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옮겨온 글 ▣
예전 블로그에 써두었던 글을 옮겨 왔다. 문장은 그때 그대로 두고, 읽기 편하게 조금만 매만졌다.
숙소 생활이라는 게 원래 그런 건지, 아니면 그때 내 상태가 그랬던 건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밥도 같이 먹고 한 공간에서 잠도 자며 하루 종일 부대끼는데, 마음은 이상하리만치 혼자였다.
낮에는 그런대로 버틸 만했다.
일을 하는 동안에는 머릿속이 다른 것들로 채워지니까.
문제는 저녁이었다.
일을 마치고 숙소에 들어와 누우면, 원룸 문을 열 때마다 안쪽에서 빨라지던 발톱 소리가 자꾸 귀에 맴돌았다.
사람 소리로 가득한 방에서, 나는 그 빈자리를 유난히 크게 느끼고 있었다.
잠들기 전이면 휴대폰을 켜고 어머니 댁 마당에서 찍은 사진을 넘겨보다가, 홍성으로 떠나던 날 아침 뒷좌석에서 찍은 사진에서 늘 손이 멈췄다.
그 사진을 지우지도, 오래 들여다보지도 못한 채 화면을 끄는 게 하루의 마지막이었다.

■ 밤마다 하울링
바람이 제법 쌀쌀해진 10월 어느 저녁, 홍성에서 전화가 왔다.
잘 지내고 있다는 연락이기를 바라며 받았는데, 첫마디부터 목소리가 무거웠다.
팔복이가 밤마다 하울링을 한다는 거였다.
진도견의 하울링을 직접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그게 어떤 소리인지 짐작하기 어려울 거다.
낯선 사람을 보고 짖는 소리와는 결이 완전히 다르다.
고개를 하늘로 치켜들고 목 깊은 곳에서부터 길게, 아주 길게 끌어올리는 소리라, 늑대가 달을 보고 우는 장면을 떠올리면 얼추 비슷하다.
덩치 있는 녀석이 조용한 시골 밤에 그 소리를 내면 온 동네가 다 듣는다.
동네 사람들 항의가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말이 나오지 않았다.
여럿이 함께 지내는 숙소에 진도견을 데려올 수는 없었으니, 당장 데리러 갈 수도 없는 처지였다.
진도견을 좋아하신다고 하셨으니 조금만 더 지켜봐 주시면 적응할 거라고, 잘 부탁드린다고, 그 말만 몇 번이고 되풀이했다.
그게 그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전화를 끊고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나와 살 때는 밤이면 내 발치에서 조용히 잠들던 녀석이었다.
5년 넘게 같이 살면서 그렇게 우는 소리를 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어머니 댁에서도 내가 떠난 뒤에 달라졌는데, 홍성에서도 같은 일이 되풀이되고 있었다.
그걸 알면서도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내가 그렇게 한심할 수가 없었다.
그 뒤로는 일이 손에 잘 잡히지 않았다.
동료들 앞에서는 평소처럼 굴려고 애썼지만, 무언가를 하다가도 문득 멈춰 서 있는 일이 잦아졌다.
지금도 울고 있을까, 사료는 제대로 먹고 있을까, 물은 있을까.
생각이 꼬리를 물면 들고 있던 걸 그대로 내려놓게 됐다.
그 무렵 내 휴대폰 검색창에는 진도견 분리불안, 하울링 줄이는 법 같은 말들이 줄줄이 남아 있었다.
읽으면 읽을수록 답은 하나로 모였다.
결국 그 녀석에게 필요한 건 훈련법이 아니라 나였다.

■ 데려가지 않으면
서리가 내리기 시작한 11월, 홍성에서 다시 전화가 왔다.
이번에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한 달 넘게 하울링이 이어지면서 동네 사람들에게 대놓고 싫은 소리를 듣고 있다고, 솔직히 자기도 한계라고 했다.
그러면서 데려가지 않으면 다른 곳으로 보내겠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다른 곳이 어딘지, 또 모르는 사람 손에 넘겨진다는 건지.
어머니 댁에서, 홍성에서, 자리를 옮길 때마다 녀석은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는데, 거기서 또 한 번 낯선 곳으로 가면 어떻게 될지는 뻔했다.
제발 다른 곳으로는 보내지 말아 달라고, 지금 방법을 찾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전화기를 붙잡고 거의 애원하듯 말했다.
절대 떨어지지 말자던 그 약속이 그날만큼 아프게 떠오른 적이 없다.
전화를 끊자마자 지인들에게 닥치는 대로 연락을 돌렸다.
마당 있는 집에 사는 사람이 없는지, 잠시라도 맡아줄 수 있는 곳이 없는지.
하지만 진도견이라는 말이 나오면 다들 난색을 표했고, 진도견이면 물지 않느냐는 말이 먼저 돌아왔다.
같이 살아봐야 아는 녀석의 순함을 전화 몇 통으로 설명할 재간이 없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밤마다 눈을 감으면 어딘가에 묶인 채 하늘을 보고 우는 팔복이의 모습이 떠올랐는데, 그게 상상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안 될 만큼 또렷했다.
■ 문경이라는 이름
잠이 오지 않던 어느 밤, 숙소 천장을 보며 누워 있다가 어디로 가면 팔복이와 같이 살 수 있을지를 생각했다.
그때 문득 문경이 떠올랐다.
예전에 일 때문에 한 번 들른 적이 있는, 산으로 둘러싸인 조용한 동네였다.
그곳의 한 식품 관련 회사에서 사람을 구한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때는 시기가 맞지 않아 그냥 넘겼었다.
차로 지나가며 본 게 전부였지만, 산자락 아래 낮은 지붕들이 띄엄띄엄 앉아 있고 그 사이로 맑은 개울이 흐르던 풍경이 이상하게 오래 남아 있었다.
이런 데서 살면 좋겠다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던 기억도 났다.
혹시 아직 사람을 구하고 있을까.
다음 날 아침 바로 전화를 걸어 사정을 말씀드리고, 지금이라도 일할 수 있는지 여쭸다.
그리고 한 가지를 더 물었다.
키우던 개를 데리고 가도 되겠냐고.
잠깐 말이 끊겼는데, 그 몇 초가 며칠처럼 길게 느껴졌다.
데려와도 된다는 대답, 기숙사 방도 하나 내어주겠다는 말이 돌아왔을 때 그제야 숨이 제대로 쉬어졌다.
사장님은 그 통화에서 개 이름부터 물으셨다.
팔복이라고 했더니 이름 한번 좋다며 껄껄 웃으셨는데, 그 웃음소리에 몇 달 동안 꽉 막혀 있던 무언가가 조금 뚫리는 기분이었다.
홍성에 전화해서 갈 곳이 정해졌으니 이번 달 안에 꼭 데리러 가겠다고 했다.
전화기 너머로 한숨 섞인 목소리가 들렸고, 오래는 못 기다린다는 뉘앙스였지만 그래도 기다려 주겠다고 했다.
이번에는 빈말이 아니었다.

■ 꽁꽁 언 물그릇
숙소 짐은 정리할 것도 별로 없었다.
옷가지 몇 벌과 이것저것 넣은 가방 하나가 전부였다.
일을 함께하던 지인에게는 따로 길게 얘기하지 않았다.
내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었으니까.
떠나기 전날 밤은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다.
같이 지내던 사람들이 하나둘 잠든 방에서 혼자 눈을 뜨고 누워, 내일 녀석을 만나면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지 몇 번이고 그려봤다.
나를 못 알아보면 어떡하나, 나한테도 으르렁거리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가, 그래도 상관없다고, 다시 처음부터 친해지면 된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새벽녘에야 겨우 눈을 붙였는데,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이 떠졌다.
12월 말, 홍성으로 출발했다.
히터를 세게 틀어도 차 안이 좀처럼 데워지지 않는, 매서운 날이었다.
뒷좌석에는 새로 산 담요 한 장과 사료 한 포대, 물병 두 개를 실었다.
가는 내내 녀석을 보면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생각했는데, 막상 떠오르는 말이 하나도 없었다.
그저 빨리 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분이 알려준 곳으로 찾아가 보니, 팔복이는 그 집에서 한참 떨어진 외딴 구석에 묶여 있었다.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자리였고, 줄이 짧아서 움직일 수 있는 거리가 한두 발짝 남짓이었다.
옆에 놓인 그릇에는 언제 부어줬는지 모를 사료와 물이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그 추위에 밖에서 그러고 있었던 거다.
나를 알아본 녀석이 줄 끝에서 벌떡 일어섰다.
꼬리가 먼저 미친 듯이 흔들렸고, 줄에 매인 채 온몸을 비틀며 앞발로 땅을 긁어 내 쪽으로 오려고 버둥거렸다.
다가가 줄을 풀어주자 내 다리에 몸을 비비며 빙빙 돌았고, 코를 손에 들이밀고 핥고는 또 돌았다.
석 달 넘게 떨어져 있었는데도 녀석은 나를 하나도 잊지 않고 있었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자, 하얗던 털이 푸석하게 엉겨 있었고 등을 쓸어내리는 손바닥에 갈비뼈가 그대로 잡혔다.
얼어붙은 물그릇을 보는데, 내가 얼마나 무책임했는지가 거기 다 담겨 있는 것 같았다.
떨어지지 말자고 해놓고 어머니 댁으로, 홍성으로 보내놓고는 이 지경이 되도록 두었다.
녀석이 알아듣든 말든 계속 미안하다고만 했다.
꽁꽁 언 그릇은 그 자리에 그대로 두고, 차에서 가져온 물병을 따서 손바닥에 물을 부어 주었다.
녀석은 내 손바닥을 몇 번이나 핥으며 물을 받아 마셨고, 나는 그 차가운 혀의 감촉에 한동안 고개를 들지 못했다.

■ 돌아오는 차 안
그분이 나오셨다.
사 들고 간 과일 꾸러미를 건네며 그동안 봐주셔서 고맙다고 인사를 드렸다.
속으로 야속한 마음이 없지 않았지만, 어쨌든 석 달 넘게 맡아준 건 사실이었고 지금 중요한 건 팔복이를 데리고 가는 일이었다.
뒷좌석 문을 열어주자 팔복이가 훌쩍 올라탔다.
홍성으로 올 때는 내내 안절부절못하며 내 팔을 코로 툭툭 쳤는데, 이번에는 올라타자마자 엎드려서 꼬리를 느긋하게 흔들었다.
중간에 휴게소에 들러 물을 따라주니 허겁지겁 들이켰고, 사료도 내놓자마자 순식간에 비웠다.
그동안 얼마나 배가 고팠을지 짐작이 가서 한참을 그 옆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다시 출발하자 녀석은 뒷좌석에서 운전석 쪽으로 고개를 내밀어 내 어깨에 턱을 올려놓았다.
원룸 시절 바닥에 앉아 있으면 옆에 와서 몸을 기대던, 바로 그 무게였다.
한참 만에 다시 느끼는 그 무게가 그날은 세상에서 제일 가벼우면서 제일 무거웠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사이 겨울 해가 벌써 산 너머로 기울고 있었다.
룸미러로 보니 녀석은 어느새 담요 위에서 몸을 둥글게 말고 잠들어 있었다.
홍성으로 올 때는 그렇게 안절부절못하던 녀석이, 그날은 처음으로 마음 놓고 자는 것 같았다.
돌이켜보면 그 겨울의 나는 가진 것도, 기댈 곳도 거의 없었다.
그래도 그날만큼은 어디로 가는지가 분명했다.
갈 곳이 있고, 같이 갈 녀석이 뒷좌석에 있었다.
그거면 충분했다.
"千里之行 始於足下" (천리지행 시어족하)
중국 춘추시대, 주나라 왕실의 장서를 관리하던 사상가 노자는 세상의 이치와 자연의 흐름을 오래 지켜본 끝에 『도덕경』이라는 책을 남겼다.
그 64장에는 "아름드리나무도 털끝만 한 싹에서 자라고, 아홉 층 누대도 한 삼태기 흙을 쌓는 데서 시작되며, 천 리 먼 길도 발밑 한 걸음에서 시작된다"는 구절이 실려 있다.
노자는 큰일일수록 작은 조짐일 때 미리 다스리고, 먼 길일수록 지금 한 걸음을 떼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아무리 막막한 일도 결국 첫 번째 작은 행동에서 풀리기 시작한다는 얘기다.
— 노자(老子, 기원전 6세기경 추정). 중국 춘추시대의 사상가, 도가의 시조. 『도덕경(道德經)』 64장.
답이 보이지 않는다고 주저앉아 있는 사람과, 어디로든 한 발을 먼저 떼어 놓는 사람의 거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크게 벌어진다.
그 한 걸음을 언제 떼느냐가 결국 그다음의 모든 것을 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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