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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일상

[임업후계자] 산에 태양광을 덮을 계획

by 사람들생각 2025. 8. 7.

▣  옮겨온 글 ▣

예전 블로그에 써두었던 글을 옮겨 왔다. 문장은 그때 그대로 두고, 읽기 편하게 조금만 매만졌다.


 

산에 들어가 보면 그늘에서만 자라는 것들이 따로 있다.

해가 잘 드는 데서 크는 것과 나무 밑에서 크는 것이 다르다.

그늘에서 크는 건 대개 천천히 크고, 천천히 큰 건 향이 진하다.

처음에는 그걸 몰랐다.

해가 많이 들면 다 잘 자라는 줄 알았다.

몇 해 산을 다니면서 알게 된 건 그 반대도 있다는 거였다.

사람도 그런 데가 있을 것 같다.

 

밤새 이어지는 공사



■ 작약 재배 계획서

임업후계자로 등록하려면 조건에 맞는 땅과, 그 땅에서 무엇을 하겠다는 계획이 있어야 했다.

그래서 안동 쪽에 땅을 보고, 그 땅에 작약을 재배하겠다는 계획서를 만들었다.

작약을 고른 건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약초로 쓰이는 것이고, 내가 하는 가공과 이어질 수 있는 품목이었다.

기준 면적도 맞췄다.

계획서를 쓰면서 알게 된 게 있다.

서류를 쓰려면 실제로 할 생각을 해야 한다는 것.

적당히 적어넣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러면 몇 해 뒤에 그 종이가 거짓이 된다.

그 전까지 몇 번 서류를 써보고 배운 게 그거였다.

적은 건 결국 해야 한다.

그래서 적을 때 할 수 있는 것만 적었다.

땅을 보러 다니는 일도 처음 해보는 게 아니었다.

문경에 처음 내려와서 땅을 보러 다닌 해가 있었다.

그때는 아무것도 몰라서 눈에 좋은 데만 봤다.

길이 어떻게 닿는지, 물이 되는지, 허가가 되는지를 몰랐다.

몇 해 지나서 보니 그때 봤던 땅 중에 쓸 수 없는 데가 많았다.

이번에는 달랐다.

기준 면적을 먼저 보고, 그 면적이 나오는 데를 봤다.

무엇을 심을지를 정하고 봤으니 보는 눈이 좁아졌다.

좁게 보면 빨리 정해진다.

넓게 보면 오래 걸리고 결국 못 정한다.

그 계획서에는 품목 말고도 적을 게 있었다.

언제 심고 몇 해 뒤에 거두는지.

작약은 심어놓고 몇 해를 기다리는 작물이다.

그 몇 해를 적으면서 생각했다.

심는 해에는 아무 수입이 없다는 거였다.

그걸 버틸 수 있어야 그 작물을 한다.

공장에서 들어오는 수입이 있었으니 버틸 수 있었다.

그러니 새로 뭘 심는 일도 결국 먼저 세워둔 것 덕이었다.

 

밤새 이어지는 공사



■ 머릿속에 그린 그림

그 무렵에 내가 품고 있던 그림이 하나 있었다.

돌아보면 꽤 당찬 그림이었다.

임업후계자로 등록해서 1년쯤 활동을 하면 다음 단계가 열린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러면 안동 쪽에 임야를 지원받아 매입하는 쪽으로 갈 수 있다는 거였다.

그 임야를 사면 거기에 태양광을 올리고 싶었다.

산 위에 지붕처럼 덮어두는 거다.

그러면 두 가지가 생긴다.

위에서는 전기가 나온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그늘이 생긴다.

그 그늘에 산야초를 심고, 명이나물을 심고, 산양삼을 심는 그림이었다.

그늘에서 크는 것들이니 자리가 맞았다.

그 얘기를 처음 꺼냈을 때 사람들이 좀 웃었다.

산에 전기를 올려서 그 아래에 약초를 심겠다는 얘기였으니까.

한 가지만 해도 벅찬 사람이 두 가지를 같이 하겠다는 걸로 들렸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게 두 가지로 보이지 않았다.

땅 하나를 두 번 쓰는 한 가지로 보였다.

그 차이가 그 그림의 전부였다.

그리고 그 그림에는 또 하나가 있었다.

전기가 나오면 그게 수입이 된다.

농사는 해마다 작황이 다른데 전기는 그보다 고르다.

고른 수입이 하나 있으면 농사 쪽 기복을 버틸 수 있다.

한쪽이 흔들릴 때 다른 쪽이 받쳐주는 구조.

서울에서 무너진 사람이 그런 구조에 예민해진 거였다.

한 줄기에 전부를 걸면 그 줄기가 끊길 때 같이 끊긴다.

그 생각은 지금도 그대로다.

품목을 여러 개 두는 것도 같은 이유다.

하나가 안 되는 해에 다른 게 되면 그 해가 넘어간다.

전부 잘되는 해를 노리는 게 아니라, 전부 안 되는 해가 없게 만드는 쪽이다.

그 셈을 배우는 데 한 번 무너져야 했다.

서울에서는 한 줄기에 다 걸었다.

그게 잘될 때는 제일 빠르다.

안될 때는 제일 빠르게 끝난다.

빠른 걸 좋아하던 사람이 느린 걸 고르게 된 게 그 몇 해의 변화였다.

느린 걸 고르면 재미가 없다.

몇 해를 같은 자리에서 보내야 하니까.

그런데 그 몇 해 뒤에 남아 있는 건 느린 쪽이었다.

 

지금 봐도 일량이 엄청나다



■ 왜 그 그림이었나

그 그림을 그린 이유는 단순했다.

그때까지 내 사업에 비어 있는 칸이 하나 있었다.

원재료였다.

나는 산야초를 가공해서 팔고 있었는데, 그 원재료를 전부 내가 키운 게 아니었다.

산에서 거두고, 모자라면 받아왔다.

받아오면 값이 흔들린다.

그 해 작황에 따라 값이 오르고, 오르면 내 마진이 깎인다.

깎이는 걸 손님에게 넘길 수도 없었다.

그러니 원재료를 내가 쥐어야 했다.

원재료부터 내가 키우고, 그걸 내 공장에서 가공하고, 내 이름으로 파는 것.

그게 완성된 모양이었다.

6차 산업이라는 말을 그때 다시 떠올렸다.

1차와 2차와 3차를 다 한다는 게 그 말인데, 내 1차는 아직 절반이었다.

그 절반을 채우려고 그린 그림이었다.

원재료를 쥐어야 한다는 걸 몇 해 겪어서 알았다.

한 해는 재료가 귀해서 값이 꽤 올랐다.

그 해에 물건은 다 팔렸는데 남은 게 적었다.

숫자를 보고 나서야 원인이 재료값이라는 걸 알았다.

느낌으로는 그 해가 잘된 해였다.

숫자로는 아니었다.

그 경험이 그 그림을 그리게 만든 셈이다.

그걸 알고 나서 산에 올라가는 눈이 달라졌다.

전에는 거둘 것을 찾았다.

그 뒤로는 심을 자리를 봤다.

거두는 사람과 심는 사람은 산을 전혀 다르게 본다.

거두는 사람은 올해를 보고, 심는 사람은 몇 해 뒤를 본다.

그 두 눈을 다 가져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됐다.

올해 거둘 게 없으면 몇 해 뒤가 와도 못 기다린다.

몇 해 뒤를 안 보면 올해만 반복된다.

그래서 올해 거둘 걸 거두면서 몇 해 뒤를 심어야 했다.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거두는 손과 심는 손이 같은 손이니까.

 

500



■ 그늘을 쓴다는 생각

태양광을 올리면 그 아래가 못 쓰는 땅이 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

그늘이 지니까 농사가 안 된다고.

해가 필요한 작물은 그렇다.

그런데 그늘에서 크는 것들이 따로 있다.

산양삼이 그렇고, 명이나물이 그렇다.

산야초 중에도 반그늘을 좋아하는 것들이 있다.

그러니 같은 땅이 누구에게는 못 쓰는 땅이고 누구에게는 맞는 땅이 된다.

그 생각이 나는 재미있었다.

위에서 전기를 받고 아래에서 작물을 받으면 한 땅을 두 번 쓰는 셈이다.

시골에서 땅값이 아무리 싸도 땅은 한정되어 있다.

한 땅을 두 번 쓰는 방법을 찾는 게 결국 남는 길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도 몇 해 동안 쌓인 결과였다.

처음 내려왔을 때 나는 땅을 하나의 용도로만 봤다.

밭은 밭이고 산은 산이라고 생각했다.

밭에는 심고 산에서는 거둔다고만 봤다.

그런데 산에도 심을 수 있었다.

산 아래에 심고 산 위에 덮을 수도 있었다.

그렇게 보기 시작하니 같은 땅이 다르게 보였다.

보는 눈이 바뀌면 가진 것이 늘어난다.

실제로 가진 게 늘어난 건 아니었다.

같은 산이고 같은 땅이었다.

다만 쓸 수 있는 방법이 늘었다.

그게 결국 가진 게 늘어난 것과 같았다.

 



■ 옆에서 같이 그렸다

그 그림을 혼자 그린 건 아니다.

조 대표님께 말씀드리니 바로 셈을 해보셨다.

그 그림이 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돈은 어디서 나오는지.

서류 쪽과 사업자금 쪽을 어떻게 연계할지도 짚어주셨다.

내가 그림을 그리고 그분이 길을 그렸다.

그 조합이 몇 해 동안 반복됐다.

혼자 그리면 그건 공상이다.

옆에서 길을 그려주는 사람이 있으면 계획이 된다.

그 차이를 몇 번 겪고 나니, 생각이 나면 바로 말하는 버릇이 들었다.

혼자 품고 있으면 몇 달이 가도 그대로다.

말하면 그날부터 셈이 시작된다.

그리고 말하면 깎이기도 한다.

내가 그린 그림 중에 안 되는 부분을 짚어주셨다.

그 자리에서 조금 서운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게 깎아주는 게 아니라 맞춰주는 거였다.

못 되는 걸 미리 알면 그만큼 돈을 안 쓴다.

혼자 품고 있다가 돈을 쓰고 나서 아는 게 제일 비싸다.




■ 포장도 같이 생각했다

그리고 성 대표님께도 말씀드렸다.

그분은 패키지 쪽을 보시는 분이었다.

그 그림이 되면 품목이 늘어나는 거였다.

명이나물이든 산양삼이든, 새로 나오면 그걸 담을 것이 필요했다.

그 얘기를 하니 패키지 디자인을 실비로 해주겠다고 하셨다.

그 말이 고마웠다.

디자인이라는 게 값을 매기기 어려운 일이다.

시간이 들어가는 일인데 눈에 보이는 재료가 없으니, 받는 쪽이 비싸게 느낀다.

그걸 실비로 해주신다는 건 자기 시간을 깎아주신다는 뜻이었다.

그 무렵에 내 옆에 그런 분들이 두 분 있었다.

한 분은 서류를, 한 분은 모양을 봐주셨다.

내가 한 건 만드는 것뿐이었다.

그 셋이 모여 있어야 물건이 팔린다는 걸 그때 알았다.

그걸 알고 나서 사람 관계를 보는 눈이 달라졌다.

전에는 나한테 도움이 되는 사람을 찾았다.

그 뒤로는 내가 못 하는 자리를 채워주는 사람을 봤다.

비슷한 말처럼 들리는데 전혀 다르다.

앞쪽은 받을 것만 세는 거고, 뒤쪽은 자리를 맞추는 거다.

자리가 맞으면 서로 오래 간다.

그 두 분과는 그 뒤로도 오래 같이 했다.

한 분은 서류가 필요할 때, 한 분은 모양이 필요할 때.

내가 드릴 수 있는 건 만든 물건뿐이었다.

그래서 철마다 보냈다.

주고받는 게 꼭 돈이어야 하는 건 아니었다.

그런데 돈으로 드릴 건 드려야 한다는 것도 안다.

실비로 해주겠다고 하셔도 받으실 만큼은 챙겨드리려고 했다.

공짜로 받으면 다음에 또 부탁하기가 어려워진다.

오래 갈 사이면 값을 치르는 게 낫다.

그 균형을 잡는 데도 몇 해 걸렸다.

처음에는 다 받으려고 했다.

돈이 없을 때는 받는 게 당연한 줄 알았다.

몇 해 지나서 보니 그렇게 받은 관계가 하나씩 끊어져 있었다.

받기만 하는 쪽이 먼저 미안해져서 연락을 안 하게 된다.

그걸 겪고 나서는 작게라도 드렸다.

철마다 보내는 물건이 그래서 생긴 습관이다.

많이 보내는 건 아니다.

그 철에 나온 걸 한 상자씩 보낸다.

그게 몇 해 이어지니 받는 쪽에서도 그 철을 기다리게 됐다.

 



■ 다 하지는 못했다

솔직하게 쓰면, 그 그림을 다 이루지는 못했다.

태양광을 올린 산이 아직 없다.

그 아래에 산양삼을 심지도 못했다.

왜 못 했냐 하면 그 뒤로 일이 또 몰렸다.

해야 할 게 하나씩 생기고, 그게 몇 해 이어졌다.

그 사이에 제도도 바뀌었다.

태양광 쪽은 특히 몇 해 사이에 조건이 많이 달라졌다.

그러니 그때 그려둔 그림을 그대로 들고 가기는 어려워졌다.

아쉽냐고 물으면 아쉽다.

그런데 그 그림이 아무 일도 안 한 건 아니다.

그 사이에 한 것도 있다.

작약 계획서대로 안동 쪽에서 자리를 잡아둔 일.

임업후계자 등록을 받아둔 일.

그 두 가지는 됐다.

그러니 그림 전체는 못 그렸는데 아래쪽 반은 깔아둔 셈이었다.

그리고 그 등록이 그 뒤에 여러 군데서 일을 했다.

어디에 서류를 낼 때 적을 칸이 하나 더 생겼고, 산림 쪽 사람들과 말이 통하게 됐다.

그러니 그해에 깔아둔 게 비어 있지 않았다.

 



■ 그린 그림이 하는 일

그 그림을 그려놓은 덕에 그 뒤 몇 해 동안 방향이 있었다.

무언가를 고를 때 그 그림에 가까운 쪽을 골랐다.

원재료를 쥐는 쪽, 땅을 쓰는 쪽, 품목을 늘리는 쪽.

그걸 기준으로 고르니 헤매지 않았다.

그려놓지 않았으면 눈앞에 온 것부터 집었을 것이다.

그러면 몇 해 뒤에 전혀 다른 데에 가 있게 된다.

그래서 그림은 다 이루려고 그리는 게 아니었다.

방향을 정하려고 그리는 거였다.

계획서를 쓰면서 처음으로 몇 해 뒤를 적어봤던 그 일과 같았다.

적어둔 걸 다 못 해도, 적어둔 쪽으로는 움직인다.

그리고 그려둔 그림이 사람을 만날 때도 일을 했다.

무엇을 하려는 사람이냐는 질문에 답할 게 있었다.

그 답이 있으면 상대가 들고 있는 걸 꺼내준다.

그 길을 아는 사람이면 거기로 가는 길을 알려주고, 땅을 아는 사람이면 땅을 알려준다.

답이 없으면 아무도 아무것도 안 꺼낸다.

그러니 그림은 혼자 보는 게 아니라 보여주는 거였다.

그래서 요즘 누가 뭘 하려는지 물으면 길게 답한다.

전에는 짧게 답했다.

산야초 가공한다고만 했다.

그러면 대화가 거기서 끝났다.

앞으로 무엇을 하려는지까지 말하면 대화가 이어지고, 이어지면 뭐가 나온다.

그걸 알고 나서 모임에 나갈 때 할 말을 정리해 가게 됐다.

지금 하는 것 한 줄, 하려는 것 한 줄.

그 두 줄만 있으면 어디서든 얘기가 됐다.

그 두 줄을 못 만들고 다니던 몇 해가 그 전에 있었다.

그때는 모임에 나가도 앉아만 있었다.

무슨 일 하느냐는 질문에 대답이 짧았다.

짧으면 상대가 더 묻지 않는다.

그래서 아무 소득 없이 돌아왔다.

그게 모임이 쓸데없어서가 아니라 내가 준비가 없어서였다.




■ 세월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다만 하나는 분명히 배웠다.

그림을 그린 해에 바로 손을 대야 하는 것들이 있다.

나이에 걸려 있는 것, 제도가 바뀔 것, 땅값이 오를 것.

그런 것들은 미루면 조건 자체가 사라진다.

그때 임업후계자 등록은 미루지 않고 했다.

그래서 그건 됐다.

태양광 쪽은 미뤘다.

그래서 그건 조건이 달라졌다.

같은 해에 그린 두 가지가 그렇게 갈렸다.

그 차이를 지금 보면 분명하다.

미룬 쪽이 사라졌고 안 미룬 쪽이 남았다.

그러니 후회할 게 있으면 그거다.

못 한 걸 후회하는 게 아니라, 미룬 걸 후회한다.

 



■ 그래도 산은 그대로 있다

요즘도 안동 쪽에 갈 일이 있으면 그때 봐둔 산을 지나간다.

거기에 아직 태양광은 없다.

그 산은 그대로 있다.

지나가면서 그 그림을 한 번 떠올린다.

못 이룬 그림을 보는 게 쓰라릴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

그 그림을 그릴 줄 아는 사람이 된 게 그 몇 해의 수확이었으니까.

빈손으로 내려온 사람이 산을 보고 그 위와 아래를 같이 쓰는 그림을 그렸다.

그 그림이 실제로 되는 건 그다음 문제다.

그릴 줄 아는 사람과 못 그리는 사람 사이에 꽤 긴 거리가 있다.

그 거리를 그 몇 해에 건너왔다.

그러니 그 산을 지나갈 때 아깝다는 생각보다 다른 생각이 먼저 든다.

그때 그 그림을 그려놓은 덕에 지금 여기까지 왔다는 생각.

이룬 것만 세면 그 그림은 실패다.

그 그림이 끌고 온 몇 해를 세면 그렇지 않다.

그리고 아직 끝난 얘기도 아니다.

산은 그대로 있고 나도 그대로 있다.

조건이 다시 맞는 해가 오면 그때 또 꺼내볼 생각이다.

접어둔 것과 버린 것은 다르다.

그 둘을 구분하게 된 것도 몇 해 걸린 일이다.

전에는 못 하면 버렸다.

이제는 못 하면 접어둔다.

접어두면 조건이 바뀔 때 다시 펴볼 수 있다.

그 차이가 사람을 덜 지치게 한다.

 




"盛年不重來 一日難再晨 及時當勉勵 歲月不待人"

(성년부중래 일일난재신 급시당면려 세월부대인)

 

도연명이 『잡시』에 적은 구절이다.

한창때는 두 번 오지 않고, 하루에 아침이 두 번 오기도 어렵다.

그러니 때에 맞춰 힘써야 한다.

세월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도연명은 벼슬을 버리고 시골로 돌아가 농사를 지으며 산 사람이었다.

땅을 부치는 사람은 철을 놓치면 한 해가 없어지는 것을 매년 몸으로 겪는다.

그러니 이 말은 책상 앞의 훈계가 아니라, 밭에서 나온 말에 가깝다.

 

— 도연명, 『잡시』.

 

철이 지나면 같은 일을 같은 값으로 할 수 없다는 뜻이다.

나이에 걸려 있는 것, 제도가 바뀔 것, 조건이 닫힐 것은 그 해에 손을 대야 한다.

같은 해에 그린 두 가지 중에 미루지 않은 쪽은 남았고 미룬 쪽은 조건이 달라져 사라졌다.

그러니 후회는 못 한 일에서 오지 않고 미룬 일에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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