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옮겨온 글 ▣
예전 블로그에 써두었던 글을 옮겨 왔다. 문장은 그때 그대로 두고, 읽기 편하게 조금만 매만졌다.
고향에 가는 길은 아무리 오래 떠나 있어도 몸이 기억한다.
어느 지점에서 산 모양이 눈에 익기 시작하는데, 그 지점이 매번 같다.
거기를 지나면 차 안 공기가 달라지는 것 같다.
실제로 달라질 리는 없는데 그렇게 느껴진다.
나는 안동에서 자랐다.
문경에 자리를 잡고 몇 해를 보내면서도 안동은 늘 그 자리에 있었다.
떠난 데가 아니라 두고 온 데라는 게 맞는 말인 것 같다.
■ 숨을 고르던 무렵
농민사관학교를 마치고 6차 산업 인증까지 받고 나니 한동안 조용했다.
그 몇 해가 숨 가쁘게 지나갔다.
서류를 쓰고 심사를 받고 또 서류를 쓰고.
그게 끝나고 나니 뭘 해야 할지 잠깐 비어 있는 시간이 왔다.
그 시간이 좋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했다.
일이 없는 게 아니었다.
생산하고 포장하고 보내는 일은 계속 있었다.
다만 새로 갖출 게 눈에 안 보였다.
그 전 몇 해 동안은 늘 다음 칸이 보였다.
공장 다음에 인증, 인증 다음에 법인, 법인 다음에 교육, 교육 다음에 또 인증.
그런데 그 무렵에는 그 줄이 끊긴 것 같았다.
다 갖춘 건 아닌데 다음 칸이 어디인지를 몰랐다.
그런 시기가 사람을 느슨하게 만든다.
급한 게 없으니 하루가 그냥 간다.
생산하고 보내고, 또 생산하고 보내고.
그게 나쁜 건 아닌데 몇 달 하고 나면 제자리에 있는 느낌이 든다.
그 느낌을 전에도 받아봤다.
공장이 서고 해썹까지 받았을 때 그랬다.
그때는 조 대표님이 법인 얘기를 꺼내주셔서 다음 칸이 생겼다.
그러니 그런 시기에는 결국 사람이 필요하다.
혼자 있으면 다음 칸이 안 보이고, 안 보이면 멈춘다.
그리고 그 시기에는 몸도 좀 지쳐 있었다.
몇 해 동안 서류와 생산을 같이 했으니 쉴 틈이 없었다.
그래서 쉬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쉬는 것과 멈추는 건 다르다.
쉬는 건 며칠이고 멈추는 건 몇 해가 된다.
그 둘이 처음에는 똑같이 느껴진다는 게 문제였다.
그래서 그 무렵에 공장 안을 좀 손봤다.
할 게 없으면 손볼 데를 찾는 쪽이 나았다.
작업대 자리를 바꾸고, 창고를 정리하고, 기계를 한 번 다 봤다.
그렇게 한 달쯤 하고 나니 다시 몸이 돌았다.
멈추지 않는 방법이 큰일을 벌이는 것만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것도 한 달이면 끝난다.
공장은 한 번 정리하면 더 정리할 데가 없다.
그러니 결국 밖에서 뭔가가 들어와야 했다.
그 무렵에 안동에 갈 일이 생긴 게 그래서 때가 맞았다는 거다.

■ 고향에서 형님을 만났다
그 무렵에 안동에 갈 일이 있었다.
고향에 가면 꼭 누구를 만나려고 가는 건 아니다.
그런데 그날 우연히 형님 한 분을 만났다.
어릴 때부터 알던 분이다.
고향에서 그렇게 만나면 인사가 길지 않다.
어떻게 지내느냐, 뭐 하고 사느냐.
그 정도다.
그래서 내가 하는 일을 말씀드렸다.
문경에서 산야초를 거둬서 가공해 팔고 있다고.
공장을 지었고 인증을 받았고 법인으로 하고 있다고.
그 말을 들으시더니 잠깐 생각하시다가 한마디 하셨다.
야, 그거 임업후계자랑 딱 맞는 거 아니냐.
그 말투가 또 고향 말투였다.
설명이 없고 결론부터 나온다.
무슨 소리냐고 물으니 그제야 설명이 나왔다.
산에서 나는 걸로 사업을 하고 있으면 임업 쪽 제도에 맞을 거라고.
그러고는 자기도 그걸 하고 있다고 하셨다.
그 말을 듣고 내가 바로 물었다.
그게 뭐냐고.
무슨 조건이 있고 어디에 신청하는 거냐고.
그 자리에서 다 들을 수는 없었다.
길에서 선 채로 하는 얘기였으니까.
그래서 날을 잡아 다시 뵙기로 했다.
그 자리를 만든 게 그 일의 시작이었다.
길에서 듣고 끝낼 수도 있었다.
고향에서 만난 사람 말이 다 일이 되는 건 아니다.
좋은 얘기도 그 자리에서 흩어지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래서 날을 잡는 게 중요했다.
날을 잡으면 그게 일정이 되고, 일정이 되면 일이 된다.

■ 또 처음 듣는 말
그 말을 듣고 나는 또 모르는 얼굴을 했다.
임업후계자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농업 쪽 제도는 몇 해 동안 꽤 들여다봤다.
귀농 지원, 농업경영체, 농민사관학교, 6차 산업.
그 줄기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임업 쪽에 따로 길이 있다는 건 몰랐다.
산에서 거두는 일을 몇 해 하고 있었는데, 그게 임업으로 분류될 수 있다는 생각을 안 해봤다.
내가 나를 농업하는 사람으로만 보고 있었던 거다.
그게 왜 그랬나 생각해보면 처음 시작한 자리가 밭이었기 때문이다.
장아찌를 담가 팔던 해에 나는 밭에서 나는 걸 썼다.
그 뒤로 산에 올라가게 됐는데, 머릿속 분류는 그대로 농업에 있었다.
사업자 등록도 농업 쪽으로 했고, 받은 자격도 다 농업 쪽이었다.
그러니 농업 쪽 공고만 보고 다녔다.
임업 쪽 공고는 아예 열어본 적이 없었다.
없는 줄 알고 안 본 게 아니라, 볼 생각조차 안 한 거였다.
그 차이가 더 무섭다.
그 말씀을 듣고 나서야 내가 하는 일을 다시 봤다.
산야초는 밭에서 나는 게 아니다.
산에서 난다.
산에서 나는 걸 거둬서 가공하는 일이면, 그게 임업 쪽 성격에 맞는 거였다.

■ 등잔 밑이 어두웠다
그 자리에서 좀 멍했다.
몇 해 동안 제도 공고를 들여다보고 다닌 사람이었다.
모르는 말이 나오면 적어두고 찾아보는 버릇까지 들인 사람이었다.
그런데 내가 매일 올라가는 산 쪽에 길이 하나 더 있는 걸 몰랐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무엇으로 불릴 수 있는지를 몰랐던 거다.
그런 일이 그 전에도 있었다.
6차 산업도 그랬다.
나는 이미 1차와 2차와 3차를 다 하고 있었는데, 그게 제도의 이름으로 불리는 걸 몰랐다.
그때도 남이 알려줬다.
이번에도 남이 알려줬다.
두 번 겹치고 나니 알게 된 게 있다.
자기 자리는 자기 눈에 제일 안 보인다.
매일 보는 것은 보인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그 뒤로 버릇을 하나 더 들였다.
내가 하는 일을 다른 말로 불러보는 것.
산야초 가공이라고만 하지 않고, 임산물 가공이라고도 해보고, 식품 제조라고도 해보고, 농산물 유통이라고도 해본다.
그렇게 바꿔 부르면 걸리는 제도가 달라진다.
같은 일인데 이름이 바뀌면 다른 문 앞에 서게 된다.
그걸 알고 나서 서류 쓸 때 쓰는 말을 신경 쓰게 됐다.
어떤 말로 적느냐가 어느 칸에 들어가는지를 정했다.
그러니 자기 일에 이름을 하나만 붙여두면 손해다.
이름이 많은 사람이 들어갈 문도 많다.
거짓으로 늘리라는 얘기가 아니다.
내가 실제로 하고 있는 일을 여러 각도에서 불러보라는 얘기다.
산에서 거두고 가공해서 파는 사람은 농업인이기도 하고 임업인이기도 하고 제조업자이기도 했다.
그 셋이 다 사실이었다.
그걸 알고 나서 명함도 손봤다.
회사 이름 아래에 하는 일을 몇 개 적었다.
그 몇 줄이 사람을 만날 때 설명을 줄여줬다.
처음에는 그게 좀 번잡해 보였다.
명함에 글자가 많으면 어수선하니까.
그런데 시골에서 사람 만날 때는 그게 나았다.
무슨 일 하느냐는 질문에 종이 한 장이 답을 해줬다.

■ 형님이 이미 하고 계셨다
그 말씀을 하신 건 그분이 이미 그 길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안동에서 임업후계자로 등록해 활동하고 계셨다.
그러니 아는 얘기를 하신 거였다.
그리고 한 분을 더 말씀하셨다.
그분 절친한 분이 안동 산림후계자 회장님이라고.
그 회장님과 자리를 만들어주겠다고 하셨다.
그 얘기가 그날 그 자리에서 나왔다.
고향에 다니러 간 길에, 길 하나가 또 열린 거였다.
그런 게 몇 번째인지 세어보니 꽤 된다.
사람을 만나서 열린 길이 혼자 찾아서 열린 길보다 훨씬 많았다.
그리고 그런 길은 대개 아는 사람이 아는 사람을 소개하는 식으로 이어졌다.
형님이 회장님을 소개하고, 회장님이 또 다른 분을 소개하고.
그 줄을 따라가면 그 업계가 보였다.
혼자 공고문만 보고 있으면 그 줄이 안 보인다.
공고문은 자격을 알려주는데, 사람은 그 자격을 어떻게 맞추는지를 알려준다.
그 두 가지가 다 있어야 일이 된다.
■ 공장은 문경인데
처음에 걸린 게 하나 있었다.
내 공장은 문경에 있었다.
사업자도 문경이었고 거래도 문경에서 했다.
그런데 임업후계자 얘기는 안동에서 나온 거였다.
그러면 그게 되는 건가 싶었다.
그걸 여쭤보니 된다고 하셨다.
공장이 문경에 있어도, 안동에 기준에 맞는 땅이 있으면 안동에서 등록할 수 있다는 거였다.
그 설명을 듣고 생각이 트였다.
제도라는 게 내가 사는 데 하나로만 묶여 있는 게 아니었다.
조건을 어디서 맞추느냐에 따라 길이 달라졌다.
그 얘기를 듣고 나서 안동 쪽을 다시 보게 됐다.
고향에 땅을 보러 다니게 된 셈이었다.
그 무렵에 안동 쪽을 몇 번 다녔다.
문경에서 안동까지 차로 한 시간 남짓이다.
가까운 데는 아닌데 못 갈 데도 아니다.
그 거리가 그 뒤로 몇 해 동안 꽤 자주 오가는 거리가 됐다.
어릴 때 살던 데를 어른이 되어 일 때문에 다시 다니게 된 거였다.
그 기분이 묘했다.
같은 길인데 보이는 게 달랐다.
어릴 때는 그냥 산이었던 데가, 그때는 면적과 조건으로 보였다.
산을 그렇게 보게 된 게 좀 서운하기도 했다.
어릴 때 그 산은 놀던 데였다.
그런데 그때는 몇 제곱미터인지를 세고 있었다.
어른이 되면 보는 눈이 그렇게 바뀐다.
그래도 산 자체는 그대로 있었다.
보는 눈이 바뀌어도 산이 바뀌는 건 아니니까.
그 무렵에 안동 쪽을 다니기 시작한 게 그 뒤 몇 해를 바꿔놨다.
한 시간 거리를 자주 오가게 되면 그 동네 사정이 눈에 들어온다.
어느 쪽 산이 어떻게 생겼고, 누가 무엇을 하고 있고, 값이 어떻게 오가는지.
그걸 알게 되는 데 따로 공부가 필요한 건 아니었다.
자주 가면 알게 된다.

■ 근거가 되는 법
그 제도의 근거도 알아봤다.
임업 및 산촌 진흥촉진에 관한 법률이라는 법이 있었다.
그 법에 따라 임업후계자를 선정하는 제도였다.
조건은 크게 두 가지였다.
나이가 55세 미만이어야 했다.
그리고 일정 규모 이상의 산림이나 임산물 재배 포지를 갖고 있어야 했다.
그 면적은 품목에 따라 달랐다.
산림청에서 품목별로 정해놓은 기준이 있었고, 작은 품목은 1,000제곱미터에서, 큰 쪽은 10,000제곱미터까지 봤다.
그 조건을 읽고 나서 한 가지가 눈에 들어왔다.
나이 제한이 있다는 것.
그때 내 나이가 사십 중반이었다.
55세 미만이니 되는 거였다.
다만 그 칸이 영원히 열려 있지 않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 조건을 읽으면서 또 하나 알게 된 게 있다.
면적 기준이 품목마다 다르다는 것.
무엇을 심을지에 따라 필요한 땅의 크기가 달라졌다.
그러니 땅을 먼저 보고 품목을 정하는 게 아니라, 품목을 정하고 땅을 봐야 했다.
순서를 거꾸로 하면 사놓고 못 쓰는 땅이 된다.
그걸 미리 알고 다닌 게 다행이었다.
몰랐으면 눈에 좋은 땅부터 봤을 것이다.

■ 나이에 걸려 있는 제도
그 자리에서 조 대표님 말씀이 떠올랐다.
제도는 바뀌는 거라서, 지금 받을 수 있는 걸 미루면 나중에는 못 받는 경우가 생긴다고.
그 말씀이 그 제도에는 아주 분명하게 적용됐다.
제도가 바뀌지 않아도 내 나이는 바뀐다.
몇 해만 미루면 그 칸에서 내가 빠져나가는 거였다.
그걸 알고 나니 미룰 생각이 안 들었다.
그 전까지 나는 서류를 미루는 사람이었다.
6차 산업도 몇 주를 미뤘다.
그런데 이번에는 안 미뤘다.
나이 제한이라는 게 사람을 움직이게 만든다.
기한이 적혀 있는 일과 안 적혀 있는 일은 사람이 전혀 다르게 대한다.
그래서 요즘 뭘 미루는 사람에게는 기한을 알려준다.
언제까지라고 알려주면 그 사람이 움직인다.
그리고 기한이 적혀 있는 걸 찾아보는 버릇도 그 뒤로 생겼다.
제도를 볼 때 나이 제한이 있는지를 먼저 본다.
나이 제한이 있는 제도는 미룰 수 없는 제도다.
그 칸에 들어 있는 동안 해둬야 한다.
그런 제도가 생각보다 여럿 있었다.
그중 몇 개는 이미 지나가 있었다.
알았으면 했을 텐데 그때는 몰랐다.
그래서 지금 그 나이대에 있는 분들께는 그 얘기를 꼭 한다.
지금 받을 수 있는 걸 세어보시라고.
그중에 나이가 걸려 있는 게 있으면 그걸 먼저 하시라고.
나이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제도는 기다려줄 수도 있는데 나이는 아니다.
그 말을 할 때마다 내가 운이 좋았다는 생각을 한다.
그 얘기를 사십 중반에 들었다.
몇 해만 늦게 들었으면 못 했을 일이었다.
들은 게 운이고, 듣고 바로 움직인 게 그 운을 쓴 거였다.
운이 왔을 때 쓸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얘기를 몇 해 동안 여러 번 했는데, 그게 또 여기서 나온다.
같은 얘기가 반복되는 건 내가 그걸 반복해서 겪었기 때문이다.
운은 몇 번 왔다.
그중에 쓴 것과 흘린 것이 있었다.
흘린 건 대개 준비가 안 되어 있어서였다.

■ 때가 맞았다
돌아보면 그 무렵이 여러 가지로 때가 맞았다.
나이가 조건 안에 들어 있었다.
하고 있는 일이 산에서 나는 것이었다.
고향에 땅을 볼 수 있는 연고가 있었다.
그 길을 아는 사람을 고향에서 만났다.
그 네 가지가 한 해에 겹쳤다.
그중에 내가 만든 건 하나도 없다.
나이는 내가 정한 게 아니고, 고향도 내가 고른 게 아니다.
산야초를 하게 된 것도 처음부터 계획한 게 아니었다.
다만 그것들이 겹친 자리에 내가 서 있었다.
그리고 서 있었다는 게 전부가 아니었다.
그 자리에서 모르는 말을 들었을 때 그게 뭐냐고 물었다.
그 질문을 한 게 내가 한 일이었다.
몇 해 동안 내가 한 일을 세어보면 대개 그렇다.
들은 걸 묻고, 아는 사람에게 전하고, 하라는 걸 했다.
그게 전부인데 그게 쌓여서 여기까지 왔다.
재주가 좋아서 온 게 아니라는 걸 안다.
머리가 좋아서 온 것도 아니다.
그런데 하나는 있었다.
모르는 걸 모른다고 말하는 것.
그게 몇 해 동안 제일 쓸 만한 재주였다.
■ 고향이 해준 일
그 일을 생각하면 고향이라는 데가 참 묘하다.
떠나 있던 데였다.
서울에서 무너져 내려올 때 안동으로 가지 않고 문경으로 간 사람이었다.
고향에 얼굴을 들고 갈 상황이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몇 해 지나서, 그 고향이 길 하나를 열어줬다.
어릴 때 알던 사람이 내가 하는 일을 듣고 한마디를 해준 거였다.
그 한마디를 들으려고 간 게 아니었다.
그냥 고향에 간 거였다.
그러니 사람이 어디에 선을 그어놓고 살면 안 되는 모양이다.
안 갈 데라고 정해놓으면 그쪽에서 올 것도 안 온다.
그 뒤로 고향에 더 자주 갔다.
일이 생겼으니 간 거였는데, 가다 보니 일 없이도 가게 됐다.
무너져서 못 가던 데를 몇 해 걸려 다시 다니게 된 셈이다.
그 사이에 달라진 건 고향이 아니라 나였다.
얼굴을 들고 갈 수 있게 된 거였다.
"등잔 밑이 어둡다"
옛날 등잔은 기름을 담은 접시에 심지를 세워 불을 붙인 것이었다.
불빛이 위와 옆으로는 퍼지는데, 정작 등잔이 놓인 그 아래는 그늘이 져서 어두웠다.
방 안을 밝히려고 올려둔 등잔 밑에서 바늘을 떨어뜨리면 찾지 못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멀리 있는 것보다 가까이 있는 것을 더 모르고 지나치는 일을 두고 이 말을 했다.
어두운 이유가 불빛이 약해서가 아니라, 너무 가까이 있어서라는 데에 이 말의 맛이 있다.
— 한국 속담.
가까이 있는 것일수록 오히려 안 보인다는 뜻이다.
매일 보는 것은 보고 있다고 여기게 되니, 거기에 무엇이 있는지를 따로 확인하지 않게 된다.
몇 해 동안 제도 공고를 뒤지고 다닌 사람이, 매일 오르던 산 쪽에 길이 하나 더 있는 걸 몰랐던 것도 그래서다.
그걸 알려준 건 결국 밖에서 그 자리를 본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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