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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일상

[벤처기업 인증] 숫자가 없는 심사

by 사람들생각 2026. 1. 5.

▣  옮겨온 글 ▣

예전 블로그에 써두었던 글을 옮겨 왔다. 문장은 그때 그대로 두고, 읽기 편하게 조금만 매만졌다.


 

한여름 시골은 밤이 짧다.

해가 늦게 지고 일찍 뜨니 어두운 시간이 얼마 안 된다.

그런데 그 짧은 밤이 하루 중에 제일 길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낮에 몸을 쓰고 밤에 머리를 쓰는 날이 그렇다.

그 여름이 딱 그랬다.

낮에는 공장에서 끓이고 담고, 밤에는 책상에 앉아 서류를 봤다.

몸이 쉬어야 할 시간에 머리를 쓰니 잠이 깊지 않았다.

그래도 그 여름이 싫지 않았다.

몸만 쓰는 해가 있고 머리만 쓰는 해가 있는데, 둘을 같이 쓰는 해는 지나고 나면 남는 게 많다.

공장에서 손이 하던 일을 밤에 글자로 옮겨 적는 작업이었으니, 결국 같은 일을 두 번 한 셈이기도 했다.

그 여름에 커피를 많이 마셨다.

밤에 앉으려면 한 잔 더 마셔야 했으니까.

그러다 늦게 자고 새벽에 일어나는 날이 이어졌다.

몸이 좀 축났는데 그때는 그걸 몰랐다.

할 일이 있을 때 사람은 자기 몸을 잘 안 본다.

그래도 그 여름에 하나는 지켰다.

가는 날은 가고 하는 날은 한다는 것.

서류를 본다고 생산을 미루지 않았고, 생산이 밀린다고 서류를 접지 않았다.

둘 중 하나를 접기 시작하면 결국 둘 다 흐지부지된다는 걸 몇 번 겪어서 알고 있었다.

그게 가능했던 건 직원 둘이 있었기 때문이다.

혼자였으면 둘 중 하나는 반드시 접었을 것이다.

몇 해 전 농민사관학교를 다니던 해에 그걸 겪었다.

그때는 공장이 비면 그만큼 밀렸다.

사람이 있다는 건 선택지를 하나 더 갖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 여름에 직원들에게 미안한 게 좀 있었다.

내가 서류에 붙어 있는 동안 공장은 그 둘이 돌렸다.

그 둘이 없었으면 그 여름에 아무것도 못 했을 것이다.

 

생산 작업 후 청소



■ 무엇을 보는 심사인가

혁신성장유형은 돈으로 거는 조건이 없다.

대신 두 가지를 본다.

기술의 혁신성과 사업의 성장성.

그 두 덩어리 안에 또 항목이 나뉘어 있었다.

기술 쪽은 연구하는 조직과 기술 인력이 있는지, 기술을 어떻게 개발해나갈 계획인지, 그 기술이 남들 것과 어떻게 다른지, 그동안의 연구개발 실적은 있는지, 특허 같은 권리를 가지고 있는지를 본다.

사업 쪽은 사업 계획이 실제로 말이 되는지, 팔 시장을 제대로 잡았는지, 돈을 어떻게 굴릴 건지, 다른 데와 같이 일한 실적이 있는지를 본다.

그 항목표를 처음 보고 한참 들여다봤다.

그중에 우리가 당당하게 적을 수 있는 칸이 몇 개나 되는지 세어봤다.

항목마다 비중이 달랐다.

기술 쪽에서는 연구조직과 기술개발 계획이 제일 크게 잡혀 있었고, 사업 쪽에서는 사업계획의 적절성이 절반 가까이 차지했다.

특허 같은 권리는 생각보다 비중이 작았다.

그걸 보고 마음이 조금 놓였다.

특허가 없으면 아예 안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비중이 큰 쪽을 제대로 채우면 되는 거였다.

어디에 힘을 줘야 하는지를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가 여기서 갈린다.

그걸 알려준 것도 조 대표님이었다.

항목표를 같이 펴놓고 어디가 큰 칸이고 어디가 작은 칸인지를 짚어주셨다.

작은 칸에 며칠씩 매달리는 게 제일 아까운 일이라고 하셨다.

그 말을 듣고 큰 칸부터 썼다.

서류도 일머리가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그 전까지 나는 서류를 앞에서부터 차례로 채웠다.

그러면 뒤에 가서 힘이 빠진다.

제일 중요한 칸이 뒤에 있으면 그 칸이 제일 부실해진다.

순서를 바꾸는 것만으로 결과가 달라진다는 게 신기했다.

 

생산 작업 후 청소



■ 비어 있는 칸부터 셌다

연구소는 없었다.

기술 인력이라고 내세울 사람도 없었다.

나는 식품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고, 직원 둘도 마찬가지였다.

특허도 없었다.

실용신안도 없었다.

거기까지 세고 나니 앞이 깜깜했다.

항목표의 절반이 비어 있는 셈이었다.

그 얘기를 조 대표님께 했더니 웃으셨다.

비는 칸부터 세는 버릇을 고치라고 하셨다.

서류는 채운 칸으로 평가받는 거지 빈 칸으로 깎이는 게 아니라고.

물론 비면 점수가 안 나온다.

그런데 비어 있다고 떨어지는 건 아니고, 다른 칸에서 채우면 된다는 말씀이었다.

그 말을 듣고 생각을 뒤집었다.

없는 걸 세는 대신 있는 걸 세기로 했다.

그 말씀이 그때만 맞는 얘기가 아니었다.

없는 걸 먼저 세는 버릇은 사람을 주저앉힌다.

돈 없고 사람 없고 배운 것 없다고 세다 보면 아무것도 못 한다.

있는 걸 세면 생각보다 있다.

빈손으로 내려왔다고 생각했던 사람도 몇 해 지나니 셀 게 꽤 있었다.

다만 세어보기 전에는 그게 있는 줄도 모른다.

그래서 한 번씩 종이에 적어보는 게 필요하다.

그 여름에 적어본 목록이 그 뒤로도 몇 번 쓰였다.

어디에 뭘 낼 때마다 그 목록을 꺼내 고쳐 썼다.

새로 받은 걸 넣고 끝난 걸 뺐다.

그게 우리 회사의 이력서였던 셈이다.

사람은 이력서를 쓰는데 회사도 이력서가 필요하다는 걸 그때 알았다.

그리고 그 이력서는 하루아침에 못 만든다.

한 줄 늘리는 데 몇 달에서 몇 해가 걸린다.

그러니 급할 때 꺼내려고 하면 이미 늦다.

한가할 때 한 줄씩 늘려두는 수밖에 없다.




■ 있는 걸 세어보니

공장이 있었다.

해썹 기준에 맞춰 지은 시설이었다.

6차 산업 인증이 있었다.

임업후계자가 있었다.

법인이 있고 정관이 있고 몇 해 치 재무제표가 있었다.

그리고 몇 해 동안 쌓인 기록이 있었다.

원재료를 어디서 얼마에 받아왔는지, 어떤 순서로 말리고 끓였는지, 품목마다 온도와 시간을 어떻게 잡았는지.

해썹을 받으면서 적기 시작한 그 기록이 그때까지 이어져 있었다.

처음에는 심사받느라 적었다.

그게 몇 해 쌓이니 우리 공장의 방법이 되어 있었다.

남들이 모르는 것도 아니고 대단한 것도 아니지만, 적어도 우리가 몇 해 걸려 자리를 잡은 방식이었다.

그게 기술이 아니면 뭐가 기술인가 싶었다.

그리고 그 기록이 종이로 남아 있다는 게 컸다.

머릿속에만 있으면 아무리 알아도 증명이 안 된다.

해썹 심사를 받느라 억지로 적기 시작한 게 그 자리에서 전부 자산이 됐다.

그때 성가시다고 대충 적었으면 꺼낼 게 없었을 것이다.

성가신 일을 제대로 해두면 몇 해 뒤에 값을 한다는 걸 그 몇 해 동안 여러 번 봤다.

그걸 알고 나서 기록하는 방식도 조금 바꿨다.

날짜와 수치를 꼭 같이 적었다.

언제 얼마를 어떤 조건으로 했는지가 남아야 나중에 쓸 수 있다.

그냥 "잘 됐다"고 적어두면 몇 달 뒤에 아무 쓸 데가 없다.

그걸 직원들에게도 같은 방식으로 적게 했다.

처음에는 번거로워했다.

몇 달 지나니 본인들이 먼저 찾아봤다.

지난번에 어떻게 했더라 싶을 때 적어둔 게 있으면 바로 꺼내진다.

기록은 결국 미래의 나를 위해 적는 것이었다.

 

청을 담기 위한 원당



■ 그때 하던 것

그리고 그 무렵에 개발하던 게 하나 있었다.

뼈에 좋은 약초를 넣은 음료였다.

그 전까지 우리가 만든 건 말린 것, 티백, 담금주 키트, 끓여서 병에 담은 것이었다.

전부 집에서 손이 한 번 더 가야 하는 물건이다.

물을 끓이거나 우리거나 담가둬야 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점점 그걸 안 한다.

바로 마실 수 있는 걸 찾는다.

그 얘기를 몇 번 듣고 나서 음료 쪽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마가목이나 우슬, 두충 같은 재료는 예전부터 뼈나 관절 쪽에 쓰이던 것들이다.

그걸 달여서 마시는 집은 많은데, 그 달인 물을 병에 담아 파는 건 또 다른 일이었다.

맛이 문제였다.

약초는 달이면 쓰고 떫다.

약으로 먹으면 참는데 음료로 마시려면 안 참는다.

그 사이를 맞추느라 직원 둘과 몇 달을 돌렸다.

배합을 바꾸고 달이는 시간을 바꾸고 온도를 바꿔가며 돌렸다.

한 번 돌리면 결과를 보는 데 시간이 걸린다.

맛을 보고 색을 보고 며칠 두고 또 본다.

그걸 수십 번 했다.

직원 둘이 고생을 많이 했다.

나중에는 셋이 둘러앉아 맛을 보면 누가 어떤 걸 집을지가 보일 정도였다.

그 과정이 재미있었다.

몇 해 동안 받은 서류들은 남이 정한 기준을 맞추는 일이었는데, 그건 우리가 기준을 만드는 일이었다.




■ 서류에 들어간 자리

그 개발이 서류에서 중심이 됐다.

기술을 어떻게 개발해나갈 계획인지 적는 칸에 그 음료 얘기가 들어갔다.

우리가 무엇을 만들려고 하는지, 어떤 문제를 풀어야 하는지, 지금 어디까지 와 있는지.

그걸 적다 보니 내가 하던 일이 정리됐다.

공장에서는 그냥 "이번엔 좀 덜 쓰게 해보자"였던 것이, 종이 위에서는 배합비와 공정 조건을 잡아가는 과정이 됐다.

같은 일인데 말이 달라지니 모양이 달라졌다.

서류를 쓴다는 게 없는 걸 지어내는 게 아니라 하던 일에 이름을 붙이는 일이라는 걸 그때 확실히 알았다.

그리고 적어놓고 나니 내가 어디쯤 와 있는지가 보였다.

몇 달 돌렸는데 아직 못 푼 게 무엇인지, 남은 게 몇 단계인지가 종이 위에 드러났다.

공장 안에서만 있을 때는 그게 안 보인다.

매일 조금씩 하니까 늘 비슷한 자리에 있는 것 같다.

글로 적어야 거리가 보인다.

그래서 그 서류는 심사받으려고 쓴 건데, 쓰는 동안 내 일이 정리됐다.

 

영지 버섯 재배사



■ 자료를 모으는 일

그런데 적는 것만으로는 안 됐다.

근거가 붙어야 했다.

시험 성적서, 거래 실적, 같이 일한 기록 같은 것들이다.

그중에 연구개발 쪽 자료가 제일 아쉬웠다.

우리 혼자 공장에서 돌려본 것만으로는 종이가 안 됐다.

그래서 거래하던 업체 쪽에 정식으로 신청을 넣었다.

몇 해 거래하면서 알고 지낸 곳들이었다.

전화 한 통으로 부탁하는 식이 아니라, 무엇이 필요하고 어디에 쓸 건지를 적어서 정식으로 요청했다.

그렇게 해야 주는 쪽도 편하다.

그쪽도 서류로 남겨야 하는 일이니까.

몇 군데에서 협조해주셨다.

그 자료가 서류의 빈 칸을 메웠다.

그렇게 받아온 자료는 모양이 반듯했다.

내가 적어서 내는 것과 남의 회사 이름으로 들어오는 것은 무게가 다르다.

심사하는 쪽에서 보기에도 그렇다.

자기가 자기를 증명하는 것보다 남이 증명해주는 게 세다.

그 원리는 6차 산업 때 매대 사진 한 장으로 이미 겪어본 거였다.

그래서 그 뒤로는 뭘 준비할 때 남의 이름이 들어간 종이를 먼저 생각하게 됐다.

거래명세서든 협조 공문이든 사진이든, 내 말이 아닌 것으로 받쳐야 한다.

내 말만 길게 적은 서류는 아무리 잘 써도 가볍다.

그 균형을 맞추는 게 서류 쓰기의 절반이었다.

내가 할 말을 줄이고 남이 해준 말을 늘리는 쪽.

자랑을 늘리는 사람일수록 근거가 비어 있다는 걸, 받는 쪽에 서보면 금방 안다.

나도 서울에서 그랬다.

가진 게 없으니 말이 길어졌다.

지금 생각하면 듣는 쪽에서 다 보였을 것이다.

 

생산 제품



■ 같이 한 실적이라는 칸

그 과정에서 알게 된 게 있다.

항목표에 "다른 데와 같이 일한 실적"을 보는 칸이 따로 있었다.

처음에는 그게 왜 점수가 되는지 몰랐다.

생각해보니 이유가 있었다.

혼자 방 안에서 좋은 걸 만들었다고 하는 사람과, 여러 군데와 실제로 주고받으며 일해온 사람은 다르다.

뒤쪽이 훨씬 믿을 만하다.

거래가 오갔다는 건 누군가 그 사람 물건에 돈을 냈다는 뜻이니까.

그래서 몇 해 동안 쌓인 거래처 목록이 그 자리에서 값을 했다.

처음 로컬 매장 세 곳에 물건을 넣던 해에는 그게 몇 해 뒤 서류의 한 칸이 될 줄 몰랐다.

그러니 거래 하나하나가 그때는 매출이고 몇 해 뒤에는 이력이 된다.

작은 거래라고 소홀히 하면 그 이력이 안 쌓인다.

그 생각을 하고 나서 작은 주문도 다르게 보게 됐다.




■ 서류는 또 그분이

서류 작성은 이번에도 조 대표님께서 끌고 가셨다.

다만 방식이 전과 조금 달라져 있었다.

6차 산업 때는 그분이 거의 다 쓰시고 내가 읽고 확인하는 식이었다.

이번에는 내가 초안을 적고 그분이 고치시는 쪽이었다.

그 사이에 내가 서류를 조금 읽을 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어떤 칸에 무엇을 넣어야 하는지, 숫자가 서로 맞아야 하는 칸이 어디인지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래도 고쳐주시고 나면 글이 달라졌다.

같은 내용인데 읽는 사람이 받는 인상이 달랐다.

그 차이가 어디서 오는지는 지금도 다 설명을 못 하겠다.

칸의 성격을 알고 쓰는 사람과 모르고 쓰는 사람의 차이일 것이다.

그래도 그 여름에 내가 적은 분량이 전보다 훨씬 많았다.

남이 써주는 걸 기다리는 쪽에서 내가 쓰고 봐달라고 하는 쪽으로 넘어간 거였다.

그 변화가 몇 해 걸렸다.

처음 법인을 세울 때는 정관이 무슨 말인지도 몰랐던 사람이었다.

그 몇 해 동안 제일 많이 늘어난 게 서류 보는 눈이었던 것 같다.

물건 만드는 솜씨는 생각만큼 안 늘었다.

그건 어느 선에 가면 그 자리에 머문다.

그런데 서류는 할수록 늘었다.

그래서 시골에서 사업하는 사람에게 서류가 무기가 된다는 말이 맞다.

 

포장에 고급을 입히다!



■ 연장을 먼저 갈아야

그 여름에 내가 한 일을 요약하면 서류를 쓴 게 아니었다.

서류를 쓸 수 있게 만들어놓은 것들을 꺼내 쓴 거였다.

몇 해 전에 받아둔 해썹, 그때 적기 시작한 기록, 몇 해 동안 이어온 거래처, 그리고 그 무렵 개발하던 음료.

그중에 벤처 인증을 받으려고 미리 준비한 건 하나도 없었다.

전부 그때그때 필요해서 한 것들이었다.

그게 몇 해 뒤에 한자리에 모였다.

그러니 준비라는 건 목표를 정해놓고 하는 게 아닐 수도 있다.

그날그날 제대로 해두면 나중에 그게 연장이 되어 있는 것이다.

연장이 없는 사람은 좋은 일감이 와도 못 받는다.

그 여름에 내가 꺼내 쓴 건 전부 몇 해 전에 갈아둔 연장이었다.

그래서 지금 누가 뭘 준비해야 하느냐고 물으면 목록을 주지 않는다.

지금 하는 일을 제대로 하고, 그 기록을 남기시라고 한다.

무엇에 쓰일지는 그때 가서 정해진다.

기록이 없으면 그때 가서 만들 방법이 없다는 것만 분명하다.

그 여름을 그렇게 보냈다.

돌아보면 그 몇 달이 몸으로는 제일 고단했는데, 남은 걸로 치면 꽤 알찬 여름이었다.

서류를 다 묶어서 넘긴 날, 저녁에 마당에 나와 앉아 있었다.

그날은 커피 대신 찬물을 마셨다.

할 만큼 했으니 그다음은 내 손을 떠난 거였다.

그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결과가 어떻게 되든 그 여름에 한 일은 남는 거였다.

음료 개발은 계속 가야 했고, 적어둔 기록도 그대로 쓸 수 있었다.

서류를 쓰느라 정리한 것들이 우리 회사 안에 남았으니까.

심사에서 떨어져도 그건 안 없어진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기다리는 게 편해졌다.

그 여름이 그렇게 지나갔다.

매미 소리가 제일 심하던 무렵에 서류가 들어갔고, 그 뒤로는 공장 일만 했다.

 




"工欲善其事 必先利其器"

(공욕선기사 필선리기기)

 

『논어』 위령공편에 나오는 말이다.

제자 자공이 공자에게 인(仁)을 어떻게 행하면 되느냐고 물었다.

공자는 곧바로 사람 사는 법을 말하지 않고 장인의 이야기를 꺼냈다.

장인이 일을 잘하려면 반드시 먼저 그 연장을 벼려야 한다고 했다.

그러고 나서 말을 이었다.

어느 나라에 머물든 그 나라의 어진 대부를 섬기고 어진 선비를 벗으로 삼으라고.

좋은 일을 하고 싶으면 먼저 연장을 갖추듯, 사람도 곁에 둘 사람을 먼저 갖추라는 뜻이었다.

 

— 공자(孔子, 기원전 551~479). 노나라 사상가. 『논어(論語)』 위령공편.

 

일을 잘하려면 일에 달려들기 전에 연장부터 손봐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공자는 그 연장을 쇠붙이로만 보지 않고, 곁에 두는 사람까지 연장으로 보았다.

어느 쪽이든 당장 쓰려고 급히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어서, 쓸 일이 생기기 한참 전에 갖춰져 있어야 한다.

그 여름에 내가 꺼내 쓴 것들도 전부 몇 해 전에 벼려둔 것이었고, 그중에는 사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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