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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일상

[귀농 창업] 도시락을 나르던 여름

by 사람들생각 2025. 3. 21.

▣  옮겨온 글 ▣

예전 블로그에 써두었던 글을 옮겨 왔다. 문장은 그때 그대로 두고, 읽기 편하게 조금만 매만졌다.


 

살면서 자기 건물을 자기 손으로 지어보는 경험을 몇 번이나 할 수 있을까.

나는 그걸 한 번 해봤다.

그 몇 달이 내 인생에서 제일 몸과 마음과 정신이 정말 고단했지만, 제일 행복했다.

 

측량 시작



■ 첫 삽

터가 정해지고 업자가 정해지고 나니 일이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첫 삽을 뜨는 날 아침에 일찍 올라가 혼자 서 있었다.

아직 아무것도 없었다.

풀이 베어진 자리에 줄만 쳐져 있었다.

그 줄 안을 걸어보면서 여기가 작업장이고 여기가 창고고 여기가 내 방이라고 혼자 중얼거렸다.

그러고 나니 눈물이 조금 났다.

빈손으로 내려와서 일 년 조금 지난 때였다.

그 자리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봤다.

빌려 살던 집이 보이는 자리였다.

저 집에서 겨울을 두 번 났고, 난로를 피우다 연기 때문에 새벽에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고, 개 때문에 말을 들었다.

그 집이 보이는 자리에 내 건물을 올린다는 게 이상하게 든든했다.

장비가 들어오고 땅이 뒤집히고, 어제까지 풀밭이던 자리에 선이 그어졌다.

그 선을 보는데 기분이 묘했다.

종이에 그려놓고 보던 게 땅 위에 실제 크기로 나타나니 생각보다 작게 느껴졌다.

도면에서는 넉넉해 보였는데 막상 선을 긋고 보니 여기에 뭐가 다 들어가나 싶었다.

나중에 벽이 서고 지붕이 올라가니 또 달라 보였다.

비어 있는 땅과 선만 그어진 땅과 벽이 선 땅은 전부 다른 크기로 보인다는 걸 그때 알았다.

땅을 파는 날 장비 기사분이 한 가지를 알려주셨다.

여기 흙이 생각보다 괜찮다고.

돌이 많으면 일이 두 배가 되는데 그렇지 않다는 거였다.

그 말을 듣고 땅을 괜찮게 골랐다는 걸 처음 확인받은 기분이었다.

땅은 눈으로 보는 게 아니라 파봐야 안다는 걸 그날 배웠다.

 

공장까지 전신주가 들어오다.



■ 나도 일꾼이었다

나도 직접 현장의 일꾼으로 뛰어들었다.

돈을 아끼려는 것도 있었지만 그게 다는 아니었다.

내 건물이 올라가는 걸 멀찍이 서서 구경만 하고 있을 수가 없었다.

자재를 나르고, 망치질을 거들고, 치우는 일을 했다.

전문적인 건 당연히 못 했다.

하지만 산에서 넉 달 동안 지게를 졌던 몸이라 무거운 걸 드는 데는 익숙했다.

현장에서 제일 많은 게 무거운 걸 옮기는 일이다.

그건 내가 할 수 있었다.

아침 일찍 나와서 해 질 때까지 있었다.

업자분들이 그만 들어가 쉬시라고 해도 안 들어갔다.

어차피 들어가 봐야 그 생각만 할 텐데 차라리 옆에 있는 게 나았다.

처음 며칠은 업자분들이 나를 좀 어려워하셨다.

주인이 현장에 계속 있으면 일하는 쪽이 불편한 게 당연하다.

그런데 내가 자재를 같이 나르고 쓰레기를 치우기 시작하니까 며칠 지나서 말투가 편해졌다.

이것 좀 들어달라고 부르시고, 저기 치워달라고 하시고.

그게 좋았다.

구경하는 사람이 아니라 같이 일하는 사람이 된 거니까.

저녁에 다들 돌아가시고 혼자 남아 그날 올라간 만큼을 보는 시간이 있었다.

어제보다 벽이 조금 더 높았다.

하루에 눈에 보이게 달라지는 일을 해본 게 오래였다.

사무실에서 하던 일은 하루 종일 해도 뭐가 달라졌는지 모를 때가 많았는데, 집 짓는 건 달랐다.

그래서 사진을 찍었다.

매일 같은 자리에 서서 한 장씩 찍었다.

나중에 모아서 넘겨 보니 건물이 올라가는 게 한눈에 보였다.

그 사진들을 지금도 가지고 있다.

빈 땅에서 시작해 벽이 서고 지붕이 덮이는 게 차례로 들어 있다.

몇 해 뒤에 어디에 서류를 낼 때 그 사진이 쓰인 적도 있다.

그때는 기록으로 남기려고 찍은 게 아니었는데 결과적으로 기록이 됐다.

남겨둔 건 언젠가 쓰인다.

 

공장 터 닦기 완료



■ 하루에 몇 번씩 읍내로

산골 현장이라 일꾼들 밥 챙기는 게 큰 일과였다.

근처에 식당이 없으니 끼니때마다 읍내까지 차를 몰고 나가 도시락을 받아와야 했다.

식사가 끝나면 빈 그릇을 모아서 다시 갖다주고.

하루에도 몇 번씩 그 길을 오갔다.

아침에 자재 나르고, 열한 시쯤 되면 차 몰고 나가서 도시락 받아 오고, 다들 드시는 동안 나도 한쪽에서 먹고, 그릇 모아서 다시 나가고, 돌아와서 또 일하고.

새참 시간이 되면 또 뭘 사러 나갔다.

여름이라 시원한 걸 챙겨야 했고, 음료수 상자를 들고 오는 길에 또 뭐가 떨어졌나 머릿속으로 셌다.

현장 일을 거들다가 틈틈이 새참과 밥을 챙겨 나르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공장 신축 현장



■ 밥이 중요했던 이유

밥 나르는 일이 왜 그렇게 중요했냐면, 산골 현장에 들어와 주신 분들이라 그 정도는 해드려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멀리까지 와주셨는데 끼니가 부실하면 일할 맛이 안 난다.

그리고 그분들이 여기 오기까지 몇 주를 거절당한 끝에 겨우 모신 분들이었다.

수지가 안 맞는 현장이라는 걸 나도 알고 있었다.

그러니 돈으로 못 채우는 건 다른 걸로 채워야 했다.

실제로 그게 효과가 있었던 것 같다.

현장 분위기가 끝까지 나쁘지 않았다.

며칠 지나니 도시락 반찬이 뭐가 나오느냐고 농담을 하실 정도가 됐다.

어떤 날은 내가 읍내에 나가는 걸 알고 뭘 사다 달라고 부탁하시기도 했다.

그런 부탁을 받는 게 좋았다.

불편한 주인이 아니라 같이 일하는 사람으로 보신다는 뜻이니까.

한 분은 아들이 내 나이와 비슷하다고 하셨다.

그 얘기를 하시고 나서 나를 대하는 게 좀 달라졌다.

못 쓰는 자재를 어디에 쓰면 되는지 알려주시고, 이건 이렇게 해야 몇 해 뒤에 안 썩는다는 얘기를 해주셨다.

설계도에 없는 것들이었다.

현장에서 오래 일한 분들 머릿속에만 있는 지식이 꽤 많다.

그걸 받으려면 옆에 서 있어야 한다.

몸은 녹초가 됐는데 이상하게도 마음은 벅차고 행복했다.

내 손으로 내 공장을 짓는다는 것.

살면서 몇 번이나 해볼 수 있는 경험인가.

그 건물에 내 손이 안 닿은 곳이 없다.

지금 생각해도 기분이 좋다.

그 여름에 살이 많이 빠졌다.

땀을 하루에 몇 번씩 쏟았고 옷이 마를 틈이 없었다.

저녁에 돌아와 씻고 눕자마자 잠들었다.

꿈도 안 꿨다.

그런데 아침에 눈이 저절로 떠졌다.

가서 보고 싶어서였다.

한 가지 더 있다.

그 여름에 전화를 거의 안 받았다.

온라인 주문은 저녁에 몰아서 처리했고, 매장 납품은 날짜를 미리 당겨놨다.

공사 기간에 생산을 완전히 멈출 수는 없었으니 밤에 포장을 했다.

낮에는 현장, 밤에는 작업장.

그 두 달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공장 신축 현장



■ 보이지 않는 기초

조 대표님은 건물이 올라가는 동안 보이지 않는 기초를 다져주셨다.

현장에서 망치질을 하신 게 아니라 그보다 더 중요한 걸 하셨다.

복잡한 행정 서류를 빈틈없이 챙겨주셨다.

건물 하나 올리는 데 서류가 그렇게 많이 필요한 줄 몰랐다.

땅에 관한 것, 건축에 관한 것, 지원 자금에 관한 것.

어느 하나가 늦으면 다음이 전부 밀리는 구조였다.

그걸 전부 날짜에 맞춰 챙겨주셨다.

그뿐이 아니었다.

공장 완공 이후의 운영 전략과, 앞으로 단계별로 받을 수 있는 지원 자금 계획까지 요목조목 짚어주셨다.

지금 짓는 건물이 몇 해 뒤에 뭘 할 수 있게 해주는지를 그려놓고 계셨던 거다.

나는 당장 벽을 세우는 것만 보고 있었는데, 그분은 그 벽이 몇 해 뒤에 뭘 담게 될지를 보고 계셨다.

설계도가 탄탄하니 현장의 먼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나아갈 수 있었다.

그 계획표를 한 장 받아서 작업장 벽에 붙여놨다.

몇 해에 걸친 그림이었는데, 그때는 절반도 이해를 못 했다.

무슨 인증이 있고 무슨 사업이 있고.

이름만 적어두고 뜻은 몰랐다.

그런데 해가 지나면서 그 줄이 하나씩 지워졌다.

몇 해 뒤에 그 종이를 다시 보니 거의 다 지워져 있었다.

 

공장 신축 현장




■ 하루 전에 온 전화

중간에 몇 번 삐걱거리는 일이 있었다.

자재가 늦게 들어오거나 비가 길게 와서 공정이 밀리거나.

그럴 때마다 조급해지는 건 나였고, 괜찮다고 순서를 다시 잡아주신 건 그분이었다.

한번은 서류 하나가 기한에 걸려서 큰일이 날 뻔한 적이 있었다.

내가 날짜를 잘못 알고 있었던 건데, 그분이 미리 확인하시고 하루 전에 전화를 주셨다.

그 한 통이 없었으면 그해 공사가 다음 해로 넘어갔을 거다.

그 뒤로는 날짜가 적힌 건 전부 그분께 한 번 더 확인받았다.

현장 일은 내가 몸으로 때우면 되는데 서류는 때울 수가 없다.

하루가 지나면 그냥 끝이다.

그걸 지켜준 사람이 있었다는 게 그 여름의 제일 중요한 부분이었다.

그리고 돈 쓰는 순서도 그분이 잡아주셨다.

지원금은 받는 날짜가 정해져 있고 공사는 돈이 먼저 들어가는 자리가 따로 있다.

그 둘이 어긋나면 중간에 공사가 멈춘다.

멈춘 현장은 다시 돌리는 데 시간이 또 든다는 걸 그때 알았다.

우리 공사가 한 번도 멈추지 않은 건 내가 잘해서가 아니었다.

돈이 묶여서 멈춘 현장 얘기를 그 뒤에 여러 번 들었다.

지원은 받았는데 들어오는 시점이 늦어서, 혹은 자기 돈 들어갈 자리를 계산 안 해서.

그러면 다 지어진 건물 앞에서 몇 달을 세워둔다.

그 몇 달 사이에 인건비와 자재값이 또 오른다.

서류를 아는 사람이 옆에 있다는 게 결국 돈 얘기였던 거다.




■ 봄에 시작해 그다음 해에

봄에 준비를 시작해 여름 동안 자격 과정을 밟았다.

교육을 듣고 심사를 받고 서류를 내는 일이 공사와 동시에 돌아갔다.

지원을 받아 공사를 진행한 뒤 이듬해에 마무리를 지었다.

한 해 안에 끝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시골 공사는 날씨에 묶이고 사람에 묶인다.

비가 오면 쉬고, 다른 현장이 급하면 인력이 빠지고.

그때마다 속이 탔는데 돌아보면 그게 보통이었다.

공사가 늦어지는 걸 내 탓으로 돌리던 시기가 있었다.

내가 재촉을 덜 했나, 내가 뭘 놓쳤나.

그런데 그런 게 아니었다.

산골 공사는 원래 그 속도였고, 그걸 모르는 사람만 속이 탔던 거다.

그래서 그 뒤로는 공사 날짜를 잡을 때 여유를 먼저 넣는다.

계획을 빡빡하게 짜는 게 꼼꼼한 게 아니라는 걸 그 해에 배웠다.

비 오는 날을 계산에 안 넣은 계획은 꼼꼼한 게 아니고 틀린 거다.

 

415 전/ 공장부지



■ 마무리는 내 손으로

마무리 공사는 내가 직접 했다.

업자분들이 큰 틀을 다 잡아놓고 나간 뒤에, 자잘한 것들을 하나씩 손으로 채웠다.

선반을 달고 구석을 메우고 페인트를 덧칠했다.

그 작업이 몇 주 걸렸는데 그때가 제일 재미있었다.

내가 쓸 자리를 내가 만드는 거니까.

선반 하나를 달 때도 어디에 달아야 쓰기 편한지를 알고 달았다.

내가 쓸 거니까 내 키에 맞췄고, 내가 자주 꺼낼 거니까 손 가는 자리에 뒀다.

남이 지어준 공간에서는 그걸 공간에 맞춰 살아야 하는데, 내가 만든 공간은 나한테 맞춰져 있었다.

지금도 그 선반 높이가 제일 편하다.

그 몇 주 동안 혼자 일하면서 생각을 많이 했다.

변변치 않은 손재주 하나 만으로 시골집을 고치던 게 몇 해 전이었다.

그때는 문짝 하나 맞추는 데 반나절이 걸렸다.

그 손이 이제 선반을 달고 있었다.

사람이 늘어가는 건 머리로만 되는 게 아니라는 걸 그 몇 주 동안 느꼈다.

그 마무리 작업 중에 제일 공들인 건 작업장 바닥이었다.

물을 쓰는 공간이니 물이 고이면 안 됐다.

기울기를 잡는 걸 몇 번 다시 했다.

그때는 그냥 깔끔하게 하려고 한 거였는데, 몇 해 뒤 해썹을 준비할 때 그 바닥이 기준에 걸리지 않았다.

모르고 제대로 해둔 것이 나중에 통과가 되는 경우가 있다.

반대로 모르고 대충 둔 자리는 몇 해 뒤에 반드시 걸린다.

그 둘을 그해에는 구분할 줄 몰랐다.




■ 바닥이 마르기 전에 이사

숙소로 쓸 방도 아직 수리가 덜 끝난 상태였다.

그런데 그해 겨울, 보일러 설치가 끝나고 바닥이 채 마르기도 전에 짐을 싸들고 이사를 왔다.

남들이 보면 왜 그렇게 서둘렀냐고 할 거다.

며칠만 더 기다리면 되는 거였는데.

그런데 그러기가 싫었다.

빌려 살던 집에서 일 년을 넘게 있었고, 그 집도 고맙지만 내 집이 아니었다.

내 이름으로 된 자리에서 첫날밤을 자고 싶었다.

차가운 방에서 맞은 첫날밤이었지만, 내 공간이 생겼다는 감격에 추위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바닥이 덜 말라서 눅눅했고 벽에서는 아직 냄새가 났다.

그런데 그게 싫지 않았다.

팔복이가 새 집을 한 바퀴 돌더니 자기 자리를 정하고 엎드렸다.

그 밤에 잠이 잘 안 왔다.

추워서가 아니라 들떠서였다.

천장을 보고 누워 있는데 저 천장도 내가 올라가는 걸 본 천장이었다.

어느 날 어느 자리에 뭐가 들어갔는지를 다 알고 있는 집에서 자는 기분은 처음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문을 열고 나오니 앞이 트여 있었다.

그 자리를 처음 봤을 때 그려본 그림 그대로였다.

하루하루가 행복했다.

 

공장 부지



■ 이 년 조금 지난 때

빈손으로 내려온 지 꼭 일 년 조금 지난 때였다.

그 일 년 동안 회사를 두 번 다녔고, 사업자를 냈고, 지원 대상자가 됐고, 건물을 올렸다.

적어놓고 보니 짧은 시간에 많은 일이 있었다.

그때는 그게 많은 줄도 모르고 그냥 하루하루를 했다.

돌아보면 그 이 년이 그렇게 빨리 간 이유가 하나 있었다.

한 가지가 끝날 때마다 다음 게 이미 앞에 와 있었기 때문이다.

그걸 가져다 놓은 사람이 따로 있었다.

사람이 뭘 못 하는 이유는 대개 두 가지다.

몰라서 못 하거나, 알아도 다음 발을 어디에 둘지 몰라서 못 한다.

나는 그 두 가지를 다 면제받고 있었던 셈이다.

앞에 뭐가 있는지를 알려주는 사람이 있고, 그걸 어떤 순서로 하면 되는지도 적어주는 사람이 있었으니까.

그러니 내가 한 건 몸을 쓰는 쪽이었다.

그쪽은 내가 자신 있었다.

 

공장 부지



■ 새봄의 계획

새봄이 오는 길목에서, 이제 이 공장을 제대로 채워 넣을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건물은 섰는데 안이 비어 있었다.

어떤 기계를 어디에 놓을지, 동선을 어떻게 짤지, 무엇부터 만들지.

그걸 종이에 그려가며 겨울을 났다.

난로 앞에 앉아서 공책에 선을 긋고 지우고 다시 긋고.

그 겨울이 길었는데 지루하지는 않았다.

앞에 할 일이 있는 사람한테 겨울은 지루하지 않다.

돌아보면 그 공장을 짓던 몇 달이 내 인생에서 제일 몸이 고단했던 시기였다.

그런데 제일 행복했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 둘이 같은 시기라는 게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해본 사람은 안다.

고단한 게 싫은 게 아니라는 걸 그때 알았다.

사람이 힘든 걸 싫어하는 게 아니라, 왜 힘든지 모르는 걸 싫어하는 거다.

이유를 알고 쏟는 힘은 쏟고 나면 개운하다.

그 여름에 나는 하루에 몇 번씩 녹초가 됐는데 억울한 마음이 한 번도 안 들었다.

전에 사무실에서 야근할 때는 덜 힘든 날에도 억울했다.

그때는 왜 하는지를 모르면서 했다.

정확히는 누구를 위해 하는지를 몰랐다.

그 차이가 뭔지 그 여름에 알았다.

그리고 그해 여름에 하나 더 생긴 게 있다.

내가 뭘 지어본 사람이 됐다는 사실이다.

그 뒤로 뭘 해야 할 때 나는 이걸 먼저 떠올린다.

건물도 올려봤는데 이건 못 할 게 뭐가 있나.

근거가 되는 경험이 하나 생기면 그다음부터는 그게 기준이 된다.

그 기준을 만든 게 그 여름이었다.

 




"공든 탑이 무너지랴"

 

옛날에는 돌 하나를 올릴 때마다 아래가 흔들리지 않는지 손으로 눌러보고, 기울면 빼내어 다시 괴고 나서야 다음 돌을 올렸다.

그렇게 쌓은 탑은 비바람이 몇십 년을 때려도 자리를 지켰고, 급한 마음에 대충 괴고 높이만 올린 탑은 한 철을 못 넘기고 기울었다.

그 모습을 보며 살던 사람들이, 정성을 다해 쌓은 것은 쉽게 허물어지지 않는다는 뜻으로 이 말을 썼다.

다만 이 말에는 조건이 하나 붙어 있는 셈이다.

공을 들인 탑만 그렇다는 것.

 

— 한국 속담.

 

들인 공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결과에 반드시 남는다는 뜻이다.

빨리 올린 것과 제대로 올린 것은 세워놓은 날에는 똑같아 보이고, 몇 해가 지나야 비로소 갈린다.

그러니 남이 안 볼 때 괴어두는 돌 하나가 결국 그 탑이 서 있을 햇수를 정한다.

그 건물에 내 손이 안 닿은 곳이 없다는 말을, 나는 그래서 아직도 자랑처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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