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소소한 일상

[약초 공장] 벚꽃길 끝의 도라지밭

by 사람들생각 2025. 3. 16.

▣  옮겨온 글 ▣

예전 블로그에 써두었던 글을 옮겨 왔다. 문장은 그때 그대로 두고, 읽기 편하게 조금만 매만졌다.


 

그 시절을 통틀어 가장 선명하게 남아 있는 하루를 꼽으라면, 나는 상주로 도라지를 캐러 갔던 날을 고른다.

일 자체는 그해 가장 고된 축에 들었는데, 이상하게 기억에 남은 건 고생이 아니라 그날의 빛이다.

사람 기억이라는 게 그렇더라.

그날 일을 떠올리면 허리 아픈 것보다 먼저 분홍색이 올라온다.




■ 농사나 짓지, 라는 말

먼저 한마디 해두고 싶은 게 있다.

나도 시골 태생이라 자연을 가까이 두고 자랐다.

그런데 아버지는 공무원이셨고 어머니는 미용실을 하셨으니, 집안에서 농사를 지은 건 아니었다.

방학 때마다 안동 임동에 사시던 이모님 댁에 놀러 가서 거들던 게 내가 해본 농사일의 전부였다.

그러니 농사일이 힘들다는 건 안다고 생각했다.

요즘 도시에서 일이 잘 안 되면 다 때려치우고 시골 가서 농사나 짓지, 하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도시에서 안 되는 사람이 농촌에서 잘될 것 같냐고 되묻고 싶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농사일이 몇 배로 힘들다는 건 조금만 해보면 뼈저리게 느낄 거다.

그러니까 시골에서 평생 농사 짓는 어르신들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마구 든다.

도시든 농촌이든 결국 열심히 하는 사람만 버티는 거라는 걸, 나는 그 봄에 다시 배웠다.

 

벚꽃길을 지나..



■ 트럭 짐칸에서 본 벚꽃

두충 작업이 한창이던 시기에 도라지 작업이 같이 걸렸다.

한쪽에서는 산에 올라 껍질을 벗기고, 다른 쪽에서는 밭으로 나가 도라지를 캐는 식이었다.

사월 어느 날, 상주에 있는 밭으로 가는 날이었다.

전날 저녁에 미리 들었다.

내일은 도라지라고, 아침에 좀 일찍 나오라고.

도라지밭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면서 괜히 기대가 됐다.

새벽같이 모여 트럭에 올라탔고, 짐칸에 자리를 잡고 앉으니 아직 해도 다 뜨지 않은 길이 뒤로 밀려 나가기 시작했다.

짐칸에는 빈 박스가 잔뜩 실려 있었고, 우리는 그 사이사이에 끼어 앉았다.

바람이 꽤 차가워서 다들 목을 움츠리고 있었는데, 해가 산 위로 올라오면서 등부터 조금씩 따뜻해졌다.

한참을 달리다 어느 길목으로 들어서는데, 양옆 가로수가 전부 벚나무였다.

그게 그때 딱 만발이었다.

터널처럼 이어진 분홍빛 사이를 트럭이 통과하는 동안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바람에 꽃잎이 날려서 짐칸까지 들어왔고, 누군가 어깨에 붙은 꽃잎을 떼어 옆 사람한테 던졌다.

오늘 하루도 고되겠구나 싶으면서도 괜히 기분이 좋아지던, 그런 아침이었다.

도시에 살 때는 벚꽃을 주말에 사람들 틈에 끼어 멀리서 한 번 보고 마는 정도였다.

그날은 그 꽃길 한가운데를 일하러 가는 차에 실려 지나갔다.

구경하러 간 게 아니라 일하러 가는 길에 지나친 꽃이 왜 그렇게 오래 남는지 모르겠다.

아마 그 꽃을 보러 간 게 아니었기 때문일 거다.

보려고 간 자리에서 본 건 사진으로 남고, 지나가다 본 건 기억으로 남는다.

 

도라지 밭



■ 오백 평 도라지 밭

현장에 도착해서 밭을 보는 순간 솔직히 숨이 턱 막혔다.

오백 평쯤 된다고 들었는데, 숫자로 들을 때와 눈으로 볼 때가 완전히 달랐다.

고생할 줄 알고 갔지만 밭이 생각보다 많이 컸다.

푸릇푸릇하게 올라온 게 도라지 싹이었다.

저걸 전부 사람 손으로 캐야 하나 싶어서 마음이 먼저 무거워졌는데, 다행히 그런 방식은 아니었다.

트랙터가 먼저 들어갔다.

뒤에 기계를 장착하고 땅을 파고 지나가면 땅속에 있던 도라지가 흙 위로 그대로 캐어져 나왔다.

난생처음 보는 거라 엄청 신기했다.

뒤집는 건 기계가 하고 고르는 건 사람이 했다.

눈으로 보고 손으로 집어내는 일은 아직 기계가 못 하는 일이라고, 옆에서 누가 그랬다.

문제는 양이었다.

남자 열 명이 붙어서 작업을 하는데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회색 티를 입고 열심히 하는 척하는 팀장은 하루면 다 끝난다고 했는데, 이걸 하루에 어떻게 끝내나 싶었다.

그 사람 말에는 언제나 처럼 뻥이 섞여 있었다.

그래도 그 말을 들으면 손이 조금 빨라지는 건 사실이었다.

트랙터가 지나간 자리에서는 흙 냄새가 확 올라왔다.

뿌리가 통째로 드러난 밭이라 발을 디딜 때마다 푹푹 빠졌고, 장화 바닥에 흙이 두껍게 붙어 걸을 때마다 무거웠다.

도라지는 생각보다 잘 부러져서 뿌리 밑동을 잡고 조심스럽게 들어 올려야 했다.

말로 하면 쉬운데 하루 종일 허리를 굽히고 있는 일이었다.

한 고랑을 끝내고 허리를 펴면 척추에서 소리가 날 정도였다.

먼저 내려와 일을 시작한 귀농 귀촌 선배들을 보니 대단하다는 말밖에 안 나왔다.

나도 일이라면 나름 열심히 하는 편인데 힘에 부쳐서 도저히 따라가지 못했다.

일을 오래 한 분들은 손이 빠른 게 아니라 낭비가 없었다.

허리를 한 번 굽혀서 한 개를 집는 사람과 한 번 굽혀서 세 개를 집는 사람의 차이가, 하루가 끝날 때쯤 엄청나게 벌어졌다.

옆 고랑에서 일하시던 분이 그걸 보시고 허리를 아예 펴지 말고 낮은 자세를 유지하는 게 덜 힘들다고 알려주셨다.

반쯤 앉은 자세로 발만 옮기면서 가는 건데, 해보니 정말 덜 아팠다.

그런 걸 아는 사람들이 그 밭에 가득 있었다.

나는 그걸 보면서 흉내를 내보려 했는데 그날은 끝까지 안 됐다.

고랑이 길어서 한 줄을 끝내는 데 한참이 걸렸다.

중간쯤 가면 앞도 뒤도 똑같아 보여서 내가 얼마나 왔는지 가늠이 안 됐다.

그럴 땐 그냥 눈앞의 흙만 보고 손을 움직였다.

장갑 낀 손이 흙투성이가 되고, 손톱 밑으로 흙이 들어가 저녁에 아무리 씻어도 까맣게 남아 있었다.

 

우리가 캔 도라지에 막걸리를 곁들이다



■ 그날 그 막걸리

아침을 먹고 나왔는데도 일 좀 하다 보니 배가 얼마나 고파지는지, 자꾸 시간만 보게 됐다.

점심때가 되자 다들 연장을 내려놓고 근처 식당으로 갔다.

흙 묻은 옷 그대로 들어가 앉았는데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다.

밥상에 금방 캔 도라지를 씻어서 같이 올려줬다.

막 캔 도라지는 생각보다 아리지 않고, 씹으면 서걱거리면서 끝에 쌉싸름한 맛이 돈다.

거기에 막걸리를 두어 잔 마시고 밥을 두 공기 먹고 나니 그제서야 살 만했다.

그날 그 막걸리가 꿀맛이었다.

시장이 반찬이라는 말도 있지만 그날 그 식당에서 먹은 밥은 앞으로도 생각이 많이 날 것 같았다.

좋은 데 가서 비싼 걸 먹어도 그 맛은 안 나더라.

힘들게 일한 날일수록 밥이 맛있다는 그 단순한 사실을, 나는 마흔이 넘어서 몸으로 직접 경험 했다.

밥을 먹었으니 또 일하러 가야지, 하면서 다들 일어났다.

그 말이 그 자리에서 제일 자연스러운 말이었다.



 

■ 다 못 싣고 돌아온 날

오후에는 해가 제법 따가웠다.

모자를 눌러쓰고 고개를 숙이고 있으면 목덜미가 따끔거렸고, 봄볕이 생각보다 세다는 걸 그날 알았다.

박스가 금방 찼고, 가득 찬 박스를 밭둑까지 들고 나르는 일이 또 만만치 않았다.

흙이 붙은 도라지가 들어 있으니 한 박스가 상당했고, 발이 빠지는 밭에서 그걸 들고 걸으면 종아리가 떨렸다.

몇 번 나르다 보니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두 사람씩 양쪽을 잡고 옮기기 시작했다.

말을 맞춘 것도 아닌데 그렇게 됐다.

용달차가 세 대 갔는데 세 차에 가득 싣고도 다 실을 수가 없었다.

당연히 그날 작업도 마무리를 못 했다.

결국 다음 날도 현장에 가서 오전까지 도라지를 캤다.

해가 기울 무렵 짐칸에 올라타니 온몸이 흙냄새였다.

돌아오는 길에 아침의 그 벚꽃길을 다시 지났다.

같은 길인데 아침에 본 것과 색이 완전히 달랐다.

저녁 햇살이 비스듬히 들어오니까 꽃잎이 분홍이 아니라 거의 주황빛으로 보였다.

하루 종일 끊어질 것 같던 허리가 그 길을 지나는 동안에는 좀 덜 아픈 것 같았다.

서울 윤중로 벚꽃도 예쁘고 볼 것도 많지만 거기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가기가 힘들다.

정말 벚꽃길이 좋다면 이 길을 한번 지나봐야 한다.

그 길을 지나면서 시골로 내려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도 말을 안 하는데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다들 비슷한 걸 보고 있다는 게 느껴지는, 그런 침묵이었다.

집에 돌아와 마당에 들어서니 팔복이가 흙냄새 때문인지 평소보다 더 오래 내 다리 주변을 맴돌았다.

수돗가에서 손부터 씻었는데 아무리 비벼도 손톱 밑 흙은 그대로였다.

그날 밤은 씻자마자 쓰러지듯 잠들었다.

 



■ 봄이라는 계절

도시에서 봄은 그냥 옷이 가벼워지는 계절이었다.

마트에 진열된 과일이나 채소를 보면서 계절을 실감하는 정도였다.

그런데 시골은 지천에 계절을 알리는 것들이 있으니 계절을 모른 척할 수가 없다.

벚꽃길을 하루에 두 번 지났고, 그 사이에 흙을 만졌고, 그 흙에서 나온 걸 그 자리에서 먹었다.

계절이라는 게 눈으로 보는 게 아니라 몸으로 통과하는 거라는 걸 그때 알았다.

그 뒤로 봄마다 벚꽃을 보면 꽃보다 먼저 그날 트럭 짐칸이 떠오른다.

가져온 도라지는 다음 날부터 공장에서 씻고 다듬고 선별하는 작업으로 이어졌다.

굵기별로 나누고 상한 걸 골라내는 일이라 또 며칠이 꼬박 들었다.

밭에서 캐는 건 이틀이지만 상품이 되기까지는 그 뒤가 훨씬 길다는 걸 그때 배웠다.

흙을 털고 씻어서 널고, 마른 걸 다시 골라내고, 상처 난 건 따로 빼고.

그 과정을 다 지나야 겨우 값을 받을 수 있는 물건이 됐다.

나중에 내가 직접 물건을 만들어 팔게 됐을 때, 이 순서를 몸으로 알고 있었던 게 큰 도움이 됐다.

밭에서 나오는 것과 사람 손에 들어가는 것 사이에 얼마나 많은 손이 들어가는지를, 그 봄에 다 봤기 때문이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옛날 우리 농촌에서는 봄에 무엇을 심을지를 두고 온 집안이 머리를 맞댔다.

땅을 고르고 씨를 묻은 다음에는 여름 내내 김을 매고 물을 대며 기다리는 일만 남았고, 가을이 되면 그 땅에서는 봄에 심은 바로 그것이 나왔다.

콩을 심어놓고 가을에 팥이 나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었고, 아무것도 심지 않은 밭에서 무언가 나기를 기다리는 사람도 없었다.

그 당연한 이치를 보고 살던 사람들이 자식이나 이웃에게 건네던 말이 이 속담으로 남았다.

 

— 한국 속담.

 

뿌린 대로 거둔다는 뜻이면서, 동시에 뿌리지 않으면 거둘 것도 없다는 뜻이다.

가을에 손에 쥐는 것은 그 계절의 운이 아니라 봄에 무엇을 어떻게 묻어두었느냐로 거의 정해진다.

그러니 결과를 바꾸고 싶으면 거두는 때가 아니라 심는 때를 들여다봐야 하고, 그 심는 때는 늘 생각보다 일찍 지나간다.

 

그해 봄 내가 밭에서 주워 담은 것도 결국 누군가 몇 해 전에 묻어둔 씨였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