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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일상

[6차산업 인증] 약점을 극복하다!

by 사람들생각 2025. 7. 15.

▣  옮겨온 글 ▣

예전 블로그에 써두었던 글을 옮겨 왔다. 문장은 그때 그대로 두고, 읽기 편하게 조금만 매만졌다.


 

여름 장마철에는 공장 안이 유독 덥다.

문을 열면 습기가 들어오고 닫으면 열이 안 빠진다.

그 사이에서 하루를 보내면 저녁에 기운이 없다.

그래도 그 철에 해야 하는 일이 있으니 한다.

시골 일은 날씨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비가 오면 비 오는 대로, 더우면 더운 대로 그날 할 걸 한다.

그걸 몇 해 하면 날씨 탓을 안 하게 된다.

 



■ 신청은 온라인으로

하기로 마음을 먹고 나서 알아보니, 신청은 온라인으로 하는 거였다.

인터넷으로 접수를 넣는 방식이었다.

그 점은 편했다.

문경에서 서울까지 서류를 들고 갈 일은 없었다.

다만 그 전에 할 게 있었다.

근처 기관에 가서 설명을 듣는 자리가 있었다.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어떤 서류가 필요한지 알려주는 교육이었다.

그 자리에 갔다.

가서 들어보니 내가 생각한 것보다 준비할 게 많았다.

그런데 겁은 안 났다.

서류 세 번을 해본 사람이었으니까.

무엇이 어려운지를 알고 있었다.

어려운 건 서류를 만드는 게 아니라, 서류끼리 숫자가 맞게 하는 거였다.

그 교육 자리에서 만난 분들도 있었다.

같은 걸 준비하는 분들이니 사정이 비슷했다.

쉬는 시간에 몇 마디 나눠보면 어디가 막혀 있는지가 보였다.

한 분은 농사만 하시는 분이었다.

가공할 자리가 없어서 그걸 어떻게 할지를 고민하고 계셨다.

한 분은 가공은 하는데 팔 데가 없다고 하셨다.

들어보니 세 가지를 다 가진 사람이 드물었다.

그 자리에서 내가 어떤 자리에 서 있는지를 처음 알았다.

혼자 다 하느라 고생한 몇 해가 그 자리에서는 강점이 되어 있었다.

고생한 게 자격이 되는 경우가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그 자리에서 설명해주신 분이 한 가지를 강조하셨다.

서류를 꾸미는 것보다 실제로 돌아가고 있는 걸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사진이 있으면 좋다고도 하셨다.

공장이 돌아가는 사진, 물건이 진열된 사진, 포장하는 사진.

그 말을 듣고 돌아와서 사진을 찍어뒀다.

그 전까지는 사진을 찍는 버릇이 없었다.

일하느라 바쁜데 사진 찍을 생각이 안 났다.

그 뒤로는 뭘 하든 한 장씩 찍어뒀다.

나중에 쓸 데가 반드시 있었다.

그 버릇이 뒤에 꽤 값을 했다.

서류에 넣을 사진, 온라인 페이지에 올릴 사진, 거래처에 보낼 사진.

필요할 때 찍으려고 하면 그 장면이 없다.

작업하는 장면은 작업할 때만 있으니까.

그래서 요즘은 휴대폰에 공장 사진이 꽤 쌓여 있다.

철마다 재료가 들어오는 사진, 말리는 사진, 담는 사진.

그게 몇 해 모이면 그 자체로 기록이 된다.

 

내가 공들인 다락방 공사



■ 필요한 서류들

준비해야 하는 서류는 이런 것들이었다.

인증 신청서.

사업계획서.

농업경영체임을 증명하는 서류.

법인 정관.

재무제표.

적어놓고 보니 그 대부분이 이미 내 손에 있었다.

농업경영체는 몇 해 전에 등록해뒀다.

정관은 법인을 세울 때 만들었다.

재무제표는 세무사께 기장을 맡겨뒀으니 매년 나왔다.

그 세 가지가 없는 사람은 그걸 만드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나는 그 자리를 이미 지나와 있었다.

1원에도 증빙을 남기던 그 번거로움이 그 자리에서 값을 했다.

그걸 그때 확실히 알았다.

서류를 미리 갖춰둔다는 건 이런 거였다.

새로 뭘 하려고 할 때, 그 앞 단계가 이미 끝나 있는 것.

그걸 모르고 있으면 신청 날짜를 보고 포기하게 된다.

한 달 안에 접수라는데 서류 만드는 데 석 달 걸리면 못 하는 거다.

실제로 그래서 못 하는 분들을 여러 번 봤다.

의지가 없어서가 아니었다.

앞 단계가 비어 있어서였다.

그래서 앞 단계는 공고가 뜨기 전에 해둬야 한다.

언제 쓸지 모르는 걸 미리 해두는 게 그런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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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업계획서라는 것

그중에 손이 제일 많이 간 건 사업계획서였다.

칸이 크게 세 덩이로 되어 있었다.

사업의 기본 방향.

재원 조달 계획.

그리고 연차별 투자 계획.

기본 방향은 우리가 무엇을 하려는 회사인지를 적는 칸이었다.

재원 조달은 돈을 어디서 가져올 것인지였다.

연차별 투자는 몇 해에 걸쳐 어디에 얼마를 넣겠다는 것이었다.

그 세 개를 적으면서 내가 처음 해본 게 있다.

몇 해 뒤를 숫자로 적어보는 것.

그 전까지 나는 다음 달까지만 생각하고 살았다.

이번 달 주문을 맞추고, 다음 달 재료를 준비하고.

그게 전부였다.

3년 뒤에 무엇을 하고 있을 것인가를 칸에 적어넣으려니 손이 멈췄다.

그 칸 앞에서 한참 앉아 있었다.

적을 말이 없는 게 아니었다.

하고 싶은 건 많았다.

그런데 그걸 숫자로 바꾸려니 근거가 없었다.

몇 해 뒤에 매출이 얼마가 될 거라고 적으려면 왜 그렇게 되는지를 적어야 한다.

그 근거를 만드는 게 그 칸의 일이었다.

막연한 희망과 계획의 차이가 그 근거 한 줄이었다.

그래서 숫자를 거꾸로 세워봤다.

한 달에 몇 개를 만들 수 있고, 그걸 다 팔면 얼마가 되는지.

그 위에 사람을 한 명 쓰면 몇 개가 더 나오는지.

포장을 바꾸면 값을 얼마쯤 올릴 수 있는지.

그렇게 하나씩 세우니 몇 해 뒤 숫자에 근거가 붙었다.

그 과정이 사실 제일 재미있었다.

처음으로 내 사업을 바깥에서 들여다본 셈이었으니까.

그러면서 안 할 것도 정해졌다.

칸이 있다고 다 적는 게 아니었다.

할 수 있는 것만 적어야 뒤에 설명이 된다.

적어놓고 못 하면 그게 다음에 걸린다.

그래서 욕심을 덜어내는 일이 계획서의 절반이었다.

그걸 혼자 하면 잘 안 된다.

적어놓은 걸 보고 이건 못 하실 것 같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그 역할을 해준 분이 옆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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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어야 보인다

처음에는 막막했는데 적다 보니 보이는 게 있었다.

적으려면 생각을 해야 한다.

생각을 하려면 지금 상태를 알아야 한다.

지금 상태를 알려면 숫자를 봐야 한다.

그래서 결산서를 다시 꺼냈다.

매출이 얼마고 비용이 어디서 나가고 남는 게 얼마인지.

그 위에 3년을 올려 그려봤다.

이대로 가면 몇 해 뒤에 어디쯤 있을까.

그려보니 생각보다 안 올라갔다.

그 자리에서 알았다.

지금 하던 대로 하면 그냥 지금 자리에 있는 거였다.

올라가려면 무언가를 더해야 했다.

그 무언가를 적는 칸이 바로 연차별 투자 계획이었다.

칸이 질문을 하고 있었던 거다.

그래서 사업계획서를 쓰는 게 서류 작업이 아니었다.

내 사업을 한 번 세워보는 일이었다.

그걸 모르고 쓰면 그냥 칸 채우기가 된다.

그래서 그 서류를 쓰고 나서 달라진 게 있다.

그 뒤로 해마다 한 번씩 그걸 다시 꺼내서 봤다.

적어둔 대로 가고 있는지, 어디가 어긋났는지.

안 보고 그냥 둔 해도 있었다.

그래도 적어둔 게 있다는 것만으로 다르다.

방향이 적혀 있으면 어긋났다는 걸 알 수 있고, 적혀 있지 않으면 어긋난 줄도 모른다.

그걸 알고 나서 해마다 종이 한 장은 쓰게 됐다.

거창한 계획서가 아니다.

올해 할 세 가지를 적는 정도다.

그 세 가지를 연말에 다시 보면 대개 하나 반쯤 되어 있다.

그래도 적어둔 쪽이 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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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험이 없었다

그런데 쓰다가 걸리는 데가 나왔다.

6차 산업은 1차와 2차와 3차를 다 하는 것이다.

생산은 하고 있었다.

가공도 하고 있었다.

유통도 하고 있었다.

그런데 3차 쪽에 하나가 비어 있었다.

체험이었다.

사람이 와서 보고 만들어보고 가져가는 그런 프로그램이 우리에게 없었다.

공장은 작업하는 데였고, 사람이 들어와 앉을 자리가 아니었다.

해썹 기준에 맞춰 만든 데라 아무나 들어올 수도 없었다.

그게 약점이었다.

감출 수도 없는 약점이었다.

서류에 없는 걸 있다고 쓸 수는 없으니까.

그 자리에서 잠깐 머뭇거렸다.

체험장을 하나 만들어놓고 신청하는 게 맞나 싶었다.

그런데 그러려면 돈과 시간이 또 들어간다.

그리고 급하게 만든 체험장은 모양만 체험장이다.

사람이 안 오는 체험장을 만들어놓고 서류에 적는 건 결국 거짓말에 가깝다.

그래서 그 생각은 접었다.

대신 그 계획을 진짜 할 생각으로 적었다.

언젠가 할 거라고 적는 것과, 몇 해에 하겠다고 적는 것은 다르다.

적어놓으면 그게 숙제로 남는다.

그 숙제를 아직 다 하지는 못했다.

다만 그 뒤로 사람이 찾아오면 공장 쪽을 보여주는 일은 하게 됐다.

작은 걸음이라도 그 방향으로는 움직인 셈이다.




■ 없는 걸 어떻게 쓸까

그 문제를 조 대표님과 의논했다.

결론은 간단했다.

없는 건 없다고 쓰고, 그 자리에 계획을 적자는 거였다.

지금은 없지만 몇 해에 걸쳐 이렇게 만들겠다는 식으로.

그래서 그 부분에 제일 정성을 들였다.

비어 있는 칸이니 더 공들여 썼다.

어떤 형태로 체험을 만들 수 있을지, 어디에 자리를 낼지, 몇 해에 걸쳐 어떻게 할지.

그걸 적으면서 생각이 많아졌다.

실제로 그 그림이 그 뒤 몇 해 동안 내 머리에 남아 있었다.

서류에 적어둔 게 숙제가 된 셈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또 한 가지 배웠다.

약점을 가리려고 하면 서류가 거짓말을 하게 된다.

거짓말이 들어간 서류는 질문 한 번에 무너진다.

없다고 쓰고 그다음을 적으면 서류가 거짓말을 안 한다.

심사하는 쪽에서도 그걸 본다.

완벽한 서류를 보는 게 아니라, 이 사람이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를 본다.

자기 약점을 아는 사람이 더 믿을 만하다.

그걸 서울에서는 몰랐다.

투자를 받으러 다닐 때 나는 약점을 다 가렸다.

좋은 것만 적어서 가져갔다.

그게 통한 자리도 있었다.

그런데 통한 뒤가 문제였다.

가려놓은 약점은 사라지지 않는다.

몇 달 지나면 그 자리에서 터진다.

그때 터진 걸 설명할 수가 없었다.

처음부터 말해뒀으면 같이 손을 쓸 수 있었던 일이었다.

그래서 그 뒤로 어디에 뭘 낼 때 약점을 먼저 적는다.

제일 앞에 적지는 않는다.

있는 걸 먼저 적고, 없는 걸 적고, 그걸 어떻게 채울지를 적는다.

그 순서가 맞다는 걸 몇 번 해보고 알았다.

그리고 없는 걸 적을 때는 왜 없는지도 적었다.

체험이 없는 건 게을러서가 아니라, 해썹 기준에 맞춘 작업장이라 사람이 드나들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 이유를 적어놓으면 약점이 설명이 된다.

이유 없이 비어 있는 칸과, 이유가 적힌 빈 칸은 읽는 쪽에서 전혀 다르게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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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류는 거의 다 그분이

그 서류 작업도 조 대표님께서 거의 다 맡아주셨다.

그 무렵에 주 1회 정도 문경에 오셨다.

서울에서 문경까지 오시는 거였다.

차로 꽤 걸리는 거리다.

오셔서 서류를 보시고, 내게 물으시고, 적고 가셨다.

다음 주에 오시면 또 그만큼 진행되어 있었다.

그렇게 몇 달을 하셨다.

나는 내 사정을 말씀드리는 쪽이었다.

우리가 뭘 만들고 어디에 팔고 얼마가 들어오는지.

그 말을 받아서 칸에 맞게 적으시는 게 그분 일이었다.

같은 사실을 내가 적으면 서류가 안 되고 그분이 적으면 서류가 됐다.

그 차이를 몇 번 보고 나니 알게 됐다.

서류는 사실을 적는 게 아니라, 사실을 그쪽 양식에 맞게 옮기는 일이었다.

옮기는 법을 아는 사람이 따로 있었다.

그러면서 나도 조금씩 익혔다.

처음에는 그분이 쓰시는 걸 보기만 했다.

몇 달 보고 나니 어떤 칸에 무엇을 넣는지가 눈에 들어왔다.

숫자가 서로 맞아야 하는 칸이 어디인지도 보였다.

그 뒤로는 내가 초안을 적어두고 그분이 고치시는 쪽으로 바뀌었다.

그게 제일 빨랐다.

사정을 아는 사람이 적고, 양식을 아는 사람이 고치는 것.




■ 준비하는 데 걸린 시간

준비 기간이 몇 달이었다.

짧게 보면 서너 달, 길게 보면 여섯 달쯤 걸렸다.

그런데 그중에 서류를 처음 만드는 시간은 얼마 안 됐다.

한 번 만들어놓고 다듬는 시간이 훨씬 길었다.

숫자를 맞추고, 문장을 고치고, 앞뒤가 어긋난 데를 찾아 맞췄다.

한 칸을 고치면 다른 칸이 안 맞았다.

연차별 투자를 손보면 재원 조달이 안 맞고, 그걸 고치면 기본 방향과 어긋났다.

그 세 개가 맞물려 있는 거였다.

그걸 맞추는 게 그 몇 달의 일이었다.

처음에는 그게 지겨웠다.

다 썼는데 왜 또 보느냐 싶었다.

그런데 몇 번 고치고 나니 서류가 달라지는 게 보였다.

읽어보면 말이 되게 흘러갔다.

처음 쓴 걸 다시 읽어보니 그건 말이 안 되게 흘러갔다.

그 차이가 통과와 탈락을 가른다는 걸 그 뒤에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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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듬는 시간

그래서 나는 서류를 쓰는 사람에게 늘 이 얘기를 한다.

쓰는 시간보다 다듬는 시간을 길게 잡으시라고.

하루에 다 쓸 수 있는 서류도 있다.

그런데 그걸 하루에 써서 내면 떨어진다.

쓰고 며칠 두고, 다시 읽고, 고치고, 또 며칠 두고.

그렇게 몇 번 돌려야 말이 되게 된다.

그 며칠이 아까워 보이는데 그게 제일 중요한 시간이다.

사람 눈이 묘해서, 방금 쓴 글은 틀린 게 안 보인다.

며칠 지나서 보면 보인다.

그래서 날짜에 여유를 두고 시작해야 한다.

마지막 날에 몰아서 쓰는 서류는 거의 다 떨어진다.

그 몇 달 동안 그걸 몸으로 배웠다.

그리고 다듬을 때 혼자 보지 않았다.

내가 본 것과 그분이 본 게 늘 달랐다.

나는 내용을 보고 그분은 모양을 봤다.

둘이 같이 봐야 서류가 완성됐다.

혼자 쓴 서류는 혼자 본 서류가 되고, 혼자 본 서류는 꼭 어딘가 비어 있다.




■ 쌓아놓은 것들이 모여서

돌아보면 그 서류를 쓸 수 있었던 건 그 전에 쌓아둔 것들 덕이었다.

농업경영체 등록이 있어서 자격이 됐다.

법인이 있어서 정관이 있었다.

기장을 맡겨뒀으니 재무제표가 나왔다.

해썹을 받아뒀으니 가공 쪽을 설명할 게 있었다.

그 네 가지가 없었으면 신청조차 못 했다.

그걸 하나씩 할 때는 그게 모일 줄 몰랐다.

공장을 지을 때는 공장 생각만 했고, 법인을 만들 때는 법인 생각만 했다.

그런데 몇 해 지나서 보니 그게 다 같은 방향으로 쌓여 있었다.

흙 한 삽이 모여서 언덕이 되는 식이었다.

그러니 그 몇 해 동안 내가 한 건 서류를 쌓은 거였다.

그리고 그 쌓인 데에서 바람이 일었다.

그러니 그 서류를 넣던 날, 내가 넣은 건 몇 장의 종이가 아니었다.

몇 해 치를 넣은 거였다.

그걸 알고 나니 서류를 넣는 일이 덜 무서워졌다.

심사하는 쪽이 보는 건 그날 쓴 글솜씨가 아니라 그 몇 해였으니까.

그러니 서류는 결국 지나온 시간을 요약하는 일이었다.

요약은 며칠에 할 수 있지만 요약할 내용은 며칠에 안 생긴다.

그걸 몇 해 전에 알았으면 더 많이 쌓아뒀을 것이다.

그런데 그걸 모르고도 쌓게 해준 사람이 옆에 있었으니 운이 좋았다.

 




"積土成山 風雨興焉"

(적토성산 풍우흥언)

 

『순자』 권학편에 나오는 말이다.

흙을 쌓아 산을 이루면 그 산에서 바람과 비가 일어난다는 뜻이다.

순자는 그 뒤에 물을 쌓아 못을 이루면 거기서 물고기와 용이 산다는 말을 이어 적었다.

한 삽의 흙은 아무것도 아니고, 그것이 바람을 일으키는 일도 없다.

그런데 그 삽질이 모여 산만 한 높이가 되면, 산이 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 자리에 전에 없던 기후가 생긴다.

그래서 이 말은 꾸준히 쌓으라는 권고만이 아니라, 쌓인 것은 양이 아니라 다른 성질의 것이 된다는 뜻으로 읽혀 왔다.

 

— 『순자』 권학편.

 

작은 것이 쌓이면 양이 늘어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전에 없던 일이 생긴다는 뜻이다.

등록증 한 장, 인증서 한 장, 결산서 한 장은 각각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것들이 한자리에 모이자 전에는 신청조차 못 했던 자리에 서류를 넣을 수 있게 되었다.

쌓아두는 동안은 그게 산이 될지 모르면서 쌓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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