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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일상

[약초 공장] 30분을 달려 짬뽕 한 그릇

by 사람들생각 2025. 3. 16.

▣  옮겨온 글 ▣

예전 블로그에 써두었던 글을 옮겨 왔다. 문장은 그때 그대로 두고, 읽기 편하게 조금만 매만졌다.


 

나는 술을 많이 좋아한다.

일산에서 터 잡고 살 때는 술도 많이 먹고 담배도 많이 피웠는데, 담배는 끊었다.

한 십 년은 넘은 것 같다.

그나마 내가 한 일 중에 제일 잘한 일 하나라고 해야 할까.

술은 못 끊었다.

끊을 생각도 없었다.

다만 혼자 지내면서 술이 늘면 사람이 어떻게 되는지는 알고 있었으니, 거기까지는 가지 않으려고 나름 선을 두고 지냈다.

 

 

 

 

■ 짬뽕이 급하게 땡기는 날

한동안 안 마시던 술을 며칠 머리가 복잡해서 마셨더니 짬뽕이 급하게 땡겼다.

술을 마신 다음 날 짬뽕이 생각나는 게 아니라, 짬뽕을 먹으려고 술을 마신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 순서가 뒤바뀐 지는 오래됐다.

혼자 지내다 보면 끼니라는 게 참 애매해진다.

산에서 하루 종일 몸을 쓰고 집에 돌아오면 배는 고픈데 뭘 차려 먹을 기운은 없다.

그래서 라면으로 때우는 날이 늘어나는데, 그런 날이 며칠 이어지면 어느 순간 제대로 된 국물 한 그릇이 사무치게 생각난다.

나한테는 그게 짬뽕이었다.

짬뽕은 내가 좋아하는 음식 순위에서 늘 위쪽에 있었다.

예전에 요식업을 해봤던 사람이라 음식에 유난한 편인데, 그중에서도 국물이 매콤하고 뜨거운 것에 약하다.

몸을 많이 쓴 날은 특히 그렇다.

땀을 흘리고 나면 짠 게 당기고, 짠 걸 먹으려면 국물이 있어야 한다.

산에서 하루 보내고 집에 들어와 혼자 앉아 있으면 그 순서가 저절로 떠올랐다.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기존에 자주 가던 곳 말고 다른 데를 찾아봤더니 한 곳이 딱 떴다.

이화령 짬뽕이라는 집이었다.

같은 문경인데도 내가 있는 곳에서 이십 킬로미터쯤 떨어져 있고 시간은 삼십 분 정도 걸렸다.

도시에서라면 짬뽕 한 그릇 먹겠다고 삼십 분을 운전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여기서는 그게 이상한 일이 아니다.

여기 와서 거리 감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처음에는 이십 킬로미터라고 하면 멀다고 생각했는데, 몇 달 지나니 삼십 분은 그냥 옆 동네였다.

신호가 거의 없고 차가 없으니 실제로 걸리는 시간이 도시의 절반도 안 된다.

도시에서 지하철로 세 정거장 가는 데 걸리는 시간에, 여기서는 군 하나를 건너간다.

 

 

바람에 낙엽이 날리는 운치있는 풍경인데~~

 

■ 시골에서 배달이라는 말

시골 생활의 불편 중 하나가 배달 음식을 시킬 수 없다는 거다.

피자나 치킨은 이십여 킬로미터 떨어진 곳까지 직접 가서 사와야 한다.

처음엔 그게 제일 답답했다.

밤에 뭔가 먹고 싶어도 선택지가 없으니, 그냥 참거나 차 키를 들거나 둘 중 하나다.

그런데 몇 달 지나니 그 불편이 오히려 생활의 리듬을 만들어줬다.

먹고 싶은 게 생기면 그날 하루를 거기에 맞춰 계획하게 된다.

오후에 일이 일찍 끝나면 읍내 쪽으로 차를 돌리고, 가는 길에 뭘 사고, 돌아오는 길에 어디를 들른다.

도시에서는 손가락 몇 번으로 끝나던 일이 여기서는 반나절짜리 일정이 되는데, 그게 묘하게 재미가 있었다.

불편이라는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걸 그때 좀 알았다.

그렇게 차를 몰고 나가는 날이 늘면서 길에서 차를 세우는 일도 늘었다.

가다가 풍경이 좋으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길가에 세워놓고 몇 컷 찍었다.

사진을 잘 찍는 사람이 아니라 나중에 보면 그때 눈으로 본 것의 절반도 안 담겨 있다.

계곡을 지나며 바람에 뭔가 날리는 모습이 운치 있어서 운전하다 몇 번 찍어본 적도 있는데, 사진으로는 그 분위기가 전혀 나지 않았다.

그래도 그때는 엄청 분위기가 났다.

괜히 자켓 깃을 세우고 걸어야 할 것 같은 길이 여기는 흔하다.

 



■ 소고기 짬뽕 곱빼기의 함정

가게는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깔끔했다.

메뉴를 길게 볼 생각도 없었다.

그냥 짬뽕보다는 소고기 짬뽕, 보통보다는 곱빼기가 낫겠지 싶어서 소고기 짬뽕 곱빼기로 시켰다.

그릇이 나왔을 때 생각보다 고기가 엄청 많았다.

그런데 그게 함정이었다.

고기 특유의 비린내라고 해야 할까, 그 맛이 너무 많이 나니까 살짝 거부감이 생길 정도였다.

전체적으로는 다 맛이 있었는데 고기가 너무 많아서 그런지, 아니면 다른 이유였는지 모르겠지만 나중에 다시 시키지는 않을 것 같았다.

다른 메뉴를 먹으러 지인들과, 아니면 혼자라도 다시 가고 싶은 집이기는 했다.

문경새재 바로 입구에 있는 곳이라 문경에 오는 사람이라면 한 번 들러볼 만하다.

맛은 개인 취향이니까 내가 장금이도 아니고 절대 미각도 아니다.

그래도 예전에 요식업에 종사했던 몸이라 입맛이 그렇게 주관적이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그 일을 해보고 나면 음식을 먹을 때 보이는 게 조금 달라진다.

맛만 보는 게 아니라 주방 동선이나 재료 상태 같은 게 같이 보인다.

그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아직 모르겠다.

음식점에 들어가 앉으면 손님 들어오는 간격부터 보인다.

주방에서 나오는 속도, 그릇 돌아가는 속도, 홀에 사람이 몇인지가 저절로 계산된다.

그런 걸 보고 있으면 음식 맛을 제대로 못 느낄 때가 있어서, 일부러 안 보려고 한 적도 있다.

그래도 한 가지는 확실하다.

깨끗한 집은 맛도 웬만하면 괜찮다.

 

 

문경새재 이화령 짬뽕



■ 새재 주차장에서 사람 구경

새재까지 온 김에 주차장 쪽으로 쭉 올라가면서 둘러봤다.

시내에 있을 법한 가게들이 즐비하더라.

평일인데도 사람이 많았다.

그날 간만에 사람 구경을 많이 했다.

평일 낮에 사람 많은 데를 걷는 게 그렇게 낯설 줄 몰랐다.

몇 달 동안 하루에 만나는 사람이 공장 식구 열 명 안쪽이었으니, 그 숫자가 갑자기 늘어나면 사람이 좀 멍해진다.

혼자 지내는 사람한테 사람 많은 데를 걷는 건 생각보다 큰 일이다.

누구와 말을 하지 않아도 사람들 사이를 지나가는 것만으로 기분이 좀 풀린다.

그러다가 롯데리아를 발견했다.

반가운 마음에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짬뽕 곱빼기를 먹고 퉁퉁 불은 배를 받쳐 들고 카운터로 향했다.

너무 오랜만이라 메뉴마저 생소해서 한참 둘러보다가 불고기 버거와 핫크리스피 버거, 콜라 한 잔을 주문하고 십 분을 기다렸다.

그러고 보면 자주 볼 수 없는, 먹으려면 마음먹고 가야 하는 곳 중 한 곳이었다.

여기서는 문경 시내도 이 정도 거리가 걸린다.

버거는 결국 집에 와서 먹었다.

따뜻할 때 먹고 싶었는데 배가 불러서 도저히 못 먹겠더라.

그날은 그 메뉴로 하루를 해결했다.

그러고 보면 그 봄에 내가 먹은 밥 중에 제대로 차려 먹은 게 몇 끼 안 됐다.

아침은 믹스커피, 점심은 현장에서 싸 간 것, 저녁은 막걸리와 라면.

그 패턴이 몇 달 이어지니 몸이 가벼워진 것 같기도 하고 그냥 빠진 것 같기도 했다.

산을 타고 땀을 쏟으니 살은 빠졌는데 몸이 좋아진 건 아니었다.

좋은 공기 마시고 좋은 환경에 있으면 저절로 건강해질 줄 알았는데 그렇게 되지 않더라.

결국 자기 관리는 어디에 살든 자기가 해야 하는 거였다.

 



■ 중국집 두 개가 붙어 있는 동네

자주 가던 집은 상주 화북에 있었다.

그 동네에 가면 중국집 두 개가 나란히 붙어 있다.

원래는 오른쪽 집에 갔는데 얼마 전에 갔던 데라, 그날은 왼쪽 집으로 들어갔다.

내 입에는 둘 다 맛있었다.

기본 짬뽕이 육천 원, 곱빼기가 칠천 원이었다.

앞으로는 보통을 시켜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그 집에서 했다.

예전에는 곱빼기를 먹고 밥까지 말아 먹고 완뽕을 했는데, 이제는 곱빼기도 다 못 먹는다.

완뽕이라는 건 국물까지 한 방울 안 남기고 비우는 걸 말한다.

젊을 때는 그게 당연했고, 그걸 못 하면 그 집이 이상한 거라고 생각했다.

양이 줄었나 싶었지만 아마 나이 때문일 거다.

원래 중국집은 둘이 가서 짬뽕과 짜장을 시켜 나눠 먹어야 제맛인데, 이제 그러지도 못한다.

혼자 가서 한 그릇을 비우지도 못하고 나오는 날이 생기니, 중국집 가는 재미가 예전 같지 않았다.

그래도 그 집은 한동안 꾸준히 갔다.

혼자 들어가 짬뽕 한 그릇 시켜놓고 앉아 있으면 아무도 나한테 말을 걸지 않았다.

시골 식당은 대개 아는 사람들끼리 모여 앉아 떠드는 분위기인데, 그 소리를 배경으로 두고 혼자 먹는 밥이 생각보다 괜찮았다.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소리와 주방에서 불 쓰는 소리, 옆자리 어르신들 얘기 소리.

그런 걸 들으면서 국물을 떠먹고 있으면 하루가 정리되는 느낌이 들었다.

사람 하나 없는 길을 삼십 분 달려서 국물 있는 밥 한 끼를 먹고 돌아오는 그 왕복이, 그 시절 나한테는 제대로 된 휴식이었다.

 

중국집이 두개가 붙어있다. 상주 화북



■ 혼자 먹는 밥에 대하여

그 무렵에 알게 된 게 하나 있다.

혼자 먹는 밥을 아무렇게나 먹으면 사람이 빨리 상한다는 것이다.

라면으로 때우고 안주로 저녁을 대신하는 날이 길어지면 몸보다 마음이 먼저 처진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쯤은 일부러 차를 몰고 나가 제대로 된 한 그릇을 먹었다.

누가 보면 그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냐 싶겠지만, 혼자 지내는 사람한테는 그 한 번이 한 주를 버티게 한다.

그 시절 내가 나한테 해준 유일한 관리였다고 해도 될 것 같다.

그렇게 밥을 먹고 돌아오면 마당에서 팔복이가 뛰어나왔다.

차 문을 열면 먼저 내 손 냄새를 맡았고, 봉지를 들고 있으면 그 봉지를 한참 봤다.

먹으라고 할 때까지는 절대 건드리지 않는 녀석이라 늘 그렇게 기다렸다.

결국 그 봄의 내 하루는 산에서 몸을 쓰고, 저녁에 국물 있는 걸 먹고, 마당에서 그 녀석과 잠깐 앉아 있다 들어가는 게 전부였다.

단조롭기 짝이 없는 일상인데 그때가 나는 꽤 좋았다.

 




"Success is not final, failure is not fatal: it is the courage to continue that counts."

(성공이 끝이 아니고 실패가 치명적인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계속해 나가는 용기다.)

 

영국의 정치인 윈스턴 처칠은 젊은 나이에 해군 장관 자리까지 올랐다가 1915년 갈리폴리 상륙작전이 참담하게 실패하면서 그 자리에서 물러났고, 한동안 정치 무대에서 밀려나 있었다.

이후 그는 변두리에서 조용히 때를 기다리며 유럽의 정세를 계속 들여다보았고, 전쟁이 닥쳐오자 예순이 훌쩍 넘은 나이에 총리로 불려 나가 전시의 영국을 이끌었다.

위의 말은 그 파란만장한 시절을 모두 겪은 그의 생애를 요약하는 문장으로 널리 인용돼 왔다.

 

—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 1874~1965). 영국의 정치인·작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총리.

 

한 번의 성공으로 끝나는 일도 없고, 한 번의 실패로 끝나는 일도 없다는 뜻이다.

그 사이를 메우는 건 결국 다음 자리로 발을 옮길 수 있느냐인데, 그 발은 평소에 자기를 건사해 둔 사람에게만 떨어진다.

거창한 각오보다 매일 제때 먹고 자고 몸을 움직이는 쪽이, 때가 왔을 때 일어설 힘을 남겨두는 법이다.

 

삼십 분을 달려 국물 한 그릇을 먹고 돌아오던 그 왕복도, 지금 보면 그런 일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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