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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일상

[사업 시작] 매장에 우리 제품 들어가다.

by 사람들생각 2025. 3. 16.

▣  옮겨온 글 ▣

예전 블로그에 써두었던 글을 옮겨 왔다. 문장은 그때 그대로 두고, 읽기 편하게 조금만 매만졌다.


 

처음엔 약초 주문이 간간이 들어오는 정도였다.

온라인에만 의지하고 있었으니 수입이라고 할 게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 시기를 넘길 수 있었던 건 내 힘이 아니었다.

지금도 그 얘기를 할 때마다 분명히 해두고 싶은 게 그거다.

내가 잘해서 넘어간 게 아니었다.

그 시기에 혼자 버티고 있었으면 지금 이 블로그를 쓰고 있지 않았을 거다.

 

마당 텃밭에 핀 이름 모를 꽃



■ 들어오지 않는 주문

상품을 다 올려놓고 나면 할 일이 없어진다.

그게 제일 견디기 어려웠다.

산에서 일할 때는 몸을 쓰면 하루가 갔는데, 이건 앉아서 기다리는 일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화면부터 켜고, 밤에 자기 전에 한 번 더 보고.

숫자가 안 움직이는 날이 계속되면 사람이 묘하게 지친다.

돈이 없어서 불안한 것과는 또 다른 종류의 불안이었다.

내가 방향을 잘못 잡은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포장에 공들인 게 헛일인가, 괜히 비싼 봉지를 쓴 건가.

안 팔리면 그동안 잘했다고 생각한 것들이 전부 의심스러워진다.

그게 제일 위험한 때다.

그때 흔들려서 값을 내리거나 포장을 싼 걸로 바꿨으면 그 뒤가 없었을 거다.

급한 사람이 먼저 값을 내리고, 값을 내리면 그 값이 그 물건의 값이 된다.

한 번 내린 값을 다시 올리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그걸 버틸 수 있었던 건 매달 나갈 돈이 거의 없어서였다.

고정비가 없다는 건 생각보다 큰 무기다.

사무실도 창고도 직원도 없었으니 안 팔려도 당장 무너질 일은 없었다.

그게 아니었으면 그 몇 달을 못 버텼을 거다.

그래도 이대로 가면 안 된다는 건 분명했다.

온라인 하나만 보고 있으면 언제 터질지 모르는 걸 기다리는 셈이다.

땅에 발을 붙여줄 고정 거래처가 필요했다.

그런데 연고가 없는 동네에서, 들어온 지 반년 조금 지난 사람이 그걸 어떻게 만드나.

매장에 물건을 넣으려면 누군가 소개를 해줘야 한다.

무작정 찾아가서 물건 좀 받아달라고 하는 건 영화에서나 되는 얘기다.

나는 그 동네에서 아는 사람이라고는 공장 식구들과 이장님, 청년회장님 정도였다.

그분들도 좋은 분들이지만 유통 쪽과는 거리가 멀었다.

혼자 알아보려면 어디부터 가야 하는지조차 몰랐다.



드디어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 인맥을 총동원하신 분

그걸 조 대표님이 만들어주셨다.

내가 생산하는 물건의 유통망을 만들어 주시겠다며 관련 인맥을 총동원하셨다.

문경새재 로컬 매장과 문경 관내 매장 세 곳에 납품처를 열어주셨다.

나중에 들으니 그게 한두 번 전화로 된 일이 아니었다.

당신 일로 바쁘신 분이 그 일로 사람을 몇 번이나 만나고 다니셨다.

나는 그 과정을 다 보지도 못했다.

어느 날 전화가 와서 이러이러한 데를 잡아놨으니 샘플을 준비하라는 말씀이셨다.

그 전화를 받고 한참 멍했다.

부탁드린 적이 없었다.

저녁 자리에서 요즘 주문이 뜸하다는 얘기를 한 번 한 게 전부였다.

그 한마디를 듣고 움직이신 거였다.

그때부터 나는 말을 조심하게 됐다.

그분 앞에서 뭐가 아쉽다고 하면 그게 그냥 흘러가지 않는다는 걸 알았으니까.

바쁘신 분을 괜히 더 바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처음 그 얘기를 들었을 때 바로 실감이 안 났다.

매장에 들어간다는 게 뭔지 그때는 몰랐으니까.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쉬운 자리가 아니었다.

매장 입장에서는 검증 안 된 신생 업체 물건을 받는 게 부담이다.

팔리면 다행이고 안 팔리면 자리만 차지한다.

그걸 받아주신 건 결국 소개한 분을 믿은 거였다.

그러니까 내가 받은 건 납품처가 아니라 그분이 그동안 쌓아둔 신용이었다.



약초 거래 명세표

 

■ 샘플을 들고 간 날

샘플을 챙겨서 매장에 들고 간 날을 기억한다.

봉지를 몇 개 골라 상자에 담았는데, 담았다 뺐다를 몇 번 했다.

제일 깨끗하게 나온 것만 골라 넣었다.

차를 몰고 가면서 무슨 말을 해야 하나 계속 생각했다.

막상 가서는 별말을 못 했다.

어디서 가져온 물건이고 어떻게 말린 거라고 몇 마디 하고 나니 할 말이 없어졌다.

그쪽에서 봉지를 들어 이리저리 보시더니 포장이 깔끔하다고 하셨다.

그 한마디에 맥이 풀렸다.

몇 달 동안 봉지 접으면서 신경 쓴 게 그 한마디로 돌아온 거였다.

시골 제품이지만 시골스럽지 않게.

그 기준 하나 붙들고 간 게 틀리지 않았다는 걸 그 자리에서 확인했다.

돌아오는 길에 전화를 드렸다.

잘됐다는 말씀만 하시고 길게 얘기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늘 그런 식이었다.

해주고 나서 생색을 내는 걸 한 번도 못 봤다.

그래서 나중에 내가 누구한테 뭘 해줄 일이 생기면 그 방식을 따라 하려고 한다.

잘 안 될 때가 더 많지만 적어도 기준은 거기에 두고 있다.

 

 

포장 공간이 바람에 날아가다



■ 숨통이 트이다

고정 납품처가 생기니 비로소 숨통이 트이기 시작했다.

달라진 게 여러 가지였다.

첫째는 당연히 수입이었다.

들어올 때가 정해져 있다는 것, 그게 사람을 얼마나 편하게 하는지 그때 알았다.

둘째는 생산 계획이 생긴 거였다.

온라인만 할 때는 몇 개를 만들어둬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들어오면 그때 만들고, 안 들어오면 안 만들고.

납품처가 생기니 한 달에 얼마가 나가는지가 보이기 시작했고, 그만큼을 미리 만들어둘 수 있게 됐다.

셋째는 사람들이 보는 눈이 달라진 거였다.

동네에서 뭘 하는지 모르겠다던 사람들이, 어느 매장에 물건이 들어간다는 걸 알고부터 다르게 봤다.

나름 남들보다 정성을 많이 쏟은 제품이긴 했지만, 변변한 고정 거래처가 없어 고심하던 차였다.

그 소개 하나로 그 고민이 통째로 풀렸다.

물론 들어갔다고 끝이 아니었다.

매대에 올려놓고 안 나가면 다음 달에 빠진다.

그래서 그 뒤로 매장에 갈 일이 있으면 꼭 들러서 우리 물건이 어떻게 놓여 있는지를 봤다.

먼지가 앉아 있으면 닦았고, 자리가 안쪽으로 밀려 있으면 조심스럽게 여쭤봤다.

그렇게 몇 달 하니 그쪽에서도 알아보시고 먼저 말을 걸어주셨다.

납품처라는 게 서류로 유지되는 게 아니라 사람으로 유지된다는 걸 그때 배웠다.

진열대에 물건을 넣는 것보다 그 자리를 지키는 게 훨씬 어렵다.

넣는 건 소개로 되는데 지키는 건 소개로 안 된다.

그건 전부 내 몫이었다.

 

 

곶감 말리는 시골집 풍경

 

■ 생소했던 권유

그 무렵 그분이 또 한 가지를 권하셨다.

사업자를 내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는데, 소상공인 대출이라는 걸 알아보라고 하셨다.

나는 그게 생소했다.

돈을 빌린다는 말에 먼저 몸이 굳었다.

예전에 그걸로 어떻게 됐는지 아는 사람이라 더 그랬다.

그런데 그분 설명은 달랐다.

갚을 수 없는 돈을 끌어오라는 게 아니라, 쓸 데가 정해져 있고 갚을 계획이 서 있는 돈이면 그건 다른 얘기라는 거였다.

지금 못 늘리고 있는 게 뭐냐고 물으셨다.

품목이었다.

팔 수 있는 가짓수가 적으니 들어와서 둘러보고 나가는 사람이 많았다.

그걸 늘리려면 재료를 더 들여와야 하는데 그 돈이 없었다.

그 얘기를 하니 그러면 그게 쓸 데가 정해진 돈이라고 하셨다.

그분 도움으로 조금의 돈을 지원받았고, 그 돈으로 제품 가짓수를 늘려갈 수 있었다.

빌린 돈이라는 게 처음엔 무거웠는데, 쓸 데가 정해져 있으니 생각보다 덜 무거웠다.

들어온 돈이 어디로 나가는지를 공책에 적어뒀고, 그 줄이 채워지는 걸 보면서 썼다.

예전에 내가 돈을 빌렸을 때는 그게 어디로 가는지 나도 몰랐다.

그게 다른 점이었다.

돈을 빌리는 게 나쁜 게 아니라, 어디에 쓸지 모르고 빌리는 게 나쁜 거였다.

그 구분을 그때 처음 배웠다.

예전에 내가 무너진 것도 돈을 빌려서가 아니라 그 돈이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썼기 때문이었다.

들여놓을 수 있는 품목이 늘어나니 화면이 달라 보였다.

한두 가지만 놓여 있는 집과 여러 가지가 놓여 있는 집은 들어온 사람이 머무는 시간이 다르다.

그 차이가 몇 달 지나니 숫자로 나타났다.

들어와서 한 가지만 사고 나가던 사람이 두세 가지를 같이 담기 시작했다.

한 번 보낼 때 여러 개가 같이 나가니 택배비 부담도 줄었다.

품목을 늘린다는 게 단순히 가짓수가 느는 게 아니라는 걸 그때 알았다.

한 사람이 한 번에 사는 금액이 올라가고, 다시 사러 올 확률도 올라간다.

같은 사람이 여러 번 사게 만드는 게 새 사람을 찾는 것보다 훨씬 싸게 먹힌다는 것도 그 무렵에 숫자로 봤다.

 



■ 혼자 할 수 있는 건 거의 없었다

그 몇 달을 돌아보면 내가 혼자 한 일이 거의 없다.

물건은 전에 다니던 공장에서 나왔고, 판로는 그분이 열어주셨고, 돈 쓸 방법도 그분이 짚어주셨다.

내가 한 건 봉지를 접고 사진을 찍고 상자를 싸서 읍내로 나간 것뿐이다.

그런데 그 몫이 작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열어준 문으로 들어가는 건 결국 내 발로 들어가야 한다.

문을 열어줬는데 안 들어가는 사람도 있고, 들어가서 엉망으로 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그 문으로 들어가서 적어도 포장만큼은 부끄럽지 않게 해놨다.

그러니 다음 문이 또 열렸다.

그게 그 시절에 배운 거다.

누가 길을 열어주기 전에, 열릴 만한 상태를 먼저 만들어두고 있어야 한다는 것.

그 상태를 만들어두지 않은 사람 앞에서는 아무도 연락을 주지 않는다.

 




"水到渠成" (수도거성)

 

중국의 옛 선승들이 제자를 가르칠 때 쓰던 말에서 비롯되었고, 송나라의 문인 소식이 글과 편지에 즐겨 인용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산에서 내려오는 물은 처음에는 갈 곳을 몰라 이리저리 스며들지만, 양이 차오르면 땅의 낮은 쪽을 따라 저절로 길을 내며 흘러간다.

사람이 미리 도랑을 파두고 억지로 물을 끌어오려 하면 품만 들고 쉽게 메워지는데, 물이 충분히 모이면 누가 손대지 않아도 도랑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조급해하는 이에게 물이 이르면 도랑은 저절로 이루어진다고 일러주었다.

 

—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서 유래한 성어. 중국 송나라 때부터 널리 쓰였고, 문인 소식(蘇軾, 1037~1101)의 글에도 보인다.

 

억지로 길을 내려 애쓰기보다 먼저 물을 채워두라는 뜻이다.

쌓인 것이 없으면 아무리 길을 파도 흐를 것이 없고, 쌓인 것이 있으면 길은 생각보다 쉽게 열린다.

그러니 지금 길이 안 보인다면 길을 찾을 때가 아니라 채울 때일 수 있다.

 

문이 열렸을 때 들고 들어갈 것이 있었다는 게, 그해 나한테는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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