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옮겨온 글 ▣
예전 블로그에 써두었던 글을 옮겨 왔다. 문장은 그때 그대로 두고, 읽기 편하게 조금만 매만졌다.
초여름 공장은 아침에 문을 열 때가 제일 좋다.
밤새 식어 있던 공기가 한 번 쏟아져 나오고, 그 뒤로 더운 기운이 천천히 들어찬다.
그 짧은 몇 분이 하루 중에 제일 시원하다.
그 시간에 커피를 한 잔 들고 마당에 서 있는 버릇이 있었다.
아메리카노를 종이컵에 받아서 식히면서 앞산을 봤다.
산이 완전히 짙어져 있으면 그해 봄이 다 간 것이다.
그걸 보고 나서야 작업복 소매를 걷었다.
그해 여름은 유난히 일찍 더워졌다.
아직 유월인데 낮에는 한여름 같았다.
공장 안은 바깥보다 더 덥다.
끓이는 공정이 있으니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여름에는 아침 일찍 시작해서 한낮을 피하는 식으로 돌렸다.
그해에는 그 방식이 몸에 완전히 붙어 있었다.
몇 해 전에는 더우면 더운 대로 버텼다.
요령이라는 게 한 번에 생기는 게 아니라 여러 해 같은 계절을 겪으면서 하나씩 붙는 것 같다.
그런 요령이 쌓이면 같은 일을 해도 덜 힘들다.
덜 힘들면 딴 생각을 할 여유가 생긴다.
새로 뭘 해볼까 하는 생각은 늘 그 여유에서 나왔다.
몸이 축나 있을 때는 그런 생각이 안 난다.
그 여름에 그런 여유가 있었다.
직원 둘이 자리를 잡았고, 돌아가는 일은 돌아가고 있었다.
돌아보면 그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그 전화를 받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숨이 턱에 차 있을 때 누가 새로운 걸 하자고 하면 그냥 짜증부터 난다.
그러니 뭘 새로 하려면 먼저 숨 쉴 자리를 만들어둬야 한다.
사람을 쓰든 순서를 바꾸든 그 자리를 만드는 게 먼저다.
그걸 안 만들어두고 의지로만 밀면 몇 달 못 간다.

■ 숨 돌리던 무렵
임업후계자 선정이 끝나고 한동안은 조용했다.
서류를 쓸 일도 없었고 어디에 낼 것도 없었다.
그 몇 해 동안 뭔가를 계속 갖춰왔으니, 이제는 갖춘 걸로 일을 하면 되는 시기였다.
실제로 그렇게 했다.
만들고 보내고 또 만들었다.
그 무렵에 직원이 둘 있었다.
혼자 포장하던 시절이 몇 해 전인데, 손이 둘 더 붙으니 공장이 돌아가는 모양이 달라져 있었다.
사람을 쓴다는 게 처음에는 겁났다.
매달 나갈 돈이 정해져 있다는 게 부담이었다.
그런데 몇 달 해보니 겁낼 일이 아니었다.
내가 혼자 할 때는 하루에 나오는 양이 정해져 있었고, 그 양이 곧 회사의 크기였다.
손이 둘 늘자 그 선이 올라갔다.
사람을 쓰는 게 비용이 아니라 그 선을 올리는 일이라는 걸 그때 알았다.
그리고 내가 자리를 비울 수 있게 됐다.
몇 해 동안 하루도 못 비웠던 사람에게 그게 제일 컸다.
그 무렵에 품목도 늘려보고 있었다.
기존에 하던 것들 말고 새로 해볼 게 없나 들여다보던 시기였다.
숨을 돌린다는 건 아무것도 안 한다는 뜻이 아니라, 급하지 않은 걸 할 여유가 생겼다는 뜻이었다.
■ 또 전화가 왔다
그러던 중에 조 대표님께 전화가 왔다.
용건이 있으실 때 그분 목소리는 조금 다르다.
안부부터 묻지 않고 바로 들어오신다.
벤처기업 인증을 받아보자는 얘기였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웃었다.
웃은 이유가 있다.
벤처라는 말이 내가 하는 일과 너무 멀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분은 농담으로 꺼낸 게 아니었다.
그분이 뭘 하자고 할 때는 이미 알아보고 꺼내는 거였다.
몇 해 겪어보니 그 차이가 목소리에서 구분됐다.
그냥 해보는 얘기일 때와 해야 한다고 정해놓고 꺼내는 얘기일 때가 달랐다.
그날은 후자였다.

■ 벤처라는 말의 거리
벤처라고 하면 떠오르는 그림이 있다.
서울 강남 쪽 사무실, 컴퓨터 여러 대, 젊은 사람들, 투자받았다는 기사.
그게 내가 알던 벤처였다.
문경 산에서 거둔 걸 끓여서 병에 담는 회사가 벤처라는 건 상상이 안 됐다.
그 얘기를 그대로 말씀드렸다.
우리가 무슨 벤처냐고.
그러자 그분이 되물으셨다.
벤처가 뭔지 알고 하는 소리냐고.
몰랐다.
이름만 알고 있었지 그게 어떤 제도인지는 한 번도 들여다본 적이 없었다.
그 자리에서 아는 척을 안 한 건 그 무렵에는 버릇이 돼 있었다.
모르면 모른다고 하는 게 제일 빠르다는 걸 몇 번 겪어서 알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그냥 물었다.
그게 뭐냐고.
설명이 길어질 것 같았는지, 그분이 자료를 보내주겠다고 하셨다.
그날 저녁에 메일이 왔다.
자료를 열어보니 생각보다 읽을 게 많았다.
유형이 몇 가지로 갈리고, 유형마다 조건이 다르고, 받고 나면 따라오는 것도 달랐다.
그걸 며칠에 걸쳐 읽었다.
낮에는 공장을 돌려야 하니 밤에 조금씩 봤다.
그 무렵에는 밤에 서류 읽는 게 일과의 일부가 돼 있었다.
읽으면서 메모를 했다.
모르는 말이 나오면 적어두고 다음 날 찾아봤다.
그 버릇은 6차 산업 준비할 때 생겼는데, 그 뒤로 계속 써먹고 있었다.
적어두지 않으면 다음 날 전부 날아간다.

■ 알고 보니
설명을 듣고 찾아보니 내가 알던 그림과 달랐다.
벤처기업은 "창업한 지 얼마 안 된 회사"가 아니었다.
법에서 정한 요건을 갖춘 중소기업이면 되는 거였다.
업력 제한도 없었다.
설립한 지 오래됐다고 안 되는 게 아니고, 몇 년 이상이어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업종 제한은 있는데 식품 제조나 농업 쪽은 거기에 걸리지 않았다.
그러니까 문경에서 산야초를 가공하는 회사도 조건만 맞으면 벤처기업이 되는 거였다.
그 사실을 알고 나니 벤처라는 말이 조금 가까워졌다.
멀게 느껴졌던 건 제도가 멀어서가 아니라 내가 몰라서였다.
그런 일이 그 몇 해 동안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6차 산업도 그랬고 임업후계자도 그랬다.
이름을 모르면 그 문이 있는 줄도 모른다.
그리고 그 문들은 대개 광고를 하지 않는다.
공고를 올려두고 신청받는 식이라, 찾아보는 사람 눈에만 보인다.
그러니 모르고 지나간 게 얼마나 되는지는 세어볼 수조차 없다.
아는 사람이 옆에 있다는 게 그래서 그렇게 큰 것이다.
그걸 알고 나서 나도 누구를 만나면 아는 걸 말해주게 됐다.
이런 게 있다더라, 알아보시라고.
그 말 한마디가 그 사람 몇 해를 바꿀 수도 있다는 걸 내가 받아봐서 안다.
받은 걸 돌려주는 방법으로는 그게 제일 쉬웠다.
돈을 보태줄 수는 없어도 아는 건 말해줄 수 있으니까.

■ 세 갈래 길
벤처기업 확인을 받는 길은 세 갈래였다.
하나는 투자를 받는 길이다.
정해진 투자기관에서 오천만 원 이상을 받고, 그 돈이 자본금의 일정 비율을 넘으면 된다.
우리는 투자를 받은 적이 없었다.
받을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다.
두 번째는 연구개발로 가는 길이다.
기업부설연구소나 연구개발전담부서를 두고, 한 해 연구개발비가 오천만 원을 넘으면서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일정 수준을 넘어야 한다.
우리는 연구소가 없었다.
직원 둘과 나, 그게 전부였다.
세 번째가 혁신성장이었다.
투자도 연구소도 없어도 되고, 돈으로 거는 조건이 아예 없다.
대신 전문평가기관이 기술의 혁신성과 사업의 성장성을 보고 판단한다.
우리가 갈 수 있는 길은 그것뿐이었다.
그 세 갈래를 놓고 보니 재미있는 게 있었다.
앞의 두 길은 돈이 먼저 있어야 열린다.
투자를 받으려면 투자할 사람이 있어야 하고, 연구개발비를 쓰려면 쓸 돈이 있어야 한다.
시골에서 작게 하는 회사에는 둘 다 먼 얘기다.
세 번째 길만 돈을 묻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 같은 데가 들어갈 자리가 거기였다.
제도를 만든 쪽에서도 그걸 생각해서 길을 하나 열어둔 모양이었다.
다만 열려 있다고 쉬운 건 아니었다.
문이 넓은 게 아니라 들어가는 방법이 다를 뿐이었다.
돈으로 증명하는 자리를 글로 증명해야 하는 거였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게 더 쉽고, 어떤 사람에게는 더 어렵다.
나는 어느 쪽인지 그때는 몰랐다.
다만 글로 증명하는 일에는 한 가지 좋은 점이 있었다.
돈이 없어도 시작할 수 있다는 것.
쓰는 데 드는 건 시간과 품이지 돈이 아니니까.
없는 쪽에서 할 수 있는 일이 그거였다.
돌아보면 그 몇 해 동안 내가 쓴 건 거의 다 시간이었다.
돈이 있었으면 사람을 사서 맡겼을 일을 밤에 앉아서 했다.
느리지만 그게 유일하게 가진 수단이었다.
그런데 시간을 쓰는 데도 요령이 있었다.
아무 데나 쏟아붓는 게 아니라, 몇 해 뒤에 값을 할 자리에 넣어야 한다.
그 자리를 골라준 사람이 또 조 대표님이었다.
혼자였으면 엉뚱한 데에 몇 해를 쏟았을 것이다.
시간은 돈처럼 세어지지 않아서, 잘못 쓰고도 잘못 쓴 줄을 모른다.
몇 해 지나서야 제자리에 있다는 걸 알게 된다.

■ 숫자가 없다는 말
처음에는 그게 좋게 들렸다.
돈으로 거는 조건이 없으니 문턱이 낮은 것 같았다.
그런데 조금 더 알아보니 반대였다.
숫자가 없다는 건 봐주는 사람의 판단에 전부 달려 있다는 뜻이다.
투자 오천만 원은 받았거나 안 받았거나 둘 중 하나다.
다툴 여지가 없다.
혁신성이 있느냐 없느냐는 그렇지 않다.
읽는 사람이 그렇다고 판단해야 그런 것이 된다.
그러니 쉬운 길이 아니라 설득해야 하는 길이었다.
그걸 알고 나서 마음이 좀 무거워졌다.
그리고 한 가지가 더 걸렸다.
기술의 혁신성이라는 말이었다.
우리가 하는 일은 산에서 나는 걸 말리고 끓이고 담는 거다.
옛날부터 사람들이 하던 일이다.
거기에 무슨 혁신이 있나 싶었다.
그 생각을 며칠 했다.
그러다 생각을 바꿨다.
새로운 걸 만들어내야만 혁신인 건 아니지 않나.
같은 재료를 남들보다 잘 다루는 방법을 몇 해 걸려 익혔다면, 그것도 기술이다.
그 기술이 종이에 적혀 있지 않았을 뿐이다.
적으면 되는 거였다.
그 생각을 하고 나니 서류를 어떻게 써야 할지가 조금 보였다.
우리가 가진 걸 기술이라는 말로 바꿔서 적는 일.
그게 그해 여름에 해야 할 숙제였다.
숙제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모르는 걸 해내야 하는 게 아니라, 이미 한 걸 적는 일이었으니까.
없는 걸 지어내야 한다면 못 했을 것이다.
그건 몇 해 전에 배운 거였다.
6차 산업 서류를 쓸 때 체험장이 없어서 없다고 적었고, 그게 오히려 실사에서 나를 구했다.
서류에 거짓을 안 쓰면 뒤가 편하다.
그 원칙 하나는 그 뒤로 한 번도 어긴 적이 없다.
■ 그분은 될 줄 알고 계셨다
그 얘기를 조 대표님께 말씀드렸다.
숫자로 증명되는 게 없는데 되겠느냐고.
그분 대답이 짧았다.
될 거라고.
왜 그렇게 보시느냐고 물었더니, 지금까지 해놓은 걸 세어보라고 하셨다.
세어봤다.
공장이 있고, 해썹이 있고, 법인이 있고, 교육 수료가 있고, 6차 산업 인증이 있고, 임업후계자가 있었다.
그게 몇 해 동안 하나씩 쌓인 거였다.
그 종이들이 전부 "이 사람이 실제로 이 일을 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혁신성장유형이 보려는 게 결국 그거라는 말씀이었다.
기술이 대단히 새로운가가 아니라, 이 사람이 이걸 계속 해나갈 사람인가.
그 말을 듣고 나니 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한마디 더 하셨다.
받아두면 그다음이 또 열린다고.
그때는 그 말을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 돌아보면 그분은 늘 다음 칸을 보고 계셨다.
내가 지금 서 있는 칸을 볼 때 그분은 그 앞 칸을 봤다.
그 차이가 몇 해 동안 나를 여기까지 끌고 온 셈이다.
■ 누가 알아봐 주느냐
돌아보면 그 몇 해 동안 나는 뭘 새로 만든 게 거의 없다.
남들이 알려준 걸 했고, 하라는 걸 했다.
그런데 그 하나하나가 그 자리에 있을 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농업경영체 등록 한 장이 무슨 의미가 있었겠나.
수료증 한 장이 돈을 벌어준 것도 아니다.
그게 모여서 하나의 그림이 되는 걸 나는 못 봤다.
그걸 본 사람이 옆에 있었다.
내가 가진 걸 나보다 먼저 알아본 사람이 있었다는 얘기다.
그게 몇 해 동안 반복됐다.
법인 때도 그랬고 6차 산업 때도 그랬고 이번에도 그랬다.
그러니 내가 한 일이라고는 그 사람 말을 들은 것뿐이다.
그걸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혼자 다 판단하려던 몇 해에 나는 무너졌고, 듣고 따라가던 몇 해에 여기까지 왔다.
다만 아무 말이나 듣는 건 아니다.
결과로 증명된 사람 말을 듣는 거다.
그 구분을 못 하면 듣는 게 독이 된다.
서울에서는 그 구분을 못 했다.

■ 하기로 한 날
결국 하기로 했다.
이번에는 미루지 않았다.
6차 산업 때는 몇 주를 미뤘고 그분이 매주 같은 얘기를 하셔야 했다.
이번에는 통화 한 번에 정했다.
사람이 몇 번 겪고 나면 달라진다.
해보니까 되더라는 경험이 쌓이면 그다음은 덜 무섭다.
무서운 걸 줄이는 방법은 담력을 키우는 게 아니라 횟수를 늘리는 거였다.
그걸 그 몇 해 동안 배웠다.
그리고 미루면 나만 손해라는 것도 알게 돼 있었다.
제도는 해마다 바뀐다.
올해 되는 게 내년에는 조건이 달라져 있을 수 있다.
임업후계자 때 나이 제한을 보고 그걸 뼈저리게 느꼈다.
그러니 할 거면 지금 하는 게 맞았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있었다.
그분이 하자고 하면 된다는 걸, 나는 그때 이미 알고 있었다.
그 믿음이 어디서 왔는지는 분명하다.
공장을 지을 때 그분 말대로 했고 됐다.
해썹을 받을 때도 그랬다.
법인도, 교육도, 6차 산업도, 임업후계자도 그랬다.
여섯 번이 다 맞았으면 일곱 번째도 믿게 된다.
그게 사람 사이에 신뢰라는 게 쌓이는 방식이었다.
말로 쌓이는 게 아니라 결과로 쌓인다.
그래서 그 통화를 끊고 나서 바로 달력을 봤다.
언제 신청하고 언제까지 서류를 만들지를 대충 그려봤다.
여섯 번을 해봤으니 이제는 그 순서가 머리에 그려졌다.
처음 공장 허가를 받을 때는 뭐부터 해야 할지도 몰라서 한참 앉아 있었는데.
그 사이에 사람이 그만큼 달라져 있었다.
그게 자격 하나하나가 남긴 진짜 자산이었는지도 모른다.
인증서는 서류함에 들어가지만, 그걸 받는 동안 몸에 붙은 순서와 요령은 안 없어진다.
종이는 3년이면 다시 받아야 하는데 그건 그대로 남는다.
그러니 뭔가를 받아두라고 권할 때 나는 종이를 받으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걸 받는 과정을 한번 통과해 보시라고 말한다.
통과하고 나면 다음 문이 훨씬 작아 보인다.
그 여름에 내가 선 자리가 딱 그랬다.
여섯 번 통과해 본 사람에게 일곱 번째 문은 처음만큼 높지 않았다.
높이가 낮아진 게 아니라 내가 그만큼 올라와 있었다.
그래서 그 전화를 받던 날 아침에 마당에서 커피를 들고 서 있던 장면이 아직 기억난다.
앞산이 다 짙어져 있었고, 그해 여름이 시작되고 있었다.
종이컵이 미지근해질 때까지 서 있다가 작업장으로 들어갔다.
그날도 할 일은 그대로 있었으니까.
그러고 보면 큰일이 시작되는 날도 겉으로는 평범하다.
전화 한 통 받고 커피 한 잔 마시고 작업복 소매를 걷는다.
나중에 돌아봤을 때 그날이 무슨 날이었는지를 알게 되는 거지, 그날에는 모른다.
그 몇 해 동안 그런 날이 여러 번 있었다.
"千里馬常有 而伯樂不常有"
(천리마상유 이백락불상유)
당나라 문인 한유가 『잡설』에 적은 말이다.
천리마는 하루에 천 리를 달리는 말이다.
그런데 한유는 그런 말이 세상에 늘 있다고 했다.
없는 것은 천리마가 아니라 백락이라는 것이다.
백락은 옛날에 말을 볼 줄 알았던 사람이다.
좋은 말이 마구간에 서 있어도 알아보는 사람이 없으면, 그 말은 보통 말들 사이에서 늙어 죽고 아무도 천리마인 줄 모른다.
한유는 그렇게 묻혀버린 말들을 두고 이 글을 썼다.
— 한유(韓愈, 768~824). 당나라 문인·관료. 『잡설(雜說)』.
세상에 쓸 만한 것은 늘 있고, 모자란 쪽은 그것을 알아보는 눈이라는 뜻이다.
가진 사람은 자기가 무엇을 가졌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아서, 알아봐 주는 사람을 만나기 전까지는 그게 아무것도 아닌 채로 쌓여 있다.
그러니 뭔가를 해두는 일만큼 그것을 알아볼 사람 곁에 있는 일도 중요하다.
문경 산에서 거둔 걸 끓여 담는 회사가 벤처라는 말과 어울릴 수 있다는 것도, 나는 혼자서는 끝내 몰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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