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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일상

[벤처기업 인증] 2022년 7월 6일

by 사람들생각 2026. 1. 22.

▣  옮겨온 글 ▣

예전 블로그에 써두었던 글을 옮겨 왔다. 문장은 그때 그대로 두고, 읽기 편하게 조금만 매만졌다.


 

칠월 초는 장마와 더위가 섞여 있는 철이다.

비가 오면 습하고 안 오면 뜨겁다.

그 사이에 하루씩 맑은 날이 끼는데, 그런 날은 하늘이 유난히 높아 보인다.

그 무렵 공장 앞 밭에는 작물이 한창 올라와 있었다.

아침에 나가보면 어제보다 한 뼘씩 커 있는 게 눈에 보인다.

여름은 그래서 조급한 계절이면서 동시에 느긋한 계절이다.

사람이 보채도 안 되고, 안 보채도 알아서 간다.

그걸 몇 해 겪고 나면 사람 성질도 조금 느려진다.

처음 내려온 해에는 비가 오면 비 오는 게 답답했고, 더우면 더운 게 답답했다.

날씨를 어떻게 해보려는 마음이 남아 있었던 거다.

몇 해 지나니 비가 오면 비 올 때 할 일을 하고, 더우면 더울 때 할 일을 한다.

그해 칠월에도 그랬다.

비 오는 날은 안에서 포장하고 병 라벨을 붙였고, 맑은 날은 밖에 널어 말렸다.

하루하루가 날씨에 맞춰 돌아갔다.

그 와중에 서류 하나를 넣어놓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걸 넣은 건 그 앞달이었다.

임업후계자 일이 정리되고 숨 좀 돌리던 무렵에 전화가 와서 시작된 일이었다.

서류는 또 조 대표님이 틀을 잡아주셨고, 나는 자료를 모아서 넘겼다.

넘긴 뒤로는 내가 할 게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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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류로만 진행됐다

서류를 넣고 나서 기다리는 동안, 솔직히 제일 알고 싶었던 건 하나였다.

또 사람이 와서 보나.

6차 산업 때는 심사위원 네 분이 공장에 오셨고 그때 등에 땀이 났다.

임업후계자 때도 준비할 게 많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그쪽에서 오겠다는 연락이 끝내 오지 않았다.

서류로만 진행됐다.

그게 편했냐고 하면, 꼭 그렇지도 않았다.

사람이 오면 내가 설명할 기회가 생긴다.

서류가 부족해도 공장을 보여주면서 말할 수 있다.

서류로만 보는 건 반대다.

내가 보탤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넘긴 종이가 알아서 설명해야 한다.

그러니 미리 잘 써두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는 심사였다.

처음에는 그게 좀 섭섭했다.

공장까지 와서 보면 할 말이 있는데 싶었다.

해썹 받으면서 벽이며 바닥이며 손본 게 눈에 보이는 것들이고, 저장고 온도 기록도 날짜별로 다 있다.

와서 보면 금방 알 수 있는 것들이 와보지 않으면 종이 한 줄로 줄어든다.

그런데 조 대표님 말은 달랐다.

와서 보면 좋은 것도 있지만 와서 보면 깎이는 것도 있다고.

그 말이 맞았다.

우리 공장은 깨끗하긴 하지만 크지 않다.

연구소라고 부를 만한 방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었다.

오셔서 그런 걸 보면 머릿속에 그림이 하나 생기고, 그 그림이 점수에 영향을 줄 수도 있는 거였다.

그러니 안 오는 게 꼭 불리한 것만은 아니라는 얘기였다.

듣고 보니 그런 것 같았다.

어차피 내가 정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그래서 그 뒤로는 묻지 않았다.

언제 나오는지, 어떻게 보는지, 지금 어디까지 갔는지.

물어도 알 수 있는 게 아니고, 알아도 내가 바꿀 게 없다.

그런 걸 자꾸 물으면 옆 사람이 피곤해진다.

조 대표님도 아마 그래서 따로 연락을 안 주셨던 것 같다.

서로 말을 아끼는 게 그 시기에는 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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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을 떠난다는 것

그걸 알고 나서 마음이 오히려 정리됐다.

할 수 있는 걸 다 했으면 그다음은 생각해봐야 소용이 없다.

그래서 기다리는 동안 공장 일만 했다.

여름이라 할 일이 많았다.

나오는 철에 맞춰 재료를 받아야 하고, 받으면 바로 손질해서 말려야 한다.

그 철을 놓치면 그해 원재료가 없으니 심사 결과를 생각할 틈이 없었다.

지나고 보니 그게 다행이었다.

몸이 바쁘면 머리가 덜 복잡하다.

기다리는 일이 제일 괴로운 건 할 일이 없을 때다.

그 여름에 재료가 많이 들어왔다.

산에서 거둔 것들은 들어오는 날이 정해져 있지 않다.

전화가 와서 오늘 간다고 하면 그날 받아야 한다.

받으면 바로 씻고 다듬어서 말려야 하고, 하루라도 두면 색이 변하거나 상한다.

그러니 들어오는 날은 밤까지 일이 이어졌다.

직원 둘도 그 여름에 고생을 많이 했다.

한 사람은 손이 빠르고 한 사람은 꼼꼼했는데, 둘이 붙으면 속도가 났다.

저녁에 셋이 공장 앞에 앉아서 아이스커피 한 잔씩 마시던 게 기억난다.

그때 직원 하나가 물었다.

그거 되면 뭐가 달라지냐고.

나는 제대로 대답을 못 했다.

사실 그때는 나도 정확히 몰랐다.

된다는 것까지는 알고 있었는데, 되면 뭐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는 받은 뒤에 알아봐야 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냥 그랬다.

그거 되면 우리 회사가 벤처기업이 된다고.

그 말을 하고 나서 좀 머쓱했다.

회사 이름 앞에 붙는 말이 하나 늘어나는 것뿐인데 뭐가 달라지냐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 뒤로 몇 달 지나고 보니 달라지는 게 있기는 했다.

전화로 처음 인사할 때 설명이 짧아진다.

산에서 거둔 걸로 음료 만드는 작은 회사라고 말하면 상대가 그림을 못 그리는데, 앞에 한마디가 붙으면 대충 알아듣는다.

그게 큰 건 아니지만 일할 때는 꽤 편한 거였다.

 



■ 한 번에 됐다

결과는 한 번에 나왔다.

보완하라는 연락도 없었고 다시 내라는 얘기도 없었다.

그게 흔한 일은 아니라고 들었다.

숫자 요건이 없는 유형이라 보는 사람 판단에 걸리는 게 많고, 그래서 한 번에 안 되고 보완을 거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했다.

우리는 그게 없었다.

왜 그랬을까를 나중에 생각해봤다.

서류를 특별히 잘 써서는 아닐 것이다.

아마 적어낸 것과 실제가 어긋나는 데가 없어서였을 거다.

있는 걸 있다고 적고 없는 걸 없다고 적었으니, 뒤집어볼 구석이 없었던 셈이다.

그게 몇 해 동안 지켜온 원칙 하나가 돌려준 값이었다.

처음 공장을 낼 때 그걸 배웠다.

허가 서류에 없는 걸 있다고 쓰면 나중에 다 걸린다.

해썹 할 때도 같았다.

기록을 미리 몰아서 만들면 날짜가 안 맞아서 금방 드러난다.

그러니 귀찮아도 그날 일을 그날 적어두는 게 제일 편한 방법이었다.

이번 서류도 그 방식으로 썼다.

개발 중인 제품은 개발 중이라고 쓰고, 끝난 건 끝났다고 썼다.

없는 특허를 있는 것처럼 쓰지 않았고, 연구소가 없으니 없다고 적었다.

그래서 서류가 좀 허전해 보였다.

빈칸이 많으면 불안해지는 게 사람 마음이다.

그래도 조 대표님은 빈칸을 억지로 메우지 말라고 하셨다.

빈칸은 점수가 깎이는 거고, 거짓은 떨어지는 거라고.

그 차이를 그때 알아들었다.

깎이는 건 나중에 채우면 되고, 떨어지는 건 다시 못 쓴다.

그러니 깎이는 쪽을 택하는 게 맞았다.

서류를 쓰다 보면 그 유혹이 꽤 세다.

한 줄만 보태면 그림이 훨씬 좋아지는 칸이 꼭 있다.

연구 인력 칸에 사람 수를 조금 늘려 적고 싶고, 개발 단계 칸을 한 칸 앞으로 당겨 쓰고 싶다.

아무도 안 볼 것 같고, 봐도 확인할 방법이 없을 것 같다.

그런데 그게 한 번 통하면 다음에도 그렇게 쓰게 된다.

그러다 어느 날 서류와 실제가 완전히 다른 회사가 되어 있는 거다.

그 상태에서 사고가 한 번 나면 손쓸 데가 없다.

돌아보면 그 선택이 한 번에 통과한 이유였던 것 같다.

 



■ 종이에 적힌 날짜

확인서에 적힌 날짜가 2022년 7월 6일이다.

유효기간은 그날부터 3년, 2025년 7월 5일까지였다.

확인유형 칸에는 혁신성장유형이라고 찍혀 있었다.

발급한 데는 벤처기업협회였다.

그 무렵에는 정부가 직접 확인하는 게 아니라 민간이 맡아서 심의하던 때였다.

종이를 받아 들고 그 칸들을 하나씩 읽었다.

회사 이름이 적혀 있었다.

농업회사법인 주식회사.

그 앞에 우리 상호가 붙어 있었다.

몇 해 전에 손으로 써서 병에 붙이던 그 이름이었다.

그 이름을 처음 정할 때는 아무 뜻도 없었다.

그냥 부르기 쉽고 입에 붙는 쪽으로 골랐다.

그걸 종이에 써서 병에 붙였고, 몇 해 뒤에 법인 등기에 들어갔고, 또 몇 해 뒤에는 인증서 칸에 들어갔다.

같은 이름이 종이를 바꿔가면서 계속 따라온 셈이다.

그 종이들이 그 무렵 공장 벽에 걸려 있었다.

영업신고증, 해썹 인증서, 6차 산업 인증서, 임업후계자 증서.

거기에 하나가 더 붙었다.

딱히 손님이 오는 공장도 아닌데 왜 걸어두느냐고 누가 그랬다.

손님 보라고 걸어둔 게 아니었다.

아침에 출근해서 그걸 보면 오늘 할 일이 좀 분명해진다.

그게 다였다.

그리고 하나 더 있었다.

그 벽을 보면 내가 몇 해 동안 뭘 했는지가 한눈에 보인다.

일이 안 풀리는 날에는 그게 필요하다.

오늘 아무것도 안 된 것 같은 날에도 벽에는 다섯 장이 걸려 있다.

그러면 적어도 지난 몇 해가 헛것은 아니었다는 게 확인된다.

종이 한 장이 사람을 끌고 가는 힘이 생각보다 있다.

 



■ 전류도 아니고 성취감도 아니고

기분이 어땠냐고 하면 설명이 좀 어렵다.

6차 산업 인증을 받았을 때는 전류가 흐르는 것 같았다.

그때는 밀려났던 자리에 다시 들어간 느낌이 있었다.

임업후계자 때는 조용한 성취감이었다.

고향에 내 이름으로 된 자리가 하나 생긴 거였으니까.

이번은 또 달랐다.

놀랍지가 않았다.

그렇다고 시시한 것도 아니었다.

될 줄 알았던 것이 됐을 때의 기분이라는 게 있다.

터지는 게 아니라 맞아떨어지는 느낌이다.

그 여름 내내 서류를 쓰면서 나는 이미 그 종이를 반쯤 받아놓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날 공장에서 특별히 한 것도 없었다.

그 소식을 듣고 나서도 하던 일을 그대로 했다.

널어둔 걸 걷고, 저울에 달고, 봉지에 담았다.

저녁에 아내한테 얘기했더니 잘됐다고 했다.

그 한마디였다.

처음 공장 허가 났을 때는 둘이 밖에서 밥을 먹었던 것 같은데, 이번은 그런 것도 없었다.

그게 섭섭한 게 아니라 좀 편했다.

집에서 큰일로 받아들이면 나도 긴장하게 된다.

잘됐다 한마디로 끝나면 다음 날 아침이 평범하게 온다.

몇 해 겪고 나니 그게 더 좋았다.




■ 그 담담함이 어디서 왔나

돌아보면 그 담담함은 자신감이 아니었다.

횟수였다.

공장 허가, 해썹, 법인, 교육, 6차 산업, 임업후계자.

여섯 번을 지나왔으면 일곱 번째는 처음처럼 떨리지 않는다.

결과가 나오는 방식도 알고, 안 되면 어떻게 되는지도 알고, 되면 뭐가 따라오는지도 대충 안다.

모르는 게 줄면 겁도 줄어든다.

그러니 담담해지는 방법은 마음을 다스리는 게 아니라 그냥 여러 번 해보는 거였다.

그걸 알고 나서 나는 누구한테도 "떨지 마라"는 말을 안 한다.

처음 하는 사람은 떠는 게 맞다.

몇 번 하면 안 떤다.

그걸 알고 나서 생기는 다른 변화도 있었다.

서류 하나를 놓고 넣을까 말까 고민하는 시간이 줄었다.

처음에는 그 고민을 오래 했다.

될까, 안 되면 창피한가, 시간 날리는 건 아닌가.

몇 번 해보니 안 되면 그냥 안 되는 거고, 떨어져도 아무 일도 안 일어난다.

그래서 고민할 시간에 서류를 쓰는 쪽으로 바뀌었다.

그렇다고 아무거나 다 넣었던 건 아니다.

우리한테 맞는 게 뭔지는 몇 번 겪으면서 감이 생겼다.

우리는 숫자로 겨루는 자리에서는 늘 밀렸다.

매출 규모로 줄을 세우면 우리 위에 회사가 아주 많다.

대신 과정으로 보는 자리에서는 할 말이 있었다.

그래서 과정을 보는 쪽을 골랐던 거다.

그게 요령이라고 하면 요령이고, 자기 분수를 아는 거라고 하면 그거다.

 



■ 숫자가 아니라 사람을 봤을 것이다

그 뒤로 가끔 생각한다.

심사하는 쪽에서 우리 서류를 보고 무엇을 봤을까.

기술이 대단해서는 아니었을 것이다.

산에서 거둔 걸 말리고 끓이고 담는 일에 세상을 바꿀 기술이 들어 있을 리 없다.

아마 흐름을 봤을 것이다.

2017년에 사업자를 내고, 공장을 세우고, 의무도 아닌 인증을 받고, 법인으로 바꾸고, 한 해 교육을 다니고, 6차 산업 인증을 받고, 임업후계자가 되고, 그 사이에 거래처가 늘고, 직원이 둘 생기고, 새 제품을 개발하고 있는 회사.

한 줄씩 보면 평범한데 쭉 이어놓으면 방향이 보인다.

이 사람이 이걸 계속 할 사람인가.

혁신성장유형이 보는 게 결국 그거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니 그 심사에서 통과한 건 그 여름의 서류가 아니라 그 앞의 다섯 해였다.

그 생각을 하면 좀 억울한 마음도 들었다.

그 다섯 해 동안 제일 힘들었던 시기에는 아무도 안 봐줬다.

공장 짓느라 돈이 들어가던 때, 해썹 준비하면서 밤에 혼자 서류 만들던 때, 거래처 하나 뚫으려고 몇 번씩 전화하던 때.

그때는 누가 와서 잘한다고 해준 적이 없다.

그러다 한참 지나서 종이 한 장이 와서, 그 다섯 해를 한꺼번에 인정해준다.

세상이 그렇게 돌아가는 것 같다.

힘들 때는 혼자 하고, 지나고 나서 평가를 받는다.

그러니 평가가 없다고 중간에 그만두면 평가받을 기회도 안 오는 거였다.

그걸 거꾸로 말하면 이렇게 된다.

평가는 늦게 오니까, 평가를 보고 계속할지 말지를 정하면 늦는다.

평가 없이 몇 해를 가는 사람만 평가를 받는다.

그래서 처음 몇 해는 자기가 자기한테 점수를 줘야 한다.

오늘 할 걸 했으면 됐다고.

그 얘기를 나중에 귀농 교육 자리에서 한 번 했다.

처음 몇 해는 아무도 안 봐줄 거라고.

그걸 각오하고 시작하시라고.

그렇게 말해놓고 보니 좀 야박한가 싶었는데,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다.




■ 익으면 떨어진다

그 무렵 공장 앞 밭에 심어둔 것들이 한창이었다.

참외든 호박이든, 익기 전에 따면 꼭지가 단단히 붙어 있어서 잘 안 떨어진다.

억지로 당기면 줄기가 상한다.

그런데 제때가 되면 손을 대지 않아도 꼭지가 알아서 떨어진다.

농사짓는 분들은 그걸 보고 때를 안다고들 한다.

그 여름에 내가 받은 종이도 그런 쪽에 가까웠다.

무리해서 따낸 게 아니라, 몇 해 동안 자라던 것이 그해에 익은 거였다.

몇 해 전에 그걸 신청했으면 안 됐을 것이다.

그때는 공장도 작았고 인증도 없었고 거래처도 몇 군데 안 됐다.

같은 서류를 썼어도 결과가 달랐을 거다.

그러니 되고 안 되고를 가른 건 솜씨가 아니라 때였다.

그리고 그때는 기다린다고 오는 게 아니라, 그 몇 해 동안 뭔가를 계속 해뒀기 때문에 온 것이었다.

그래서 그 종이를 받고 나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은 다음에 뭘 할까가 아니었다.

그 앞에 해둔 것들 생각이었다.

공장 바닥을 다시 깔던 날, 저장고 온도계를 사다 붙이던 날, 교육장에 앉아서 받아 적던 날.

그 하나하나는 그때 아무 결과도 없었다.

결과가 없는 일을 몇 해 계속하는 게 제일 어렵다.

그 몇 해가 그 여름에 한 번에 값으로 돌아온 셈이다.

그걸 겪어보면 결과가 없는 시기를 견디는 게 좀 수월해진다.

그게 그 종이에서 내가 얻은 제일 큰 것이었다.

 




"瓜熟蒂落"

(과숙체락)

 

송나라 때 엮인 도교 문헌 『운급칠첨』에 나오는 말이다.

참외는 덩굴에 매달려 자라는데, 덜 익었을 때는 꼭지가 단단히 붙어 있다.

그 상태에서 따려고 당기면 꼭지가 뜯어지고 덩굴까지 상한다.

그런데 속이 다 차고 때가 되면, 손을 대지 않아도 꼭지가 저절로 떨어진다.

옛사람들은 수련이든 일이든 그와 같다고 보았다.

안에서 충분히 익기 전에 서둘러 결과를 따내려 하면 망가지고, 익고 나면 애쓰지 않아도 결과가 저절로 온다는 것이다.

 

— 『운급칠첨(雲笈七籤)』. 북송 때 장군방이 엮은 도교 문헌.

 

속이 다 차면 결과는 저절로 떨어진다는 뜻이다.

그러니 결과가 안 온다면 때가 아직 아니거나 속이 덜 찬 것이지, 더 세게 당겨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저절로 떨어지는 것은 가만히 있어서가 아니라, 그동안 속이 차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여름에 받은 종이도 그해에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그 앞의 몇 해가 익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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