기를 조 대표님께 그대로 말씀드렸다.

돌려 말하지 않고 돈이 없다고 했고, 또 뜯을 기운이 없다고 했다.

그분은 그걸 끊지 않고 끝까지 들으셨다.

그러고 나서 반박하지 않고 숫자를 꺼내셨다.

그게 그분 방식이었다.

하라고 밀어붙이신 적이 한 번도 없다.

대신 안 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적어서 보여주셨다.

결정은 늘 내가 하게 만드셨다.

그래서 나중에 후회할 자리가 없었다.

누가 시켜서 한 일은 틀어지면 남을 원망하게 되는데, 내가 정한 일은 그게 안 된다.

그 방식이 사람을 키우는 방식이라는 걸 한참 뒤에 알았다.




■ 생각을 바꾼 세 가지

요지는 이랬다.

작은 데가 큰 데와 겨룰 수 있는 방법은 품질을 증명하는 것 하나뿐이고, 증명은 말로 되는 게 아니라 마크로 된다는 것.

그리고 지금 안 받으면 나중에 품목을 늘릴 때마다 같은 고민을 반복해야 한다는 것.

또 그분 말씀이 맞았다.

사실 하나가 더 있었다.

그 설명 중에 지금 안 받으면 나중에 들어가고 싶은 데에 못 들어간다는 얘기가 있었다.

큰 데와 거래를 하려면 그쪽이 요구하는 조건이 있고, 그 조건에 인증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는 거였다.

당장 거래할 데가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그 말이 걸렸다.

기회가 왔을 때 조건을 못 맞춰서 못 받는 일은 겪어보지 않아도 짐작이 갔다.

준비는 기회가 오기 전에 해놓는 거라는 말을 그때 또 들었다.

그 말이 머리에 박힌 건 전에 반대쪽을 겪어봤기 때문이다.

전에 조건을 못 맞춰서 놓친 자리가 한 번 있었다.

그때는 억울하다고만 생각했다.

돌아보면 억울할 일이 아니었다.

조건은 미리 공개돼 있었고 나만 준비를 안 해뒀던 거다.

그 기억이 그 자리에서 되살아났다.

같은 방식으로 또 놓치기는 싫었다.

 

소모품 자재



■ 종이 한 장에 적어본 계산

며칠 고민하다가 그분과 앉아서 종이에 적어봤다.

왼쪽에 들어가는 돈을 적고 오른쪽에 못 하게 되는 걸 적었다.

왼쪽은 숫자로 적을 수 있었다.

공사비, 컨설팅비, 심사 비용, 그동안 생산을 못 하는 날들.

오른쪽은 숫자로 적을 수가 없었다.

들어가고 싶은 매장, 나중에 늘릴 품목, 큰 거래처가 요구하는 조건, 몇 해 뒤에 또 뜯어야 할 공사.

그런데 숫자로 적을 수 없는 쪽이 더 컸다.

사업에서 중요한 것들은 대개 숫자로 안 적힌다는 걸 그때 느꼈다.

감정으로는 억울한데 숫자로는 명백한 상황이었다.

그럴 때는 숫자를 따라가는 게 맞다는 걸 전에 한 번 비싸게 배운 사람이라 그대로 했다.

그 종이를 지금도 기억한다.

적다 보니 한 가지가 눈에 들어왔다.

왼쪽은 한 번 쓰면 끝나는 돈이었고, 오른쪽은 해마다 반복되는 손해였다.

한 번 쓰는 돈과 매년 빠지는 돈을 같은 줄에 놓고 비교하면 답이 안 나온다.

그걸 갈라놓고 보니 비교가 됐다.

그 뒤로 뭘 결정할 때 그 방식을 쓴다.

한 번인지 매년인지를 먼저 가른다.

비용이 한 번이고 이득이 매년이면 대개 하는 게 맞고, 반대면 대개 안 하는 게 맞다.

 

사무실 공사중



■ 먹거리에 타협이 없어야 한다는 생각

그리고 하나 더 있었다.

먹거리를 만드는 사람이라면 안전 기준에 타협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깊이 공감했다.

나 역시 식품업을 한다면 당연히 필요한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만든 걸 누가 끓여서 마신다.

그 한 잔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그 사람은 알 수가 없다.

알 수 없는 걸 사는 쪽에서 믿어주는 게 식품 장사라는 걸 그때 또렷하게 생각했다.

그 믿음을 내 양심에만 맡겨두는 것과, 밖에서 기준을 두고 확인받는 것은 다른 일이었다.

사람 양심은 피곤한 날 흐려진다.

기준은 피곤한 날에도 그대로 있다.

이건 나중에 직원이 생기고 나서 더 확실해졌다.

혼자 할 때는 내 양심만 챙기면 됐는데, 사람이 들어오면 그게 안 된다.

남의 양심을 믿는 것으로 식품을 만들 수는 없다.

그래서 기준이 있고 기록이 있는 거였다.

그걸 그때는 짐작만 했고 몇 해 뒤에 몸으로 알았다.

기준이라는 게 남을 괴롭히려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그 뒤로 알게 됐다.

사람이 흐려지는 날을 전제로 만들어둔 장치였다.

흐려지지 않는 사람을 기준으로 만든 규정은 세상에 없다.

그래서 남들보다 한 발 앞서 준비하기로 결심했다.

 



■ 담당자도 굳이 안 하셔도 된다고 했다

나중에 신청하면서 담당자 쪽에서도 같은 얘기를 들었다.

굳이 안 하셔도 되는 품목이라고.

의무가 아닌 걸 받겠다고 오는 작은 업체가 흔치 않았던 모양이다.

그 말을 듣고 오히려 마음이 굳어졌다.

남들이 잘 안 하는 걸 해놓으면 그만큼 앞서 있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무렵에 한 가지를 알게 됐다.

의무가 아닌 걸 받으면 따라오는 게 있다는 것.

시설을 갖추는 데 쓸 수 있는 자금이 따로 있었고, 조 대표님이 그걸 같이 알아봐 주셨다.

받을 수 있는 걸 받아가며 하는 것과 전부 자기 돈으로 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안 해도 되는 걸 하겠다고 나선 사람에게 나라가 거는 조건이 그렇게 나쁘지 않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그걸 알고 나서 한 가지가 분명해졌다.

제도는 하겠다고 나선 사람한테만 보인다.

가만히 있는 사람에게는 아무도 와서 알려주지 않는다.

알아보려고 전화를 걸고 문을 두드린 사람에게만 뭐가 있는지가 드러난다.

그 몇 해 동안 내가 받은 것들은 대개 그런 식으로 왔다.

먼저 묻지 않았으면 하나도 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요즘도 누가 시작한다고 하면 그 얘기부터 한다.

담당 기관에 전화를 걸어보라고.

전화 한 통이 생각보다 많은 걸 바꾼다.

안 될 거라고 혼자 정해놓고 안 걸어보는 사람이 제일 많이 놓친다.

나도 몇 해 그렇게 살았으니까 안다.

 

사무실 공사중

■ 하기로 한 날

하기로 하고 나니 마음이 오히려 편해졌다.

할까 말까 하는 동안이 제일 피곤하다.

결정이 나면 그다음은 그냥 순서대로 하는 일이 된다.

그날 저녁에 공장에 혼자 앉아서 둘러봤다.

몇 달 동안 도시락 나르며 올린 건물이었다.

이걸 또 뜯는다는 게 그때는 실감이 안 났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상한 기분도 있었다.

남들이 안 하는 걸 하겠다고 나선 게 그 무렵 내 처지에서 유일하게 해볼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남들이 다 하는 걸 똑같이 하면 똑같은 자리에 선다.

똑같은 자리에 서면 결국 돈 많은 쪽이 이긴다.

그 판에서 내가 이길 방법은 없었다.

그러니 남들이 안 하는 쪽으로 가는 게 유일한 길이었다.

그게 용기여서가 아니라 다른 길이 없어서였다.

그러니 대단한 결심처럼 적을 일이 아니다.

막혀 있는 쪽을 다 지우고 남은 칸으로 간 것뿐이다.

지나고 보면 그 무렵 내가 한 결정들은 대개 그랬다.

멋있어 보이는 선택이 아니라, 남은 칸이 거기뿐이어서 거기로 간 것들이었다.

돈으로 겨룰 수 없고 이름으로 겨룰 수 없으면 남는 게 그것뿐이다.

그리고 그날 한 가지를 더 생각했다.

이 공장을 몇 해 쓸 건지를 따져봤다.

한두 해 하고 접을 생각이면 뜯을 이유가 없었다.

십 년, 이십 년 할 생각이면 지금 뜯는 게 당연했다.

그러니 뜯을지 말지를 묻는 질문은 사실 다른 질문이었다.

이 일을 얼마나 오래 할 생각이냐는 질문이었다.

그 질문에는 답이 이미 나와 있었다.

빈손으로 내려와서 이 년 넘게 걸려 세운 자리였으니까.

접을 생각으로 세운 건물이 아니었다.

그 자리에서 늙을 생각으로 올린 건물이었다.

그러면 답은 하나였다.

그날 밤에 조 대표님께 전화를 걸어서 하겠다고 했다.

그분은 별말씀 없이 그럼 다음 주에 보자고 하셨다.

그게 시작이었다.

 




"惟事事乃其有備 有備無患"

(유사사내기유비 유비무환)

 

『서경』 열명편에 나오는 말이다.

상나라 임금 무정이 재상 부열을 얻어 정사를 맡겼을 때, 부열이 임금에게 올린 말 가운데 한 구절이다.

일마다 미리 갖추어두어야 하고, 갖추어두면 근심이 없다는 뜻이었다.

같은 말이 『춘추좌씨전』에도 나온다.

진나라 신하 위강이 임금에게 "편안할 때 위태로움을 생각하라, 생각하면 대비가 생기고 대비가 있으면 근심이 없다"고 올린 대목이다.

두 기록이 모두 한가한 때를 가리키고 있다.

급해진 뒤에 갖추라고 말한 기록은 없다.

 

— 『서경(書經)』 열명(說命)편. 같은 구절이 『춘추좌씨전』 양공 11년조에도 전한다.

 

갖추어두면 근심이 없다는 뜻이다.

다만 이 말이 가리키는 시점은 일이 닥친 뒤가 아니라 아무 일도 없을 때다.

아무 일도 없을 때 무언가를 갖추는 일은 늘 쓸데없어 보이고, 그래서 대개 미뤄진다.

의무가 아닌 인증을 받겠다고 다 지은 공장을 다시 뜯기로 한 그해에, 나는 쓸데없어 보이는 쪽을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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