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옮겨온 글 ▣
예전 블로그에 써두었던 글을 옮겨 왔다. 문장은 그때 그대로 두고, 읽기 편하게 조금만 매만졌다.
사람 하나를 만나서 인생이 달라졌다는 말을 나는 예전에 잘 몰랐다.
운이 좋았던 사람들이 나중에 붙이는 설명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일이 실제로 있더라.
지금도 그분 얘기를 꺼내면 말이 길어진다.
이 블로그에 그 얘기가 여러 번 나올 텐데, 시작은 전부 이 하루에서 비롯됐다.
그것도 아주 평범한 날, 평범한 자리에서 시작됐다.

■ 작업장에 양복 차림의 낯선 사람
그 공장에는 가끔 외부에서 사람들이 찾아왔다.
약재상이나 거래처 사람들이었고, 대개는 트럭을 몰고 와서 짐을 싣고 바로 떠났다.
그날도 평소와 다를 게 없는 날이었다.
오전에 산에 올라갔다 내려와 마당에서 껍질을 고르고 있었는데, 마당 쪽에서 승용차 소리가 나고 사람들 시선이 한쪽으로 쏠렸다.
그 틈에서 그분은 처음부터 눈에 띄었다.
작업복과 장화뿐인 마당에 깔끔한 양복 차림으로 들어섰고, 한 손에는 서류가방을 들고 있었다.
흙먼지 날리는 공장 마당과 그 차림이 어울리지 않아서, 나도 모르게 하던 일을 멈추고 쳐다봤다.
그런데 어색해 보이지는 않았다.
구두에 흙이 묻는 걸 신경 쓰는 기색 없이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고, 마주치는 사람마다 먼저 인사를 건넸다.
얼굴에 늘 웃음이 걸려 있었는데, 영업하는 사람들 특유의 그 웃음과는 결이 달랐다.
굳이 말하자면 사람 좋은 쪽에 가까웠다.
목소리가 크지 않은데 잘 들렸고, 말을 끊지 않았다.
누가 얘기하면 끝까지 듣고 나서 한 마디를 보탰다.
사람을 많이 만나본 사람의 태도라는 게 그런 거구나 싶었다.
사장님 지인이라는 소개를 들었다.
하시는 일은 서류를 봐주고 길을 알려주는 쪽이라고 했는데, 그때 나는 그 설명을 듣고도 정확히 뭘 하시는 분인지 감이 안 잡혔다.
그때는 그런 세계가 있다는 것조차 몰랐다.
나도 사업을 해봤다는 사람인데 은행 문턱만 알았고, 그 밖에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는 들여다본 적이 없었다.
나중에야 그게 정부에서 나오는 자금이나 지원을 받을 수 있게 서류와 요건을 맞춰주는 일이라는 걸 알았다.
그런 게 있다는 걸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는, 내가 직접 사업을 시작한 뒤에야 비로소 자세히 알게 됐다.

■ 울산이라는 말
그날 저녁에 자리가 만들어졌다.
처음 보는 분이라 나는 끝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이야기가 오가다 그분 댁이 울산이라는 말이 나왔다.
그 말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들었다.
내 고향은 안동이지만 부모님과 형제들이 전부 울산에 계시니, 나한테도 울산은 고향이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그 얘기를 꺼내자 그분이 반가워하며 이것저것 물으셨다.
어느 동네냐, 부모님은 뭘 하시냐, 그 집 아직 있냐.
어느 학교 근처냐는 말이 나오고, 그 앞에 있던 가게 이름이 나왔다.
별 내용이 없는 얘기인데 그걸 주고받는 동안 자리가 완전히 달라졌다.
타지에서 같은 지역 이야기를 주고받는 게 그렇게 사람 사이를 빨리 좁힐 줄은 몰랐다.
처음 보는 사람하고 삼십 분 만에 그렇게 되는 경우는 흔치 않다.
나이를 여쭤보니 나보다 일곱 살 위셨다.
그 자리에서 형님 소리가 나온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어려운 손님은 아니게 됐다.
그날 자리가 파할 때쯤 그분이 내 잔을 채워주시면서, 여기 와서 지낼 만하냐고 물으셨다.
나는 생각보다 괜찮다고만 대답했다.
그 말이 사실이기도 했고, 그 이상은 말하고 싶지 않기도 했다.
그런데 그분은 더 묻지 않으셨다.
그 자리에서 내 과거를 캐묻지 않은 사람은 그분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안 묻는 방식이 좀 달랐다.
묻지 않으면서도 지금 어떤 상태인지는 알고 있다는 눈치였다.
술자리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그 생각을 했다.
내 사정을 알고도 모르는 척해주는 사람과, 모르면서 아는 척하는 사람은 앉은 자리에서 티가 난다.
그분은 전자였다.
그 차이가 뭔지는 그때 설명할 수 없었는데, 몇 해 지나고 나서 알았다.
사람을 많이 겪어본 사람만 그렇게 앉아 있을 수 있다.

■ 서류 몇 장으로 일이 되는 세계
그 뒤로도 그분은 공장에 자주 들르셨다.
하시는 일이 서울과 아랫지방을 오가는 일이라, 내려가는 길에 한 번 올라오는 길에 한 번씩 들르신다고 했다.
오실 때마다 그냥 인사만 하고 가시는 법이 없었다.
회사 서류를 봐주시거나 알아봐야 할 것들을 짚어주고 가셨다.
덕분에 공장이 받을 수 있는 지원을 여러모로 많이 챙기게 됐다는 얘기도 나중에 들었다.
서류가방에서 꺼낸 종이들을 사장님 앞에 펼쳐놓고 한참 설명하시는 걸 멀리서 본 적이 있다.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여기는 이렇게, 저기는 저렇게 하라고 하시는데 말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았다.
듣는 사람이 메모할 시간을 주면서 이야기하는 사람이구나 싶었다.
사장님이 중간중간 되물으면 같은 내용을 다른 말로 한 번 더 차분히 짚어주셨다.
귀찮아하는 기색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나는 지게를 내려놓고 물을 마시는 척하면서 그 광경을 몇 번 더 훔쳐봤다.
서류 몇 장으로 일이 굴러가는 세계가 있다는 것 자체가 낯설었다.
몸으로 뛰는 일만 일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서류 몇 장이 사람 몇 달의 노동만큼 무게를 지닌다는 걸 곧바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그게 내 짧은 생각이었다는 걸 깨닫는 데는 몇 년이 걸렸다.
솔직히 처음엔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별개의 세계처럼 느껴졌다.
그때 나는 짐을 짊어지고 바닥을 구르는 사람이었고, 그분은 책상머리에서 서류로 판을 짜는 사람이었다.
지지난 저녁 자리 이후로 그분과 나누는 대화도 부쩍 늘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집에 진도견 한 마리를 키운다고 했더니, 그 뒤로는 공장에 올 때마다 녀석 안부부터 건네셨다.
한 번은 공장 마당에서 팔복이를 보시고는 쭈그려 앉아 한참을 쓰다듬어 주셨다.
짐승을 키워보면 대하는 태도만 봐도 평소 품성이 다 드러난다는, 그런 덤덤한 말씀을 남기기도 했다.
신기하게도 팔복이 역시 그분을 경계하지 않았다.
원래 낯선 사람이 손을 뻗으면 한 발짝 물러서서 내 눈치부터 살피는 녀석이었는데, 그날은 꼬리를 흔들며 가만히 손길을 받아냈다.
그 장면을 본 이후로 나는 그분을 조금 다른 눈으로 보게 됐다.
어느 날은 내가 마당 한쪽에 주저앉아 숨을 고르고 있는데, 그분이 다가와 자연스럽게 옆에 쪼그려 앉으셨다.
고급 양복 바지에 흙먼지가 묻는 게 보여서 내가 먼저 자리를 털고 일어나려 하자, 손사래를 치며 괜찮다고 하셨다.
그러고는 넌지시 이 일을 언제까지 할 생각인지 물어오셨다.
나는 당장은 여기가 먹고살 만하다고 대답했다.
그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몸 쓰는 일은 나이가 들면 한계가 오는 법이니 그사이에 무언가 밑거름을 준비해 두라고 조언하셨다.
그땐 그냥 으레 어른들이 하는 잔소리 정도로 흘려들었다.

■ 귀에 박힌 말
그분이 자주 하시던 말이 몇 가지 있었다.
성공은 준비된 사람의 것이라는 말, 그리고 선택과 집중을 하라는 말이었다.
처음 들었을 때는 솔직히 흘려들었다.
어디서 귀에 박히도록 들었던 뻔한 소리였고, 그런 건 이미 자리 잡은 사람들이나 하는 얘기라고 치부했다.
그런데 같은 말을 몇 번 더 듣고 나니 조금씩 다르게 들리기 시작했다.
그분은 그 말을 할 때마다 늘 구체적인 행동을 함께 짚어주곤 했다.
무엇을 미리 갖춰놔야 하는지, 어떤 순서로 판을 짜야 하는지, 당장 내일부터 뭘 알아봐야 하는지.
뜬구름 잡는 격려가 아니라 당장 해치워야 할 일 목록에 가까웠다.
하나를 제대로 파고들려면 나머지는 과감하게 덜어내야 한다는 말씀도 입버릇처럼 하셨다.
욕심만 앞서면 이도 저도 안 된다고, 선택이 먼저고 집중은 그다음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성공으로 가는 단계를 여덟 가지로 나눠서 칠판에 적어주신 적도 있다.
거창한 경영 이론 같은 게 아니었다.
하고 싶은 걸 명확히 정하고, 그걸 구현할 수 있는 형태로 틀을 잡고, 자금의 흐름을 계산해 보고, 부족한 구멍을 어디서 메울지 따져보는 지극히 현실적인 순서였다.
귀로 들을 때는 다 아는 소리 같았지만, 막상 그 순서대로 종이에 적어보며 움직이는 사람은 주변에 드물었다.
나 역시 예전에 사업을 벌일 때는 저 원칙을 죄다 무시했었다.
하고 싶은일부터 먼저 엉성하게 벌여놓고 뒤처리는 감으로 때웠으니, 결과가 그 모양일 수밖에 없었다.
물건만 좋으면 팔릴 거라 믿었고, 사람만 믿고 가면 될 줄 알았다.
둘 다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턱도 없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그분의 이야기를 들으며 속으로 뜨끔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당시에는 귀가 따갑도록 들은 잔소리였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내가 뭔가를 새로 시작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그 순서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사람이 같은 방향의 이야기를 반복해서 접하면, 어느새 그것이 체화되어 자기 기준이 되는 모양이다.

■ 그때는 몰랐던 것
그 시절의 나는 그저 공장에서 궂은일을 하던 직원 하나였다.
산에서 지게를 지고 껍질을 벗기다 저녁이면 막걸리 한잔 걸치고 집으로 돌아와 개와 시간을 보내던 삶이었다.
그분이 나 같은 사람에게 뭔가를 기대하고 먼저 손을 내밀었을 리도 만무했다.
세상 일과 인연이라는 게 참 묘한 구석이 있어서, 번듯한 회의실에서 명함이나 주고받으며 트이는 게 아니었다.
흙먼지 날리는 마당 구석에서 무뚝뚝한 안부 한마디로 시작됐다.
그날 저녁 자리의 끝자락에 앉아 입을 꾹 다물고 있었더라면 내 인생이 어떻게 흘러갔을지 가끔 상상해 보곤 한다.
아마 그분에게 나는 수많은 사람들 중 스쳐 지나가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을 거다.
돌이켜보면 그 자리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던 것도, 그 거친 공장에 제 발로 들어간 것도 내가 무슨 거창한 밑그림을 그려서 된 게 아니었다.
그저 그날, 그 시점에 그 자리에 내가 버티고 서 있었을 뿐이다.
다만 한 가지, 그때의 나에게도 쓸만한 구석은 하나쯤 있었던 모양이다.
누가 어떤 이야기를 하든 중간에 끊지 않고 끝까지 받아 삼키는 버릇, 그리고 마음에 걸리는 구절은 수첩 한 구석에 남겨두는 습관 말이다.
그 시절 공장에서 내가 건진 것들 중에서 어쩌면 그 꼬깃꼬깃한 메모들이 가장 비싼 값어치를 하는지 모른다.
산에서 줒어온 나무들은 그해 겨울을 넘기지 못하고 다 태워졌지만, 그때 책상머리에서 주워들은 조각들은 아직도 내 서랍 속에서 굴러다니고 있다.
그날 이후로 그분에게 은혜를 입은 일은 손가락으로 꼽을 수조차 없다.
그 인연의 결을 처음부터 끝까지 풀어내려면 글 몇 자락으로는 택도 없을 터라, 이쯤 해두고 차례가 닿을 때 하나씩 꺼내볼 참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고대 그리스의 이야기꾼 이솝이 남긴 우화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한 농부가 무거운 짐을 실은 수레를 끌고 가다 진흙 구덩이에 바퀴가 깊이 빠져버리자, 농부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하늘을 향해 힘센 신 헤라클레스를 큰 소리로 불렀다.
그러자 헤라클레스가 나타나 말하기를, 어깨를 수레에 대고 직접 밀어보라, 그리고 소를 몰아보라, 손 하나 까딱하지 않으면서 나를 부르는 일은 그만두라고 했다.
농부가 그 말대로 어깨로 수레를 밀자 바퀴가 진흙에서 빠져나왔고, 이 이야기에서 위의 말이 나왔다.
— 이솝(Aesop, 기원전 6세기경 추정). 고대 그리스의 우화 작가. 『이솝 우화』.
도와줄 사람은 가만히 앉아 있는 사람 앞이 아니라, 이미 어깨를 대고 밀고 있는 사람 옆에 나타난다는 뜻이다.
운이든 사람이든 기회든, 먼저 몸을 움직여 둔 자리에서만 손을 맞잡을 수 있는 법이다.
그러니 누가 끌어줄지를 기다리기보다 내가 지금 무엇을 밀고 있는지를 먼저 보는 쪽이 빠르다.
그해 봄 내가 한 일이라고는 산을 오르내리며 껍질을 벗긴 것뿐이었는데, 그 자리에서 그분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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