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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일상

[시골 정착] 우리팔복이

by 사람들생각 2025. 3. 16.

 

▣  옮겨온 글 ▣

예전 블로그에 써두었던 글들을 이곳으로 옮겨 온다.

거의 매일같이 글을 올리고 애드센스 승인까지 받으며 제법 오래 공을 들인 곳이었는데, 사정이 생겨 더는 그 블로그를 쓸 수 없게 됐고, 한동안은 그렇게 덮어둔 채 지냈다.

그러다 조 대표님이 임원으로 계시던 회사를 나와, 예전에 하시던 정부자금 컨설팅 일을 다시 준비하신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얘기를 듣는데 문득 그 블로그가 떠올랐다.

조 대표님께 신세 진 일은 손으로 다 꼽을 수도 없을 만큼 많은데, 그 이야기들이 그 블로그 곳곳에 고스란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글들을 다시 꺼내 이곳에 하나씩 옮겨 두기로 했다.

내가 직접 해온 사업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들이라, 보태거나 꾸미지 않고 있었던 그대로 적는다.

그 과정에서 받은 인증서와 관련 기관 수료증 같은 것들도 빠짐없이 함께 올릴 생각이다.


 

그때 써둔 문장은 되도록 그대로 두고, 읽기 편하도록 조금만 매만졌다.

조 대표님과의 인연은 서울을 떠나 문경으로 내려오면서 시작됐으니, 그 앞의 이야기들은 굳이 꺼내지 않고 묻어두려 한다.

다만 그 길을 나와 함께 내려온 녀석 이야기만큼은, 조금 앞에서부터 꺼내야 할 것 같다.

그 녀석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오랜만에 사진 폴더를 정리했다.

휴대폰을 바꿀 때마다 옮겨 담기만 하고 제대로 열어본 적 없는 폴더라, 날짜순으로 천천히 내려가는 동안 잊고 지내던 얼굴들과 장소들이 하나씩 스쳐 지나갔다.

그러다 2011년 즈음에서 손이 멈췄다.

초점도 안 맞고 반쯤 잘린 사진인데, 화면 한가운데 하얀 강아지 한 마리가 웅크리고 있었다.

팔복이다.

그 사진을 시작으로 몇 년 치가 거의 다 그 녀석이었다.

마당에 엎드린 모습, 둑길에서 나를 기다리던 모습, 거실 바닥에 길게 누운 모습까지, 한 장씩 넘기다 보니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 내 두손으로 들어온 녀석

2011년 봄, 내 회사는 콘크리트 포장의 넓은 마당이 있는 물류 창고였다. 

이곳에서 국 내외 온 오프라인 의류 판매를 하고 있었다.

그날 또한 여느날과 변함없는 하루였다.

점심을 먹고 마당에 나와 있는데 옆집 어르신이 두 손을 오므린 채 조심조심 걸어오셨다.

"이게 우리 뒷마당 돌담 밑에 있었어. 어미도 안 보이고, 이 사장이 주인 좀 찾아봐."

어르신 손 안에는 눈을 뜬 지 얼마 안 된 조그만 솜털 같은 강아지가 웅크리고 있었다.

받아 드니 두 손바닥에 꼭 들어찼고, 토실토실한 배에서 생각보다 따뜻한 온기가 전해졌다.

녀석은 낑낑대지도 않고 내 엄지손가락 쪽으로 코를 묻은 채 가만히 있었다.

며칠 동안 동네를 돌며 수소문했지만 잃어버렸다는 집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그 무렵 회사 마당에는 이미 강아지가 일곱 마리나 있어서 한 마리를 더 들이는 게 가볍게 정할 일은 아니었지만, 한 번 손에 올려본 뒤라 어디로도 보낼 수가 없었다.

여덟 번째로 들어온 복덩어리라 이름은 팔복이로 정했다.

이름 짓는 데 10초도 걸리지 않았지만, 부르다 보면 진짜 그렇게 되는 이름이 있는데 팔복이가 딱 그랬다.

첫날 밤에는 거실 구석에 종이 상자를 놓고 안 쓰는 수건을 깔아 재웠다.

자다가 몇 번이나 깨서 들여다봤는데, 그때마다 녀석은 수건을 이리저리 끌어모아 그 위에 동그랗게 말려 자고 있었다.

얼마 뒤부터는 형, 누나들 틈에 섞여 마당을 뛰어다녔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문을 열고 나서면 제일 먼저 달려오는 게 팔복이였고, 다른 사람이 부르면 고개만 돌리던 녀석이 내가 부를 때만 몸을 일으켰다.

다른 녀석들과 똑같이 밥 주고 똑같이 불렀을 뿐인데 그랬다.

그날 어르신이 돌담 밑을 그냥 지나치셨다면, 그 뒤 내 몇 년은 꽤 다르게 흘러갔을 거다.

 



■ 앞서가면 "안 돼"

팔복이는 하얀 진도견, 백구 수컷이다.

진돗개가 천연기념물이라는 건 다들 알 텐데, 1962년에 지정됐고 번호가 제53호라는 건 나도 녀석을 키우면서 처음 찾아봤다.

1993년 진도에서 대전으로 팔려 간 백구가 7개월 만에 300km 가까운 길을 혼자 걸어 옛 주인 집으로 돌아왔다는 이야기도 그때 알게 됐다.

처음엔 좀 부풀려진 얘기겠거니 했는데, 팔복이를 키우고 나서는 그렇게 허무맹랑하게 들리지 않았다.

한번 정한 사람에게 붙는 고집 같은 게 이 개들에게는 분명히 있다.

다만 팔복이는 진도견치고 드물게 순했다.

낯선 사람이 와도 으르렁거리는 법이 없었고, 적당히 떨어져 지켜보다가 괜찮다 싶으면 슬쩍 다가와 냄새를 맡는 정도였다.

문제는 산책이었다.

덩치가 붙기 시작하자 줄만 채우면 앞으로 튀어 나가는 바람에, 결국 자동 목줄을 하나 장만했다.

산책은 매일 저녁 회사 뒤편 한적한 둑길에서 했다.

줄을 넉넉히 풀어주고 걷다가 녀석이 내 앞을 가로지르려 하면 줄을 짧게 탁 당기며 "안 돼" 한마디, 옆으로 돌아오면 다시 줄을 풀어줬다.

처음 며칠은 몇 걸음 못 가서 멈추고, 당기고, "안 돼"를 반복하는 게 전부였다.

손바닥에 줄 자국이 남을 만큼 당기는 힘이 셌지만, 화를 내지 않는 것 하나만은 처음부터 정해두고 시작했다.

지나가는 사람들 눈에는 개가 사람을 끄는 건지 사람이 개를 끄는 건지 헷갈렸을 거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나자 줄을 당길 일이 눈에 띄게 줄었고, 어느새 녀석은 내가 빨리 걸으면 빨리, 천천히 걸으면 천천히 내 왼쪽 무릎 옆에 붙어 걸었다.

목줄을 처음 풀던 날은 솔직히 좀 긴장했다.

풀숲으로 뛰어들었다가 그대로 안 나오면 어쩌나 싶었는데, 녀석은 몇 걸음 앞에서 멈추더니 다시 돌아와 내 옆에 섰다.

별것 아닌 일인데 그날은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다.

마흔을 앞둔 남자가 개 한 마리 때문에 그러는 게 좀 민망하기도 했지만, 좋은 건 좋은 거였다.




■ 길지만은 않았던 시간

그렇게 5년 넘게 함께 지냈다.

그사이 사업이 기울었고, 회사와 집이 한 울타리 안에 붙어 있던 터라 집 안 공기도 같이 무거워졌다.

결국 나는 내 짐 몇 가지만 챙겨 혼자 그 마당을 나왔고, 팔복이는 그곳에 두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가 왔다.

녀석이 너무 커서 돌보기 어려우니 팔복이를 데려가 달라는 이야기였다.

전화를 끊자마자 차 키를 챙겼다.

몇 년을 드나들던 마당인데, 그날은 남의 집 마당에 들어서는 것처럼 발이 무거웠다.

마당에 들어서자 팔복이가 저 멀리서부터 달려와 줄도 없이 내 왼쪽 무릎 옆에 딱 붙어 섰다.

몇 주 떨어져 있었는데도 걷는 자리는 그대로였다.

뒷좌석 문을 열어주니 망설임 없이 올라탔고, 돌아오는 내내 라디오도 켜지 않은 채 신호에 걸릴 때마다 고개를 돌려 뒷좌석을 확인했다.

녀석은 창밖도 보지 않고 엎드려서 운전석 뒤쪽에 턱을 괴고 있었다.

나한테 팔복이는 개 한 마리가 아니었다.

내 아들이나 다름없었다.

 

팔복이 방



■ 조그만 방 한칸
파주에 원룸을 하나 얻었다.
진도견 한 마리가 몸을 쭉 펴고 누워도 내가 지나다닐 자리가 남을 만큼 방은 넉넉했는데, 화장실이 문제였다.
팔복이를 씻기는 날이면 녀석을 욕실에 겨우 밀어 넣고, 나는 문턱에 반쯤 걸터앉아 샤워기를 들었다.
덩치 큰 개가 몸을 한 번 털면 벽이고 천장이고 나고 할 것 없이 흠뻑 젖어서, 목욕 한번 끝내려면 수건이 몇 장이나 필요했다.
털갈이 철에는 이불이며 옷이며 온통 하얀 털이라, 처음엔 돌돌이로 열심히 밀다가 나중엔 그냥 포기했다.
그래도 녀석은 실내에서 지내는 법을 금방 익혔다.
배변은 화장실 지정된 곳에서만 했고, 밥그릇을 내려놔도 "먹어" 소리가 나올 때까지 그 앞에 앉아 기다렸다.
원룸에서 덩치 큰 개와 살아보니 그게 참 고마운 일이었다.

낮에는 주간 일과 야간 일을 가리지 않고 병행했다.
산책은 그 사이 잠깐 주어지는 시간 동안 어떻게든 짬을 내어 다녀왔다.
저녁에 돌아와 열쇠를 돌리면 문 안쪽에서 발톱 소리가 빨라졌고, 문을 열면 꼬리를 정신없이 흔들며 다리에 몸을 부딪쳐 오는 통에 신발도 못 벗고 한참을 현관에 서 있어야 했다.
비 오는 밤 천둥이 치면 녀석은 내 옆구리에 바짝 붙었다.
덩치는 산만 한 게 천둥이 칠 때마다 움찔해서, 등을 쓸어주다 보면 어느새 나도 같이 잠들어 있곤 했다.
아침엔 녀석 밥 때문에 일찍 일어났고, 일과 사이 잠깐의 산책 때문에 밖에서 오래 머물지 않았다.
누가 짜준 것도 아닌데 녀석 하나 덕분에 하루에 뼈대가 생겼다.
혼자였다면 훨씬 엉망으로 살았을 거다.

 

 

■ 둘만의 약속
주간 일과 야간 일 사이, 저녁을 대충 때우고 나면 집 근처 한적한 길을 함께 걸었다.
차도 사람도 드문 곳이라 잠깐 목줄을 풀어줘도 괜찮았다.
녀석에게는 줄무늬 티를 자주 입혔는데, 덩치 큰 진도견에게 줄무늬 옷이라니 남들이 보면 웃었겠지만 하얀 털에 제법 잘 어울렸다.
겨울 저녁 둘이 나란히 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걸었다.

주간과 야간을 가리지 않고 힘들게 일했지만, 세상일이란 게 뭐 하나 뜻대로 풀리는 법이 없었다.

어두운 길을 걸을 때면 답답한 마음에 녀석에게 이런저런 말들을 늘어놓곤 했다.
지금은 이런 원룸 신세지만 나중엔 더 나은 데로 가자.
마당 딸린 곳에서 마음껏 뛰게 해줄게.
우리 오래오래 같이 살자.
절대 떨어지지 말자.
녀석은 가만히 서서 내 말을 다 알아들었다.
그 시절 내 곁에서 그 답답한 이야기들을 묵묵히 받아준 건 팔복이뿐이었다.

그때는 녀석과 헤어질 일 없이 언제까지고 계속 함께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약속을 입 밖으로 내는 건 몇 초면 끝나지만 그걸 지켜내는 데는 몇 년이 걸리고, 그사이 돈 문제나 일 문제가 줄줄이 얽힌다.
솔직히 말하면 그때는 그걸 잘 몰랐다.
세상일을 모르니 그렇게 쉽게 다짐하듯 말했던 것 같다.
그렇게 원룸에서 둘이 부대끼며 보낸 게 1년 남짓이었다.
통장에 쥔 건 가장 없던 시절인데, 돌이켜보면 이상하게도 가장 행복했던 시간으로 남아 있다.
가진 게 없으니 곁에 붙어 있던 녀석 하나가 유독 크게 다가왔던 탓이다.
문득 녀석이 많이 보고 싶다.



 

■ 사진 폴더를 닫으며

파주 시절 사진은 생각보다 없다.
그땐 내 삶에 여유가 없어서 였는지 사진 한 장 제대로 남길 생각을 못 했던것 같다.
그나마 몇 장 안 되는 사진마저 흔들리고 반쯤 잘려 나가기 일쑤였다.
그런데도 그 엉망인 사진들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장판의 서늘한 온도나 젖은 털 냄새까지 고스란히 살아난다.
사진은 몇 장 되지 않지만, 그래도 팔복이를 추억할 흔적이 이렇게나마 남아 있는 것에 감사할 뿐이다.
그날의 약속을 매듭짓기까지 얼마나 걸렸는지는 천천히 풀어낼 생각이다.


 

"塞翁之馬" (새옹지마)

중국 한나라 때 회남왕 유안이 학자들과 함께 엮은 책 『회남자』에 이런 이야기가 실려 있다.

북쪽 국경 요새 근처에 살던 한 노인의 말이 국경 너머 오랑캐 땅으로 달아나자, 노인은 위로하는 이웃들에게 "이것이 복이 될지 누가 알겠소" 하고 담담히 말했다.

몇 달 뒤 그 말은 오랑캐의 좋은 말 한 필을 데리고 돌아왔고, 노인은 축하하는 이들에게 "이것이 화가 될지 누가 알겠소" 했는데, 얼마 뒤 아들이 그 말을 타다 떨어져 다리를 다쳤다.

그 후 오랑캐가 쳐들어와 마을 젊은이들 대부분이 전쟁터에서 돌아오지 못했지만, 다리를 다친 아들은 싸움에 나가지 않아 목숨을 건졌다.

 

— 유안(劉安, 기원전 179~122). 중국 한나라 황족이자 학자. 『회남자(淮南子)』 인간훈(人間訓)편 수록.

 

지금의 불행이 언제 복이 될지, 지금의 행운이 언제 화가 될지 아무도 모른다는 얘기다.

좋을 때 들뜨지 말고 나쁠 때 주저앉지 말라는 건데, 말처럼 쉽지는 않다.

그래도 다음에 올 때를 묵묵히 준비해둔 사람이 결국 그때를 붙잡는다.

 

혼자 짐을 챙겨 나왔던 그해도, 나한테는 달아난 말 같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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