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옮겨온 글 ▣
예전 블로그에 써두었던 글을 옮겨 왔다. 문장은 그때 그대로 두고, 읽기 편하게 조금만 매만졌다.
차 뒷좌석 창문 틈으로 커다란 개가 코를 내밀고 있는 걸 보면, 지금도 마음 한쪽이 묘하게 저릿하다.
뒷좌석에서 내내 안절부절못하던 하얀 개 한 마리가 자꾸 겹쳐 보여서다.
그날 이야기는 쓰기 전부터 손이 좀 무겁다.

■ 뜻밖의 제안
주간에는 2.5톤 화물차를 몰았고 야간에는 세탁공장 수거 일을 했다.
새벽까지 몸을 써가며 일했지만 손에 쥐어지는 수입은 변변하지 못했다.
팔복이와 둘이 지낸 지 1년쯤 됐을 무렵, 아는 지인에게서 같이 일을 해보자는 연락이 왔다.
일명 숙식 현장 일이었는데, 지금 하는 일보다 목돈을 훨씬 빨리 만질 수 있는 조건이었다.
들쑥날쑥한 일상에 지쳐 있던 터라 그 전화가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잘나갈 때 연락하던 사람들이 하나둘 뜸해지는 걸 겪어본 뒤라, 형편이 어려울 때 먼저 손을 내밀어준 그 사람에게는 지금도 고마운 마음이 있다.
하지만 문제는 팔복이였다.
그 일은 숙소에서 동료들과 함께 먹고 자며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매어 있어야 하는 구조였다.
덩치가 큰 진도견 한 마리를 데리고 들어갈 수는 노릇도 아니었고, 케어해 줄 사람도 없었다.
그날 밤 팔복이 옆에 앉아 한참을 고민했다.
일을 포기하면 이 원룸에서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고, 팔복이를 맡기자니 절대 떨어지지 말자던 약속을 내 손으로 깨는 일이었다.
녀석은 내 다리에 턱을 괴고 누워 있었고, 나는 그 등을 쓸면서 지금 잠깐 떨어지는 건 더 좋은 곳으로 가기 위해서라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지금 와서 보면 그게 정말 설득이었는지, 아니면 내 편 편하자고 댄 핑계였는지 잘 모르겠다.
■ 마당 넓은 시골집
내가 팔복이 문제로 인해 결정을 고민할때 지인이 시골에 혼자 계신 자기 어머니 댁에 맡기면 어떻겠냐고 했다.
마당도 넓고, 어머니가 혼자 계시니 큰 개가 하나 있으면 오히려 든든해하실 거라는 얘기였다.
그때 내가 떠올릴 수 있는 방법 중에서는 그게 가장 나아 보였다.
원룸에서 하루 종일 나를 기다리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
1년 가까이 산 방이었는데 짐은 상자 몇 개에 다 들어갔다.
짐을 다 빼고 마지막으로 빗자루질을 하는데, 바닥 구석구석에서 하얀 털이 끝도 없이 쓸려 나왔다.
여름이 막 시작되던 무렵, 지인과 함께 팔복이를 태우고 어머니 댁으로 내려갔다.
조용한 마을 끝자락의 오래된 집이었고, 마당이 꽤 넓었다.
어머니는 팔복이를 보시더니 어쩜 이렇게 하얗고 잘생겼냐며 반가워하셨고, 팔복이는 늘 하던 대로 적당한 거리에서 잠깐 지켜보다가 천천히 다가가 그 손 냄새를 맡았다.
그걸 보고서야 마음이 조금 놓였다.
바로 떠나지는 않았다.
내가 옆에 있는 동안 그 집의 냄새와 소리와 사람에 먼저 익숙해지게 하고 싶어서, 지인과 함께 일주일을 그 집에서 지냈다.
팔복이는 마당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냄새를 맡더니 그늘진 곳에 자기 자리를 만들었고, 어머니가 밥그릇을 들고 다가가시면 꼬리를 흔들며 일어났다.
어머니도 팔복이를 참 이뻐해 주셨다.
밤이면 개구리 소리가 사방에서 올라왔고, 마당에 나와 앉으면 머리 위로 별이 가득했다.
팔복이는 내 발치에 엎드려 귀를 이쪽저쪽으로 돌렸고, 나는 언젠가 이 녀석과 이런 곳에서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그때 처음 했다.
일주일째 되던 아침, 짐을 챙기고 마당에 나서자 팔복이가 평소처럼 꼬리를 흔들며 다가왔다.
녀석 앞에 쪼그리고 앉아 한참 머리를 쓰다듬으며 금방 올 테니 잠깐만 여기 있으라고 했다.
일부러 뒤를 돌아보지 않으려 했는데 결국 한 번 돌아봤고, 팔복이는 대문 앞에 서서 이쪽을 보고 있었다.

■ 믿기지 않던 소식
새 일은 바빴다.
숙소에서 여러 사람과 같이 일어나 같이 나가고, 저녁이면 같이 들어와 같이 밥을 먹었다.
그러다 밤에 누우면 지금쯤 마당에서 자고 있겠지 싶어서, 어머니 댁 마당에서 찍은 사진을 넘겨보는 게 잠들기 전 습관이 됐다.
처음 얼마간은 잘 지낸다는 소식에 안심했고, 이대로 몇 달만 버티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팔복이가 어머니에게 입질을 하려 했다는 소식이 왔다.
밥을 주려고 다가가면 몸을 낮추고 으르렁거려서, 요즘은 무서워 밥도 제대로 못 주고 계신다는 거였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됐다.
5년 넘게 같이 살면서 사람에게 이빨을 드러낸 적이 한 번도 없었고, 밥 먹을 때 옆에 손을 넣어도 가만히 있던 녀석이었다.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다가 내린 답은 하나였다.
1년 동안 매일 같이 있던 사람이 어느 날 사라졌으니, 그 불안이 어떤 식으로든 밖으로 터져 나왔을 거라고 짐작할 뿐이다.
평소 그러지 않던 녀석이 그랬다는 건 그만큼 상태가 좋지 않았다는 뜻이었을 거다.
그렇게 두 달 가까이 팔복이는 그 집에 있었다.
어머니가 다치시기라도 하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고, 사람을 문 개라는 꼬리표가 붙으면 그 뒤로 어떤 일이 기다리는지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것만은 막아야 했다.
밤마다 진도견 위탁, 대형견 임시 보호 같은 검색어를 바꿔가며 화면을 넘겼지만 뾰족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주변 지인들에게도 연락을 돌렸지만 선뜻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팔복이가 어떤 녀석인지 직접 겪어본 사람이 없었고, 방금 사람에게 입질을 했다는 녀석이었으니 입장을 바꿔 놓고 보면 나라도 망설였을 거다.
그 앞에 쌓아온 5년이 한 번의 소문 앞에서 아무 소용이 없어지는 게 억울했지만, 따지고 보면 그 상황을 만든 건 나였다.

■ 홍성으로 가는 길
마지막으로 기댄 곳이 진도견 커뮤니티였다.
밤늦게 순한 녀석이고 목줄 없이도 옆에서 걷는 녀석이라고 적고, 최근 환경이 바뀌면서 예민해져 있다는 것도 솔직하게 덧붙였다.
며칠 뒤 충남 홍성에 사는 분에게서 연락이 왔다.
자기는 진도견을 대단히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사람이었지만 그때 나한테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고, 결국 그 말 하나만 믿었다.
믿었다기보다는 믿고 싶었다는 게 더 정확할 거다.
몇 번 통화하면서 집 구조며 잠자리며 산책까지 최대한 많은 걸 물었고, 그분은 하나하나 막힘없이 대답했다.
그 막힘없는 대답이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 좀 걸렸지만, 그때는 그런 의심을 오래 붙잡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어머니 댁에 들어서자 팔복이는 목줄을 끊을 듯이 달려들었다.
어머니에게 으르렁거렸다던 녀석이 맞나 싶을 만큼, 나한테는 예전 그대로였다.
어머니께 고개 숙여 그동안 고생 많으셨다고, 정말 죄송하다고 인사를 드리고 나오는데, 처음 왔을 때 초록이던 논이 그새 누렇게 색을 바꾸고 있었다.
홍성까지는 세 시간 남짓한 길이었는데 그날은 유난히 멀었다.
표지판에 홍성이라는 글자가 보일 때마다 가슴이 내려앉았고, 이대로 차를 돌려버릴까 하는 생각도 몇 번 했지만, 돌려서 어디로 갈 건지에 대한 답이 없었다.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국도로 접어들자 벼 이삭이 고개를 숙이기 시작한 들판이 끝없이 펼쳐졌는데, 평소 같으면 차를 세우고 사진이라도 한 장 찍었을 풍경이 그날은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원래 차만 타면 좋아하던 녀석이 그날은 뒷좌석에서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며 이쪽 끝에서 저쪽 끝을 오갔다.
창문을 열어줘도 코를 내밀지 않더니, 운전석 쪽으로 고개를 들이밀고 내 팔을 코로 툭, 또 한 번 툭 쳤다.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고 다른 손으로 그 머리를 쓰다듬으며 괜찮다고 했는데, 누구에게 하는 말이었는지는 모르겠다.

■ 손에서 빠져나간 줄
홍성에 도착하자 그분은 실물이 사진보다 훨씬 잘생겼다며 좋아했다.
어떤 사료를 먹는지, 하루에 얼마나 걷는지, 요즘 예민하니 처음엔 조심해 달라는 말까지 했지만, 말을 하면서도 이게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이 녀석과 매일을 함께할 사람은 이제 내가 아니었다.
리드줄을 건네야 하는 순간이 왔다.
줄을 쥔 손이 떨렸고, 줄 끝에서 나를 올려다보는 팔복이의 눈을 똑바로 보지 못한 채 그분의 손에 줄을 넘겼다.
손가락 사이로 줄이 빠져나가던 감각은 아직도 생생하다.
생각해 보면 나는 그 줄을 별로 쓸 일이 없었다.
목줄 없이도 내 옆에서 걷던 녀석이라 줄은 늘 느슨하게 늘어져 있었는데, 그날 나는 그 줄을 남의 손에 쥐여주고 돌아서고 있었다.
오래 서 있으면 다시 빼앗아 올 것 같아서 서둘러 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백미러 속에서 팔복이는 줄 끝에 선 채 이쪽을 향하고 있었다.
짖지도 날뛰지도 않았다.
차를 몰고 출발하자 녀석은 한 발짝 따라오다 팽팽해진 목줄에 걸려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백미러 속 하얀 형체는 점점 작아지더니 모퉁이를 돌자 이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백미러에 비치던 녀석의 모습이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나는 거울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 빈 뒷좌석
돌아오는 내내 눈앞이 흐려 몇 번이나 갓길에 차를 세웠다.
기울어진 해가 뒷좌석의 빈자리를 비췄고, 시트 위에는 하얀 털 몇 가닥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그 털은 한동안 차에서 치우지 못했다.
숙소에 돌아오니 동료들이 어디 다녀오냐고 물었지만, 볼일이 좀 있었다며 얼버무렸다.
입을 열면 속에서 무언가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그날 밤은 저녁도 거른 채 누워, 어두운 천장을 보며 백미러 속 장면을 몇 번이고 곱씹었다.
한 발짝 따라오다 팽팽해진 목줄에 멈춰 서던 그 순간을.
한동안은 숙소 문을 열 때마다 나도 모르게 현관 바닥부터 내려다봤다.
문가에서 기다리던 녀석이 있을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버릇처럼 그랬다.
오히려 쉬는 날이 더 버거웠다.
예전 같으면 팔복이를 태우고 외곽이라도 나갔을 텐데, 갈 곳은 있어도 태워 나갈 녀석이 없었다.
진도견을 잘 아는 분이니 좋아하는 사람이니 알아서 잘 해줄 거라고, 나 자신을 다독이며 일에만 파묻혔다.
그 시절의 나는 그게 내 선에서 고를 수 있는 최선이었다.
다만 그 선택의 무게를 고스란히 녀석이 짊어져야 했다는 사실은, 지금도 앙금처럼 남는다.
"The strongest of all warriors are these two — Time and Patience."
(모든 전사들 중 가장 강한 둘은 시간과 인내다.)
1812년 여름, 프랑스의 나폴레옹은 수십만 대군을 이끌고 러시아로 쳐들어왔다.
러시아군 총사령관 쿠투조프 장군은 정면으로 맞서 싸우는 대신 군대를 보존하며 물러서는 길을 택했고, 결국 모스크바까지 내주었다.
비겁하다는 비난이 쏟아졌지만 그는 서두르지 않고 혹독한 겨울이 올 때까지 기다렸고, 겨울이 닥치자 보급이 끊긴 나폴레옹의 군대는 추위와 굶주림 속에 무너졌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 소설 『전쟁과 평화』에서 이 쿠투조프의 입을 빌려 위의 말을 남겼다.
— 레프 톨스토이(Lev Tolstoy, 1828~1910). 러시아의 소설가·사상가.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의 작가.
급하다고 아무 때나 칼을 뽑는 사람보다, 힘을 아끼고 준비하며 제때를 기다린 사람이 결국 이긴다는 뜻이다.
때는 그저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그 때를 위해 미리 준비해둔 사람의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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