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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일상

[사업 시작] 부직포에 담은 것들

by 사람들생각 2025. 3. 18.

▣  옮겨온 글 ▣

예전 블로그에 써두었던 글을 옮겨 왔다. 문장은 그때 그대로 두고, 읽기 편하게 조금만 매만졌다.


 

담금주 키트에서 멈추지 않았다.

다음 물건은 내 머리에서 나온 게 아니었다.

돌아보면 그 시절에 내가 혼자 생각해낸 건 거의 없다.

대부분 누가 던진 말에서 시작됐다.

그래서 나는 그 시절 얘기를 하면서 내가 잘했다는 말을 못 하겠다.

듣고 받아 적고 움직인 건 나지만, 던져준 사람이 없었으면 받아 적을 것도 없었다.




■ 티백이라는 아이디어

끓는 물에 바로 넣어 우려먹을 수 있는 약초 티백을 만들었다.

이것 역시 조 대표님의 아이디어였다.

처음 들었을 때 바로 감이 왔다.

담금주 키트가 통했던 이유가 사는 사람의 수고를 덜어준 거였는데, 티백은 그걸 한 단계 더 덜어주는 물건이었다.

약초를 사서 집에서 달이려면 양을 재야 하고 시간을 봐야 하고 불을 지켜야 한다.

그걸 못 해서 안 사는 사람이 많았다.

티백이면 그 모든 게 없어진다.

물만 끓이면 된다.

사실 어르신들보다 그 아래 세대를 염두에 둔 물건이기도 했다.

약초라는 게 소비층 나이대가 뚜렷해서 늘 걸렸는데, 티백으로 만들어놓으니 그 선이 조금 내려갔다.

포장도 그에 맞춰 갔다.

약초 봉지라기보다 차 봉지처럼 보이게 했다.

같은 내용물인데 모양을 바꾸니 집어 드는 사람이 달라졌다.

시골 제품이지만 시골스럽지 않게.

그 기준이 여기서도 그대로 적용됐다.

이름도 어렵게 가지 않았다.

무슨 약초가 들었는지를 앞에 쓰고 다시 팩이라고 붙였다.

포장 앞면에 몇 개가 들었는지, 한 번에 몇 개를 넣으면 되는지를 큼직하게 적었다.

그것만 적어둬도 문의가 확 줄었다.



끓는 물에 바로 넣어 사용할 수 있는 티백 제품

 

■ 손이 모자랐다

출시하고 나니 반응이 정말 좋았다.

부직포에 약초를 담는 손이 모자랄 정도로 주문이 밀려들었다.

그때 처음으로 물건이 없어서 못 파는 상황을 겪었다.

전에는 안 팔려서 걱정이었는데, 이번에는 만들어내지 못해서 걱정이었다.

둘 다 걱정인데 무게가 완전히 달랐다.

안 팔려서 하는 걱정은 사람을 가라앉게 만들고, 못 만들어서 하는 걱정은 사람을 뛰게 만든다.

그 무렵 아침에 눈이 일찍 떠졌다.

전날 밤에 다음 날 할 일을 적어두고 자면 아침에 그걸 보고 바로 움직이게 된다.

그 습관도 그때 생겼다.

문제는 티백이 손이 많이 가는 물건이라는 거였다.

그 많은 종류의 약초를 일일이 공기 압축기로 먼지를 털어내고 소분하는 작업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말린 약초에는 눈에 안 보이는 가루와 먼지가 생각보다 많다.

그대로 담으면 우렸을 때 물이 탁해진다.

그걸 처음에 몰랐다.

시험 삼아 몇 개 만들어 우려봤는데 물이 뿌옇게 올라왔다.

맛은 괜찮은데 보기에 안 좋으니 그대로는 못 내보냈다.

그래서 담기 전에 먼지를 털어내는 공정이 하나 더 붙었다.

그 공정 하나 때문에 시간이 배로 들었다.

빼고 싶은 마음이 왜 없었겠나.

그런데 한 번 뿌연 물을 보고 나니 뺄 수가 없었다.

내가 보기에 안 되는 걸 남한테 보낼 수는 없었다.

압축기를 틀어놓고 그 앞에서 하루 종일 있으면 소리 때문에 귀가 멍했다.

털어낸 다음에는 무게를 재서 부직포에 담고 입구를 봉한다.

한 봉지에 들어가는 양이 적으니 봉지 수는 어마어마하게 늘어난다.

저녁이 되면 손가락이 굳었다.

산에서 주걱으로 껍질을 비집던 그 느낌이 다시 왔다.

다른 점이라면 산에서는 다리가 아팠고 여기서는 손이 아팠다는 것 정도였다.

저녁에 뜨거운 물에 손을 담그고 있으면 하루가 정리됐다.

그러고 나서 다음 날 보낼 것들을 상자에 싸놓고 잤다.

아침에 일어나서 싸면 늦는다.

밤에 싸놓고 아침에 싣고 나가는 게 훨씬 빨랐다.

그런 자잘한 순서가 몇 달 사이에 하나씩 자리를 잡았다.

 

간 건강에 좋은 티백 제품



■ 서류만 봐주신 게 아니었다

조 대표님은 서류 업무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현장에서도 손이 안 닿는 곳이 없었다.

오시면 양복 윗도리를 벗어놓고 같이 앉아 부직포를 담으셨다.

처음에는 그게 너무 죄송해서 됐다고 몇 번을 말씀드렸는데, 그때마다 웃기만 하시고 계속하셨다.

서류 봐주러 오신 분이 작업대 앞에 앉아 계시는 걸 보면 마음이 복잡했다.

나중에는 그냥 말씀을 안 드리게 됐다.

말려봐야 소용이 없다는 걸 알았고, 그렇게 같이 앉아 있는 시간이 서로 편하다는 것도 알게 됐다.

손을 움직이면서 하는 얘기는 마주 앉아서 하는 얘기와 다르다.

눈을 안 봐도 되니까 말이 편하게 나온다.

사업 얘기를 하다가도 금방 딴 얘기로 흘렀다.

울산 어느 동네 얘기를 하다가 부모님 얘기로 가고, 그러다 팔복이 얘기로 갔다.

그 녀석은 작업장 문턱에 엎드려서 우리가 하는 걸 보고 있었다.

그 시간에 얘기를 참 많이 했다.

일 얘기도 하고 사는 얘기도 하고 과거 얘기도 했다.

손은 움직이고 입은 떠들고, 그러다 보면 하루가 갔다.

그 시간에 들은 얘기가 나중에 다 쓸모가 있었다.

당장 필요한 얘기가 아니어서 흘려들었던 것들이, 몇 해 뒤에 그대로 필요해졌다.

그래서 그 뒤로는 들은 걸 공책에 적어두는 버릇이 생겼다.

납품 날짜에 맞춰 차질 없이 포장을 마치고 출하할 수 있었던 것은, 그분과 이전 회사 동료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 다시 와준 사람들

이전 회사 동료들 얘기를 따로 적어두고 싶다.

내가 그 공장을 그만두고 나왔는데, 그 친구들이 바쁠 때마다 와서 도와줬다.

퇴근하고 와주기도 했고 쉬는 날 와주기도 했다.

그만두고 나올 때 등을 돌리고 나온 게 아니라서 가능했던 일이다.

산비탈에서 같이 미끄러지고 같이 비 맞으며 건조장을 들락거린 넉 달이, 그런 식으로 돌아왔다.

일당을 제대로 쳐드리겠다고 해도 받지 않으려 하는 걸 억지로 챙겨드렸다.

그러면 다음에 올 때 뭘 사 들고 왔다.

그런 식으로 몇 번 오가고 나면 계산이라는 게 의미가 없어진다.

시골에서 사람 관계가 돌아가는 방식이 그랬다.

도시에서는 얼마를 줬느냐가 남는데, 여기서는 와줬느냐가 남는다.

그 차이를 알아가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그때는 그게 나중에 이렇게 돌아올 거라고 생각도 못 했다.

그냥 성실하게 지게를 졌을 뿐이었다.

사람이 쌓는 것 중에 제일 늦게 값이 매겨지는 게 그런 거다.

그래서 나는 누가 뭘 시작하려 한다고 하면 사람 얘기부터 묻는다.

돈이 얼마 있냐보다 같이 할 사람이 있냐를 먼저 묻는다.

돈은 떨어지면 끝이지만 사람은 떨어져도 다음이 있다.

그걸 내가 몸으로 겪었으니 그 말만큼은 자신 있게 한다.

 

중간 크기 10개 티백 제품



■ 조용히 살겠다고 내려온 사람

사업자를 내고 나서 일상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제품 포장에 쫓기고, 영업하러 사람을 만나러 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그날 보내야 할 게 몇 건인지부터 세고, 읍내 나가는 시간을 역산해서 하루를 짰다.

조용하게 살겠다며 시골로 내려온 사람이, 서울에 있을 때보다 더 바쁘게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번에는 그 바쁨이 싫지 않았다는 거다.

서울에서 바빴을 때는 쫓기는 바쁨이었다.

막아야 할 게 있고 수습해야 할 게 있어서 뛰었다.

여기서의 바쁨은 방향이 반대였다.

오늘 몇 건을 보내야 하고 이번 주에 뭘 만들어둬야 하는지가 정해져 있었다.

해야 할 게 있는 바쁨은 견딜 만하다.

막아야 할 게 있는 바쁨이 사람을 갉아먹는 거였다.

그 둘을 구분하게 된 것만으로도 그해는 값이 있었다.

지금도 바쁠 때면 스스로한테 묻는다.

이게 만드는 바쁨인가 막는 바쁨인가.

막는 바쁨이 길어지면 그때는 뭔가가 잘못 돌아가고 있는 거다.

만들어야 할 게 있어서 뛰었다.

같은 피곤인데 아침에 일어났을 때가 달랐다.

혼자였으면 사업자를 낼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연고도 없는 동네에서, 처음 접하는 아이템으로, 다시 사업에 뛰어들 수 있었던 건 오로지 내 편이 되어준 사람이 곁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건 실력이 아니라 운이었다고 생각한다.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도 준비의 일부라면, 나는 그 부분에서만큼은 정말 복을 받은 셈이다.

다만 한 가지는 말해두고 싶다.

그 운이 그냥 떨어진 건 아니었다는 것.

산에서 넉 달 동안 성실하게 지게를 졌고, 그만둘 때 등을 돌리지 않았고, 받아온 물건 값을 한 번도 미루지 않았다.

그 위에 운이 얹힌 거였다.

운만 있고 그게 없었으면 그 운은 지나갔을 거다.



이렇게 택배 박스에 넣어서 발송

 

 

■ 그해 가을의 마당

그 무렵 저녁에 마당에 나와 앉아 있으면 공기가 달라져 있었다.

내려온 지 일 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처마 밑에는 빈 병이 쌓여 있고 골방에는 포장재 상자가 쌓여 있었다.

작년 이맘때는 그 자리에 아무것도 없었다.

빈 마당에 팔복이만 뛰어다녔다.

그때는 그냥 조용히 살자는 생각뿐이었다.

그 생각이 일 년 만에 이렇게 뒤집힐 줄은 몰랐다.

사람이 세운 계획이라는 게 참 별것 아니라는 생각을 그 마당에서 했다.

팔복이가 와서 옆에 엎드리면 머리를 한참 쓸었다.

이 녀석 데리고 내려올 때는 조용히 살겠다는 생각뿐이었는데, 일 년 만에 사람에 둘러싸여 살고 있었다.

사람한테 지쳐서 내려온 사람이 사람 덕에 다시 섰다.

그 얘기를 누가 하면 예전에는 안 믿었을 거다.

이제는 믿는다.

내가 그랬으니까.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아프리카의 여러 지역에서 오래 전해 내려온 말이다.

초원이나 사막처럼 길이 험하고 먼 곳을 건너야 하는 땅에서는, 혼자 떠난 사람이 당장은 발이 빠르지만 물이 떨어지거나 길을 잃으면 그걸로 끝이었다.

여럿이 가면 걸음은 느려도 서로 짐을 나눠 지고 길을 묻고 아픈 사람을 기다려 주며 끝까지 건널 수 있었다.

그렇게 먼 길을 건너본 사람들이 다음 세대에게 건네던 말이 이 문장으로 남았다.

 

— 아프리카에서 전해 내려온 속담.

 

혼자 하면 빠르지만 거기까지이고, 함께 하면 더디지만 멀리 간다는 뜻이다.

그런데 함께 가자는 말은 아무한테나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같이 가줄 사람이 생기는 건, 그 전에 내가 그 사람 옆에서 어떻게 했느냐가 쌓여서 만들어진다.

 

부직포 포장 때 같이 앉아 있던 그 사람들은, 전부 내가 전에 옆에 있었던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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