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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일상

[6차산업 인증] 심사위원 네 분

by 사람들생각 2025. 7. 17.

▣  옮겨온 글 ▣

예전 블로그에 써두었던 글을 옮겨 왔다. 문장은 그때 그대로 두고, 읽기 편하게 조금만 매만졌다.


 

가을 아침에 공장 문을 열면 밤새 식은 공기가 쏟아져 나온다.

낮에는 또 더운데 아침저녁으로는 서늘하다.

그 차이가 커지는 철이 수확철이다.

일교차가 크면 과일이 단단해지고 맛이 든다고 한다.

사람도 그런 데가 있는 것 같다.

편하기만 하면 흐물흐물해지고, 조이고 풀리는 게 있어야 단단해진다.

그 해 가을이 내게는 그렇게 조였다 풀린 철이었다.




■ 두 번에 걸친 심사

서류를 넣고 나서 심사가 두 번 있다는 걸 알았다.

먼저 서류 심사가 있었다.

낸 서류를 보고 판단하는 단계다.

그걸 통과하면 현장 실사가 있었다.

사람이 직접 와서 보는 거였다.

서류 심사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은 차라리 편했다.

내가 할 게 없었으니까.

다 적어서 넣었으니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통과했다는 연락을 받고 나서 오히려 긴장이 시작됐다.

사람이 온다는 거였다.

와서 내가 적은 게 사실인지를 보는 거였다.

날짜를 받고 나서 공장을 손봤다.

손본다고 해서 없는 걸 만든 건 아니다.

있는 걸 제대로 보이게 정리했다.

창고에 쌓아둔 상자를 가지런히 놓고, 서류를 한 파일에 모았다.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를 내가 바로 꺼낼 수 있게 해뒀다.

심사하는 쪽에서 뭘 보여달라고 할 때 한참 찾고 있으면 그 자체로 점수가 깎인다.

해썹 심사를 받아보고 그걸 알았다.

준비라는 건 꺼내는 시간을 줄여두는 일이었다.

그러면서 서류를 한 번 더 읽었다.

내가 적은 걸 내가 다 기억하고 있어야 했다.

적어놓고 잊은 칸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말이 어긋난다.

읽어보니 몇 달 전에 적은 숫자가 바뀐 데도 있었다.

그 사이에 거래처가 늘었으니까.

그건 그대로 말씀드리기로 했다.

늘어난 건 숨길 이유가 없었다.

그런 사소한 데서 신뢰가 생기기도 한다.

서류에 적힌 것보다 실제가 나으면 그 자리에서 말이 산다.

반대로 서류보다 실제가 못하면 그 뒤 설명이 다 흐려진다.

그래서 서류를 쓸 때 조금 보수적으로 적는 게 낫다.

부풀려 적은 서류는 실사 날에 반드시 걸린다.

 

내가 제일 공들인 다락방 공사



■ 사실이면 겁날 게 없는데

적은 걸 다시 읽어봤다.

거짓이 들어간 데는 없었다.

없는 건 없다고 적었고, 있는 건 있는 그대로 적었다.

그러니 논리적으로는 겁날 게 없었다.

그런데 겁이 났다.

그게 왜 그런가 생각해보니, 보여주는 일 자체가 겁나는 거였다.

남이 와서 내 자리를 들여다본다는 게 사람을 긴장시킨다.

잘못한 게 없어도 그렇다.

해썹 심사를 받아봤으니 그 느낌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은 또 달랐다.

해썹은 시설을 보는 거였다.

바닥, 벽, 동선, 기록.

기준이 명확했고 맞추면 되는 거였다.

6차 산업 실사는 사람을 보는 느낌이었다.

이 사람이 앞으로 이걸 제대로 해나갈 사람인지.

그걸 어떻게 맞춰야 하는지 나는 몰랐다.

그래서 조 대표님께 여쭤봤다.

무엇을 준비해야 하느냐고.

그분 답은 간단했다.

그냥 하던 대로 보여드리라고.

꾸미면 티가 나고, 꾸민 게 티가 나면 나머지도 의심받는다고.

그 말을 듣고 마음을 정했다.

작업하던 자리 그대로 보여드리기로.

그 말씀이 맞았다.

꾸며놓은 자리는 본인이 제일 불편하다.

어디에 뭐가 있는지를 모르게 되니까.

평소 쓰는 대로 두면 설명이 저절로 나온다.

그래서 그날 공장은 전날과 거의 같았다.

바닥만 한 번 더 밀었다.

그날 아침에 혼자 작업장에 서서 한 바퀴 돌아봤다.

몇 해 전에 아무것도 없던 자리였다.

땅만 있었고, 그 땅에 건물을 올리던 해가 있었다.

그 자리에 서서 그날을 떠올리니 긴장이 조금 가라앉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 건물은 여기 있는 거였다.

떨어져도 그건 그대로다.

그 생각을 하고 나니 숨이 쉬어졌다.

그런 자리에서 사람을 붙드는 건 결과가 아니라 지나온 자리였다.

떨어지면 아깝지만 없어지는 건 없다.

공장도 거래처도 그대로 있다.

잃을 게 없다는 걸 확인하고 나면 긴장이 덜어진다.

그래서 나는 중요한 자리에 가기 전에 잃을 걸 세어본다.

세어보면 대개 생각보다 적다.

서울에서는 그 셈이 늘 반대였다.

한 자리에 전부가 걸려 있었다.

그 자리에서 안 되면 끝이었으니 손이 떨렸다.

그렇게 몰아놓고 일하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를 그때는 몰랐다.

지금은 한 자리에 전부를 걸지 않는다.

떨어져도 돌아갈 자리를 먼저 만들어놓고 나간다.

 

내가 제일 공들인 다락방 공사



■ 네 분이 오셨다

실사 날에 네 분이 오셨다.

한 분은 대학교 교수님이셨다.

한 분은 상급 기관에서 오신 공무원이셨다.

그리고 6차 산업 쪽에서 높은 자리에 계신 분도 함께 오셨다.

그 네 분이 한자리에 서 계시니 공장이 좁아 보였다.

그때까지 내가 받아본 심사 중에 제일 긴장했다.

해썹 심사 때도 긴장했는데 그때보다 더했다.

왜 더했는지는 지금도 분명하게 설명하기 어렵다.

아마 그 자리에서 내 몇 해가 판정받는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서류에 적은 건 몇 해 치였으니까.

그 네 분이 어떤 자리에 계신 분들인지도 그날 처음 알았다.

한 분은 학교에서 그 분야를 가르치시는 분이었고, 한 분은 제도를 집행하는 쪽이었고, 한 분은 그 판을 전체로 보는 자리에 계셨다.

보는 눈이 셋 다 다른 거였다.

한 분은 내용을 보고, 한 분은 규정을 보고, 한 분은 될 사업인지를 봤다.

그래서 질문이 서로 다른 데서 들어왔다.

그걸 다 맞추려면 결국 사실밖에 답이 없었다.

사실은 어느 쪽에서 봐도 사실이니까.

 

내가 제일 공들인 다락방 공사



■ 땀이 났다

설명을 시작하면서 등에 땀이 났다.

가을인데 땀이 났다.

목소리가 떨리는 게 내 귀에 들렸다.

그게 또 민망해서 더 떨렸다.

그래도 할 말은 해야 했다.

어디서 재료를 받는지, 어떻게 손질하는지, 왜 이 순서로 하는지.

공장 안을 돌면서 하나씩 말씀드렸다.

질문이 중간중간 들어왔다.

숫자를 묻는 질문도 있었고, 왜 그렇게 했냐는 질문도 있었다.

대답하다 보니 땀이 좀 식었다.

해온 걸 말하는 거니까 말이 나왔다.

내가 안 해본 걸 적어놨으면 그 자리에서 무너졌을 것이다.

서류에 거짓을 안 쓴 게 그 자리에서 값을 했다.

한 분이 재료 들어오는 쪽을 유독 자세히 보셨다.

어디서 얼마를 받아오고 그 기록이 어디 있는지.

그 자리에서 파일을 꺼내서 보여드렸다.

해썹 받을 때부터 적어온 기록이 쌓여 있었다.

그걸 보시고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 기록을 몇 해 적어온 게 그날 한 장면으로 값을 했다.

적을 때는 매일 성가신 일이었다.

그런 날이 오면 성가셨던 게 전부 자산이 된다.

그런데 그런 날이 언제 오는지는 모른다.

그러니 성가신 걸 계속 해둬야 한다.

언제 쓸지 모르는 일을 매일 하는 게 결국 사업이었다.

그 기록 덕에 설명이 짧아진 것도 좋았다.

말로 설명하면 열 마디인데, 종이 한 장을 보여드리면 끝났다.

기록은 말을 줄여준다.

말이 줄면 오해가 줄고, 오해가 줄면 의심이 줄었다.

 

내가 제일 공들인 다락방 공사



■ 체험 얘기가 나왔다

그중에 체험 얘기가 당연히 나왔다.

없는 걸 아시고 오신 거였다.

서류에 없다고 적어뒀으니까.

그래서 그 질문이 나왔을 때 당황하지 않았다.

적어둔 대로 말씀드렸다.

지금은 없고, 작업장이 해썹 기준에 맞춰져 있어서 사람이 드나들 수 없고, 몇 해에 걸쳐 따로 자리를 내서 만들 생각이라고.

그 대답을 하면서 알았다.

서류에 미리 적어둔 게 그 자리에서 나를 구한 거였다.

적어두지 않았으면 그 질문에 변명을 했을 것이다.

변명은 듣는 쪽이 바로 안다.

적어둔 걸 말하는 건 변명이 아니라 설명이다.

그 둘은 말투부터 다르다.

그리고 질문이 하나 더 들어왔던 게 기억난다.

앞으로 사람을 쓸 계획이 있느냐는 쪽이었다.

그때 직원이 없었으니까.

그 질문에도 적어둔 대로 답했다.

지금은 혼자 하고 있고, 생산이 늘면 몇 명을 어떻게 쓸 생각인지.

그 숫자를 사업계획서에 적어뒀으니 그대로 말했다.

서류와 말이 같으면 질문이 더 안 들어온다.

서류와 말이 다르면 거기서 질문이 쏟아진다.

그걸 알고 나서는 서류를 낼 때 사본을 꼭 챙겨뒀다.

낸 걸 내가 다시 볼 수 있게.

전에는 내고 나면 잊었다.

그래서 나중에 물어오면 뭐라고 적었는지를 몰랐다.

그건 내 서류인데 내가 모르는 거였다.

지금은 낸 서류를 다 모아둔다.

그걸 해놓으면 다음에 또 쓴다.

비슷한 서류가 또 나오면 전에 낸 걸 꺼내서 고쳐 쓴다.

처음부터 쓰는 것과 고쳐 쓰는 것은 걸리는 시간이 몇 배 차이다.

그래서 서류는 모아두는 사람이 유리하다.

 

내가 제일 공들인 다락방 공사



■ 교수님이 따로 오셨다

실사가 끝나고 돌아가시는데, 교수님이 따로 내게 오셨다.

다른 분들은 차 쪽으로 가고 계셨다.

그분이 걸음을 멈추고 내 앞에 서서 말씀하셨다.

이런 회사가 정말 6차 산업 인증을 받아서 제대로 해야 한다고.

그 말을 듣고 아무 말도 못 했다.

그러고 한마디 더 하셨다.

절대 포기하지 마시고 앞으로도 계속 전진하셔서, 우리 농촌 발전에 이바지해 달라고.

그 자리에서 나는 고개만 숙였다.

고맙다는 말도 제대로 못 했던 것 같다.

그분이 왜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를 한참 생각했다.

그날 우리 공장이 특별히 커서 그런 게 아니었다.

오히려 작았다.

짐작해보면, 혼자 다 하고 있는 걸 보셨던 것 같다.

산에서 거두고, 공장에서 만들고, 포장해서 보내고.

그게 제도가 말하는 6차 산업의 모양이었고, 그 모양을 억지로 만든 게 아니라 살아내고 있는 걸 보신 거였다.

그런 자리를 여러 군데 다니시면서 보셨을 테니, 꾸민 것과 아닌 것이 구분되셨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 내 나이도 보셨을 것이다.

사십 중반에 그 일을 시작해 몇 해 만에 그만큼 해둔 사람이었으니까.

젊은 사람이 하는 것과 또 다르게 보이셨을 수 있다.

무엇을 보셨든, 그날 그분 눈에 들어온 건 서류가 아니라 사람이었던 것 같다.




■ 그 말이 한 일

그 말씀을 몇 해 동안 생각했다.

그분은 그날 한 번 오셔서 몇 시간 보고 가신 분이었다.

내 사정을 다 아시는 분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 한마디가 내 안에서 꽤 오래 일을 했다.

왜 그런가 생각해보니, 그분이 나를 지금 모습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날 거기 있던 건 직원도 없이 혼자 포장하는 작은 회사였다.

공장은 작았고 품목도 몇 개 안 됐다.

그런데 그분은 그걸 보면서 농촌 발전에 이바지할 회사라고 하셨다.

그건 그날의 내가 아니었다.

그건 내가 되어야 할 모습이었다.

사람을 그렇게 불러주면 그 사람이 그쪽으로 걸어가게 된다는 걸 그때 알았다.

이 대표님이라는 호칭을 받았을 때와 비슷한 일이었다.

그 호칭이 내 행동을 바꿔놨던 것처럼, 그 한마디가 그 뒤 몇 해의 기준이 됐다.

포기하고 싶은 날에 그 말이 떠올랐다.

그 말을 들은 사람이 포기하면 안 될 것 같았다.

그 뒤로도 그만두고 싶은 순간이 여러 번 있었다.

물건이 안 나가는 달이 있었고, 거래처가 끊기는 일도 있었고, 몸이 안 따라주는 철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그 말씀이 떠올랐다.

포기하지 말라고 하신 분이 있었다는 사실 하나가 사람을 붙든다.

혼자 결심한 건 혼자 접을 수 있는데, 남이 걸어준 기대는 혼자 접기가 어렵다.

그게 기대의 무게였고, 그 무게가 나쁘지 않았다.

 

내가 제일 공들인 다락방 공사



■ 말이 사람을 세운다

그래서 나도 그 뒤로 말을 조심하게 됐다.

좋은 쪽으로 조심한다는 뜻이다.

누가 뭘 시작하면 그 사람 지금 모습을 말하지 않는다.

될 모습을 말한다.

그게 아첨이 아니다.

그 사람이 가려는 데를 봐주는 거다.

사람은 자기가 어떻게 불리는지를 따라간다.

안 될 거라고 불리면 안 되는 쪽으로 가고, 될 거라고 불리면 그쪽으로 간다.

그걸 몇 번 받아봤으니 안다.

조 대표님이 나를 그렇게 보셨다.

아무것도 없을 때 될 사람이라고 하셨다.

교수님도 그렇게 보셨다.

그 두 번이 내 몇 해를 만들었다.

그러니 사람이 자라는 데 제일 필요한 건 돈도 재주도 아니었다.

그렇게 봐주는 사람 한둘이었다.

그게 없으면 아무리 재주가 있어도 중간에 접는다.

접는 게 쉬워지기 때문이다.

반대로 그런 사람이 있으면 재주가 모자라도 간다.

가다 보면 재주는 생긴다.

그래서 요즘은 누가 뭘 한다고 하면 될 거라는 말을 아끼지 않는다.

안 될 것 같아도 그 말을 먼저 한다.

그 말이 공짜라서 하는 게 아니다.

그 말을 받고 일어난 사람이 나라서 한다.

그리고 그 말을 할 때는 눈을 보고 한다.

그날 교수님이 그렇게 하셨다.

차 쪽으로 가다가 돌아서 내 앞에 서서 하셨다.

지나가면서 던진 말이 아니었다.

그 자리를 만들어서 하신 말이었다.

그 뒤로 누구에게 중요한 말을 할 때 그 방식을 따라 하려고 한다.

하던 일을 멈추고, 돌아서서, 눈을 보고.

그렇게 하면 같은 말이 다르게 들어간다.

말은 내용 반, 자리 반이었다.

그래서 그 말이 그렇게 오래 남았는지도 모른다.

 

내가 제일 공들인 다락방 공사



■ 결과를 기다리면서

실사가 끝나고 결과를 기다렸다.

교수님 말씀을 듣고 나니 기다리는 마음이 조금 달라졌다.

떨어지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덜 들었다.

그 말씀 자체가 이미 하나의 결과처럼 느껴졌다.

인증서를 받는 건 다른 사람들이 아는 결과고, 그 말씀은 나만 아는 결과였다.

그 두 개 중에 어느 게 더 오래 남았는지를 지금 보면 분명하다.

인증서는 서류함에 들어 있다.

그 말씀은 아직 머리에 있다.

그래서 결과가 나왔을 때도 크게 뛰지 않았다.

통과했다는 연락을 받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공장 일을 하다가 전화를 받았는데, 끊고 나서 다시 일을 했다.

해썹 받던 날과는 또 달랐다.

그때는 안도였고 이번은 확인이었다.

그러고 며칠 지나서 인증서가 왔다.

받아서 벽에 걸었다.

해썹 인증서 옆에 걸었다.

두 장이 나란히 걸려 있는 걸 보니 기분이 좋았다.

한 장은 시설이 됐다는 종이고 한 장은 사업이 됐다는 종이였다.

그 둘을 모으는 데 몇 해가 걸렸다.




■ 그날의 공장을 생각하면

요즘 공장을 보면 그날과 많이 달라졌다.

품목도 늘고 설비도 늘었다.

그날 네 분이 서 계셔서 좁아 보였던 자리가 지금은 좀 넓어졌다.

그런데 그날 그 자리에서 땀을 흘리던 사람을 생각하면 아직 그 사람이다.

달라진 건 공장이고, 사람은 그 자리에 서 있던 사람 그대로다.

다만 그 사람 머리에 그날 들은 한마디가 들어 있다.

그게 몇 해를 끌고 왔다.

그러니 그날 받은 건 인증 하나가 아니었다.

한마디를 더 받았다.

그러니 그 가을이 내게는 조이고 풀린 철이었다.

땀이 나게 조였고, 한마디로 풀렸다.

그 두 가지가 다 있어야 사람이 단단해진다는 걸 그 철에 알았다.

 




"사람을 지금 모습대로 대하면 그 사람은 그대로 머물고, 되어야 할 모습으로 대하면 그렇게 될 수 있는 사람이 된다."

 

괴테가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에서 사람을 가르치고 이끄는 일을 두고 적은 말이다.

배우는 사람을 지금의 부족한 상태로만 보고 대하면, 그 사람은 그 상태에 머문다.

될 수 있는 모습을 먼저 보고 그에 맞게 대하면, 그 사람은 거기까지 걸어간다.

괴테는 이것을 교육의 방법이 아니라 사람을 대하는 태도의 문제로 썼다.

무엇을 가르치느냐보다, 상대를 누구로 보고 말하느냐가 결과를 가른다는 것이다.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

 

사람은 자기가 어떻게 불리는지를 따라간다는 뜻이다.

그래서 누군가를 될 모습으로 불러주는 일은 칭찬이 아니라 그 사람의 몇 해를 바꿔놓는 일이 된다.

직원도 없이 혼자 포장하던 작은 회사에게 농촌 발전에 이바지해 달라고 하신 그 한마디가 그랬다.

그 말을 들은 뒤로는 그만두고 싶은 날에도 그만두기가 어려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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