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옮겨온 글 ▣
예전 블로그에 써두었던 글을 옮겨 왔다. 문장은 그때 그대로 두고, 읽기 편하게 조금만 매만졌다.
물건을 소분해 봉지에 담아놓고 보니 그다음이 막혔다.
사진이 있어야 올릴 수 있는데, 찍을 데가 없었다.
온라인에서 물건을 파는 일은 사진이 거의 전부다.
그건 예전에 옷을 팔아보면서 몸으로 겪어 알고 있었다.
물건이 아무리 좋아도 사진이 별로면 안 팔린다.
반대로 물건이 평범해도 사진이 좋으면 일단 눌러는 본다.
그걸 알면서도 찍을 자리가 없으니 답답했다.

■ 찍을 곳이 없다
제품 촬영을 할 곳이 마땅치 않았다.
빌려 사는 시골집이라 안이 어둡고 좁았다.
방에서 찍으면 벽지가 그대로 나오고, 마루에서 찍으면 세간이 걸렸다.
스튜디오라는 걸 빌릴 생각은 아예 하지 않았다.
그 돈을 쓸 여유도 없었고, 그럴 만한 데가 근처에 있지도 않았다.
읍내까지 나가도 그런 데는 없었다.
대구나 안동까지 나가면 있었겠지만, 물건을 싣고 거기까지 가서 찍고 오는 걸 매번 할 수는 없었다.
품목이 하나 늘 때마다 찍어야 하는데 그걸 밖에서 해결하면 일이 안 돌아간다.
집에서 해결해야 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나는 사진을 잘 못 찍는다.
눈으로 본 건 좋았는데 찍어놓고 보면 늘 밍밍했다.
풍경 사진도 그래서 몇 컷 찍고는 지우는 일이 많았다.
그런 사람이 제품 사진을 찍어야 하니 더 막막했다.
며칠을 두고 고민했다.
그러다 생각을 바꿨다.
도시 흉내를 내려니 안 되는 거였다.
고심 끝에 그냥 시골 분위기를 있는 그대로 담자는 쪽으로 마음을 먹었다.
깨끗하게만 가면 되지, 꼭 하얀 배경일 필요는 없다고 봤다.
오히려 시골에서 만든 물건이라는 게 사진에 묻어나는 쪽이 낫겠다 싶었다.
깔끔하게 가되 어디서 만든 건지는 숨기지 않는 것.
그 선을 잡고 나니 찍을 자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 보일러실 앞 공간
집 뒤쪽에 보일러실이 있었다.
그 앞에 자잘한 것들이 쌓여 있는 공간이 하나 있었는데, 거기가 눈에 들어왔다.
무작정 치웠다.
쌓여 있던 걸 전부 끄집어내서 한쪽에 옮기고, 바닥을 쓸고, 벽에 붙은 거미줄을 걷어냈다.
반나절 걸렸다.
오래 안 치운 자리라 먼지가 어마어마했다.
마스크를 쓰고 쓸어내는데 중간에 몇 번을 나와서 숨을 돌렸다.
팔복이가 그 옆에 앉아서 구경하다가, 먼지가 나면 저만치 물러났다가 다시 왔다.
치우고 나니 생각보다 넓었다.
낡은 벽이 그대로 드러났는데, 그게 오히려 괜찮았다.
세월이 묻은 벽 앞에 깨끗한 봉지를 올려놓으니 대비가 생겼다.
시골에서 만든 거라는 게 설명 없이 전해졌고, 물건은 깔끔해 보였다.
딱 내가 하려던 것이었다.
바닥은 물로 깨끗하게 청소를 했다.
그 곳에 봉지를 올려놓으니 벽과 바닥이 비슷한 결이 되면서 바람에 날아온 낙엽도 자연스런 소품이 되었다.
돈 들인 거라고는 조명판 하나가 전부였다.
전선을 끌어다 등을 하나 달았다.
낮보다는 밤이 더 자연스러웠다.
그 자리가 그 뒤로 몇 달 동안 우리 스튜디오가 되어 주었다.

■ 스마트폰 하나로
환한 최신식 조명도, 최신형 카메라도 없었다.
스마트폰 하나와 저렴한 조명으로 제품 사진을 찍으면서, 완벽함 대신 가성비를 택했다.
장비가 부족한 만큼 정성으로 채우자는 마음이었다.
처음 며칠은 사진이 영 아니었다.
어둡거나 누렇거나 초점이 나가거나.
그래서 시간을 바꿔가며 찍었다.
오전에 찍어보고 정오에 찍어보고 해 질 무렵에도 찍어봤다.
그 자리에 해가 어느 시간에 어떻게 드는지를 외우게 됐다.
저녁 시간이 오히려 낫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해가 정면으로 들어오면 비닐이 번들거려서 안에 든 게 안 보였다.
그늘 경계에 두고 찍은 게 제일 나았다.
촬영장 비가림막이 없다보니 비 오는 날은 아예 포기했다.
대신 비 오는 날은 포장재를 정리하거나 설명을 다시 쓰는 날로 돌렸다.
날씨에 따라 그날 할 일을 바꾸는 건 산에서 일할 때 배운 거였다.
비 오면 산에 못 올라가는 대신 마당에서 선별을 했다.
그 방식이 여기서도 그대로 통했다.
산에서 배운 게 또 하나 있다.
안 되는 날을 억지로 되게 하려고 하면 다 망친다는 것.
비오는 날 억지로 촬영하려다 되려 제품만 상했다.
각도도 수십 번 바꿨다.
봉지를 세워서, 눕혀서, 위에서 내려다보고, 약재를 접시에 조금 덜어서 옆에 놓고.
그렇게 찍은 것 중에 쓸 만한 건 열 장에 한 장이었다.
그 한 장을 얻으려고 백 장을 찍었다.
사진을 잘 찍는 사람이 아니니 그 방법밖에 없었다.
잘하는 사람을 못 따라가면 횟수로 메우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몇 달 하다 보니 요령이 조금씩 생겼다.
뒤로 마당이 살짝 보이게 찍으면 산골에서 보냈다는 게 전해진다는 것, 봉지를 두 개 겹쳐 놓으면 크기가 가늠된다는 것.
책에서 배운 게 아니라 백 번 찍다가 우연히 걸린 것들이었다.
제대로 된 조명을 사볼까 하다가 그만뒀다.

■ 하나씩 등록하다
사진이 나오면 상품을 하나씩 등록했다.
품목이 여러 가지라 한 번에 다 못 올리고 며칠에 걸쳐 올렸다.
제목을 쓰는 데 또 시간이 걸렸다.
사람들이 검색창에 뭐라고 치는지를 알아야 거기 맞춰 쓸 수 있는데, 그걸 알 방법이 없으면 전부 짐작이 된다.
그래서 남들 올려놓은 걸 들여다보는 걸로 시작했다.
같은 품목으로 검색해서 나오는 상품들을 쭉 띄워놓고 제목만 따로 적어봤다.
공통으로 들어가는 말이 있고 어떤 집에만 있는 말이 있었다.
그걸 추려 넣고 멋 부린 말들은 덜어냈다.
적어놓고 보니 재미있는 게 보였다.
잘 팔리는 집일수록 제목이 담백했다.
온갖 수식어를 붙여놓은 집은 오히려 아래쪽에 있었다.
사람들이 검색창에 치는 건 수식어가 아니라 물건 이름이니까 당연한 얘기였다.
키워드를 과하게 붙이는 것도 역효과였다.
비슷한 말을 잔뜩 붙여놓은 제목은 보기만 해도 신뢰가 안 간다.
딱 필요한 말만 넣고 끝내는 게 결국 제일 낫더라.
설명도 다시 썼다.
처음엔 품목과 용량만 적었는데, 써놓고 보니 내가 사는 사람이어도 이걸 보고는 안 살 것 같았다.
어디서 가져온 건지, 어떻게 말린 건지, 집에서 어떻게 쓰면 되는지를 순서대로 적었다.
효능 얘기는 넣지 않았다.
넣고 싶다고 해서 내가 넣을 수 있는게 아니었다.
대신 내가 산에 올라가 직접 보고 가져온 것들이라는 걸, 과장 없이 적을 수 있는 만큼만 적었다.
그게 결국 다른 집과 다른 점이었다.
산에 올라가 본 사람이 쓰는 글과 받아서 넘기는 사람이 쓰는 글은 다르다.
껍질에서 하얀 실이 늘어나는 걸 직접 본 사람만 그 얘기를 쓸 수 있다.
그게 내가 가진 거의 유일한 밑천이었다.
설명을 공들여 써두면 문의가 줄어든다는 것도 그때 다시 확인했다.
설명이 부실하면 당연한 걸 묻는 문의가 쏟아지고, 설명이 촘촘하면 문의가 준다.
문의가 줄면 그만큼 다른 일을 할 시간이 생긴다.
글 한 번 공들여 써두는 게 결국 내 시간을 벌어주는 일이었다.

■ 택배라는 벽
쉽지는 않았다.
제일 애먹은 게 택배로 보내는 일이었다.
읍내까지 나가야 접수가 되고, 마감 시간을 놓치면 하루가 밀린다.
주문이 오후에 들어오면 그날 못 보내는 경우가 생겼다.
포장을 어떻게 구성할지도 막막했다.
봉지만 덜렁 넣으면 상자 안에서 돌아다니고, 완충재를 많이 넣으면 상자가 커져서 택배비가 올라간다.
그 사이를 맞추는 데 몇 번을 다시 쌌는지 모른다.
흔들어보고 소리가 나면 뜯어서 다시 채웠다.
포장이 허술하면 반품이 는다는 건 예전에 질리도록 겪어서 알고 있었다.
도착해서 모양이 흐트러져 있으면 그 사람은 성의가 부족하다 생각할 것이다.
봉지마다 품목과 무게를 적어 붙였고, 그 위에 어떻게 쓰면 되는지를 적은 종이를 한 장 넣었다.
종이 한 장 넣는 데 돈이 얼마나 들겠나 싶지만, 그게 있고 없고의 차이가 컸다.
처음 주문이 들어오던 날은 화면을 몇 번이나 새로고침 했다.
혹시 잘못 들어온 건가 싶어 한참 보다가 봉지를 꺼내 다시 저울에 올렸다.
포장을 마치고 읍내까지 차를 몰고 나가 부쳤다.
돌아오는 길에 기분이 이상했다.
포대로 넘길 때는 몇백 킬로를 실어 보내도 아무 감정이 없었는데, 봉지 몇 개를 부치고 오는 길에 그 집에 잘 도착할까를 계속 생각했다.
며칠 뒤에 잘 받았다는 짧은 글이 하나 올라왔다.
그 한 줄을 한참 들여다봤다.
내가 값을 정해서 내놓은 걸 누가 그 값에 사간다는 것.
저울 앞에서 깎이던 때를 생각하면 그게 얼마나 다른 자리인지 알 수 있다.

■ 원물의 한계
그렇게 몇 달을 했다.
주문은 간간이 들어왔다.
하루에 하나도 없는 날이 더 많았다.
그래도 들어오면 그날은 종일 기분이 좋았다.
다만 하면서 분명해진 게 하나 있었다.
원물을 그대로 소분해 파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
약초를 사다가 집에서 달이거나 우려 드시는 분은 이미 사는 데가 정해져 있는 경우가 많았다.
새로 사보려는 사람한테 원물은 문턱이 높다.
얼마를 넣어야 하는지, 몇 시간을 달여야 하는지, 그걸 모르면 선뜻 못 산다.
조금 더 손이 간 제품, 받아서 바로 쓸 수 있는 제품을 팔고 싶었는데 그때는 방법이 없었다.
공장도 없고 설비도 없었으니까.
그 아쉬움을 한참 들고 있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
옛날에는 좋은 구슬을 모으는 것 자체가 큰일이었다.
어렵게 모은 구슬도 자루에 담아 두면 그저 돌덩이와 다를 바 없는 짐이었고, 실에 꿰어 목걸이나 노리개로 만들어야 비로소 지니고 다니며 값을 받을 수 있는 물건이 되었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좋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쓸 모양으로 만들어 두지 않은 사람을 두고 이 말을 했다.
서 말이나 되는 구슬을 쌓아두고도 꿰지 않으면 보배가 되지 못한다는 뜻이다.
— 한국 속담.
좋은 것을 가진 것과 그것을 쓸 수 있게 만들어 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라는 뜻이다.
꿰는 일은 지루하고 티도 안 나지만, 그 일을 해둔 사람만 때가 왔을 때 내놓을 것이 있다.
그러니 쌓는 데서 멈추지 말고 내놓을 모양까지 미리 만들어 두어야 한다.
보일러실 앞 그 자리에서 백 장을 찍어 한 장을 고르던 일도, 결국 그 꿰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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