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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일상

[귀농 창업] 장아찌를 접고 가공으로

by 사람들생각 2025. 3. 20.

▣  옮겨온 글 ▣

예전 블로그에 써두었던 글을 옮겨 왔다. 문장은 그때 그대로 두고, 읽기 편하게 조금만 매만졌다.


 

지원 대상자가 되고 나니 그다음 질문이 돌아왔다.

그래서 무엇을 할 건가.

그 자리에서 바로 대답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 원래는 장아찌였다

원래 나는 요리에 관심이 많았다.

먹는 것에 유난한 편이고, 뭘 만들어보는 걸 좋아한다.

예전부터 산야초를 활용한 장아찌를 만들어보겠다는 구상을 오래 품고 있었다.

시골에 내려와 산을 타면서 그 생각이 더 또렷해졌다.

산에 올라가면 눈에 들어오는 게 전부 재료였다.

저건 데쳐서 담그면 되겠다, 저건 소금에 절였다가 간장을 부으면 되겠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지게를 졌다.

집에 와서 몇 가지를 직접 담가보기도 했다.

항아리를 하나 사다 놓고 이것저것 넣어보면서 혼자 맛을 봤다.

몇 가지는 꽤 괜찮게 나왔고 몇 가지는 못 먹을 정도로 망했다.

망한 걸 버리면서도 왜 망했는지를 생각하는 게 재미있었다.

소금이 모자랐나, 물기를 덜 뺐나, 너무 일찍 열었나.

그걸 공책에 적어뒀다.

그 공책이 지금도 어디 있을 거다.

장아찌 담그는 요령을 적어놓은 공책이었는데, 나중에 보니 그게 결국 기록하는 습관의 시작이었다.

뭘 하면 왜 그렇게 됐는지를 적어두는 버릇.

그러니 지원 계획서에 적을 품목을 정할 때도 자연스럽게 장아찌가 먼저 떠올랐다.

좋아하는 걸 하면 오래 할 수 있을 테고, 오래 하면 잘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계획서 초안에 장아찌라고 적어놓고 며칠 들떠 있었다.

어떤 산야초로 어떤 맛을 낼지, 병은 어떤 걸 쓸지까지 생각이 뻗었다.

사람이 하고 싶은 일을 앞에 두면 머리가 그렇게 잘 돌아간다.

문제는 그 머리가 되는지 안 되는지를 따지는 쪽으로는 잘 안 돌아간다는 점이다.

 

매실청을 담기 위해 매실 준비



■ 사장님을 찾아갔다

그 계획을 들고 예전 약초 공장 사장님을 찾아갔다.

그만두고 나온 뒤에도 그 회사 물건을 받아다 팔면서 계속 왕래하던 사이였다.

나한테는 사실 선배 같은 분이었다.

칡을 가공해서 도매로 넘기는 일을 십여 년 해오신 분이고, 그 동네에서 약초로 밥을 먹는 사람들을 거의 다 아시는 분이었다.

내가 산에서 지게를 지던 사람에서 물건을 받아다 파는 사람이 된 것도 그 회사를 거친 덕이었다.

장아찌를 해볼 생각이라고 말씀드렸더니 한참 들으시고는 현실적인 말씀을 해주셨다.




■ 현실적인 조언

요지는 이랬다.

장아찌는 만드는 사람 손맛이 전부라 규격을 맞추기가 어렵다는 것.

한 항아리와 다음 항아리가 다르면 그건 상품이 아니라 집에서 담근 반찬이 된다고 하셨다.

보관과 유통도 까다롭다고 하셨다.

간이 센 음식이라 오래 두는 건 되는데, 여름에 택배로 보내는 일이 간단하지 않다는 거였다.

무엇보다 이미 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고 하셨다.

장아찌라는 건 어느 지역에나 하는 집이 있고, 오래 해온 집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리고 결정적인 말씀이 있었다.

내가 이미 산야초를 유통하고 있고 거래처도 갖고 있는데 왜 그걸 두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려 하느냐는 거였다.

지금 파는 걸 가공까지 하면 그게 제일 빠른 길 아니냐고.

그 말을 듣고 한참 아무 말도 못 했다.

맞는 말이었다.

나는 좋아하는 걸 기준으로 생각하고 있었고, 그분은 내가 지금 서 있는 자리를 기준으로 보고 계셨다.

 

비어 있는 건너방을 청 보관용으로



■ 깎아내리려는 말이 아니었다

그분이 그 말씀을 하신 건 내 계획을 깎아내리려는 게 아니었다.

그 공장에서 십여 년을 해오신 분이고, 사람들이 들고 오는 계획을 수없이 보신 분이었다.

그중에 어떤 게 되고 어떤 게 안 되는지를 눈으로 본 사람의 말이었다.

내가 몇 달 생각한 것과 그분이 몇십 년 본 것 중에 어느 쪽을 믿어야 하는지는 따질 것도 없었다.

그리고 그분은 그 얘기를 하면서 나한테 득 될 게 없는 분이었다.

내가 장아찌를 하면 그 회사와 겹치지 않고, 가공을 하면 오히려 겹칠 수도 있는 자리였다.

자기 쪽에 불리할 수 있는 말을 해주는 사람의 조언은 무게가 다르다.

그 자리에서 한 가지를 더 말씀해주셨다.

시골에서 먹는 걸로 사업을 하려면 두 가지 중에 하나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남들이 못 구하는 재료를 쥐고 있든가, 남들이 못 하는 공정을 쥐고 있든가.

손맛은 그 둘 중에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셨다.

손맛은 그 집에 가야 먹을 수 있는 거고, 그건 식당이 하는 일이지 공장이 하는 일이 아니라는 말이었다.

그 구분을 그날 처음 들었다.




■ 자리를 보고 정하는 것

집에 돌아와 며칠 생각했다.

종이에 두 줄로 적어놓고 비교했다.

장아찌를 하려면 처음부터 다시였다.

담그는 법을 익혀야 하고, 재료를 새로 확보해야 하고, 사줄 데를 새로 뚫어야 한다.

반면 산야초 가공은 이미 절반이 깔려 있었다.

재료는 공장에서 받고 있었고, 어떻게 말리고 고르는지도 몸에 들어 있었고, 사는 사람도 이미 있었다.

거기에 가공만 얹으면 되는 거였다.

원물 판매에 머무르지 않고 가공까지 나아가는 게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사실 그건 내가 몇 달 전부터 아쉬워하던 지점이기도 했다.

원물만 팔아서는 한계가 있다는 걸 이미 몸으로 알고 있었다.

담금주 키트를 내놓고 티백을 붙인 것도 그 아쉬움에서 나온 거였다.

받아서 바로 먹을 수 있는 제품을 만들고 싶었는데, 설비가 없어서 담고 묶는 데까지만 하고 있었던 거다.

그런데 지금 그 설비를 갖출 기회가 눈앞에 와 있었다.

그러면 답은 하나였다.

 

복분자 청



■ 접는다는 것

장아찌를 접었다.

좋아하는 걸 접는 게 아쉽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그런데 사업에서 좋아하는 것과 되는 것은 다른 얘기라는 걸, 나는 한 번 크게 배운 사람이었다.

예전에 내가 무너진 것도 하고 싶은 걸 먼저 벌였기 때문이었다.

이번엔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로 했다.

그 결정을 하고 나니 오히려 머리가 가벼워졌다.

접었다고 해서 아예 버린 건 아니다.

그 공책은 아직 있다.

언젠가 여유가 생기면 그때 해볼 생각으로 남겨뒀다.

사업으로 안 한다는 것과 안 한다는 건 다른 얘기니까.

다만 순서를 바꾼 거다.

될 걸 먼저 세우고, 하고 싶은 건 그 위에 올리는 순서로.

그 순서를 지킨 게 그 뒤 몇 해를 버티게 해줬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접은 덕에 생긴 게 있었다.

장아찌를 하려면 익혀야 했던 몇 달을 가공 설비 쪽 공부에 쓸 수 있었다.

무슨 기계가 필요하고 어떤 공정을 거쳐야 하는지를 그 몇 달 동안 알아봤다.

한 가지를 접으면 그만큼의 시간이 생기는데, 그 시간을 어디에 넣느냐가 그다음을 정한다.

접는 것보다 접고 나서 남는 시간을 어디에 쓰는지가 더 중요한 일이었다.




■ 동네를 떠나려 했다

무엇을 할지가 정해지니 다음은 어디서 할지였다.

처음에는 그동안 살던 마을을 벗어나 다른 곳에서 시작할 생각이었다.

이유가 여러 가지 있었다.

빌려 살던 집이라 언제까지고 거기 있을 수 없었다.

집을 빌려주신 여사님께 고마운 마음뿐이었지만, 공장을 짓는 건 또 다른 얘기였다.

그리고 동네에 들어와 사는 동안 겪은 일들도 마음 한쪽에 남아 있었다.

개 때문에 말이 돌았던 것, 난로 연기 때문에 새벽에 문을 두드리던 소리.

앞에서는 웃고 뒤에서는 말이 도는 일도 있었다.

새로 시작하는 김에 아예 자리를 옮기는 게 깔끔하겠다 싶었다.

그래서 다른 면 쪽으로 땅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그 얘기가 어떻게 동네에 돌았던 모양이다.

시골에서 소문이 도는 속도는 설명이 안 된다.

내가 부동산에 전화 몇 통 한 걸 어떻게 아셨는지 모르겠다.

아마 땅 보러 다니는 차가 눈에 띄었을 거다.

그 동네에서 외지 번호판 차가 천천히 다니면 그건 땅 보는 차다.

돌아보면 그때 내가 떠나려 한 건 동네가 싫어서가 아니었다.

불편한 기억이 몇 개 있었는데, 새로 시작하는 자리에 그걸 끌고 가고 싶지 않았던 거다.

사람이 어디를 떠나려 할 때는 대개 사람이 아니라 기억에서 벗어나려 한다.

그런데 장소를 바꿔도 기억은 따라온다.

그걸 그 뒤에 알았다.

 

복분자 청



■ 여기서 해라

그런데 이장님과 청년회장 형님들이 발 벗고 나서며 나를 붙잡았다.

여기서 해라, 우리가 돕겠다고.

처음엔 인사치레로 하시는 말씀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이 땅은 어떤지 저 땅은 어떤지 직접 알아봐 주시고, 주인을 아는 땅이면 연결까지 해주셨다.

동네를 떠나려던 사람한테 그렇게까지 하실 이유가 없었다.

두 분 다 외지에서 들어온 분들이라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을 나중에 했다.

그 동네에 원래부터 살던 분들이 아니었다.

들어와서 자리를 잡은 분들이었고, 자리를 잡는 데 몇 해가 걸렸다는 얘기를 지나가듯 하신 적이 있었다.

처음 들어와 서먹하던 시절이 어떤지 아는 분들이었다.

처음에 어땠는지를 아는 사람은 뒤에 들어온 사람을 보면 그때가 떠오르는 법이다.

그 마음이 고마워서 마을 안에서 땅을 수소문했다.

결국 시야가 트이고 터가 괜찮은 자리를 하나 찾았다.

처음 가본 날 한참 서 있었다.

앞이 막히지 않고 아래가 내려다보이는 자리였다.

여기에 건물을 올리고 거기서 일하고 거기서 자면 되겠다는 그림이 바로 그려졌다.

그 자리에 공장의 뼈대를 세우기로 했다.




■ 남게 된 것이 잘한 선택이었다

동네를 떠나려다 남게 된 셈인데, 돌아보면 그게 잘한 선택이었다.

만약 다른 동네로 갔으면 처음부터 다시였을 거다.

새로 인사를 돌고 새로 서먹한 시간을 보내고.

그동안 겪은 일들이 마음에 남아 있었던 건 사실인데, 그 시간 덕에 이미 아는 얼굴이 생겨 있었다는 것도 사실이었다.

불편했던 것만 기억하고 쌓인 걸 못 보고 있었던 셈이다.

붙잡아주신 분들이 그걸 대신 봐주셨다.

그리고 공장을 짓는 동안 그 선택이 몇 번이나 값을 했다.

땅 주인과 말이 틀어질 뻔한 일, 길을 쓰는 문제로 이웃과 얘기가 필요했던 일.

그럴 때마다 형님들이 먼저 가서 말을 놓아주셨다.

외지 사람이 혼자 가서 하는 말과 동네 사람이 같이 가서 하는 말은 전혀 다르게 받아들여진다.

그걸 그때 여러 번 봤다.

시골에서 일이 되고 안 되는 건 서류가 아니라 말 한마디에서 갈린다는 걸 그 몇 달 동안 배웠다.

규정은 어디나 같은데 그 규정을 적용하는 사람들 사이에 공기가 있다.

그 공기를 외지 사람 혼자서는 못 만든다.

그래서 처음 들어가는 동네에서는 아는 사람을 만드는 게 제일 먼저라고 지금도 생각한다.

 

청을 하나씩 담기 시작



■ 제일 힘들었던 일

자리가 정해지고 나니 그다음이 벽이었다.

공장을 짓는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건 건축업자를 찾는 일이었다.

산골 마을까지 들어와 책임감 있게 건물을 올려줄 사람을 구하는 게 쉽지 않았다.

몇 군데 연락을 해봤는데 반응이 비슷했다.

거리가 멀다, 자재 나르기가 힘들다, 지금 일정이 안 된다.

말은 다 다른데 결국 안 하겠다는 얘기였다.

산골에 건물 하나 올리는 건 업자 입장에서 수지가 안 맞는 일이었다.

자재를 실은 차가 들어오기 어렵고, 인력을 매일 왕복시켜야 하고, 중간에 뭐가 모자라면 읍내까지 나가야 한다.

그걸 다 계산하고 나면 남는 게 없었던 거다.

몇 주를 그렇게 보냈다.

땅은 정해졌는데 지어줄 사람이 없어서 진도가 안 나가는 상태였다.

그 시기가 꽤 답답했다.

지원 일정은 돌아가고 있었고 기한은 다가오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게 전화를 거는 것뿐이었다.

그 몇 주 동안 수첩에 전화번호를 꽤 적었다.

적어놓고 연락한 데를 하나씩 지웠다.

지워지는 줄이 늘어날수록 마음이 가라앉았다.

밤에 누우면 올해 안에 안 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 시기에 배운 게 하나 있다.

안 풀리는 일은 더 세게 밀어서 풀리는 게 아니라 다른 쪽에서 풀린다는 것.

전화를 백 통 더 돌려도 안 됐을 일이 아는 사람 한 명으로 풀렸다.

그 뒤로는 벽에 부딪히면 세게 밀기 전에 다른 문을 먼저 찾는다.




■ 지인의 소개로

결국 믿을 만한 지인의 소개를 통해 업자를 겨우 모실 수 있었다.

직접 전화를 돌려 알아보던 걸 접고 아는 사람에게 물었더니 한 번에 풀렸다.

시골에서 일이 되는 방식이 그랬다.

내가 모르는 길은 아는 사람을 통해서 가는 게 제일 빠르다.

그걸 그 몇 주 동안 또 배웠다.

전화로 연락할 때는 내가 누구인지부터 설명해야 한다.

소개를 받고 가면 그 설명이 이미 끝나 있다.

그 차이가 산골 공사에서는 일을 할지 안 할지를 가르는 차이였다.

업자를 모시고 터에 같이 올라간 날, 그제야 일이 시작된다는 실감이 났다.

그분이 터를 한 바퀴 돌면서 몇 마디 하셨다.

여기는 물이 어디로 빠지고, 저기는 차가 들어오기 어렵고, 이 방향으로 앉히면 겨울에 낫다고.

내가 몇 주를 보면서 생각하지도 못한 얘기들이었다.

나는 앞이 트였다는 것만 보고 있었는데 그분은 물과 바람과 길을 보고 계셨다.

그날 알아들은 게 많았다.

전문가를 모시는 게 왜 비싸고 왜 그만한 값을 하는지도 그때 알았다.

땅은 보는 사람에 따라 전혀 다른 걸 보여준다.

나는 풍경을 봤고 그분은 공사를 봤고, 이장님은 이웃을 보셨다.

같은 자리를 세 사람이 다르게 본 거다.

그래서 땅을 고를 때는 여러 사람을 데리고 가봐야 한다.

공사 얘기를 하면서 그분이 한 가지를 물으셨다.

여기서 뭘 만드실 거냐고.

그 질문에 대답하면서 내 계획이 또 한 번 정리됐다.

짓는 사람에게 설명하려면 공정을 순서대로 말해야 한다.

어디서 물건이 들어오고 어디서 손이 움직이고 어디로 나가는지.

말하다가 내가 막힌 자리가 있었다.

그 자리가 나중에 해썹 때 뜯어고쳐야 했던 바로 그 자리였다.

그때 더 깊이 물어봤으면 몇 해 뒤에 벽을 두 번 치지 않았을 거다.




■ 조언을 듣는다는 것

그 몇 달을 돌아보면 내가 혼자 정한 게 거의 없다.

무엇을 할지는 예전 사장님 말씀을 듣고 바꿨고, 어디서 할지는 동네 형님들 말씀을 듣고 바꿨고, 누구와 할지는 지인 소개로 정했다.

혼자 정했으면 장아찌를 하겠다고 다른 동네에 가서 업자를 못 구해 헤매고 있었을 거다.

듣는 게 능력이라는 말을 그전에는 잘 몰랐다.

남의 말을 듣는 건 줏대가 없는 거라고 생각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런데 들을 사람을 제대로 고르고, 들은 다음에 판단을 자기가 하면 그건 줏대 없는 게 아니었다.

그걸 그 봄에 알았다.

그 봄에 내가 한 일은 결국 하나였다.

들을 사람을 찾아간 것.

예전 사장님을 찾아간 것도 내 발이었고, 형님들 말씀을 끝까지 들은 것도 내 선택이었고, 지인에게 물어본 것도 내가 한 거였다.

그러니 아무것도 안 정한 건 아니었던 셈이다.

누구 말을 들을지를 정하는 게 제일 큰 결정이라는 걸, 그걸 몇 해 더 지나서 알았다.

그리고 듣는 데도 순서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먼저 해본 사람에게는 되는지 안 되는지를 묻는다.

그 동네 사람에게는 여기서 되는지를 묻는다.

전문가에게는 어떻게 하면 되는지를 묻는다.

세 가지를 한 사람에게 다 물으면 아무 답도 안 나온다.

그 봄에 나는 운이 좋아서 세 사람에게 각각 물었고, 그게 결과를 바꿨다.

 




"三人行 必有我師焉" (삼인행 필유아사언)

 

공자가 제자들과 함께 길을 가며 한 말로 『논어』 술이편에 실려 있다.

세 사람이 같이 길을 가면 그중에 반드시 내 스승이 있다는 뜻인데, 여기서 스승은 나보다 훌륭한 사람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공자는 그 뒤에 덧붙이기를, 좋은 점은 가려서 따르고 좋지 않은 점은 보고서 자기를 고치면 된다고 했다.

그러니 함께 걷는 사람이 잘하면 그것을 배우고 잘못하면 그것을 거울로 삼으라는 것이어서, 곁에 있는 누구라도 배울 거리가 된다는 말로 오래 쓰여 왔다.

 

— 공자(孔子, 기원전 551~479). 중국 춘추시대의 사상가·교육자. 『논어(論語)』 술이(述而)편.

 

내가 아는 것만으로 판단하면 늘 내가 아는 만큼만 가게 된다는 뜻이다.

옆에 있는 사람은 나와 다른 자리에서 다른 걸 보고 있으니, 그 말을 한 번 들어보는 것만으로 내 시야가 넓어진다.

다만 듣고 나서 정하는 건 결국 내 몫이니, 듣는 것과 끌려가는 것은 다른 일이다.

 

좋아하던 계획을 접고 방향을 바꾼 그해 봄에, 나는 듣는 쪽을 택해서 길이 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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