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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일상

[임업후계자] 40시간을 채우는 동안

by 사람들생각 2025. 12. 14.

▣  옮겨온 글 ▣

예전 블로그에 써두었던 글을 옮겨 왔다. 문장은 그때 그대로 두고, 읽기 편하게 조금만 매만졌다.


 

겨울 산은 속이 다 보인다.

잎이 떨어지고 나면 나무 사이로 먼 데까지 눈이 간다.

여름에는 들어가도 몇 걸음 앞만 보이던 자리가, 겨울에는 능선까지 보인다.

그래서 산을 보려면 겨울에 봐야 한다는 얘기가 있다.

땅의 모양도 그때 드러난다.

무엇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고 싶으면 가려 있는 게 떨어진 뒤에 봐야 하는 모양이다.

사람 일도 그런 것 같다.

 




■ 40시간

임업후계자로 선정되려면 교육을 받아야 했다.

40시간이었다.

산림교육원이나 지정된 전문 교육기관에서 받는 교육이다.

40시간이라고 하면 하루 여덟 시간으로 닷새 분량이다.

처음 그 숫자를 보고 좀 걸렸다.

닷새를 비워야 하는 거였다.

그런데 알아보니 전부 가서 앉아 있어야 하는 건 아니었다.

온라인으로 최대 20시간까지 인정이 됐다.

절반은 집에서 들을 수 있다는 얘기였다.

나머지는 집합교육으로 채워야 했다.

요즘은 비대면 실시간 화상강의로도 인정되는 과정이 있다고 들었다.

그때는 그런 게 흔하지 않았다.

그러니 요즘 하시는 분들은 그 점이 훨씬 편해졌을 것이다.

교육을 받는 데 드는 돈은 크지 않았다.

시간이 비용이었다.

그 계산을 하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

돈이 많이 드는 일은 못 할 수도 있는데, 시간이 드는 일은 빼서 쓰면 되니까.

밤을 쓰면 되는 거였다.

그 무렵에 내 밤은 꽤 여러 가지에 쓰였다.

포장을 하고, 서류를 보고, 강의를 들었다.

낮에 만들고 밤에 갖추는 식이었다.

그 몇 해를 그렇게 보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밤들이 아까운 밤이 아니었다.

그 밤에 들어둔 게 다음 해에 서류로 나왔다.

밤에 쉰 해도 있었는데, 그 해에는 아무것도 안 나왔다.

쉬는 게 나쁘다는 얘기가 아니다.

다만 나오는 건 쓴 밤에서만 나온다는 얘기다.

그걸 알면서도 매일 쓰지는 못했다.

몸이 안 되는 날이 있었다.

그런 날은 그냥 잤다.

며칠 자고 나서 다시 들었다.

그렇게 띄엄띄엄 채운 40시간이었다.

한 번에 몰아서 끝낸 사람보다 오래 걸렸는데, 결국 채운 건 같았다.

 

미니 굴삭기 자격증에 도전하다



■ 온라인 20시간

온라인 20시간은 밤에 들었다.

일을 마치고 들어와서 앉아서 들었다.

여덟 시간을 하루에 몰아 듣는 건 못 했다.

한두 시간씩 나눠서 며칠에 걸쳐 채웠다.

졸면서 들은 시간도 있다.

하루 일하고 들어와서 강의를 들으면 사람이 안 깨어 있다.

그래도 그 방식이 나한테는 맞았다.

공장을 비우지 않아도 되니까.

농민사관학교를 다닐 때는 그게 안 됐다.

가야 하는 날은 가야 했고, 그 날짜만큼 공장이 비었다.

그걸 겪어봤으니 온라인이 얼마나 고마운 건지 알았다.

시골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제일 큰 비용은 돈이 아니라 자리를 비우는 일이다.

그걸 알고 나서 교육을 고르는 기준이 생겼다.

무엇을 가르치는지보다 어떻게 받을 수 있는지를 먼저 봤다.

좋은 교육인데 날짜가 안 맞으면 못 받는다.

덜 좋은 교육인데 밤에 들을 수 있으면 받는다.

받은 쪽이 남는다.

못 받은 좋은 교육은 아무것도 안 남긴다.

그 기준으로 고르니 받을 수 있는 게 꽤 있었다.

전에는 좋은 것만 찾다가 아무것도 못 받았다.

눈을 조금 낮추면 받을 게 많아진다.

그리고 받다 보면 좋은 걸 받을 자격도 생긴다.

교육 이수 내역이라는 칸이 서류마다 있었다.

그 칸이 채워져 있는 사람과 비어 있는 사람이 다르게 보인다.

무엇을 배웠는지보다 배우러 다녔다는 게 먼저 보인다.

그걸 알고 나서 받을 수 있는 건 받아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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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합교육

나머지는 가서 들었다.

강의실에 앉아 있으니 몇 해 전 생각이 났다.

영주로 새벽길을 달려 다니던 그 해.

그때는 한 해였고 이번은 며칠이었다.

며칠은 짧다고 생각했는데 앉아 있어보니 또 그렇지 않았다.

한 해 다녀본 사람에게도 여덟 시간은 길다.

다만 그 한 해를 다녀본 게 그 며칠을 쉽게 만들어줬다.

자리에 앉는 것도 전보다 편했다.

처음 농민사관학교에 갔을 때는 의자에 여덟 시간 앉아 있는 게 힘들었다.

몇 해 지나니 그게 익숙해져 있었다.

몸이 그 자리에 적응한 거였다.

그래서 중간에 졸지도 않았다.

졸지 않은 게 그 며칠의 성과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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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은 내용

교육 내용은 세 덩이쯤이었다.

산림정책.

산지관리.

임산물 재배기술.

그리고 그걸 다 듣고 시험을 봤다.

처음 시험이 있다는 걸 알고 좀 긴장했다.

시험이라는 걸 본 게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났다.

그런데 들어보니 겹치는 게 많았다.

6차 산업 인증을 준비할 때 들었던 내용과 이어지는 데가 꽤 있었다.

산지관리 쪽은 공장 지을 때 겪은 것과 닿아 있었다.

허가라는 게 땅의 용도에 따라 다르다는 걸 그때 몸으로 배웠으니까.

재배기술 쪽은 산야초를 몇 해 다룬 사람에게 아주 새로운 얘기는 아니었다.

그러니 내가 머리가 좋아서 수월했던 게 아니었다.

그 전에 해둔 게 있어서 수월했던 거다.

시험도 그래서 넘겼다.

외워서 넘긴 게 아니다.

들어본 적이 있는 말이 나와서 넘긴 거다.

문제를 보면 그 말이 어디서 나온 말인지가 떠올랐다.

그러면 답이 보인다.

처음 보는 말로만 되어 있으면 그게 안 된다.

그러니 시험을 잘 보는 방법은 시험 전에 있는 게 아니었다.

몇 해 동안 그 분야에 발을 담가둔 데에 있었다.

벼락치기로 되는 시험도 있고 안 되는 시험도 있는데, 그건 안 되는 쪽이었다.

다행히 나는 담가둔 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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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겹친다는 것

그걸 겪고 나서 생각한 게 있다.

공부라는 게 따로따로 쌓이는 게 아니었다.

앞에 한 게 뒤에 또 쓰인다.

해썹을 받을 때 배운 위생 기준이 6차 산업 서류에 쓰였고, 6차 산업에서 배운 게 임업 교육에서 또 쓰였다.

그러니 하나를 할 때 그 하나만 얻는 게 아니다.

다음 걸 쉽게 만드는 밑천이 같이 생긴다.

그 밑천은 눈에 안 보인다.

그래서 처음 한 번이 제일 어렵고, 그 뒤로는 점점 수월해진다.

처음 한 번에 그만둔 사람은 그 밑천을 못 쌓는다.

그 차이가 몇 해 뒤에 꽤 벌어진다.

그래서 누가 뭘 먼저 할지 물으면 순서를 얘기한다.

제일 어려운 걸 먼저 하라고는 안 한다.

제일 뒤에 많이 쓰일 걸 먼저 하라고 한다.

기초가 되는 자격 하나를 먼저 받아두면 그 뒤가 다 쉬워진다.

내 경우에 그게 농업경영체였고 해썹이었다.

그 두 개가 뒤에 열 번쯤 쓰였다.

그래서 그 두 개를 받을 때 들인 품이 제일 값이 나갔다.

받을 때는 그게 제일 막막했다.

처음 받는 거였으니까.

그런데 그게 밑에 깔리고 나서 그 위에 올라간 게 여러 개였다.

기초라는 말이 왜 기초인지를 그렇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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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류가 또 문제였다

교육은 어쨌든 채우면 되는 일이었다.

문제는 또 서류였다.

그중에 제일 까다로운 게 산림경영계획 인가서였다.

그 땅을 어떻게 경영하겠다는 계획을 적어서 인가를 받는 서류였다.

처음 그 양식을 보고 막막했다.

산림 쪽 용어가 그대로 들어가 있었다.

무슨 말인지 알아먹기 어려운 칸이 여럿이었다.

내 땅을 두고 적는 서류인데 내가 못 읽는 거였다.

그 자리에서 또 느꼈다.

제도마다 자기 말이 있다.

그 말을 모르면 들어갈 수 없게 되어 있다.

그 말을 배우는 방법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혼자 찾아보는 것.

하나는 그 말을 쓰는 사람에게 묻는 것.

혼자 찾으면 뜻은 알지만 어떻게 쓰는지를 모른다.

사전에 나오는 뜻과 서류에 쓰이는 뜻이 또 다르다.

그러니 결국 쓰는 사람에게 물어야 했다.

그 뒤로 서류 양식을 받으면 먼저 읽고, 모르는 칸에 표시를 했다.

표시한 칸만 들고 물으러 갔다.

전부 들고 가면 상대가 피곤해진다.

표시해서 가면 십 분에 끝난다.

묻는 것도 준비해서 물어야 한다는 걸 그때 배웠다.




■ 회장님이 짚어주셨다

그 서류를 안동 산림후계자 회장님이 하나하나 짚어주셨다.

형님을 통해 뵙게 된 분이었다.

연배가 꽤 높으신 분이다.

그런데 아낌없이 가르쳐주셨다.

이 칸은 이렇게 쓰고, 여기는 이 숫자를 넣고, 이 부분은 이렇게 적으면 통과가 어렵다고.

그 설명을 들으면서 적었다.

처음에는 받아 적었고, 나중에는 내가 적고 보여드렸다.

그 과정이 몇 주였다.

그 사이에 안동을 몇 번 다녔다.

문경에서 한 시간 남짓 거리를 서류 보여드리려고 오간 거였다.

그 길이 아깝지 않았다.

그 한 시간이 몇 달을 줄여줬으니까.

그 길을 오가면서 생각한 게 있다.

서류는 결국 사람을 만나는 일이었다.

종이 앞에 혼자 앉아 있으면 안 써진다.

아는 사람 앞에 그 종이를 놓고 앉으면 써진다.

그래서 서류가 밀릴 때는 사람을 찾아갔다.

혼자 더 앉아 있는 쪽을 택하면 며칠이 더 간다.

그리고 그렇게 찾아가면 서류만 얻는 게 아니었다.

가서 앉아 있으면 다른 얘기도 나왔다.

어디에 뭐가 있고, 누가 뭘 하고 있고, 요즘 뭐가 된다는 얘기.

서류 하나 보여드리러 간 자리에서 정보가 셋씩 나왔다.

그러니 그 한 시간은 길이 아니라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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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낌없이 가르쳐준다는 것

그런 분을 만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안다.

자기가 몇십 년 걸려 익힌 걸 처음 온 사람에게 그냥 알려주는 사람은 많지 않다.

감춰두는 쪽이 자연스럽다.

알려주면 경쟁자가 되니까.

그런데 그분은 그렇게 안 하셨다.

왜 그러셨을까를 생각해봤다.

짐작은 두 가지다.

하나는 그 업계가 사람이 모자란 쪽이었다는 것.

들어오는 사람이 늘어야 그 판이 커진다는 걸 아시는 분이었다.

또 하나는 그분 성품이었다.

나이가 들면 가르치는 게 재미라고 하신 분이 전에도 있었다.

조 대표님이 될 사람 되게 해주는 게 재미라고 하셨던 것과 같은 말이었다.

받는 쪽이 되어보면 그게 얼마나 큰 건지 안다.

그래서 나도 그렇게 하려고 한다.

아는 걸 알려주는 게 손해가 아니라는 걸 몇 번 받아보고 알았다.

그리고 받은 쪽이 지켜야 할 게 하나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배운 걸 쓰는 것.

가르쳐놓고 그 사람이 아무것도 안 하면 가르친 쪽이 허탈해진다.

그러니 받았으면 하는 게 예의였다.

그 서류를 끝까지 넣은 게 그분께 할 수 있는 인사였다.

그리고 선정된 뒤에도 연락을 드렸다.

됐다고 알려드리는 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걸 안 하는 사람이 꽤 있다는 얘기를 나중에 들었다.

받을 때는 열심히 묻고, 되고 나면 연락이 없다고.

그러면 가르쳐준 쪽에서 그 뒤로 사람을 안 돕게 된다.

한 사람이 끊어놓은 길을 다음 사람이 못 쓰게 되는 셈이다.




■ 서류를 같이 쓴 두 사람

그 서류는 결국 두 분 손을 거쳤다.

안동 회장님이 산림 쪽을 짚어주셨고, 조 대표님이 사업 쪽을 맞춰주셨다.

한 분은 산을 알고 한 분은 서류를 알았다.

그 둘이 합쳐지니 서류가 됐다.

내가 한 건 내 사정을 양쪽에 전하는 일이었다.

그 역할이 작아 보이는데 그게 없으면 둘이 안 만난다.

그 몇 해 동안 내가 한 일을 정리해보면 대개 그 역할이었다.

아는 사람과 아는 사람을 잇는 자리에 서 있는 것.

직접 아는 게 적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그거였다.

그 역할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양쪽 말을 다 알아들어야 전할 수 있다.

산림 쪽 말도 조금 알고 서류 쪽 말도 조금 알아야 했다.

그러니 결국 얕게라도 넓게 아는 게 필요했다.

깊이 아는 사람은 따로 있었고, 나는 잇는 자리에 있었다.

어느 쪽이 더 중요한지는 모르겠다.

다만 잇는 사람이 없으면 깊이 아는 사람들이 서로 안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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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출하고 기다렸다

서류가 준비되고 교육을 채우고, 안동시에 제출했다.

제출하고 나니 또 기다리는 일이 남았다.

심사가 있었고, 그 뒤에 선정 여부가 나왔다.

기다리는 동안 전과 좀 달랐다.

해썹 때는 조바심이 났고, 6차 산업 때는 긴장이 있었다.

이번에는 그냥 기다려졌다.

횟수가 쌓이면 사람이 그렇게 된다.

안 되면 다시 하면 된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그 담담함이 몇 해 걸려 생긴 거였다.

그 사이에 공장 일은 그대로 했다.

기다리는 동안 손을 놓는 게 제일 나쁘다.

결과가 나오든 안 나오든 그날 할 일은 있으니까.

서류를 넣고 결과를 기다리는 몇 주가 그 몇 해 동안 여러 번 있었는데, 그때마다 그걸 배웠다.

기다리는 건 일이 아니다.

기다리면서 하는 게 일이다.

그 무렵에 공장에서 한 일이 하나 있다.

품목 하나를 새로 만들어봤다.

교육에서 들은 재배기술 얘기가 머리에 남아 있어서 그걸 해봤다.

결과가 좋지는 않았다.

그래도 해본 게 남았다.

기다리는 동안 해본 일은 결과가 나빠도 손해가 아니었다.




■ 전류가 아니고 성취감

선정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기분이 묘했다.

6차 산업 인증을 받았을 때와 달랐다.

그때는 전류가 흐르는 느낌이었다.

서울에서 고배를 마신 자리에 다시 들어간 거였으니까.

이번은 그런 게 아니었다.

전류 같은 건 없었다.

그 대신 조용한 성취감이 있었다.

그런데 그게 오래 갔다.

전류는 며칠이면 식는데, 그 조용한 건 몇 달이 지나도 가라앉지 않았다.

왜 그런가 생각해보니 이유가 있었다.

6차 산업은 밖에서 받은 인정이었다.

이건 내가 고향에 자리를 하나 만든 거였다.

떠나 있던 데에 내 이름으로 된 자리가 생긴 거였다.

그런 건 요란하지 않게 오래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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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인의 어깨

그 일을 돌아보면 내가 한 게 별로 없다.

교육 40시간을 들었고 시험을 봤다.

그건 내가 했다.

그런데 서류는 두 분이 거의 다 하셨다.

그 제도를 알려준 것도 형님이었다.

내가 한 건 그 사이에 서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선정됐다는 소식을 듣고 자랑스럽기보다 고마웠다.

내 힘으로 된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그 뒤로 그걸 감추지 않는다.

혼자 한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러면 나중에 도와줄 사람이 없어진다.

누가 도와줬다고 말하는 게 손해 같지만, 그 말이 다음 도움을 불러온다.

그걸 몇 번 겪고 알았다.

그래서 그 뒤로 어디서 그 얘기를 할 때 사람 이름부터 말한다.

형님이 알려주셨고, 회장님이 짚어주셨고, 조 대표님이 맞춰주셨다고.

그렇게 말하면 듣는 쪽에서 그 길을 어떻게 가는지를 안다.

제도 이름만 말하면 아무도 못 따라온다.

사람 얘기를 해주면 자기도 그런 사람을 찾아보게 된다.

결국 그게 제일 쓸 만한 정보였다.

제도 설명은 인터넷에 다 있다.

그 제도를 넘어본 사람이 누구인지는 인터넷에 없다.

그걸 알려주는 게 결국 도움이 됐다.

그래서 요즘은 제도 얘기를 하다가 사람 얘기로 넘어간다.

어느 지역에서 하시려면 그 지역 모임에 한 번 나가보시라고.

그 말이 제일 실용적인 조언이라는 걸 몇 해 지나고 알았다.

혼자 알아보면 한 해가 가고, 사람을 만나면 한 달에 끝난다.

그 차이가 어디서 오는지는 겪어봐야 안다.

 




"내가 더 멀리 보았다면, 그것은 거인들의 어깨 위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뉴턴이 1675년에 로버트 훅에게 보낸 편지에 적은 문장이다.

빛에 관한 연구를 두고 서로 주장이 오가던 무렵이었다.

뉴턴은 자신이 본 것이 앞선 사람들이 쌓아둔 것 위에서 보인 것이라고 적었다.

이 표현 자체도 뉴턴이 처음 만든 것이 아니었다.

중세부터 학자들 사이에 전해 내려온 비유였고, 뉴턴은 그 말조차 앞선 사람에게 빌려 쓴 셈이 되었다.

그래서 이 문장은 겸손의 표현이기도 하고, 지식이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적은 설명이기도 하다.

 

— 아이작 뉴턴, 1675년 로버트 훅에게 보낸 편지.

 

멀리 본 사람은 자기 키가 커서 멀리 본 게 아니라는 뜻이다.

앞서 그 길을 걸어본 사람이 쌓아둔 것 위에 올라섰을 때 시야가 트인다.

몇십 년 걸려 익힌 것을 처음 온 사람에게 하나하나 짚어주는 분이 계셨고, 그 어깨를 밟고 넘은 서류가 있었다.

그러니 올라선 사람이 할 일은 자랑이 아니라, 다음에 오는 사람에게 어깨를 내주는 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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