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옮겨온 글 ▣
예전 블로그에 써두었던 글을 옮겨 왔다. 문장은 그때 그대로 두고, 읽기 편하게 조금만 매만졌다.
봄에 산을 보면 날마다 색이 다르다.
같은 자리를 보고 있는데 어제와 다르다.
연한 색이 조금씩 짙어지고, 어느 날 보면 벌써 녹음이 되어 있다.
그 사이에 분명 중간 단계가 있었을 텐데 그걸 본 기억이 없다.
사람이 변하는 것도 그런 식인 것 같다.
날마다 조금씩 달라지니 본인은 모른다.
한참 지나서 누가 달라졌다고 하면 그제야 안다.

■ 디자인하시는 분
그 무렵에 포장을 손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농민사관학교에서 포장이 말을 한다는 얘기를 들은 뒤로 계속 걸려 있던 숙제였다.
그래서 디자인하시는 분을 알게 됐다.
서울에서 유명하신 분인데 문경으로 오셔서 은둔 고수로 활동하시는 분이셨고 인맥도 상당하셨다.
그러니 제품 쪽 사정을 아는 분이었다.
그분과 앉아서 포장 얘기를 하다가 전혀 다른 얘기가 나왔다.
6차 산업 인증이라는 걸 받아보셨냐는 거였다.
처음 듣는 말이었다.
6차라는 숫자가 무슨 뜻인지도 몰랐다.
그래서 그게 뭐냐고 물었다.
그 자리에서 아는 척하지 않은 게 그날 내가 한 일 중에 제일 잘한 거였다.
몇 해 전이면 아는 척했을 것이다.
서울에서 사업할 때 나는 모르는 말이 나와도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이었다.
모른다고 하면 무시당할 것 같았으니까.
그 버릇이 몇 해 동안 나를 제자리에 세워뒀다.
시골에 와서 그 버릇이 고쳐졌다.
여기서는 모르면 바로 들킨다.
밭에 나가 보면 아는지 모르는지가 손놀림에서 드러난다.
그러니 아는 척할 이유가 없어졌다.
그래서 그날도 바로 물었다.
6차가 뭡니까, 그렇게.
그 질문이 민망하지 않았다.
민망한 건 모르면서 아는 척하다가 나중에 들키는 쪽이다.

■ 1과 2와 3을 곱하면
설명을 들어보니 숫자가 더해진 게 아니라 곱한 거였다.
1차는 농사다.
밭에서 기르고 산에서 거두는 것.
2차는 가공이다.
그걸 다듬고 끓이고 담아서 물건으로 만드는 것.
3차는 유통과 서비스다.
파는 것, 체험하게 하는 것.
그 셋을 한 사람이 다 하면 1 곱하기 2 곱하기 3이 되어서 6차가 된다는 얘기였다.
그 설명을 듣고 좀 웃었다.
숫자 장난 같기도 했다.
그런데 들으면 들을수록 그게 장난이 아니었다.
농사만 지으면 값을 남이 매긴다.
수확해서 넘기면 거기서 끝이다.
가공까지 하면 값을 내가 매기기 시작한다.
파는 것까지 하면 누구에게 팔지도 내가 정한다.
그 세 개를 한 손에 쥐고 있는 사람과 하나만 쥐고 있는 사람은 같은 농사를 짓고도 다른 데에 가 있다.
그 얘기를 들으면서 내가 지나온 걸 다시 생각했다.
처음에 산야초를 따서 말려 넘긴 해가 있었다.
그때는 값을 받아오는 쪽이었다.
얼마 주겠다고 하면 그 값이었다.
가공을 시작하고 나서는 내가 값을 적었다.
같은 재료인데 내가 적은 값이 몇 배였다.
그 차이가 어디서 나왔나 하면, 손이 한 번 더 간 자리에서 나왔다.
그걸 그때는 경험으로만 알았고 숫자로 설명할 말이 없었다.
그 설명을 그날 들은 거였다.
그러면서 3차 쪽에 내가 비어 있는 걸 처음 느꼈다.
팔기는 팔고 있었는데, 사람이 와서 보고 만지고 해보는 쪽은 없었다.
그게 뒤에 숙제가 됐다.
그 설명을 듣는 동안 나는 가만히 있었다.
내가 이미 그렇게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서 성 대표님이 한 가지 더 말씀하셨다.
요즘 사람들은 물건만 사지 않는다고.
누가 어디서 어떻게 만들었는지를 같이 산다고.
그 말이 오래 남았다.
산에서 거두고 내 공장에서 만든다는 건 그 자체가 이야기였다.
그런데 나는 그 이야기를 아무 데도 적어두지 않았다.
포장에도 없고 온라인 페이지에도 없었다.
있는 걸 안 쓰고 있었던 거다.

■ 하고 있는 걸 몰랐다
산에서 거두고, 공장에서 가공하고, 로컬 매장과 온라인으로 팔고 있었다.
1차와 2차와 3차를 다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제도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인 줄은 몰랐다.
그냥 혼자 다 해야 하니까 다 하고 있었던 거다.
사람을 쓸 돈이 없어서 그렇게 된 거였는데, 알고 보니 그게 제도가 권하는 모양이었다.
그 얘기를 듣고 나니 기분이 묘했다.
몇 해 동안 어쩔 수 없이 한 일이 제도의 틀에 들어맞았다는 거니까.
그런 일이 그 전에도 있었다.
농업경영체 등록이 입학 조건이 되어 돌아왔던 일.
해썹을 받아둔 게 거래처 문을 열어준 일.
해놓은 게 있으면 그걸 세어주는 자리가 언젠가 나온다는 걸 그 무렵에 또 확인했다.
그래서 중요한 건 이름을 모르고 있는 것들을 누가 알려주는가였다.
혼자서는 그걸 알 수 없다.
내가 하고 있는 게 무슨 이름으로 불리는지는 바깥 사람이 알려준다.
그리고 이름을 알면 그다음이 열린다.
이름을 알면 검색이 되고, 담당 기관을 찾을 수 있고, 조건을 읽을 수 있다.
이름을 모르면 그 전부가 막혀 있다.
그래서 모르는 말을 들었을 때 그 말을 적어두는 버릇을 들였다.
수첩에 그 단어만 적어놓고 집에 와서 찾아봤다.
그렇게 적어둔 단어가 몇 해 동안 꽤 됐다.
그중 절반은 나와 상관없는 말이었고, 절반은 내 일이 됐다.
그 수첩을 지금도 쓴다.
요즘은 휴대폰에 적을 때가 많은데, 적어두는 건 그대로다.
적어두지 않으면 그날 저녁에 잊는다.
좋은 얘기를 듣고도 잊어버리는 게 제일 아깝다.

■ 조 대표님의 설득
그 얘기를 조 대표님께 전했다.
그러자 그분이 바로 하라고 하셨다.
그 뒤로 설득이 시작됐다.
설득이라고 쓰는 게 정확하다.
나는 미루고 있었고 그분은 집요하셨다.
거의 매주 그 얘기를 하셨다.
문경에 오실 때마다 꺼내셨고, 전화로도 꺼내셨다.
왜 미뤘냐 하면, 또 서류였다.
공장 허가, 해썹, 법인 설립.
그 세 번을 하면서 서류에 질려 있었다.
서류 한 번 하면 몇 달이 간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몇 달이 몸으로 힘든 게 아니라 머리로 힘들다.
몸으로 힘든 건 하루 자면 낫는데, 서류는 자고 나도 그 자리에 있다.
그래서 좀 쉬고 싶었다.
그 마음을 그분께 그대로 말씀드렸다.
그러자 그분이 하신 말이 있다.
쉴 때가 제일 아깝다고.
지금처럼 돌아가고 있을 때 서류를 해둬야 하고, 어려워지면 서류도 못 한다고.
그 말이 맞았다.
서류는 여유가 있을 때 하는 거였다.
급할 때 하는 서류는 늦은 서류다.
그 말을 듣고 나서 한 가지 계산을 해봤다.
지금 안 하면 언제 할 수 있을까.
바쁜 철이 지나면, 주문이 좀 줄면, 몸이 좀 나아지면.
그런데 그 시점은 매년 안 왔다.
몇 해 동안 한가한 철이 온 기억이 없었다.
그러니 한가해지면 하겠다는 말은 안 하겠다는 말이었다.
그걸 인정하고 나서야 시작할 수 있었다.
사실 그게 농사일 하는 사람의 사정이기도 했다.
한가한 철이라는 게 따로 없다.
봄에는 거두고 심고, 여름에는 손질하고, 가을에는 또 거두고, 겨울에는 정리하고 손본다.
도시에서처럼 비수기가 뚝 떨어져 있지 않다.
그러니 바쁜 중에 끼워 넣는 걸 배워야 했다.
그걸 못 하면 평생 아무것도 안 늘어난다.

■ 매주 같은 얘기
그래도 몇 주는 안 했다.
사람이 미루기로 마음먹으면 핑계가 매주 생긴다.
이번 주는 납품이 있고, 다음 주는 비가 오고, 그다음 주는 몸이 안 좋다.
그분은 그걸 다 들으셨다.
그러고 나서 또 같은 얘기를 하셨다.
화를 내지 않으셨다.
그게 더 무서웠다.
한 번 화를 내면 그걸로 끝나는데, 담담하게 매주 같은 얘기를 하시면 피할 데가 없다.
그래서 결국 하기로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분은 내가 결국 할 거라는 걸 알고 계셨던 것 같다.
사람이 미루는 건 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무서워서라는 걸 아시는 분이었다.
무서운 사람에게는 설명을 더 해줘야 한다.
그분이 매주 하신 게 그거였다.
그리고 그분 방식에는 또 하나가 있었다.
한꺼번에 다 하라고 하지 않으셨다.
우선 신청만 해보자고 하셨다.
신청해놓고 서류는 같이 만들자고.
그게 사람을 움직이는 방식이라는 걸 그때 알았다.
전체를 보여주면 사람이 겁을 먹는다.
첫 칸만 보여주면 손이 움직인다.
나도 그 뒤로 누구에게 뭘 권할 때 그렇게 한다.
전부를 설명하지 않고 오늘 할 것만 말해준다.
그 방식으로 그해에 신청을 넣었다.
넣고 나니 그다음은 할 수밖에 없게 됐다.
사람이 발을 들여놓으면 그 뒤는 어떻게든 간다.
제일 어려운 건 늘 첫 칸이었다.

■ 왜 그렇게 미는지
한번은 그 얘기를 여쭤봤다.
왜 그렇게까지 미시느냐고.
대답이 간단했다.
나중에 하려면 그때는 조건이 안 맞을 수 있다고.
제도는 바뀌는 거라서, 지금 받을 수 있는 걸 미루면 나중에는 못 받는 경우가 생긴다고.
그 말을 듣고 생각이 났다.
귀농 지원도 그랬다.
내가 알아본 해에는 그 조건에 맞았는데, 몇 해 뒤에 보니 조건이 달라져 있었다.
그때 안 했으면 못 했을 일이었다.
그 뒤로 나는 제도를 과일처럼 생각하게 됐다.
철이 있다.
그 철에 손을 뻗어야 한다.
철이 지나면 그 자리에 없다.
그 뒤로 제도 공고를 볼 때 날짜를 먼저 봤다.
언제까지인지.
그리고 그 날짜 안에 할 수 있는지 아닌지를 바로 셈했다.
못 하겠으면 아깝지만 넘기고, 되겠으면 그날부터 서류를 모았다.
망설이는 시간이 제일 비쌌다.
망설이다 날짜가 지나면 아무것도 안 남는다.
■ 받으면 뭐가 생기는지
내가 물은 것 중에 제일 현실적인 질문은 이거였다.
받으면 뭐가 생기느냐.
인증서 한 장 더 받는 게 전부면 나는 안 하고 싶었다.
설명을 들어보니 그게 아니었다.
우선 포장지와 영상, 디자인 쪽을 지원해주는 게 있었다.
내가 돈이 아까워서 못 바꾸고 있던 그 포장 말이다.
그걸 지원으로 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그 말에 귀가 열렸다.
그리고 사업 쪽으로 연결되는 자리가 생긴다고 했다.
6차 산업으로 인증받은 경영체끼리 묶이는 자리, 판로를 소개받는 자리.
혼자 찾아다니던 걸 명단에 올려주는 셈이었다.
그 두 가지면 할 만했다.
인증이 간판으로만 남으면 안 하는 게 낫고, 그 뒤에 따라오는 게 있으면 하는 게 맞다.
그걸 묻지 않고 시작하면 몇 달 지나서 후회한다.
그래서 지금도 뭘 권할 때는 그걸 먼저 말해준다.
받으면 무엇이 생기는지.
그리고 거꾸로 묻기도 했다.
받으면 뭘 해야 하느냐고.
받고 나서 지켜야 할 게 있을 테니까.
보고를 해야 하는지, 기간이 있는지, 갱신이 있는지.
그걸 미리 알아야 한다.
받을 때만 생각하고 받으면, 지킬 걸 몰라서 나중에 곤란해진다.
해썹을 받고 나서 그걸 배웠다.
받는 게 끝이 아니라 유지하는 게 일이었다.
그 얘기도 그 자리에서 들었다.
인증이라는 건 기간이 있고, 지나면 다시 받아야 한다는 것.
그러니 한 번 받아놓고 잊으면 어느 날 없어져 있다.
그 뒤로 인증서마다 날짜를 적어서 벽에 붙여놨다.
붙여놓으니 지나칠 일이 없었다.
그리고 그걸 물어봐야 그쪽 설명도 정확해진다.
막연하게 좋다고만 하는 사람은 자기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구체적으로 답하는 사람은 해본 사람이다.
그래서 그 질문은 제도를 알아보는 질문이기도 하고, 상대를 알아보는 질문이기도 했다.

■ 세 사람
돌아보면 그 일은 세 사람이 만든 일이었다.
그 말을 처음 꺼낸 디자인 하시는 대표님.
그걸 받아서 밀어준 조 대표님.
그리고 미루다가 결국 한 나.
그중에 제일 한 게 적은 사람이 나였다.
그래도 한 가지는 내가 했다.
듣고 흘려버리지 않은 것.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그게 뭔지 물어본 것.
그 질문 하나가 그 뒤 몇 해를 만들었다.
그리고 또 하나 내가 한 게 있다.
그 말을 조 대표님께 전한 것.
혼자 들고 있었으면 흐지부지됐을 얘기였다.
들은 걸 아는 사람에게 전하면 그게 일이 된다.
혼자 들고 있으면 머리에서 끝난다.
그래서 나는 뭘 들으면 그날 전화를 걸었다.
그 습관이 그 몇 해 동안 꽤 여러 가지를 만들었다.
그러니 혼자 아는 것보다 아는 사람에게 전하는 게 빨랐다.
내가 모든 걸 알 수는 없다.
다만 들은 걸 전할 수는 있다.
그 역할만 해도 일이 돌아갔다.
그래서 내가 그 몇 해 동안 한 일을 정리하면 이렇게 된다.
듣고, 묻고, 전하고, 시키는 대로 했다.
그중에 내 머리에서 나온 건 거의 없다.
그게 부끄러운 일인가 생각해봤는데 아니었다.
혼자 다 생각해내려던 몇 해에 나는 무너졌고, 듣고 묻던 몇 해에 자리가 생겼다.
어느 쪽이 나은지는 결과가 말해줬다.
모르는 말이 나왔을 때 아는 척하고 넘어갔으면 아무 일도 안 일어났다.
그 자리에서 그게 뭐냐고 물었으니까 설명을 들은 거였다.
모르는 걸 묻는 게 그렇게 값이 나가는 일이라는 걸 몇 번 겪어서 안다.
묻는 데 드는 건 몇 초다.
안 물어서 놓친 건 몇 해다.
그리고 묻는 걸 겁내지 않게 되고 나서 또 하나 생겼다.
묻다 보면 상대가 더 말해준다.
처음 묻는 한마디에 다 나오지 않는다.
한 번 묻고, 그 답에 또 묻고, 그렇게 세 번쯤 묻고 나면 제일 중요한 얘기가 나온다.
대개 세 번째 답이 쓸 만했다.
그러니 한 번 묻고 끝내지 말아야 한다.

■ 말 한마디로 시작된 일
그래서 그 일을 생각하면 늘 그 자리가 떠오른다.
포장 얘기를 하러 앉은 자리였다.
6차 산업 얘기를 하려고 만난 게 아니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나온 한마디가 그 뒤 몇 해를 바꿔놨다.
사람을 만나는 게 왜 중요한지를 그 일로 알았다.
혼자 앉아서 아무리 찾아봐도, 모르는 단어는 검색할 수가 없다.
이름을 알아야 찾을 수 있다.
그 이름을 알려주는 건 결국 사람이다.
그러니 모임에 나가고 사람을 만나는 게 일을 미루는 게 아니라 일이었다.
그걸 알고 나서는 누가 만나자고 하면 되도록 나갔다.
그 자리에서 한마디를 들으려고 나가는 거였다.
그렇게 나가는 자리에서 돈 얘기가 바로 나오는 경우는 드물었다.
대개는 아무 소득 없이 돌아왔다.
열 번 나가면 한 번쯤 뭐가 걸렸다.
그 한 번 때문에 아홉 번을 나가는 거였다.
그 셈을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걸렸다.
서울에서는 한 번에 결과가 나오는 자리에만 나갔다.
여기서는 그렇게 안 된다.
느리게 돌아가는 자리에 자주 앉아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게 결국 더 멀리 가는 길이었다.
한 번에 결과가 나오는 자리는 대개 남이 짜놓은 자리다.
느리게 돌아가는 자리에서 생긴 관계는 몇 해를 간다.
디자인 하시는 대표님도, 조 대표님도 그런 자리에서 만난 분들이었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 갚는다"
옛날에 천 냥이면 큰돈이었다.
집 한 채 값이 오가는 돈이었으니, 그런 빚을 말로 갚는다는 건 사실 될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이 말을 썼다.
빚을 받으러 온 사람 앞에서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기한이 늘기도 하고 사정이 받아들여지기도 하던 일을 여러 번 봤기 때문이다.
말 한마디가 사람의 마음을 돌려놓고, 돌아선 마음이 돈보다 큰 것을 움직였다.
그래서 이 말은 말을 잘 꾸미라는 뜻이 아니라, 한마디가 가진 무게를 가볍게 보지 말라는 뜻으로 쓰여 왔다.
— 한국 속담.
말 한마디가 돈으로 셀 수 없는 것을 바꿔놓기도 한다는 뜻이다.
그 무게는 말하는 쪽에만 있는 게 아니라 듣는 쪽에도 있다.
흘려들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그게 뭐냐고 한 번 물으면 그 자리에서 길이 하나 열린다.
포장 얘기를 하러 앉은 자리에서 들은 한마디가 그 뒤 몇 해를 바꿔놓은 것도 그래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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