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옮겨온 글 ▣
예전 블로그에 써두었던 글을 옮겨 왔다. 문장은 그때 그대로 두고, 읽기 편하게 조금만 매만졌다.
시골에서 이웃이라는 말은 거리로 재지 않는다.
담 하나 건너 사는 사람이 이웃이기도 하고, 차로 십 분 가는 데 사는 사람이 이웃이기도 하다.
급할 때 와주는 사람이 이웃이다.
그걸 몇 해 살면서 알았다.
도시에서는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몰랐다.
여기서는 멀리 사는 사람도 전화 한 통이면 온다.
같은 말이 사는 자리에 따라 전혀 다른 뜻이 된다.

■ 선정되고 나서
임업후계자로 선정되고 나서 제일 크게 달라진 게 뭐냐고 물으면, 나는 사람이라고 답한다.
그 자격이 당장 돈을 가져다준 건 아니었다.
그 종이 한 장으로 매출이 오른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사람이 달라졌다.
만나는 사람의 종류가 바뀌었다.
그 전까지 내가 만나던 사람은 농업 쪽이었다.
농업 관련 기관, 농업 교육, 농산물 거래처.
그 울타리 안에서 몇 해를 돌았다.
그런데 임업 쪽에 들어가고 나니 다른 사람들이 보였다.
산림 쪽 일을 하는 분들, 약초를 하는 분들.
전에는 마주칠 일이 없던 분들이었다.
처음 그 자리에 가보니 쓰는 말이 좀 달랐다.
농업 쪽에서는 작목이라고 하는데, 그쪽에서는 품목이라고 하고 임산물이라고 했다.
면적을 말할 때도 단위가 달랐다.
같은 나라에서 같은 일을 하는데 쓰는 말이 다른 게 재미있었다.
그 말을 익히는 데 몇 달 걸렸다.
그 말을 쓸 수 있게 되니 그쪽 사람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니 어느 업계에 들어가려면 그 말부터 배워야 한다.
말을 모르면 아무리 같은 일을 해도 바깥 사람이다.
말이 통하면 몇 번 안 만나도 안쪽 사람이 된다.
그게 제도보다 먼저였다.
그 말을 배우는 방법도 따로 있는 게 아니었다.
앉아서 듣다가 모르는 말이 나오면 적어두고, 집에 와서 찾아봤다.
그 버릇이 그 무렵에 또 일을 했다.
몇 해 동안 들인 버릇이 자리를 옮겨도 그대로 쓰였다.
■ 새 판로가 열렸다
사람이 달라지니 판로도 달라졌다.
약초를 다루는 분들은 산야초가 뭔지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무엇을 쓰고 어떻게 말리는지 아는 분들이었다.
그러니 얘기가 바로 됐다.
전에 농산물 쪽 거래처에 가면 설명이 길었다.
이게 뭐냐, 이걸 왜 먹냐.
그 설명을 하다 보면 지쳤다.
산림 쪽 사람들과는 그 설명이 생략됐다.
같은 말을 쓰는 사람끼리는 거래가 빠르다.
그 자리에서 새로 생긴 거래가 몇 군데 있었다.
그게 내가 찾아다녀서 생긴 게 아니었다.
그 모임에 앉아 있었더니 생긴 거였다.
그걸 겪고 나서 생각이 하나 정리됐다.
판로를 찾는다는 게 물건을 들고 다니는 일이 아니었다.
내 물건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데에 가서 앉아 있는 일이었다.
설명이 필요한 자리에서는 열 번 설명해도 안 되고, 설명이 필요 없는 자리에서는 한 번에 된다.
그러니 어디에 가서 앉아 있을지를 고르는 게 영업의 절반이었다.
그 자리를 몇 해 동안 잘못 고르고 다녔다.
그때는 큰 데를 찾아다녔다.
큰 데에 들어가면 한 번에 많이 나간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큰 데는 나 같은 작은 데를 보지 않았다.
설명해야 할 게 제일 많은 자리였다.
작게 시작해서 말이 통하는 데부터 가는 게 맞았다.
그 뒤로 거래처를 고르는 기준도 바뀌었다.
큰 데보다 말이 통하는 데를 먼저 봤다.
말이 통하면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이 빠르다.
물건이 늦거나 수량이 틀렸을 때, 말이 통하는 데는 전화 한 통이면 된다.
안 통하는 데는 서류가 오간다.
작은 사업자에게는 그 차이가 꽤 크다.

■ 모임에 나가는 일
그래서 모임에 나갔다.
산림후계자 모임이고, 약초 쪽 모임도 있었다.
처음에는 어색했다.
들어가면 다들 서로 아는 분들이었다.
나는 그중에 제일 늦게 들어온 사람이었고, 문경에서 온 사람이었다.
자리에 앉아서 듣고만 있었다.
그러다 몇 번 나가니까 얼굴이 익었다.
얼굴이 익으면 말을 걸어주신다.
그러고 나서야 내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가 알려졌다.
그걸 알리는 데 몇 달이 걸렸다.
나가 앉아 있는 것 말고 방법이 없었다.
그 몇 달이 사실 제일 힘들었다.
아무 소득 없이 저녁 시간을 쓰는 거였다.
가서 앉아 있으면 그날은 아무 일도 안 생긴다.
그런 저녁이 여러 번 있었다.
그걸 못 견디면 그만두게 된다.
나도 몇 번 그만둘까 했다.
그런데 몇 달 지나니까 달라지기 시작했다.
사람이 익는 데 걸리는 시간이 있는 거였다.
그 시간은 줄일 방법이 없다.
돈으로도 안 줄고 재주로도 안 준다.
횟수로만 준다.
그래서 급한 사람이 제일 불리한 게 사람 사귀는 일이다.
그런데 급하지 않은 사람은 또 안 나간다.
급하지 않으니 집에 있는다.
그래서 급하지 않을 때 나가 앉아 있는 사람이 결국 제일 멀리 간다.
그걸 몇 해 보고 나서 바쁜 철이 아닐 때 일부러 나갔다.

■ 존재를 알린다는 것
그 무렵에 알게 된 게 있다.
아무리 좋은 걸 만들어도, 내가 있다는 걸 모르면 아무 일도 안 일어난다.
존재를 알리는 게 영업보다 먼저였다.
영업은 물건을 보여주는 거고, 알리는 건 내가 여기 있다는 걸 알게 하는 거다.
그 순서가 거꾸로 되면 사람들이 피한다.
처음 보는 사람이 물건부터 꺼내면 경계한다.
몇 번 얼굴을 보고 나서 물건이 나오면 받아준다.
그걸 모르고 몇 해 전에 실수를 했었다.
처음 간 자리에서 물건 설명부터 했다.
그 자리에서 아무 일도 안 생겼다.
그래서 요즘은 처음 간 자리에서 물건 얘기를 안 한다.
무슨 일 하시는지만 묻고, 내 얘기는 짧게 한다.
그러면 다음에 만났을 때 그쪽에서 먼저 묻는다.
그때 꺼내면 된다.
그 한 박자를 참는 게 어려운데, 그게 결국 빠른 길이었다.
그걸 서울에서는 몰랐다.
그 자리에서 결론을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 번 만나서 안 되면 끝이라고 봤다.
시골에서는 그게 아니었다.
세 번 만나서 되는 일이 여기서는 흔하다.
세 번을 기다릴 수 있으면 되고, 못 기다리면 한 번도 안 된다.
■ 세 개가 모여서
그리고 그 무렵에 내가 가진 게 세 개가 되어 있었다.
해썹.
6차 산업 인증.
임업후계자.
그 셋이 한 줄에 적히면 보는 쪽에서 받는 인상이 달라졌다.
어느 하나만 있으면 그 분야 사람으로 보인다.
세 개가 같이 있으면 다르게 보인다.
농촌에 제대로 뿌리내린 사람으로 보인다는 걸 그 무렵에 느꼈다.
한번 들어와서 몇 해 하고 나갈 사람이 아니라는 인상.
그 인상이 생기면 사람들이 대하는 방식이 달라진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도 몇 마디만 하고 본론으로 들어간다.
그 셋을 모으려고 그렇게 한 건 아니었다.
하나씩 필요해서 받았는데 모아놓고 보니 그렇게 됐다.
그게 운이라고 하면 운이고, 순서를 짚어준 사람이 있었다고 하면 그 덕이다.
나는 뒤쪽이라고 생각한다.
혼자였으면 그 셋 중에 하나도 못 받았을 것이다.
받을 수 있다는 걸 몰랐으니까.
그러니 자격을 모았다는 말보다, 모으게 해준 사람이 있었다는 말이 맞다.
그 셋을 적어놓은 종이를 지금도 쓴다.
처음 만나는 분께 그걸 드린다.
읽는 데 몇 초면 된다.
그 몇 초가 몇십 분 설명을 대신한다.
그리고 그 종이를 보고 질문이 달라졌다.
전에는 뭘 하시느냐고 물었다.
그 뒤로는 어떻게 그걸 다 받으셨냐고 물으신다.
그 질문을 받으면 내가 할 얘기가 생긴다.
사람 얘기를 하게 되는 거다.

■ 신뢰가 쌓이면
신뢰가 쌓이면 그 뒤가 수월해지는 걸 몇 번 봤다.
자금 쪽 얘기를 할 때도, 사업을 같이 하자는 얘기가 나올 때도 그랬다.
처음 만난 사람과는 한 번에 안 된다.
몇 번 만난 사람과는 한 번에 된다.
그 차이가 결국 시간이었다.
그 시간을 줄여주는 게 자격이었다.
자격이 있으면 처음 만난 사람도 몇 번 만난 사람처럼 대해준다.
남이 보증해준 셈이니까.
그래서 자격이라는 게 종이 한 장이 아니었다.
처음 만나는 사람 앞에서 쓰는 보증서였다.
그걸 알고 나서 자격을 받는 일에 들이는 품을 아까워하지 않게 됐다.
그리고 자격이 하나 늘 때마다 내 말이 가벼워졌다.
말을 적게 해도 전달이 됐다.
전에는 열 마디로 설명해야 했던 걸 서류 한 장이 해줬다.
말을 많이 해야 하는 사람은 아직 근거가 모자란 사람이다.
근거가 생기면 말이 줄어든다.
그걸 알고 나서 말수가 줄었다.
■ 단점도 있었다
좋은 것만 쓰면 거짓이 된다.
단점도 있었다.
그 모임들이 대개 지인 관계로 돌아갔다.
공식 일정만 있는 게 아니었다.
갑자기 모인다는 연락이 왔다.
오늘 저녁에 모인다, 내일 어디를 간다.
그런 연락이 불시에 왔다.
그러면 난감했다.
문경에서 안동까지 차로 한 시간 남짓이다.
한 시간이면 가는 거리인데, 가고 오면 세 시간은 빠진다.
생산이 몰린 날에 그런 연락이 오면 참 곤란했다.
그런 모임이 왜 그렇게 돌아가는지는 알고 있었다.
회사 조직이 아니니까.
친분으로 이어진 사이니까 일정도 친분으로 돌아간다.
그게 좋은 점이기도 했다.
급할 때 바로 모여주는 것도 같은 이유니까.
느슨한 대신 빠르고, 빠른 대신 예측이 안 됐다.
그 두 가지가 같은 성질에서 나온 거였다.
그래서 불평할 게 아니라고 생각하게 됐다.
예측이 되는 조직에 들어가면 급할 때 아무도 안 와준다.
어느 쪽을 택할 거냐는 문제였다.
나는 와주는 쪽을 택했다.

■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처음에는 다 갔다.
새로 들어온 사람이니 안 가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러다 몸이 상했다.
밤에 일하고 낮에 다니고, 그게 몇 달 가니 사람이 축났다.
그래서 기준을 하나 정했다.
한 달에 몇 번까지는 간다, 그 이상은 사정을 말씀드린다.
말씀드리면 대개 이해해주셨다.
오히려 솔직하게 말하는 쪽을 편하게 받아주셨다.
못 가면서 핑계를 대는 것보다, 생산이 있어서 못 간다고 하는 게 낫다.
그 말을 하는 데 몇 달 걸렸다.
처음에는 거절하면 밀려날 것 같았다.
안 그랬다.
사정을 말하는 사람이 오히려 믿을 만하게 보인다는 걸 그때 또 배웠다.
그리고 못 가는 날에는 다른 걸로 메웠다.
물건을 보내드리거나, 다음에 먼저 연락을 드리거나.
안 가면 그만인 게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자리를 지켰다.
그렇게 몇 해 하니까 자주 안 나가도 끊기지 않았다.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이 꼭 몸으로 가는 것만은 아니었다.
다만 한 번은 꼭 간다는 것도 지켰다.
큰 자리, 중요한 자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갔다.
작은 자리를 몇 번 빠져도 큰 자리를 지키면 서운해하지 않으신다.
그 구분을 하는 데도 몇 해 걸렸다.
■ 그래도 아깝지 않았다
세 시간씩 빠지고 다닌 게 아깝냐고 물으면, 아깝지 않다.
그 세 시간을 몇 번 쓴 덕에 생긴 게 여럿이다.
거래가 생기고 아는 사람이 생기고 정보가 생겼다.
공장에서 그 세 시간을 더 일했으면 그만큼 물건이 더 나왔을 것이다.
그런데 그 물건을 어디에 팔지는 그 모임에서 나왔다.
만드는 시간과 팔 데를 찾는 시간은 성질이 다르다.
만드는 시간은 그날 결과가 나오고, 팔 데를 찾는 시간은 몇 달 뒤에 나온다.
그래서 후자를 아끼는 사람이 많다.
결과가 늦게 나오니까.
나도 처음에는 그랬다.
몇 해 하고 나서 그 셈이 틀렸다는 걸 알았다.
그러니 바쁜 사람이 제일 먼저 줄이는 게 사람 만나는 시간인데, 그게 제일 잘못된 순서였다.
물건은 밤에 만들 수 있다.
사람은 밤에 만날 수 없다.
그 차이를 생각하면 무엇을 낮에 해야 하는지가 정해진다.

■ 권해보는 이유
그 뒤로 귀농하려는 분을 만나면 임업후계자 얘기를 한다.
그때는 그 제도가 널리 알려져 있지 않았다.
요즘은 전보다 알려졌을 텐데, 그래도 농업 쪽보다는 조용한 편이다.
농업 쪽에서 후계자로 들어가려면 경쟁이 꽤 치열하다.
대규모 영농을 전제로 하는 경우가 많고, 젊은 층 위주로 짜인 것도 있다.
그러니 나이가 조금 있고 규모가 작은 사람에게는 문턱이 높다.
임업 쪽은 그에 비하면 들어갈 자리가 있는 편이었다.
산을 쓰는 일을 하고 있다면 더 그렇다.
물론 조건은 해마다 바뀌니 직접 확인해야 한다.
내가 겪은 것도 몇 해 전 기준이다.
그리고 아무 준비 없이 들어가라는 뜻도 아니다.
나는 그 전에 몇 가지를 갖춰둔 상태에서 들어갔다.
공장이 있고 법인이 있고 인증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보여줄 게 있었으니 설명이 됐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조용한 문을 두드리면 그 문도 안 열린다.
문이 조용한 것과 조건이 없는 건 다르다.
그러니 순서는 똑같다.
조건을 먼저 보고, 맞출 수 있는지 세어보고, 맞춰놓고 두드린다.
조용한 문도 조건은 똑같이 본다.
다만 그 앞에 서 있는 사람이 적다는 것뿐이다.
그래도 한 가지는 말씀드린다.
남들이 다 보고 있는 문 앞에 줄을 서는 것보다, 아직 조용한 문을 두드려보는 쪽이 나을 때가 있다.
알려지지 않은 문이 오히려 열리기 쉬운 법이다.
■ 가까운 사람이 열어준 문
그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돌아보면, 그 문을 열어준 건 제도가 아니었다.
사람이었다.
고향에서 우연히 만난 형님이 한마디를 해줬고, 그분이 회장님을 소개해주셨고, 회장님이 서류를 짚어주셨다.
그 세 사람이 없었으면 나는 그 제도가 있는 줄도 몰랐다.
몇 해 동안 공고문을 뒤지고 다닌 사람이 모르고 있었던 거니까.
그러니 멀리서 찾는 것보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통해 오는 게 많았다.
그 얘기를 몇 해 동안 반복해서 겪었다.
서울에서 사업할 때는 멀리 있는 사람을 찾아다녔다.
큰 데, 유명한 데, 힘 있는 데.
그 사람들은 내가 어려울 때 전화를 안 받았다.
시골에서 만난 사람들은 전화를 받았다.
그 차이가 어디서 오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결과는 분명했다.
그리고 그 차이를 하나 짐작해보면 이렇다.
서울에서 나는 받을 걸 세고 다녔다.
여기서는 내가 뭘 할 수 있는지를 말하고 다녔다.
받으러 다니는 사람에게는 사람이 안 모이고, 할 수 있는 걸 가진 사람에게는 모인다.
그 차이일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묻는 게 달라졌다.
무엇이 필요하신지를 먼저 묻는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으면 하고, 없으면 할 수 있는 사람을 소개한다.
그걸 몇 번 하고 나면 그 사람이 내 얘기를 들어준다.
받은 걸 돌려주는 방식 중에 그게 제일 쉬웠다.
돈으로 돌려주는 건 못 한다.
내가 받은 건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그러니 같은 모양으로는 못 갚는다.
다른 사람에게 흘려보내는 쪽으로 갚는 수밖에 없다.
그게 받은 쪽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셈이었다.
"먼 사촌보다 가까운 이웃이 낫다"
옛날에는 사촌이 꽤 가까운 친척이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이 말을 했다.
한밤중에 아이가 열이 나거나 소가 쓰러지면, 멀리 사는 사촌은 소식을 듣고 나서야 길을 나선다.
그 사이에 와주는 건 담 하나 건너 사는 이웃이었다.
피가 멀어서가 아니라 거리가 멀어서 못 오는 것인데, 급한 일 앞에서는 그 결과가 같았다.
그래서 이 말은 핏줄을 가볍게 보라는 뜻이 아니라, 곁에 있는 사람을 소홀히 하지 말라는 뜻으로 쓰여 왔다.
— 한국 속담.
급할 때 와주는 사람이 결국 가까운 사람이라는 뜻이다.
멀리 있는 크고 유명한 데를 찾아다니던 몇 해보다, 고향에서 만난 형님의 한마디가 더 많은 것을 열어줬다.
그러니 어디에 길이 있는지를 멀리서 찾기 전에, 지금 곁에 있는 사람에게 내가 무엇을 하는지 말해둘 일이다.
그 한마디를 들을 수 있는 자리는 대개 아주 가까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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