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옮겨온 글
예전 블로그에 써두었던 글을 옮겨 왔다. 문장은 그때 그대로 두고, 읽기 편하게 조금만 매만졌다.
새벽에 길을 나서면 공기 맛이 다르다.
낮에 맡는 것과 성분이 다른 것 같다.
차에 올라 창을 조금 열어두면 그 찬 기운이 얼굴에 들어온다.
그 덕에 눈이 떠진다.
들판에 안개가 깔려 있는 날은 길이 평소보다 좁아 보인다.
그런 날은 속도를 줄이고 천천히 간다.
시골 길은 급하게 가려고 하면 꼭 무언가 튀어나온다.

■ 화요일과 금요일
과정은 1년이었다.
화요일과 금요일, 주 2회였고 한 번 가면 여덟 시간을 들었다.
여덟 시간이라고 하면 하루 꼬박이다.
가는 시간과 오는 시간을 더하면 그 이틀은 통째로 비워야 했다.
그러니까 일주일에 이틀을 떼어서 한 해를 쓰는 거였다.
처음 달력에 찍어놓고 보니 그게 꽤 묵직했다.
그래도 시작은 설렜다.
새 가방을 하나 샀다.
공책이랑 볼펜을 넣고 다녔다.
작업복 주머니에 볼펜을 꽂고 다니던 사람이 공책을 들고 다니니 기분이 묘했다.
첫날은 길을 익히려고 일찍 나섰다.
경북전문대 가는 길을 미리 한 번 봐두려고 했다.
도착해서 보니 생각보다 일찍 왔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앉아 있었다.
강의실에 들어가기 전에 괜히 한 번 숨을 쉬었다.
강의실에 들어가니 책상이 줄로 놓여 있었다.
학교 책상이었다.
그 책상에 앉아보니 몸이 어색했다.
오래 서서 일하던 사람이 앉아 있으려니 엉덩이가 불편했다.
한 시간쯤 지나니 허리가 아팠다.
밭에서 하루 일하는 건 괜찮은데 의자에 여덟 시간 앉아 있는 게 더 힘들었다.
몸이 그렇게 길들어 있었던 거다.
그 사실도 그날 처음 알았다.
첫날 강사님이 돌아가면서 소개를 시키셨다.
무슨 작목을 하고 왜 왔는지.
내 차례가 와서 산야초 가공을 한다고 했다.
공장을 지어서 해썹을 받았고 법인으로 하고 있다고 했다.
그 말을 하고 나니 몇 분이 돌아봤다.
그 자리에서 그렇게 갖춰놓고 온 사람이 많지 않았던 것 같다.
그게 자랑스러웠던 건 아니다.
오히려 그 뒤로 더 조심하게 됐다.
갖춰놓은 사람이 모르는 소리를 하면 더 우습게 보인다.

■ 생산이 늦은 날
설렘은 몇 주면 끝난다.
그 뒤로는 그냥 일이었다.
문제는 생산 일정이었다.
산야초는 철이 있다.
나오는 철에 따서 바로 손질하고 말려야 한다.
그 철을 놓치면 그 해 원재료가 없다.
그러니 교육 날짜와 작업 날짜가 겹치는 일이 생겼다.
겹치면 어떻게 했냐 하면, 밤에 했다.
낮에 못 한 걸 밤에 하고, 다음 날 새벽에 길을 나섰다.
그게 한 해 동안 몇 번이었는지는 세지 않았다.
세면 더 힘들어질 것 같았다.
새벽길을 달리다 보면 눈꺼풀이 천근만근이었다.
사람이 졸리면 눈꺼풀에 무게가 생긴다는 걸 그때 알았다.
창을 열고 찬바람을 맞으면서 갔다.
그래도 안 되는 날은 길가에 차를 세웠다.
십 분쯤 눈을 붙이고 다시 갔다.
십 분이 꽤 길다는 걸 그 무렵에 알았다.
한 번은 길을 반쯤 가서 되돌아온 날도 있었다.
공장에서 전화가 왔다.
기계 쪽에 문제가 생겼다는 얘기였다.
그날은 결국 못 갔다.
차를 돌려서 돌아오는 길이 유독 길었다.
가지 못한 날은 그날 하루가 아깝다기보다, 한 해에 들어 있는 날 중 하나를 잃은 것 같았다.
한 해에 들어 있는 날은 정해져 있으니까.
그래서 그 뒤로는 가는 날 전날에 기계를 미리 한 번 봐뒀다.
그러면 적어도 기계 때문에 못 가는 일은 줄었다.

■ 강의실에서 조는 사람
그렇게 가서 앉아 있으면 결국 강의실에서 졸았다.
앞자리에 앉았다가 고개가 떨어진 적도 있다.
창피했다.
그래서 그 뒤로는 뒷자리에 앉았다.
뒷자리에 앉으면 또 더 졸린다.
결국 가운데쯤에 앉는 걸로 정했다.
졸음과 싸우면서도 들린 건 들렸다.
사람 머리가 묘해서, 자기한테 걸려 있는 얘기가 나오면 눈이 번쩍 떠진다.
내가 공장에서 겪은 문제가 강의에 나오면 잠이 달아났다.
그 순간을 위해 그 여덟 시간을 앉아 있는 거였다.
여덟 시간 중에 그런 순간이 몇 번 있었다.
그 몇 번이면 그날 값은 한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공책에 적는 법도 달라졌다.
처음에는 강사님 말씀을 다 적으려고 했다.
적다 보면 듣는 걸 놓쳤다.
몇 주 하고 나서 방식을 바꿨다.
내 공장에서 당장 해볼 수 있는 것만 적었다.
한 시간에 한 줄도 안 나오는 날이 있었다.
그런데 그 한 줄은 돌아와서 반드시 해봤다.
공책이 두꺼워지는 것보다 그게 나았다.
그러니 그 한 해 동안 공책에 적힌 줄은 백 줄도 안 됐을 것이다.
그런데 그 백 줄 중에 절반은 실제로 해봤다.
해보고 안 되는 것도 있었고 되는 것도 있었다.
안 되는 것도 해봤으니 안 된다는 걸 알게 됐다.
적어만 놓고 안 해본 줄이 제일 아깝다.
한 가지 예를 들면, 말리는 온도 얘기가 있었다.
낮은 온도로 길게 말리는 것과 높은 온도로 짧게 말리는 것의 차이.
그걸 듣고 돌아와서 같은 재료를 두 가지로 말려봤다.
색이 달랐고 향이 달랐다.
그 뒤로 품목마다 말리는 방식을 따로 정했다.
전에는 다 똑같이 말렸다.
한 줄 적어둔 걸 해봤더니 물건이 달라진 거였다.

■ 배운 것들
식품학과 과정이었으니 내용이 꽤 넓었다.
가공이 중심이었는데, 그것만 하지 않았다.
포장도 배웠다.
인터넷으로 파는 길도 배웠다.
대량생산 과정도 배웠다.
전 과정을 훑어주는 식이었다.
그게 나한테는 딱 맞았다.
나는 한 가지만 깊이 아는 게 필요한 사람이 아니었다.
혼자 다 해야 하는 사람이었으니, 전 과정을 얕게라도 아는 게 급했다.
만들고 담고 올리고 보내는 걸 다 내가 했으니까.
그중에 제일 눈이 뜨인 건 대량생산 쪽이었다.
그때까지 나는 손으로 만드는 양만 알았다.
많이 만들려면 손을 더 빨리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었다.
많이 만드는 건 순서를 바꾸는 일이었다.
한 가지를 끝내고 다음 걸 하는 게 아니라, 기다리는 시간에 다른 걸 해두는 것.
그 얘기를 듣고 공장에 돌아와서 작업 순서를 바꿔봤다.
같은 시간에 나오는 양이 늘었다.
손은 더 안 빨라졌는데 양이 늘었다.
그게 그 한 해에 배운 것 중에 제일 값이 나가는 거였다.
거기서 쓰는 말도 같이 배웠다.
수율이라는 말이 그중 하나였다.
원재료 얼마를 넣어서 완제품이 얼마 나오는지.
그걸 숫자로 보는 걸 그때 처음 했다.
그 전까지 나는 그걸 몰랐다.
많이 넣으면 많이 나오겠지 하는 정도였다.
계산해보니 품목마다 그 비율이 꽤 달랐다.
어떤 건 많이 넣어도 조금 나왔고, 어떤 건 그 반대였다.
그걸 알고 나서 값을 다시 매겼다.
그때까지 내가 매긴 값은 느낌이었다.
그 숫자를 보고 나서야 값에 근거가 생겼다.
거래처 사장님이 기계 얘기를 하실 때 못 알아듣던 그 숫자가 그거였다.
■ 포장 얘기
포장도 생각이 바뀌었다.
그 전까지 포장은 담는 거였다.
깨지지 않게, 새지 않게.
그게 포장의 전부라고 생각했다.
강의에서 들은 건 달랐다.
포장은 말을 하는 거라고 했다.
사는 사람이 물건을 보기 전에 포장을 본다.
포장을 보고 비싼 건지 싼 건지, 좋은 건지 아닌지를 먼저 판단한다.
그 판단이 맛을 보기 전에 끝난다는 얘기였다.
그 말을 듣고 내가 쓰던 포장을 떠올렸다.
튼튼하긴 했다.
그런데 아무 말도 안 하는 포장이었다.
그걸 바꿔야 한다는 걸 그때 알았다.
바로 바꾸지는 못했다.
돈이 들어가는 일이었으니까.
다만 바꿔야 한다는 걸 알고 있는 것과 모르고 있는 것은 전혀 다르다.
알고 있으면 기회가 왔을 때 바로 손을 쓴다.
그 기회가 몇 해 뒤에 왔다.
그리고 포장에 대해 한 가지 더 들었다.
크기와 단위를 정하는 게 포장의 절반이라는 얘기였다.
얼마씩 담아서 팔 것인가.
너무 크면 부담스러워서 안 사고, 너무 작으면 남는 게 없다.
그 균형을 품목마다 따로 잡아야 했다.
그 얘기를 듣고 돌아와서 내가 쓰던 단위를 다시 봤다.
아무 근거 없이 정해놓은 것이었다.
처음에 손에 잡히는 병을 쓴 거였고, 그게 몇 해 동안 그대로 갔다.
단위를 바꿔보니 손에 남는 게 달라졌다.
그런 걸 하나씩 손대는 재미가 있었다.
전에는 바꿀 데가 있는 줄도 몰랐다.
배우면 바꿀 데가 보인다.
바꿀 데가 보이면 손이 바빠진다.
한 해 동안 공장에서 바꾼 게 꽤 여러 가지였다.
그리고 바꿀 때 한꺼번에 바꾸지 않았다.
한 번에 두 가지 이상 바꾸면 뭐가 효과를 낸 건지 모른다.
그걸 공장 지을 때 겪었다.
그래서 하나 바꾸고 몇 주 보고, 또 하나 바꿨다.
느리지만 그렇게 하면 원인을 안다.
원인을 알면 다음에 또 쓸 수 있다.

■ 인터넷으로 파는 길
인터넷 판매 쪽도 들었다.
나는 그 전부터 온라인에 올려서 팔고 있었다.
그러니 안다고 생각했다.
들어보니 내가 하던 건 올려놓은 것뿐이었다.
파는 건 따로 있었다.
사진이 어떻게 찍혀 있는지, 설명이 어떤 순서로 적혀 있는지, 검색했을 때 걸리는지.
그런 걸 그때 처음 들었다.
집에 와서 내 페이지를 다시 봤다.
사진이 어두웠다.
설명은 내가 하고 싶은 말부터 적혀 있었다.
사는 사람이 알고 싶어 할 것은 뒤에 적어놨다.
그걸 순서만 바꿨는데 문의가 늘었다.
돈 한 푼 안 들이고 늘었다.
배우는 게 돈이 된다는 걸 그렇게 눈으로 봤다.
■ 문경에서 온 사람
우리 과정에 문경에서 온 사람이 세 명이었다.
나 말고 중년 여성분이 두 분 계셨다.
그러니 문경 쪽은 적은 편이었다.
오는 사람들 사는 데가 다 달랐다.
영주 쪽이 많았고 안동, 예천, 봉화에서 오는 분들도 있었다.
다들 자기 차로 왔다.
시골에서 뭘 배우려면 결국 차로 달려야 한다.
그래서 주차장에 차가 꽉 차 있었다.
차 종류를 보면 대개 짐을 싣는 차였다.
승용차보다 트럭이 많았다.
그 주차장 풍경이 나는 좋았다.
다들 일하다가 온 사람들이었다.
쉬는 시간에 주차장에 나가면 담배를 피우는 분들이 모여 있었다.
나는 담배를 안 피우는데 거기 서 있었다.
거기서 나오는 얘기가 강의보다 더 도움이 될 때가 있었다.
어느 집 기계를 어디서 샀는지, 어느 쪽 유통이 값을 잘 주는지.
그런 건 강의에서 안 나온다.
그 자리에 서 있지 않으면 못 듣는 얘기였다.
그래서 쉬는 시간에 혼자 앉아 있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쉬는 시간도 강의 시간의 일부라고 생각하게 됐다.
앉아 있는 여덟 시간 중에 책상에서 얻는 것과 복도에서 얻는 것이 따로 있었다.
그 둘을 다 챙기려면 일찍 가고 늦게 나와야 했다.
그런데 나는 늦게 나오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수업 끝나면 바로 차를 몰고 와야 공장 일을 할 수 있었으니까.
그래서 못 들은 얘기도 많았을 것이다.
그건 어쩔 수 없었다.
다 챙기려고 하면 아무것도 못 한다.
그러니 그 한 해는 욕심을 덜 내는 걸 배운 해이기도 했다.
들을 수 있는 만큼 듣고, 해볼 수 있는 만큼 해보고.
그게 꾸준한 사람의 방식이라는 걸 그때 알았다.

■ 조퇴와 결석
솔직하게 쓰면, 나는 성실한 학생이 아니었다.
조퇴한 날이 꽤 있었다.
결석한 날도 있었다.
생산이 밀리거나 납품 날짜가 겹치면 어쩔 수가 없었다.
오전만 듣고 나온 날도 있고, 전화를 받고 중간에 나간 날도 있었다.
나갈 때마다 미안했다.
가르치시는 분들께 미안하고 같이 듣는 분들께도 미안했다.
그런데 거기서 그만두지 않은 건 그분들 덕이었다.
사정을 말씀드리면 이해해주셨다.
먹고사는 일이 먼저라는 걸 아는 분들이었다.
농업인을 가르치는 데니까 그 사정을 아셨던 것 같다.
도시의 학원이면 안 됐을 것이다.
그 배려 덕에 결국 수료를 했다.
수료증을 받던 날 그 생각을 했다.
내가 성실해서 받은 게 아니라, 봐주셔서 받은 거라고.
그래서 그 수료증이 더 무거웠다.
한 가지 생각한 것도 있다.
그 한 해 동안 나는 가장 성실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끝까지 간 사람 중 하나였다.
성실한 것과 끝까지 가는 게 같은 게 아니라는 걸 그때 알았다.
매번 제대로 하는 사람이 중간에 그만두기도 하고, 띄엄띄엄 가는 사람이 끝에 남아 있기도 한다.
끝에 남는 쪽이 결국 수료증을 받는다.
그래서 나는 완벽하게 하려다 그만두는 것보다, 엉성하게라도 이어지는 쪽을 택하게 됐다.
■ 한 해를 옮긴 셈
돌아보면 그 한 해에 내가 한 일은 산을 옮기는 일 같았다.
한 번에 뭘 크게 배운 게 아니었다.
화요일에 조금, 금요일에 조금.
졸면서 듣고 돌아와서 한두 가지 해보고, 또 가서 조금 듣고.
그걸 한 해 했다.
한 번 가서 바뀐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한 해를 다 하고 나니 전과 달라져 있었다.
작업 순서가 달라졌고, 포장을 보는 눈이 달라졌고, 온라인 페이지가 달라졌다.
그 세 가지는 한 해 전에는 없던 것이었다.
새벽길을 몇 번 달린 값이 그 세 가지였다.
그러니 밤에 일하고 새벽에 달린 게 아깝지 않았다.
그때 안 했으면 지금도 손만 빨리 움직이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몸으로 아는 것과 배워서 아는 것이 어떻게 다른지도 알게 됐다.
몸으로 아는 건 그 자리에서만 쓴다.
배워서 아는 건 다른 자리에도 옮겨 쓴다.
산야초에서 배운 순서를 다른 품목에 옮겨 쓸 수 있었던 게 그 덕이었다.
그 차이가 몇 해 뒤에 훨씬 크게 벌어졌다.
그래서 누가 시골에서 뭘 시작한다고 하면 교육 얘기를 꼭 한다.
돈 들여 설비를 늘리기 전에 받을 수 있는 교육을 먼저 받아보시라고.
설비는 잘못 사면 그대로 남는데, 배운 건 잘못 배워도 손해가 적다.
그리고 배워놓으면 설비를 고르는 눈이 생긴다.
순서가 그쪽이 맞다.

■ 다시 그 길을 생각하면
요즘도 영주 쪽으로 갈 일이 있으면 그 길이 생각난다.
그 길을 몇십 번 달렸다.
졸면서 달린 길이고, 차를 세워놓고 눈을 붙인 길이다.
지금 그 길을 지나가면 그때만큼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
길이 가까워진 게 아니라 내가 달라진 거다.
그때는 그 길이 큰 결심이었고, 지금은 그냥 길이다.
무엇이 어려운지는 그 사람이 어디에 서 있는지에 달려 있다.
그 길을 한 해 달려봤으니, 그 뒤에 나온 길들은 덜 멀게 느껴졌다.
그게 배움이 준 것 중에 눈에 안 보이는 쪽이었다.
그리고 그 길에서 생긴 버릇이 하나 더 있다.
차에 공책을 두고 다니는 것.
운전하다가 생각나는 게 있으면 세우고 적었다.
강의에서 들은 걸 돌아오는 길에 혼자 정리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게 강의만큼 도움이 됐다.
들은 걸 그날 안 정리하면 다음 주에는 반이 날아간다.
그 한 시간이 공부의 절반이었다.
"愚公移山"
(우공이산)
아흔이 된 우공이라는 노인의 집 앞에 큰 산 두 개가 가로막고 있었다.
드나들 때마다 멀리 돌아야 했으니, 노인은 식구들을 모아 산을 옮기겠다고 했다.
흙을 광주리에 담아 멀리 바다까지 가서 버리는 식이었고, 한 번 다녀오는 데 몇 달이 걸렸다.
이웃의 지수라는 사람이 그걸 보고 비웃었다.
그 나이에 그 산을 어떻게 옮기겠느냐고 했다.
노인은 이렇게 답했다.
내가 죽으면 아들이 하고, 아들이 죽으면 손자가 한다.
산은 더 높아지지 않으니 언젠가는 평평해질 것이다.
이야기 끝에 산을 다스리는 쪽이 그 뜻에 놀라, 결국 두 산이 치워졌다고 적혀 있다.
— 『열자』 탕문편.
눈에 보이는 변화가 없어도 같은 쪽으로 계속 쌓으면 결국 자리가 옮겨진다는 뜻이다.
한 번 다녀와서 달라지는 것은 없고, 한 해를 다녀오면 달라져 있다.
그 둘 사이에 있는 것은 재주가 아니라 가기로 한 날 간 횟수뿐이다.
새벽에 눈꺼풀이 천근만근이던 그 길도, 한 해를 모아놓고 보니 광주리로 흙을 옮긴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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