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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일상

[농민사관학교] 동기들의 공장 견학

by 사람들생각 2025. 7. 13.

▣  옮겨온 글 ▣

예전 블로그에 써두었던 글을 옮겨 왔다. 문장은 그때 그대로 두고, 읽기 편하게 조금만 매만졌다.


 

시골에서 사람이 찾아오는 날은 아침부터 다르다.

마당을 한 번 쓸고, 작업장 바닥을 한 번 밀고, 창고에 쌓인 상자를 가지런히 놓는다.

평소에 안 하던 걸 그날은 한다.

도시에서는 손님이 와도 그런 걸 안 했다.

여기서는 집과 일터가 붙어 있으니 손님이 오면 일하는 자리가 다 보인다.

보이는 걸 알고 있으니 치운다.

그래서 가끔 손님이 오는 게 좋다.




■ 1박 견학이 있었다

과정 중간에 1박으로 견학을 가는 일정이 있었다.

다른 지역에 잘하는 데를 보러 가는 거였다.

가보고 싶었다.

남의 공장을 눈으로 보는 게 강의 여러 번보다 낫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날짜에 대량 납품이 걸려 있었다.

미룰 수 없는 납기였다.

며칠 고민하다가 결국 못 간다고 말씀드렸다.

그날 저녁에 혼자 공장에서 포장을 하고 있으니 기분이 좀 가라앉았다.

다들 버스에 타고 떠났는데 나는 여기 남아 있는 거였다.

배우려고 한 해를 떼어놨는데, 결국 일 때문에 못 가는 자리가 생겼다.

그게 내 처지였다.

혼자 하는 사람은 자리를 비우면 그 자리가 빈 채로 있다.

대신 서 있어줄 사람이 없으니까.

그 무렵에 그 생각을 자주 했다.

혼자 하는 건 자유롭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그 반대였다.

아무 데도 못 간다.

하루 비우면 하루 치가 그대로 밀린다.

누구한테 넘길 수가 없으니 쉬는 게 쉬는 게 아니었다.

회사에 다닐 때는 하루 빠져도 그 일이 어떻게든 돌아갔다.

혼자 하면 그게 안 된다.

그게 혼자 하는 사람의 값이었다.

그래서 나는 늘 하루 치를 미리 해두려고 했다.

그 하루가 비상금 같은 거였다.

그래도 그날은 그 비상금이 없었다.

납품 분량이 컸으니까.

그런 날은 어쩔 수가 없다.

무엇을 포기할지 정하는 수밖에 없고, 그날 포기한 건 견학이었다.

먹고사는 쪽을 택한 거니 후회할 일은 아니었다.

다만 가고 싶었던 마음은 그대로 남았다.

못 간다고 말씀드리던 전화도 좀 민망했다.

배우겠다고 들어온 사람이 일정 하나를 빠지는 거였으니까.

그런데 그쪽에서는 담담하게 받아주셨다.

농사하는 사람이 철을 못 비키는 걸 아시는 분들이었다.

그 담담함이 고마웠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알았다.

못 가는 걸 미리 말하는 게 낫다는 것.

그 전에는 끝까지 붙들고 있다가 당일에 못 간다고 하는 쪽이었다.

미리 말하면 상대가 일정을 짤 수 있다.

당일에 말하면 그쪽이 곤란해진다.

그 차이를 그 무렵에 여러 자리에서 배웠다.

 

예전 약초 공장에서 생산한 제품



■ 숙박지가 문경이었다

그런데 재밌는 일이 있었다.

그 견학의 숙박지가 문경이었다.

다른 데를 둘러보고 저녁에 문경에서 자는 일정이었다.

그걸 알고 나니 기분이 묘했다.

내가 못 간 그 사람들이 우리 동네에서 하룻밤 자는 거였다.

연락이 왔다.

문경에서 자게 됐는데, 다음 날 아침에 시간이 되면 공장을 좀 보여줄 수 있겠냐는 얘기였다.

일정에 여유가 있으니 들러보자는 쪽으로 정해졌다고 했다.

그러라고 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 괜히 바빠졌다.

남한테 보여줄 생각으로 공장을 만든 게 아니었다.

작업하기 편하게 만든 데였다.

그러니 보여주려고 보면 손댈 데가 보였다.

그날 밤에 바닥을 다시 밀었다.

그러면서 좀 웃겼다.

낮에는 보여줄 공장이라고 바닥을 밀고, 밤에는 그 바닥에서 포장을 하고 있었다.

납기는 그대로 남아 있었으니까.

그날 밤에 잠을 얼마 못 잤다.

그래도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사람이 온다는 게, 그 자체로 기운을 내게 만드는 일이었다.

혼자 몇 해 일하다 보면 누가 와준다는 게 그렇게 된다.

 



■ 다음 날 아침

아침에 버스가 왔다.

동기들이 내려서 들어왔다.

며칠 전 강의실에서 본 분들이 작업복 아닌 옷을 입고 서 있으니 또 달라 보였다.

공장을 보여드렸다.

어디서 재료를 받고, 어디서 씻고, 어디서 말리고, 어디서 담는지.

해썹 받을 때 왜 벽을 다시 세웠는지도 말씀드렸다.

사람들이 질문을 꽤 많이 했다.

그 질문이 강의실에서 나오는 질문과 달랐다.

자기가 할 생각으로 묻는 질문이었다.

이거 얼마 들었냐, 허가는 어떻게 받았냐, 이 기계는 어디서 샀냐.

현장에 서서 물으면 그런 질문이 나온다.

그 질문에 대답을 하면서 내가 또 정리가 됐다.

내 공장을 설명하면서 내가 왜 그렇게 했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그중에 대답을 못 한 질문도 있었다.

왜 이 품목만 하느냐는 질문이었다.

그 자리에서 뚜렷하게 답을 못 했다.

산에 있는 걸 쓰다 보니 그렇게 됐다고 했는데, 말하면서 그게 답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 질문이 몇 달 동안 머리에 남았다.

남이 물어준 질문이 내 숙제가 되는 일이 그 무렵에 몇 번 있었다.

그래서 사람을 만나는 게 공부였다.

혼자 있으면 그런 질문을 받을 일이 없다.




■ 소매를 걷으셨다

그러다 한 분이 작업대 쪽을 보더니 물으셨다.

오늘 나갈 게 있느냐고.

있다고 했다.

전날 밤에 못 끝낸 포장이 쌓여 있었다.

그랬더니 그 자리에서 소매를 걷으셨다.

한 분이 걷으니 다른 분들도 걷었다.

그러고는 포장을 거들어주셨다.

말릴 틈이 없었다.

괜찮다고, 그러지 마시라고 했는데 이미 앉아 계셨다.

그날 그 사람들이 거들어준 양이 꽤 됐다.

혼자 하면 반나절 걸릴 걸 한 시간쯤에 끝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서 그냥 같이 손을 움직였다.

고맙다는 말을 몇 번 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그분들 손이 꽤 빨랐다.

농사짓는 분들이니 손일에 익숙한 거였다.

병을 세우고 뚜껑을 잠그고 상자에 넣는 게 금방 손에 익으셨다.

한 분은 상자 접는 걸 나보다 잘하셨다.

그걸 보면서 조금 머쓱했다.

몇 해 했는데 처음 하시는 분보다 못한 데가 있었다.

그런 건 서로 보여줘야 안다.

혼자 하면 자기 방식이 제일 좋은 줄 알고 몇 해를 보낸다.

그 뒤로 상자 접는 걸 그분 방식으로 바꿨다.

별것 아닌데 손이 덜 갔다.

그런 작은 것들이 하루에 몇백 번 반복되면 결국 시간이 된다.

공장에서 바뀌는 건 대개 그런 작은 것들이었다.

그날 또 하나 배운 건 작업대 높이였다.

한 분이 허리가 아프지 않느냐고 물으셨다.

낮다고 하셨다.

나는 몇 해 그 높이로 일하면서 그게 낮은 줄도 몰랐다.

그 뒤로 받침을 넣어서 조금 올렸다.

허리가 덜 아팠다.

몇 해 아팠던 게 받침 몇 개로 해결된 거였다.

 

예전 약초 공장 생산 과정



■ 손이 모이면

그날 작업대에 손이 여러 개 붙어 있는 걸 보고 든 생각이 있다.

나는 그때까지 혼자 하는 게 당연한 줄 알았다.

사람을 쓸 돈이 없었으니 혼자 했고, 혼자 하는 데 익숙해졌다.

그러다 보니 손이 모이면 어떻게 되는지를 잊고 있었다.

같은 일이 전혀 다른 속도로 끝났다.

속도만 다른 게 아니었다.

여러 사람이 둘러앉아 손을 움직이면 그 자리 공기가 달라진다.

혼자 밤에 포장할 때는 시간이 더디게 간다.

그날은 말을 하면서 하니까 금방 갔다.

일이라는 게 양만 있는 게 아니라 분위기도 있다는 걸 그날 느꼈다.

그 뒤로 사람을 쓰는 것에 대해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돈이 아까워서 혼자 하는 게 늘 남는 게 아니었다.

그 뒤로 바쁜 철에는 동네 분들께 손을 좀 빌렸다.

전에는 그걸 못 했다.

남한테 일을 맡기려면 설명을 해야 하고, 설명할 시간에 내가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설명은 한 번만 하면 되고, 그 뒤로는 계속 도움이 된다.

한 번 설명할 걸 아끼려고 몇 해를 혼자 한 거였다.

그 계산을 잘못하고 있었다는 걸 그날 알았다.

 

예전 약초 공장 생산 과정



■ 빈손으로 보낼 수 없어서

포장이 끝나고 버스로 돌아가시는데 그냥 보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제품을 챙겨 드렸다.

한 분 한 분 손에 들려 보냈다.

그게 많은 건 아니었다.

그래도 그날 받은 걸 생각하면 적은 거였다.

받지 않겠다고 하시는 분도 있었다.

받으셔야 내가 편하다고 말씀드리고 손에 들렸다.

버스가 나가는 걸 보면서 한참 서 있었다.

그날이 그 한 해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날이다.

수업을 들은 날들은 섞여서 잘 구분이 안 되는데 그 아침은 또렷하다.

배운 건 흐려지고 받은 건 남는다.

그날 이후로 나는 누가 뭘 보러 오겠다고 하면 거절하지 않는다.

바쁜 철이면 바쁜 대로 보시라고 한다.

치워놓은 공장을 보여주는 것보다, 돌아가고 있는 공장을 보는 게 그분들께 낫다는 걸 알았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오신 분들이 꼭 한 가지씩 놓고 간다.

질문이든 손이든.

그리고 보여주면 내 쪽도 정리가 된다.

남이 볼 자리라고 생각하면 안 보이던 게 보인다.

그래서 일부러 사람을 부르는 날을 만들기도 했다.

치울 이유를 만드는 셈이었다.

그러니 손님은 번거로운 게 아니라 점검이었다.

혼자 있으면 내 눈에만 익은 자리가 그대로 굳는다.

굳은 자리는 잘못되어도 안 보인다.

그걸 풀어주는 건 결국 바깥에서 온 눈이었다.

 



■ 동기들이 걸어온 길

그 과정에 온 분들 얘기를 좀 하면, 대부분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었다.

산으로 들어온 분, 시골로 옮겨온 분, 농사를 새로 시작한 분.

귀산, 귀촌, 귀농이라는 말이 다 붙는 사람들이었다.

한 분은 도시에서 직장 생활을 오래 하다가 산 아래로 들어오셨다고 했다.

한 분은 부모님 밭을 이어받아 가공을 해보려고 오셨다고 했다.

들어보면 각자 사정이 있었다.

좋아서 온 분보다 어떤 일을 겪고 온 분이 많았다.

그걸 알고 나니 그 자리가 더 편했다.

다들 한 번씩 꺾여본 사람들이었으니까.

꺾여본 사람끼리 앉아 있으면 말이 쉽다.

설명할 게 적다.

그 자리에서 자기 얘기를 길게 하는 사람이 없었다.

어떻게 오셨냐고 물으면 한두 마디로 끝났다.

사정이 길어도 짧게 말하는 게 그 자리의 방식이었다.

도시에서는 자기 이력을 길게 설명해야 하는 자리가 많았다.

여기서는 지금 무슨 작목을 하는지만 말하면 됐다.

지나온 게 아니라 지금 하는 걸로 사람을 보는 자리였다.

그게 나한테는 편했다.

그래서 그 한 해 동안 내가 지나온 얘기를 길게 한 적이 없다.

서울에서 무엇을 했고 어떻게 됐는지를 아는 사람이 거기엔 없었다.

그게 홀가분했다.

새로 시작하는 자리에서는 이력이 없는 쪽이 편할 때가 있다.

그런데 그게 또 뒤집히기도 했다.

공장을 보여드린 그날은 내 이력이 말을 했다.

몇 해 동안 해놓은 게 그 자리에 서 있었으니까.

말로 하는 이력과 서 있는 이력은 다르다.

그걸 그날 확인했다.

그래서 결국 두 가지가 다 필요했다.

지나온 얘기를 안 해도 되는 편안함과, 해놓은 게 서 있는 든든함.

앞쪽은 사람을 만날 때 쓰고 뒤쪽은 일을 할 때 쓴다.

그 둘을 다 갖추는 데 몇 해가 걸렸다.

 




■ 연락이 뜸해진 것

솔직하게 쓰면, 그 뒤로 연락이 자주 되지는 않는다.

수료하고 한동안은 단체 대화방에서 얘기가 오갔다.

안부도 묻고 사진도 올리고 했다.

그런데 몇 달 지나니 뜸해졌다.

다들 자기 밭이 있고 자기 공장이 있고 자기 철이 있으니까.

한 해 중에 한가한 때가 사람마다 다르다.

내가 한가할 때 그쪽이 바쁘고, 그쪽이 한가할 때 내가 바쁘다.

그래서 모이는 게 어렵다.

서운하지는 않다.

시골에서 사람 사귀는 게 그런 모양이라는 걸 몇 해 살면서 알았다.

자주 보는 게 가까운 게 아니다.

급할 때 전화할 수 있으면 가까운 거다.

그 자리에서 알게 된 분들 중에 몇 분은 지금도 그렇게 남아 있다.

한 번은 한 분이 전화를 하셔서 서류 얘기를 물으셨다.

내가 받아본 인증 얘기였다.

아는 만큼 말씀드렸다.

그 통화가 한 시간쯤 됐다.

전화를 끊고 나니 기분이 좋았다.

몇 해 전에는 내가 그런 전화를 거는 쪽이었다.

묻는 쪽에서 답하는 쪽으로 자리가 조금 옮겨간 거였다.

그 자리 변화를 그 전화 한 통으로 느꼈다.

 



■ 퍼즐 조각이 하나 늘었다

수료증을 받고 나서 생각한 게 있다.

그 종이 하나가 당장 돈을 벌어주는 건 아니었다.

그걸 거래처에 보여줄 일도 없었다.

그런데 몇 달 뒤에 다른 서류를 쓸 때 그 칸이 있었다.

교육 이수 내역을 적는 칸.

거기에 적을 게 생긴 거였다.

그때 알았다.

자격이라는 건 하나하나가 퍼즐 조각이었다.

혼자 있으면 아무 그림도 안 되는 조각.

그런데 몇 개가 모이면 그림이 되고, 그 그림을 보고 사람들이 판단한다.

공장이 있고 인증이 있고 법인이 있고 교육을 받았다는 게 한 장에 적혀 있으면, 보는 쪽에서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가 보인다.

한 개씩 모을 때는 그게 안 보인다.

그래서 모으는 동안은 왜 모으는지 모르면서 모아야 한다.

그걸 아는 사람이 옆에 있으면 모을 수 있다.

그래서 지금 누가 뭘 시작한다고 하면 순서를 적어준다.

이것 먼저 하고, 이게 되면 저게 되고.

그 순서를 내가 몇 해 걸려 몸으로 익혔으니까.

받은 걸 그런 식으로 돌려주는 게 제일 쉬운 길이었다.

 



■ 한 해를 더 하려고 했는데

수료할 무렵에 생각해둔 게 있었다.

다른 과정을 하나 더 들어볼 생각이었다.

식품 쪽을 했으니 유통이나 경영 쪽을 한 해 더 하면 좋겠다고 봤다.

그 과정 목록도 받아뒀다.

그런데 결국 못 했다.

그 뒤로 일이 몰렸다.

해야 할 일이 하나씩 생기고, 그게 몇 해 이어졌다.

한 해를 또 떼어놓을 자리가 안 나왔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조금 아깝다.

그때 한 해 더 했으면 몇 해 뒤가 또 달랐을 것 같다.

그런데 못 한 걸 오래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 한 해 동안 하려고 했던 다른 일들을 했으니까.

사람이 동시에 두 가지를 할 수는 없다.

못 한 걸 아쉬워하는 건 괜찮지만, 그걸 붙들고 있으면 지금 할 걸 못 한다.

그래서 그 목록은 아직 서류 상자에 들어 있다.

언젠가 한 해가 비면 그때 꺼낼 생각이다.

그리고 한 가지는 분명하다.

그 한 해를 안 했으면 그 뒤에 온 일들을 못 받았을 것이다.

교육을 받았다는 칸이 비어 있으면 못 넘는 자리가 실제로 있었다.

그러니 그 한 해가 그 뒤 몇 해를 열어준 셈이다.

그걸 그때는 몰랐고 지금은 안다.

모르면서 해둔 게 뒤에서 값을 한 경우가 또 하나 늘었다.

그러니 그 한 해를 한 문장으로 적으면 이렇게 된다.

배우러 갔는데 사람을 얻어 왔다.

배운 것도 있었고 그것도 값을 했다.

그런데 몇 해 지나고 남은 걸 세어보면 그 아침에 작업대에 붙어 있던 손들이 먼저 떠오른다.

그 손들이 왜 그렇게 쉽게 소매를 걷었을까를 가끔 생각한다.

친해서도 아니었다.

몇 달 같은 강의실에 앉아 있던 사이였다.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은 그 일이 얼마나 손이 가는지를 안다.

아는 사람은 묻지 않고 거든다.

그게 시골에서 몇 해 살면서 여러 번 받은 것이었다.

그러니 그 한 해에 제일 크게 배운 건 강의실 안에 있지 않았다.

작업대 앞에 있었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

 

백지장은 종이 한 장을 뜻한다.

종이 한 장은 혼자서도 충분히 들 수 있다.

그런데도 옛사람들은 그마저 둘이 들면 낫다고 했다.

무게가 줄기 때문이 아니다.

같이 들면 자리가 어긋나지 않고, 손이 하나 더 붙으니 일이 빠르고, 들고 가는 동안 말이 오간다.

그래서 이 말은 힘이 모자랄 때만 사람을 부르라는 뜻이 아니라, 혼자 할 수 있는 일조차 같이 하면 더 나아진다는 뜻으로 쓰여 왔다.

 

— 한국 속담.

 

혼자 할 수 있는 일도 손이 모이면 달라진다는 뜻이다.

혼자 하는 데 익숙해진 사람은 그걸 잊고, 사람을 부르는 걸 손해로 세게 된다.

그런데 같이 하면 줄어드는 것이 시간만이 아니라서, 끝내고 나면 일보다 그 자리가 먼저 기억에 남는다.

 

포장을 거들어주겠다고 소매를 걷던 그 아침이 그 한 해에서 제일 또렷한 날로 남은 것도 그래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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