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옮겨온 글 ▣
예전 블로그에 써두었던 글을 옮겨 왔다. 문장은 그때 그대로 두고, 읽기 편하게 조금만 매만졌다.
시골 밤은 도시보다 확실히 깊다.
불빛이 적으니 어둠이 두껍고, 그래서 소리가 멀리까지 들린다.
개 짖는 소리가 두 마을 건너에서 들려오는 날도 있다.
그런 밤에 마당에 나와 서 있으면 하루가 끝났다는 게 몸으로 느껴진다.
도시에서는 하루가 끝나는 게 시계로 끝났다.
여기서는 소리가 잦아들면 끝난다.
그 차이가 생각보다 크다.

■ 등기가 끝난 날
서류를 넣고 며칠 지나 등기가 완료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 전화를 받은 자리가 공장이었다.
전화를 끊고 손에 들고 있던 걸 그대로 들고 한참 서 있었다.
무슨 큰 기분이 든 건 아니었다.
오히려 조용했다.
서류 하나가 통과됐다는 소식이니 눈에 보이게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공장도 그대로고 물건도 그대로고 내 손도 그대로였다.
그런데 종이 위에서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등기부에는 대표이사와 사내이사 자리가 있었고, 대표이사 줄에 내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 줄을 처음 봤을 때 기분이 묘했다.
그리고 할 일이 줄줄이 따라왔다.
법인 인감을 만들어야 했고, 법인 통장을 열어야 했고, 사업자등록을 다시 해야 했다.
인감을 만들러 가서 도장 모양을 고르는데 괜히 오래 걸렸다.
한 번 만들면 몇 해를 쓸 거라고 생각하니 아무 거나 하기가 싫었다.
통장을 만들러 은행에 갔을 때는 서류를 한 번 더 떼어오라는 말을 들었다.
그 자리에서 빈손으로 나오면서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런 심부름이 생겼다는 게 그 자체로 달라진 증거였으니까.
사업자등록을 다시 하는 일도 남아 있었다.
개인사업자를 정리하고 법인으로 새로 받는 절차였다.
같은 자리에서 같은 걸 만드는데 번호가 바뀌었다.
거래처마다 그 번호를 다시 알려야 했다.
전화를 돌리면서 같은 말을 여러 번 했다.
사업자가 법인으로 바뀌었다고.
그 말을 하는 게 싫지 않았다.
싫지 않은 통화가 그렇게 여러 번 이어진 게 그 해에는 처음이었다.

■ 술 한잔을 받았다
등기가 완료된 그날 저녁에 조 대표님과 술 한잔을 했다.
거창한 자리가 아니었다.
읍내에 자주 가던 데서 둘이 앉았다.
안주도 늘 먹던 것이었다.
달라진 건 자리도 음식도 아니고 그날의 이름뿐이었다.
그날 그분이 잔을 들면서 나를 부른 말이 달라져 있었다.
이 대표님.
그 호칭이 내 귀에 처음 닿았을 때 나는 바로 손을 저었다.
그렇게 부르지 마시라고 했다.
그분은 나보다 일곱 살 위고, 내가 아무것도 모를 때부터 하나하나 알려주신 분이었다.
그분 앞에서 대표라는 소리를 듣는 게 민망했다.
그런데 그분은 웃으면서 그대로 가셨다.
이제 대표이사가 됐으니 대표님이 맞다고.
그 말이 농담인 줄 알았는데 농담이 아니었다.
그날부터 그분은 다른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 나를 이 대표님이라고 부르셨다.
그러면서 한마디 더 하셨다.
이름 불러주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만큼 지킬 게 많아지는 거라고.
그때는 축하 말씀으로만 들었다.
몇 달 지나서 그게 무슨 뜻인지 알게 됐다.
그 뒤로도 계속 그렇게 불러주셨다.

■ 호칭이 하는 일
사람을 뭐라고 부르느냐가 그 사람을 조금 바꿔놓는다는 걸 그때 알았다.
처음에는 그 호칭이 과한 옷 같았다.
작업복에 장화 신고 있는 사람한테 대표님이라고 하면 어색하다.
직원도 없고 혼자 포장하고 혼자 택배를 묶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런데 몇 달 그 소리를 듣고 나니 이상한 일이 생겼다.
내 행동이 그 호칭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전화를 받을 때 말투가 달라졌다.
거래처에 보내는 글 한 줄도 다시 읽어보고 보냈다.
약속한 납기를 지키는 데 더 신경을 썼다.
누가 보고 있어서가 아니었다.
대표님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할 행동을 생각하게 된 거였다.
그게 좋은 쪽으로 사람을 몰아갔다.
아랫사람을 쉽게 대하지 않게 된 것도 그 무렵이었다.
그때는 직원이 없었으니 아랫사람이랄 게 없었지만, 일을 거들러 오시는 분들이 있었다.
그분들께 말을 어떻게 하는지가 달라졌다.
내가 대표라고 불리는 자리에 있으면, 내가 부르는 말도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호칭은 남이 붙여주는 것이지 내가 붙이는 게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됐다.
스스로 대표라고 내세우는 사람은 어딘가 비어 보인다.
남이 그렇게 불러주기 시작하면 내세울 필요가 없어진다.
그 차이가 사람 보는 눈에 바로 걸린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내 입으로 내 직함을 먼저 말하지 않는다.
명함을 드리면 거기 적혀 있으니까.
■ 형님이라고 부르기까지
그 호칭 얘기를 하다 보면 같이 나오는 게 있다.
그 자리에서 나도 그분을 어떻게 부를지 정해졌다.
그 전까지는 조 대표님이라고만 했다.
일로 만난 사이였고 어려운 분이었으니 그게 맞았다.
그런데 그날 술잔이 몇 번 돌고 나서 그분이 먼저 말을 꺼냈다.
우리 이제 그만 어렵게 하자고.
그렇게 해서 서로 형님 동생 하는 사이가 됐다.
일곱 살 차이가 그날 좁혀진 셈이다.
사실은 그 전부터 그런 사이였는지도 모른다.
공장 짓던 해에 그분이 문경에 오신 횟수를 세어보면 그냥 거래 관계로는 설명이 안 된다.
주말에 오신 날도 있었고, 비 오는 날 서류 들고 오신 날도 있었다.
그걸 받기만 하다가 그날 말로 정리된 거였다.
그래도 바깥에서는 서로 대표님이라고 불렀다.
둘만 있을 때와 남이 있을 때가 달랐다.
그게 예의라고 생각했다.
사람 사이에 격을 아예 지우는 건 좋은 게 아니다.
가까워질수록 지킬 건 더 지켜야 오래간다.
그걸 그분한테서 배웠다.
그분이 그 경계를 지키는 방식도 눈에 들어왔다.
사석에서는 편하게 말씀하시는데, 거래처 사람이 한 명이라도 끼면 바로 말투가 돌아갔다.
그 자리에서 나를 낮춰 부르는 일이 한 번도 없었다.
남 앞에서 동생을 세워주는 게 그분 방식이었다.
그런 건 배워서 되는 게 아니고 몸에 있어야 되는 거다.
나도 그렇게 하려고 하는데 아직 그분만큼은 못 된다.

■ 왕관의 무게
그런데 호칭이 좋기만 한 건 아니었다.
며칠 지나니까 그 호칭 뒤에 따라오는 게 보였다.
대표이사라는 자리는 권한만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
회사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의 끝에 내 이름이 있었다.
서류에 도장을 찍는 사람이 나고, 그 도장의 책임을 지는 사람이 나였다.
개인사업자 때도 책임은 내가 졌다.
그런데 그때는 내가 나를 책임지는 거였다.
법인이 되고 나니 회사가 하는 일을 내가 책임지는 거였다.
그 둘은 무게가 달랐다.
세금 신고 한 장, 계약서 한 장, 거래처에 보낸 견적 한 장.
전부 회사 이름으로 나가고, 그 회사 이름 뒤에 내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걸 처음 느낀 날이 기억난다.
서류에 법인 도장을 찍는데 손이 한 번 멈췄다.
개인 도장을 찍을 때는 그런 일이 없었다.
무게라는 게 물건의 무게가 아닌데도 손에 느껴질 수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그 무게가 밤에도 따라왔다.
개인사업자 때는 일이 끝나면 생각도 끝났다.
법인이 되고 나서는 누워서 서류를 떠올리는 날이 생겼다.
그 칸을 맞게 적었나, 그 날짜가 맞나.
일어나서 확인해본 날도 있었다.
대개는 맞게 되어 있었다.
틀려서 깨는 게 아니라, 틀렸을까 싶어서 깨는 거였다.
그런 밤이 몇 번 있고 나서 버릇을 하나 들였다.
자기 전에 그날 나간 서류를 한 번 훑어보고 자는 것.
그 자리에 앉아보니 왕관의 무게라는 말이 왜 생겼는지 알 것 같았다.
자리가 주는 것과 자리가 요구하는 것이 같이 온다.
받고 싶은 것만 받고 요구는 안 받을 방법은 없다.
그걸 모르고 자리를 탐내면 나중에 그 무게에 눌린다.
서울에서 내가 눌린 게 아마 그거였다.
자리는 가졌는데 무게를 몰랐으니까.
그때 나는 자리에서 나오는 걸 전부 내 능력으로 알았다.
사람들이 나를 대우해주는 게 나한테 뭐가 있어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자리가 없어지고 나서 알았다.
대우는 자리에 붙어 있던 거였고, 자리가 빠지니 전부 같이 빠졌다.
그 몇 달이 사람을 바닥까지 긁어놓는다.
그걸 겪은 사람은 두 번째 자리를 다르게 받는다.
그 자리에서 나오는 건 빌린 거라고 생각하게 된다.
빌린 것은 갚을 생각을 하고 쓰게 되니까 허투루 못 쓴다.

■ 무게를 알고 나서 달라진 것
무게를 알고 나니 일하는 방식이 달라졌다.
전에는 되는 일을 먼저 했다.
이제는 책임질 수 있는 일을 먼저 했다.
들어온 주문을 다 받지 않게 된 것도 그 무렵이다.
전에는 주문이 오면 무조건 받았다.
못 만들 분량이 들어와도 일단 받아놓고 밤을 새웠다.
밤을 새워 만들면 품질이 떨어졌다.
한두 번은 넘어갔지만 그게 반복되면 거래가 끊긴다.
그걸 겪고 나서는 못 할 분량은 미리 말씀을 드렸다.
이만큼까지는 되고 그 위는 날짜를 더 주셔야 한다고.
처음에 그 말을 하기가 어려웠다.
거절하면 다시 안 오실 것 같았다.
그런데 반대였다.
미리 말해주는 쪽을 오히려 믿어주셨다.
못 하는 걸 못 한다고 말하는 게 책임이라는 걸 그 자리에 앉아보고 배웠다.
한 번은 큰 주문이 들어왔는데 날짜가 빡빡했다.
전 같으면 받았을 분량이었다.
계산해보니 밤을 이틀 새워야 맞출 수 있었다.
이틀 새워서 만든 물건이 평소 물건과 같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 분량을 절반으로 줄여서 받겠다고 말씀드렸다.
그쪽에서 잠깐 말이 없다가, 그럼 절반만 보내달라고 했다.
그 거래처는 그 뒤로 몇 해를 계속 거래했다.
그때 다 받아서 엉망으로 보냈으면 그 한 번으로 끝났을 거래였다.
받아놓고 못 지키는 게 제일 나쁘다.
그 순서를 알게 된 것이 대표라는 호칭이 내게 준 제일 큰 것이었다.
돈 쓰는 방식도 달라졌다.
개인사업자 때는 통장에 돈이 있으면 그게 다 내 돈처럼 보였다.
법인이 되고 나니 그 돈은 회사 돈이었다.
회사 돈을 쓸 때는 왜 썼는지 적어둬야 했다.
처음에는 그게 성가셨다.
몇 달 지나니 그 성가신 절차가 나를 지켜주고 있다는 걸 알았다.
적어둘 수 없는 지출은 애초에 안 하게 된다.
그러면 쓸데없이 나가는 돈이 줄어든다.
어디에 얼마가 들어가는지가 보이기 시작한 것도 그때였다.
재료비가 이만큼, 포장비가 이만큼, 택배가 이만큼.
전에는 뭉뚱그려서 많이 나갔다는 느낌만 있었다.
칸이 나뉘고 나니 줄일 데가 눈에 보였다.
느낌으로 알던 걸 숫자로 알게 되면 손을 댈 수 있다.
느슨하게 살던 사람에게 틀을 하나 씌워준 셈이었다.

■ 각자 자기 자리에서
그날 술자리에서 나온 얘기가 하나 더 있다.
그분이 웃으면서 하신 말이었다.
나중에 자기도 나이 들면 시골로 내려올 테니, 그때는 네가 좀 도와달라고.
나는 그 자리에서 말이 안 나왔다.
받은 게 산더미인데 도와달라는 소리를 들은 거였다.
무조건 그러겠다고 했다.
그 말씀이 진심인지 농담인지는 지금도 모른다.
다만 그 말을 들은 뒤로 내가 그분께 느끼던 부담이 조금 줄었다.
일방적으로 받는 사이가 아니라, 돌려드릴 자리가 있는 사이가 된 셈이었으니까.
사람이 받기만 하면 결국 불편해진다.
받은 쪽이 갚을 길을 알고 있어야 관계가 오래간다.
그걸 그분은 알고 계셨던 것 같다.
그래서 그렇게 말씀하신 게 아닐까 싶다.
그 뒤로 몇 해가 지나도록 그분은 여전히 나보다 바쁘시다.
시골로 내려오실 날은 아직 오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그 약속을 아직 들고 있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그 말씀은 나한테 주신 숙제이기도 했다.
그때까지 쓸 만한 사람으로 남아 있으라는 뜻이었으니까.
도와달라는 소리를 들을 만한 사람이 되어 있어야 그 약속이 성립된다.
망해 있으면 도울 수가 없다.
그러니 그 한마디가 몇 해 동안 나를 붙잡아둔 셈이다.

■ 종이 한 장이 바꿔놓은 것
그 해를 돌아보면 등기부 한 장이 바꿔놓은 게 꽤 많았다.
물건이 좋아진 것도 아니고 설비가 늘어난 것도 아니었다.
바뀐 건 내가 나를 뭐라고 부르는지였고, 남이 나를 뭐라고 부르는지였다.
그런데 그게 행동을 바꿨고 행동이 결과를 바꿨다.
사업이라는 게 설비와 자본으로만 돌아가는 게 아니라는 걸 그때 봤다.
자기가 어떤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느냐가 하루하루 하는 선택을 바꾼다.
그 선택이 몇 해 쌓이면 다른 데에 가 있다.
그러니 호칭을 받는다는 건 선물이 아니라 숙제를 받는 일이다.
그 숙제를 받은 게 그 해의 제일 큰 수확이었다.
그리고 그 숙제를 내준 사람이 일곱 살 위의 형님이었다는 것도.
요즘도 그분은 나를 이 대표님이라고 부른다.
처음에 민망했던 그 호칭이 이제는 어색하지 않다.
어색하지 않게 된 게 내가 뻔뻔해진 건지 그만큼 된 건지는 모르겠다.
다만 그 호칭을 들을 때마다 그날 저녁 읍내 가게가 떠오른다.
그 자리에서 잔을 받던 사람과 지금의 나 사이에 꽤 긴 시간이 있다.
그 시간을 버틴 힘의 절반은 그 호칭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그날 옆에 앉아 있던 사람이었다.
혼자 받은 호칭이면 몇 달 못 가서 벗었을 것이다.
불러주는 사람이 계속 있었으니 계속 입고 있었던 거다.
사람이 어떤 사람이 되는 건 혼자 결심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그렇게 불러주는 사람이 옆에 있어야 된다.
"무릇 왕관을 쓴 머리는 편히 눕지 못하느니."
셰익스피어의 『헨리 4세』 2부에 나오는 장면이다.
한밤중까지 잠들지 못한 왕이 혼자 깨어 있다.
그는 자기 나라의 가장 가난한 백성이 지금 깊이 잠들어 있을 것을 떠올린다.
뱃사람은 흔들리는 돛대 위에서도 잠을 자고, 병든 몸도 잠은 찾아오는데, 왕에게만 잠이 오지 않는다.
온 나라의 일이 자기 머리 위에 얹혀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왕은 이 말을 내뱉는다.
— 윌리엄 셰익스피어, 『헨리 4세』 2부 3막 1장.
높은 자리는 권한과 함께 책임을 같이 얹어준다는 뜻이다.
그래서 자리를 받는 일은 무엇을 가지는 일이 아니라 무엇을 지는 일에 더 가깝다.
받고 싶은 것만 받고 무게는 내려놓는 길은 없으니, 자리를 탐낼 때는 그 무게를 먼저 들어볼 일이다.
대표이사라는 줄에 내 이름이 올라간 그날, 손에 느껴진 것이 바로 그 무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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