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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일상

[농민사관학교] 조금씩 내공이 쌓이다!

by 사람들생각 2025. 3. 31.

■ 옮겨온 글

예전 블로그에 써두었던 글을 옮겨 왔다. 문장은 그때 그대로 두고, 읽기 편하게 조금만 매만졌다.




겨울에 눈이 오면 길이 먼저 바뀐다.

읍내로 나가는 길은 금방 치워지는데 산쪽 길은 하루쯤 그대로 있다.

그 하루가 시골 사는 사람에게는 꽤 긴 하루다.

택배도 늦고 약속도 밀리고, 바깥에 나갈 일이 있으면 아침부터 길을 살핀다.

도시에 살 때는 눈이 오면 예쁘다고 생각했다.

여기서는 눈이 오면 길을 생각한다.

같은 것이 사는 자리에 따라 전혀 다르게 보인다.

 



■ 원서를 넣고 나서

원서를 넣고 며칠 지나 면접날짜에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이 왔다.

서류만 보고 뽑는 게 아니었다.

면접이 있다는 걸 알고 나니 기분이 조금 묘했다.

나이 사십 중반에 면접이라는 걸 또 보게 됐구나 싶었다.

서울에서 사업할 때는 내가 면접을 보는 쪽이었다.

사람을 앉혀놓고 물어보는 자리에 있었다.

그 자리와 앉아서 대답하는 자리는 완전히 다르다.

그걸 아는 사람은 묻는 쪽일 때 조금 다르게 묻는다.

그때 내가 그렇게 물었는지는 모르겠다.

아마 아니었을 것 같다.

면접 날짜를 받아놓고 며칠은 괜히 신경이 쓰였다.

무슨 옷을 입고 가야 하나 하는 것부터 걸렸다.

작업복 말고 입을 옷이 몇 벌 없었다.

서울에서 입던 양복이 아직 옷장에 있었는데, 꺼내서 입어보니 몸에 안 맞았다.

몇 해 동안 몸이 달라진 거였다.

그걸 보고 좀 웃었다.

그 옷이 안 맞는다는 게 그동안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를 말해주는 것 같았다.

결국 깔끔한 점퍼를 입고 갔다.

농사짓는 사람이 농업인 교육 면접에 가는 거니 그게 맞다고 생각했다.

면접장에 가보니 대기하는 분들이 여러 명 있었다.

연배가 나보다 위인 분들이 많았다.

걱정했던 것과 반대였다.

젊은 사람들 사이에 끼어 앉을까 봐 신경을 썼는데, 앉아 있는 분들이 대개 나와 비슷하거나 더 위였다.

그 자리에서 마음이 편해졌다.

각자 자기 밭 얘기, 자기 작목 얘기를 하고 있었다.

무슨 작목 하시느냐는 질문이 인사말이었다.

그 인사말이 도시의 무슨 일 하시느냐보다 훨씬 구체적이었다.

한 어르신은 사과를 하신다고 했다.

한 분은 고추를 하신다고 했다.

나는 산야초를 가공한다고 했더니 그게 뭐냐고 물으셨다.

설명을 하려니 짧게 말하기가 어려웠다.

산에서 나는 걸 따서 말리고 끓여서 담는다고 했다.

그러니 그걸로 먹고사느냐고 물으셨다.

먹고산다고 했다.

그 짧은 대화에서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아직 흔하지 않다는 걸 다시 알았다.

흔하지 않다는 건 두 가지 뜻이었다.

설명할 일이 많다는 뜻이고, 경쟁이 적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 두 가지를 같이 안고 가는 게 내 일이었다.

 



■ 떨리지 않았던 이유

그런데 면접을 보러 가면서 많이 떨리지는 않았다.

그게 좀 의외였다.

떨릴 줄 알았는데 안 떨렸다.

왜 그런가 생각해보니 이유가 분명했다.

내가 하고 있는 걸 묻는 자리였으니까.

모르는 걸 꾸며서 말해야 하는 자리면 떨린다.

해본 걸 말하는 자리는 안 떨린다.

그때 나는 몇 해째 산야초를 따서 가공해 팔고 있는 사람이었다.

공장을 지어봤고 인증을 받아봤고 법인을 세워봤다.

잘했다는 얘기가 아니다.

해봤다는 얘기다.

해본 사람은 질문을 받으면 답이 아니라 장면이 떠오른다.

장면이 떠오르면 말이 나온다.

꾸미지 않아도 되니까 막히지 않는다.

그 차이를 그날 알았다.

그리고 또 하나 있었다.

떨어져도 크게 잃을 게 없었다.

떨어지면 이듬해에 다시 넣으면 되고, 그 사이에 내 일은 그대로 돌아간다.

그 자리에 내 생계가 걸려 있지 않았다.

사람이 제일 떨리는 건 그 자리가 마지막 자리일 때다.

서울에서 투자를 받으러 다닐 때가 그랬다.

그 자리에서 안 되면 다음이 없었으니까.

그때는 손이 떨렸다.

돌아갈 데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은 같은 자리에서 다르게 앉아 있는다.

몇 해 걸려 돌아갈 데를 만들어둔 게 그 자리에서 값을 한 셈이었다.




■ 질문은 하나였다

면접장에 들어가서 받은 질문은 간단했다.

농업과 관련된 사업을 어떻게 차별화되게 유지하고 운영할 것인가.

그 한 줄이었다.

질문을 듣고 잠깐 생각했다.

차별화라는 말이 좀 걸렸다.

그 말을 들으면 보통 남이 안 하는 걸 하겠다는 대답을 떠올린다.

새로운 품목, 새로운 방식, 새로운 포장.

그런데 나는 그런 대답을 할 처지가 아니었다.

내가 만드는 건 새로운 게 아니었다.

산에 나는 걸 따서 말리고 끓이고 담는 일이었다.

그건 옛날부터 사람들이 하던 일이다.

그래서 다르게 말했다.

그 전에 잠깐 생각한 게 있다.

차별화라는 말을 잘못 쓰면 거짓말이 된다.

없는 걸 있다고 해야 하니까.

나한테 없는 건 없다고 하고, 있는 걸 말하는 쪽이 낫다고 봤다.



 

■ 내가 한 대답

남이 안 하는 걸 하겠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대신 내가 그때까지 해온 걸 그대로 말씀드렸다.

원재료를 어디서 어떻게 구하는지.

공장을 어떤 기준으로 지었는지.

의무가 아닌 인증을 왜 받았는지.

거래처가 왜 법인을 요구했고 그래서 어떻게 했는지.

그 얘기를 하면서 한 가지를 분명히 말했다.

내가 가진 차별점은 물건이 아니라 갖춰놓은 것이라고.

같은 산야초로 만든 물건이 시장에 여러 개 있다.

맛으로 크게 차이 나기 어렵다.

그런데 해썹 받은 시설에서 만든 것과 안 받은 데서 만든 것은 다르다.

법인 이름으로 세금계산서가 나가는 것과 개인이 현금으로 파는 것도 다르다.

그 차이가 거래처 앞에서 실제로 문을 열고 닫는다는 걸 내가 겪어봤다고 말씀드렸다.

그러니 앞으로도 차별화는 그 방향으로 하겠다고 했다.

자격을 쌓아서, 아무나 못 들어가는 데로 들어가겠다고.

그 말을 하면서 스스로도 정리가 됐다.

말로 해보기 전까지는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줄도 몰랐다.

그 얘기를 하는 동안 심사위원 쪽에서 고개를 끄덕이시는 게 보였다.

그게 통과 신호였는지는 모른다.

다만 그 자리에서 내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거짓말을 안 하면 질문이 더 들어와도 겁이 안 난다.

꾸며서 말한 사람은 다음 질문이 들어오면 무너진다.

한 겹만 벗기면 밑이 비어 있으니까.

그걸 아는 사람은 애초에 꾸미지 않는다.

질문이 하나 더 들어왔던 것 같다.

교육 시간을 지킬 수 있겠느냐는 쪽이었다.

생산이 바쁜 철에는 어떻게 하겠느냐고.

그 질문에도 솔직하게 답했다.

못 오는 날이 생길 수도 있는데, 그러면 그만큼 다른 날에 채우겠다고.

안 빠지겠다고 큰소리를 치지는 않았다.

지킬 수 없는 약속을 그 자리에서 하면, 그게 나중에 내 발목을 잡는다.

 



■ 질문의 뜻

나중에 그 질문을 다시 생각해봤다.

왜 그걸 물었을까.

교육을 받으러 오겠다는 사람에게 사업 운영 계획을 묻는 게 처음에는 좀 이상했다.

배우러 오는 사람이면 모르는 게 당연한데.

그런데 몇 해 지나서 알았다.

그건 내가 뭘 아는지를 묻는 질문이 아니었다.

배운 걸 쓸 자리가 있는 사람인지를 묻는 질문이었다.

교육에는 돈과 사람이 들어간다.

도에서 세운 기관이니 그 돈이 세금이다.

그러면 수료하고 나서 실제로 농업 현장에서 쓸 사람을 앉히는 게 맞다.

배워서 그냥 두는 사람보다, 배워서 바로 써먹을 사람.

그 질문은 그걸 가려내는 질문이었다.

그걸 알고 나니 그 자리가 다르게 보였다.

나는 운이 좋았다.

이미 사업을 하고 있었으니 쓸 자리가 분명했다.

그런데 운이라고만 할 수도 없었다.

그 몇 해 동안 벌여놓은 일이 있었으니 쓸 자리가 생긴 거다.

가만히 있었으면 쓸 자리가 없었다.

그러니 기회 앞에 설 자격은 미리 만들어두는 것이지, 기회가 왔을 때 만드는 게 아니었다.

그 얘기를 몇 번 되풀이하게 되는데, 몇 해 동안 반복해서 겪었으니 어쩔 수 없다.

같은 교훈이 여러 번 왔다는 건 내가 한 번에 못 배웠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쓸 자리가 있다는 건 배우는 쪽에도 좋았다.

돌아와서 바로 써볼 수 있으니 머리에 남는 게 달랐다.

공장이 없는 상태로 가공 교육을 들었으면 반도 못 알아들었을 것이다.

내 공장에서 겪어본 문제가 있으니 강의에서 그 얘기가 나올 때 귀가 열렸다.

배우는 건 비어 있는 그릇에 담기는 게 아니라, 걸려 있던 자리에 가서 붙는 거였다.

 



■ 준비한 것과 안 한 것

그날 내가 특별히 준비해 간 건 없었다.

말을 외워 가지도 않았고 자료를 만들어 가지도 않았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준비는 몇 해 동안 해온 거였다.

면접 전날 벼락치기로 되는 자리가 아니었다.

내가 한 일들이 그 자리의 답이었다.

그래서 그 뒤로 면접이라는 걸 다르게 생각하게 됐다.

면접은 그날 하는 게 아니다.

그 자리에 앉기 전까지 몇 해 동안 한 걸 요약해서 말하는 자리다.

요약은 연습하면 되는데 요약할 내용은 연습으로 안 생긴다.

그러니 면접을 잘 보려면 면접장에 가기 전에 할 일이 있다.

서울에서 사람을 뽑을 때 나는 그걸 몰랐다.

말 잘하는 사람을 뽑았다.

말 잘하는 사람과 일 잘하는 사람이 같지 않다는 걸 몇 번 겪고 알았다.

그래서 질문을 바꿔야 했는데, 그때는 어떻게 바꿔야 할지를 몰랐다.

지금은 알 것 같다.

해본 걸 물으면 된다.

해본 사람은 장면을 말하고, 안 해본 사람은 생각을 말한다.

듣고 있으면 그 둘은 전혀 다르게 들린다.

그래서 요즘 사람을 볼 때 그걸 본다.

무엇을 아느냐보다 무엇을 해봤느냐.

해본 사람은 실패한 얘기도 같이 한다.

안 해본 사람은 성공한 얘기만 한다.

실패한 얘기가 섞여 있으면 그 사람 말은 대개 사실이다.

그 기준 하나로 사람 보는 눈이 꽤 좋아졌다.

나도 그 뒤로 말할 때 실패한 얘기를 섞게 됐다.

감출 게 아니라는 걸 알았으니까.

망해본 얘기를 하면 상대가 경계를 조금 푼다.

완벽한 사람 앞에서는 아무도 자기 사정을 말하지 않는다.

그러니 실패한 이력이 꼭 빼야 할 칸은 아니었다.

어디에 적느냐에 따라 그게 흠이 되기도 하고 근거가 되기도 했다.

망해본 사람이 다시 일어나 몇 해를 버티고 있다는 건 꽤 센 근거다.

그걸 숨기면 그 근거까지 같이 사라진다.

 



■ 상대를 알고 나를 아는 것

그 면접을 준비하면서 한 가지는 알아봤다.

그 기관이 어떤 데인지, 왜 만들어졌는지.

경상북도가 도내 농업인을 교육하려고 세운 곳이고, 대학에 위탁해서 과정을 운영한다는 것.

그걸 알아보니 면접에서 무엇을 중요하게 볼지가 짐작이 됐다.

도에서 하는 거면 도내 농업인에게 실제로 도움이 되는지를 볼 것이다.

대학에 위탁하는 거면 과정을 따라올 수 있는지를 볼 것이다.

그 두 가지에 맞춰서 내 얘기를 하면 되는 거였다.

그게 꾀를 쓴 게 아니다.

상대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알고 가는 것과 모르고 가는 것의 차이다.

모르고 가면 내가 하고 싶은 말만 한다.

알고 가면 상대가 듣고 싶은 말 중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을 고른다.

그 차이가 결과를 가른다.

그걸 그 무렵에 서류를 쓰면서 여러 번 배웠다.

서류도 같다.

내가 쓰고 싶은 걸 쓰면 떨어지고, 그쪽이 보려는 걸 쓰면 붙는다.

거짓을 쓰라는 얘기가 아니다.

있는 것 중에 무엇을 앞에 놓을지를 정하는 일이다.

그걸 알고 나서 서류를 쓰는 순서를 바꿨다.

전에는 앞에서부터 차례로 채웠다.

그 뒤로는 그쪽이 제일 보려는 칸을 먼저 찾아서 거기부터 채웠다.

그 칸을 제대로 채워놓고 나머지를 맞췄다.

그게 서류 쓰는 법이라는 걸 아는 데 몇 해가 걸렸다.

혼자 알아낸 것도 아니다.

옆에서 쓰시는 걸 몇 번 보고 알았다.




■ 합격 통보

며칠 뒤에 합격 연락을 받았다.

받고 나서 생각보다 기분이 좋았다.

무슨 대학에 붙은 것도 아니고 자격증을 딴 것도 아닌데 좋았다.

왜 좋았나 생각해보니, 누가 나를 교육받을 사람으로 봐줬다는 게 좋았던 것 같다.

그 전 몇 해 동안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었다.

서울에서 내려온 사람, 밭에서 뭐 하는 사람.

그렇게 불리던 사람이 교육받을 농업인으로 분류된 거였다.

분류가 바뀌면 사람 기분이 달라진다.

그걸 그해에 몇 번 경험했다.

법인 등기부에 이름이 올라갔을 때도 그랬고 이번에도 그랬다.

종이 위에서 내 자리가 바뀌면 실제로 기분이 바뀐다.

그 기분이 다음 달 일하는 걸 바꾼다.

그러니 종이가 종이가 아니다.

그러고 보면 그 몇 해 동안 내가 받은 건 전부 분류였다.

귀농 지원 대상자, 공장을 가진 사람, 인증을 받은 시설, 법인의 대표, 교육을 받는 농업인.

하나씩 붙을 때마다 내가 설 수 있는 자리가 늘었다.

그 자리들이 모여서 결국 지금의 자리가 됐다.

그러니 분류라는 걸 가볍게 볼 게 아니었다.

 



■ 들어가기 전에 세어본 것

합격 통보를 받고 나서 제일 먼저 한 일은 달력을 꺼내는 거였다.

화요일과 금요일, 한 번에 여덟 시간.

그 날짜를 달력에 전부 찍어놨다.

찍어놓고 보니 꽤 많았다.

그 날짜마다 공장이 비는 거였다.

그걸 어떻게 메울지를 그때부터 생각했다.

생산 순서를 바꿔야 했고, 출고 날짜를 조절해야 했고, 거래처에 미리 말씀을 드려야 했다.

그 준비를 한 달 가까이 했다.

배우러 가는 준비라는 게 책을 사는 게 아니라 그런 거였다.

비울 자리를 만드는 일.

그게 되어 있지 않으면 몇 번 가고 그만두게 된다.

실제로 그렇게 중간에 못 나온 분들이 있었다는 얘기를 나중에 들었다.

배울 마음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비울 자리를 못 만들어서였다.

그래서 나는 누가 교육을 받겠다고 하면 그 얘기를 먼저 한다.

그 시간에 하던 일을 누가 할지 정해두셨냐고.

집에서 받은 질문이 결국 제일 중요한 질문이었던 거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정해둔 게 있었다.

가기로 한 날은 무슨 일이 있어도 간다는 것.

빠질 이유는 매주 생긴다.

비가 오고, 주문이 들어오고, 몸이 피곤하다.

그 이유를 하나씩 받아주기 시작하면 한 달이면 안 가게 된다.

그래서 처음에 선을 그었다.

생산이 밀리면 밤에 하고, 가는 날은 간다.

그 선을 그어둔 게 그 한 해를 버티게 했다.

물론 그 선을 못 지킨 날도 있었다.

그건 그때 어쩔 수 없었던 날들이었다.

그래도 그 선 덕에 대부분은 갔다.

비가 와도 갔고, 몸이 무거운 날도 갔다.

가서 앉아 있으면 그날은 그걸로 된 거였다.

머리에 다 안 들어오는 날도 있었다.

들어오지 않아도 그 자리에 있었던 게 남았다.

교육이라는 게 내용만 남는 게 아니라, 그 자리에 있었던 사실이 남는다는 걸 그 한 해에 알았다.

그러니 그 한 해에 제일 큰 일은 배운 게 아니었다.

가기로 한 날 간 것.

그게 전부였다.

 




"知彼知己 百戰不殆"

(지피지기 백전불태)

 

『손자병법』 모공편에 나오는 말이다.

손자는 싸움을 시작하기 전에 양쪽을 다 알아야 한다고 썼다.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고, 나만 알고 상대를 모르면 이기고 지는 것이 반반이며, 상대도 나도 모르면 싸울 때마다 반드시 위태롭다고 했다.

오래 쓰이면서 이 말은 전쟁터만의 말이 아니게 되었다.

시험을 보는 자리, 물건을 파는 자리, 사람을 만나는 자리에도 그대로 들어맞았다.

 

— 『손자병법』 모공편.

 

상대가 무엇을 보려 하는지 알고, 내가 가진 것이 무엇인지 알면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모르고 들어가면 내가 하고 싶은 말만 하고 나오게 되고, 알고 들어가면 가진 것 중에서 무엇을 앞에 놓을지를 고를 수 있다.

그날 면접장에서 떨리지 않았던 것은 배짱이 좋아서가 아니었다.

 

그 자리가 무엇을 묻는 자리인지 알고 갔고, 내가 해온 것이 무엇인지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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