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옮겨온 글 ▣
예전 블로그에 써두었던 글을 옮겨 왔다. 문장은 그때 그대로 두고, 읽기 편하게 조금만 매만졌다.
내 손으로 올린 건물을 내 손으로 뜯는 일을 해본 사람이 많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그걸 해봤다.
그해에 제일 많이 들은 소리가 벽을 깨는 소리였다.
그 소리가 처음 며칠은 아팠고, 며칠 지나니 그냥 일하는 소리로 들렸다.
사람이 적응하는 속도가 생각보다 빠르다.
그해 봄부터 여름까지 공장 안은 공사판이었다.
먼지를 쓰고 자고 먼지를 쓰고 일어났다.
그런데 그 몇 달이 집 짓던 그 여름보다 덜 힘들었다.
이유는 하나였다.
무엇을 위해 하는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집을 지을 때는 건물이 완성되면 끝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끝이 아니었다.
건물은 그릇이고, 그 그릇이 무엇을 담을 수 있는지는 그 안을 어떻게 짜놓느냐가 정한다.
그걸 그 공사에서 알았다.
그러니 집을 지을 때 안을 어떻게 쓸지를 먼저 정하고 지어야 한다.
나는 반대로 했다.
짓고 나서 쓸 방법을 생각했고, 그래서 뜯었다.
순서를 거꾸로 한 값을 치른 셈이다.
다만 그 값을 치르고 나서 하나 얻은 것도 있다.
내 공장 구조를 내가 전부 알게 됐다.
어느 벽 안에 뭐가 들었고 어느 배관이 어디로 가는지를 안다.
그걸 아는 사람은 고장이 나도 당황하지 않는다.
짓고 뜯고 다시 짜본 사람만 갖게 되는 거였다.
그 뒤로 설비가 몇 번 말썽을 부렸는데 그때마다 내가 먼저 열어봤다.
사람을 부르는 횟수가 줄었다.
시골에서는 사람을 부르면 오는 데까지가 반나절이다.
그러니 직접 열어볼 수 있다는 게 돈이고 시간이었다.

■ 컨설팅을 받았는데도
도전을 마음먹은 순간부터 마주한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전문 컨설팅을 받았음에도, 해썹 기준에 맞는 시설을 갖추는 건 까다롭기 짝이 없었다.
컨설팅을 받으면 알아서 해주는 줄 알았다.
그게 아니었다.
컨설팅은 무엇이 기준에 안 맞는지를 알려주는 일이었다.
맞추는 건 결국 공장 주인이 하는 일이었다.
그걸 알고 나서 생각이 좀 정리됐다.
돈을 주고 사는 건 지식이고, 몸으로 하는 건 그 지식을 현장에 옮기는 일이었다.
지식만 사놓고 안 옮기면 아무 일도 안 일어난다.
컨설팅을 받아놓고 인증을 못 받는 데가 있다는 얘기를 그때 들었다.
왜 그런지 그 자리에서 이해가 됐다.
안 맞는 걸 알려주는 데까지가 남이 해줄 수 있는 일이고, 거기서부터는 본인이 해야 한다.
그 경계가 어디인지를 모르고 시작하면 돈만 쓰고 끝난다.
처음 점검을 받은 날 목록을 받아 들고 한참 봤다.
안 맞는 데가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벽 재질, 바닥 마감, 문 위치, 창 구조, 손 씻는 자리, 옷 갈아입는 자리, 물이 들어오고 나가는 길.
하나씩 보면 다 사소해 보이는데 다 모아놓으면 공장을 다시 짜는 일이었다.
그 목록을 들고 집에 와서 한 번 더 읽었다.
읽을 때마다 하나씩 더 눈에 들어왔다.
그게 제일 힘든 밤이었다.
결정을 못 하고 있을 때가 제일 힘들다.
목록을 보면서 할까 말까를 저울질하는 며칠.
그 며칠이 공사하는 몇 달보다 괴로웠다.
해야 할 일이 정해지면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편하다.
정해지지 않은 동안에는 몸이 쉬어도 마음이 안 쉰다.
그래서 나는 요즘 결정을 일부러 빨리 내린다.
빨리 내린 결정이 더 좋은 결정이어서가 아니라, 저울질하는 동안 사람이 상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 통째로 뜯어야 한다는 말
애초에 해썹을 염두에 두지 않고 지은 공장이었기에, 내부 구조 자체를 통째로 뜯어고쳐야 했다.
그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속에서 뭐가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몇 달을 도시락 나르며 올린 건물인데.
벽 하나 세우는 데 며칠이 걸렸고, 그 벽을 세우는 걸 내가 옆에서 거들었다.
그걸 깨라는 얘기였다.
며칠 고민했는데, 결국 하기로 했다.
어차피 뜯어야 한다면 지금 뜯는 게 제일 싸다는 계산이 섰기 때문이다.
나중에 품목이 늘고 기계가 더 들어오면 그때는 뜯지도 못한다.
기계를 들어내고 생산을 멈추고 다시 들여놓는 일이 또 붙기 때문이다.
지금은 안이 거의 비어 있었다.
비어 있을 때 뜯는 게 제일 싸다는 건 누가 설명해주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 계산을 조 대표님과 앉아서 같이 해봤다.
지금 뜯는 비용, 몇 해 뒤에 뜯는 비용, 안 뜯고 그냥 갔을 때 못 받게 되는 것들.
종이에 적어놓고 보니 답이 하나였다.
그리고 한 가지를 더 짚어주셨다.
지금은 생산을 멈춰도 손해가 적은 시기라는 것.
거래처가 몇 군데 안 되니 몇 주 못 만들어도 치명적이지 않았다.
거래처가 늘어난 뒤에 같은 말을 들으면 그때는 멈출 수가 없다.
멈출 수 있을 때 멈추는 게 제일 싸다는 얘기였다.

■ 기준이 요구한 것들
그러면 무엇을 맞춰야 했나.
해썹은 본 심사 전에 갖춰야 하는 기본 조건을 따로 두고 있다.
그걸 선행요건이라고 부른다.
그 안에 들어 있는 것들이 꽤 구체적이다.
작업장을 용도별로 나누고, 깨끗하게 유지해야 하는 구역과 그렇지 않은 구역을 가르는 것.
원료가 들어오는 길과 완제품이 나가는 길이 서로 섞이지 않게 동선을 짜는 것.
바닥과 벽은 물청소가 되고 소독이 되는 재질이어야 하는 것.
냉장과 냉동 설비는 정해진 온도를 유지하고 그 온도를 밖에서 볼 수 있어야 하는 것.
쓰는 물이 먹는물 기준에 맞아야 하고, 지하수를 쓰면 정해진 주기로 검사를 받아야 하는 것.
벌레와 쥐가 들어오지 못하게 막고 그걸 정기적으로 확인해 기록으로 남기는 것.
선별하고 검사하는 자리는 밝기까지 기준이 있는 것.
그 밖에도 지켜야 하는 것들이 줄줄이 붙어 있었다.
세척과 소독을 무엇으로 어떻게 얼마나 자주 하고 누가 책임지는지를 정해놓는 것.
원료를 받을 때 성적서를 확인하고, 먼저 들어온 걸 먼저 쓰는 것.
설비를 정기적으로 점검하고 온도계는 해마다 맞는지 확인하는 것.
문제가 생긴 제품을 거둬들이는 절차를 미리 만들어두는 것.
목록을 처음 받았을 때는 이게 우리 같은 데에 다 필요한가 싶었다.
지나고 보니 하나하나가 사고가 났던 자리에서 생긴 조항이었다.
규정은 대개 누군가 다친 뒤에 만들어진다.
그걸 알고 보면 조항을 읽는 눈이 달라진다.
괴롭히려고 쓴 문장이 아니라, 어디서 사고가 났다는 기록으로 읽힌다.
어느 조항은 벌레가 들어가서 생긴 거고, 어느 조항은 물이 문제였고, 어느 조항은 먼저 들어온 원료를 뒤에 써서 생긴 거다.
그렇게 읽으면 지키는 게 덜 억울하다.
그리고 지키는 방식도 달라진다.
왜 생긴 조항인지를 알면 그 취지에 맞게 하게 된다.
모르면 글자만 맞추고 취지는 비껴간다.
글자만 맞춘 공장은 심사에서 금방 드러난다고 들었다.
심사하는 분들은 그걸 보는 게 직업이니까 당연한 얘기다.
적어둔 것과 실제가 다른 자리는 질문 두 번이면 나온다.
그래서 처음부터 취지에 맞게 하는 게 결국 제일 빠른 길이었다.

■ 칸막이를 세우고 동선을 나누고
칸막이를 새로 세우고, 동선을 분리했다.
그 현장 작업은 오롯이 내 몫이었다.
공장을 지을 때 업자분들이 하신 일을 이번에는 내가 했다.
그때 옆에서 보고 배운 게 그 자리에서 쓰였다.
못 쓰는 자재를 어디에 쓰면 되는지, 어떻게 해야 몇 해 뒤에 안 썩는지 알려주신 분들이 있었으니까.
벽을 치고 구역을 가르고 마감을 다시 했다.
문을 하나 새로 내고 하나는 막았다.
들어오는 쪽과 나가는 쪽이 섞이지 않게 하려면 문부터 바꿔야 했다.
손 씻는 자리와 옷 갈아입는 자리도 새로 만들었다.
전에는 그냥 들어가서 일했다.
혼자 일하니 그래도 됐다고 생각했던 거다.
그 자리를 만들어놓고 나서 습관이 바뀌었다.
들어가기 전에 손을 씻고 옷을 갈아입으면 머리도 같이 바뀐다.
집에서 입던 옷으로 일하던 때와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일하는 때는 손놀림이 달랐다.
그게 기분 탓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는데, 실수가 줄은 건 사실이었다.
바닥은 조금 달랐다.
물을 쓰는 작업장 바닥은 공장을 마무리할 때 내가 기울기를 몇 번씩 다시 잡아둔 자리였다.
그때는 그냥 물이 안 고이게 하려고 한 거였는데, 그 덕에 그 자리는 손을 안 댔다.
대신 새로 가른 구역의 바닥을 깔고 마감했다.
모르고 제대로 해둔 자리는 통과가 되고, 모르고 대충 둔 자리는 반드시 걸린다.
그 둘의 차이를 그해에 눈으로 봤다.
그러니 공사를 할 때 기준을 모르더라도 제대로 해두면 손해가 아니다.
제대로 해둔 건 어느 기준으로 봐도 대개 통과한다.
대충 해둔 건 어느 기준으로 봐도 걸린다.
기준을 모르는 게 문제가 아니라 대충 하는 게 문제였던 셈이다.

■ 조 대표님도 소매를 걷으셨다
조 대표님도 올 때마다 소매를 걷으셨다.
서류만 하시는 분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둘이 붙어서 하루를 꼬박 쓴 날이 여러 번이다.
그분이 자재를 들고 내가 치수를 맞추는 식이었다.
먼지를 뒤집어쓰고 앉아서 점심을 먹던 날이 기억난다.
그 자리에서 서류 얘기를 하셨다.
손으로 벽을 치면서 머리로는 그 벽을 문서에 어떻게 적을지를 생각하고 계셨던 거다.
지어놓은 걸 내 손으로 깨는 기분이 처음에는 이상했는데, 며칠 지나니까 또 그게 일이 됐다.
집 짓던 여름에 비하면 그래도 수월했다.
그때는 아무것도 없는 데서 시작했고, 이번엔 틀이 있는 데서 고치는 거였으니까.
그리고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었다.
집 지을 때는 업자분들이 계셨지만 그분들은 일을 하고 가시는 분들이었다.
이번에는 같이 고민하는 사람이 옆에 있었다.
그 차이가 컸다.
몸이 힘든 건 비슷했는데 머리가 덜 복잡했다.
그 무렵에 그분이 자주 하신 말이 있다.
현장은 내가 못 하니 형님이 하시고, 서류는 형님이 못 하시니 내가 한다고.
그 말이 정확했다.
각자 못 하는 걸 서로가 하고 있었다.
그게 동업이 아니었는데도 동업처럼 돌아갔다.
나는 그분한테 받은 게 훨씬 많다.
그 얘기를 하면 그분은 늘 손을 저으셨다.
자기는 일로 한 거라고.
일로 하는 사람이 밤에 서류를 쓰고 낮에 먼지를 쓰지는 않는다.
그걸 알면서도 매번 그렇게 말씀하셨다.
받은 걸 받았다고 적어두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다.
그래서 이렇게 적어둔다.
그해 공사에서 벽을 깨고 다시 세운 건 둘이 한 일이었다.
혼자 했으면 못 했다.

■ 기준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개조하면서 공장이 어떻게 돌아가야 하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전에는 내가 편한 쪽으로만 짰다.
문에서 가까운 데에 자주 쓰는 걸 놓고, 손이 짧게 가게 배치했다.
그런데 기준을 따라가 보니 그 기준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들어오는 길과 나가는 길이 섞이면 안 된다는 조항이 있는데, 처음에는 번거롭다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나눠놓고 일해보니 실수가 줄었다.
원료와 완제품이 같은 자리를 지나지 않으니 헷갈릴 일이 없어졌다.
섞이면 안 되는 걸 섞어놓고 사람 정신으로 버티는 게 전에 내 방식이었던 거다.
사람 정신은 어느 날 반드시 흐려진다.
피곤한 날, 급한 날, 손이 하나 모자란 날.
그날 사고가 나는 거다.
구조로 막아놓으면 정신이 흐려진 날에도 안 섞인다.
■ 혼자 일하는 사람의 착각
돌아보면 내가 그 조항들을 번거롭다고 느꼈던 이유는 하나였다.
혼자 일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혼자 하면 내 머릿속에 다 있으니 구역이 왜 필요한지 모른다.
그런데 사람이 하나만 더 들어오면 바로 필요해진다.
기준은 혼자 일하는 사람 기준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었다.
언젠가 사람이 늘 것을 전제로 만들어진 거였다.
그 얘기를 몇 해 뒤에 다른 분께 해드린 적이 있다.
공장을 새로 지으려는 분이었는데, 처음부터 기준에 맞춰 지으라고 말씀드렸다.
짓고 나서 뜯은 사람 얘기를 들으면 아무래도 믿어주신다.
그런데 그 말을 듣고 그대로 하신 분은 많지 않았다.
처음부터 기준에 맞춰 지으면 공사비가 올라가니까.
당장 올라가는 비용과 몇 해 뒤에 드는 비용을 같은 무게로 느끼는 사람이 드물다.
나도 그랬다.
그러니 남을 탓할 얘기가 아니다.

■ 뜯어보고서야 알게 된 것
개조가 끝나고 안을 둘러보니 공장이 달라져 있었다.
넓이는 그대로인데 길이 생겼다.
전에는 한 공간이었던 데가 구역으로 나뉘어 있었고, 각 구역이 뭘 하는 자리인지가 눈에 보였다.
그러니 처음 오는 사람도 어디에 서야 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전에는 내가 설명해줘야 알 수 있는 공장이었다.
설명이 없어도 알 수 있는 공장과 설명이 있어야 하는 공장은 다른 공장이다.
그 뒤로 사람을 쓸 때 그게 큰 차이가 됐다.
처음 온 사람한테 가르칠 게 줄었다.
구역이 갈려 있으니 여기서는 이것만 하시면 된다고 말하면 끝이었다.
전에 같은 공간이었다면 하나하나 다 설명해야 했을 것이다.
그러니 그 공사는 사람을 쓰기 위한 준비이기도 했다.
그때는 사람 쓸 생각이 없었는데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다.
구조를 제대로 잡아놓으면 나중 일이 수월해진다는 게 그런 뜻이었다.
그 말을 그때 들었는데 그때는 반만 알아들었다.
수월해진다는 게 일이 줄어든다는 뜻인 줄 알았다.
그게 아니었다.
안 해도 되는 걱정이 줄어든다는 뜻이었다.
섞이면 안 되는 게 섞이지 않을까, 빠뜨린 게 없을까.
그런 걱정을 머리로 하고 있으면 다른 일에 쓸 힘이 없어진다.
구조가 잡히고 나서 그 걱정이 없어졌다.
그 자리에 다른 생각이 들어왔다.
다음에 뭘 만들어볼까 하는 생각이었다.
걱정이 비워진 자리에만 그 생각이 들어온다.
그걸 그해에 알았다.
그 모든 차이를 만든 게 결국 칸막이 몇 개였다.

■ 제때 한 바늘
그해에 쓴 돈이 적지 않았다.
다 지은 건물을 다시 뜯는 데 쓴 돈이니 밖에서 보면 날린 돈처럼 보인다.
그런데 몇 해 지나고 보니 그게 제일 싸게 쓴 돈이었다.
품목이 늘고 기계가 더 들어오고 사람이 생긴 뒤에 같은 공사를 했다면 몇 배가 들었을 것이다.
생산을 세워놓고 하는 공사와 비어 있을 때 하는 공사는 아예 다른 공사다.
그러니 그해에 뜯은 건 손해가 아니라 앞당겨 쓴 비용이었다.
앞당겨 쓰면 싸고, 미루면 비싸진다.
그게 공사에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라는 걸 그 뒤로 여러 번 겪었다.
서류도 그랬고 기록도 그랬다.
그날 적어두면 한 줄이고, 한 달 뒤에 적으려면 기억을 더듬어야 하고, 한 해 뒤에는 적을 수가 없다.
적을 수 없게 된 기록은 없는 기록이다.
그러니 미루면 비싸지는 게 아니라 아예 사라지는 것도 있다.
"A stitch in time saves nine"
(어 스티치 인 타임 세이브스 나인)
영국에서 오래 쓰여 온 속담이다.
옷을 지어 입던 시절에는 천이 해어지는 자리가 늘 있었다.
실 한 올이 풀리기 시작했을 때 바늘로 한 번만 꿰매면 그 자리에서 끝난다.
그런데 바쁘다고 그냥 두면 풀린 자리가 벌어지고, 벌어진 자리가 구멍이 되고, 구멍이 되면 아홉 바늘로도 모자라게 된다.
바느질로 옷을 고쳐 입던 사람들이 그걸 매일 눈으로 봤다.
그래서 이 말이 생활 속 격언으로 자리를 잡았다.
— 영국 속담. 18세기 속담집에 실려 전해졌다.
제때의 한 바늘이 나중의 아홉 바늘을 아낀다는 뜻이다.
중요한 것은 아홉 바늘이 아홉 배 힘들다는 데 있지 않고, 그 아홉 바늘로도 처음 같은 옷으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데 있다.
미뤄서 커진 일은 값만 비싸지는 게 아니라 되돌릴 수 없는 쪽으로 간다.
다 지은 공장을 비어 있을 때 뜯은 그해에, 나는 한 바늘을 꿰맨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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