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옮겨온 글 ▣
예전 블로그에 써두었던 글을 옮겨 왔다. 문장은 그때 그대로 두고, 읽기 편하게 조금만 매만졌다.
2016년 12월 30일.
한 해가 이틀 남은 날이었고, 하늘에서는 하루 종일 눈이 내렸다.
지금도 첫눈 소식을 들으면 그날 와이퍼 너머로 쏟아지던 눈발이 먼저 떠오른다.

■ 눈 속으로 들어가던 길
홍성에서 팔복이를 태우고 경북 문경으로 향했다.
문경에 가까워질수록 눈발이 굵어졌다.
처음에는 흩날리는 정도였는데 가은 쪽으로 접어들자 제대로 쏟아지기 시작해서, 와이퍼를 가장 빠르게 돌려도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산 사이로 난 좁은 길에 눈이 소복이 쌓여 가는 걸 보면서 핸들을 꽉 쥐었다.
도시였으면 이 정도 눈이면 뉴스에 나왔을 텐데, 여기서는 그냥 겨울이었다.
뒷좌석의 팔복이는 창밖으로 지나가는 하얀 산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다시 엎드리기를 반복했다.
가은은 한때 탄광으로 북적였다는 곳인데, 그날 내 눈에 들어온 건 눈에 파묻힌 낮은 지붕들과 그 위로 가늘게 피어오르는 연기 몇 줄기가 전부였다.
길가 논에는 눈이 그대로 쌓여 어디까지가 논이고 어디부터가 길인지 분간이 잘 안 됐다.
연고라고는 하나도 없는 동네였다.
아는 사람도, 미리 봐둔 집도 없이 일자리 하나와 기숙사 방 하나만 믿고 가는 길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무섭지는 않았다.
오히려 오랜만에 가슴 한쪽이 가벼웠는데, 아마 뒷좌석에 그 녀석이 있어서였을 거다.
■ 공장 앞마당의 발자국
늦은 오후, 가은에 도착했다.
눈이 소복이 쌓인 공장 앞마당에 차를 세우자 사장님이 나와서 반겨주셨다.
먼 길 오느라 고생 많았다며 내 어깨를 두드리시더니, 뒷좌석을 들여다보고는 그놈 참 잘생겼다고 웃으셨다.
그 한마디에 하루 종일 굳어 있던 어깨가 조금 풀렸다.
뒷좌석 문을 열어주니 팔복이가 조심스럽게 내려서 처음 맡는 냄새를 따라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하얀 개가 하얀 눈 위를 걸으니, 검은 코와 두 눈만 둥둥 떠다니는 것처럼 보였다.
녀석이 한 걸음씩 옮길 때마다 눈 위에 발자국이 하나씩 찍혔다.
여기가 당분간 우리가 지낼 곳이라고, 속으로 그렇게 말했다.
그날 저녁, 사장님과 읍내 식당에서 순두부찌개를 먹었다.
뜨거운 뚝배기를 앞에 두고 앉으니 그제야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는 게 생각났다.
허겁지겁 한 그릇을 비우는 나를 보시더니, 여기 사람들은 다 순박하니까 천천히 정 붙이면 된다고 하셨다.
기숙사 방은 작았지만 파주 원룸보다 못하지 않았다.
전기장판 하나와 작은 창 하나가 전부인 방이었는데, 창밖으로 눈 덮인 공장이 그대로 보였다.
팔복이는 방에 들어오자마자 구석구석 냄새를 맡더니 내 가방 옆에 자리를 잡고 몸을 둥글게 말았다.
무엇보다 팔복이가 옆에 있었다.
그날 밤 녀석은 내 발치에서 잠이 들었다.
홍성에서 밤마다 울었다던 녀석이 그날은 한 번도 울지 않았다.
나도 실로 오랜만에 깊이 잠들었다.

■ 첫 일주일
사장님은 첫 일주일 동안은 일을 시키지 않으셨다.
직원들과 인사도 하고 동네 분위기에도 좀 익숙해지라는 배려였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기는 영 어색해서, 아침마다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 마당에 쌓인 눈을 쓸었다.
눈을 다 쓸고 나면 사무실과 작업장의 기름난로에 불을 붙여 두었다.
직원들이 출근했을 때 실내가 훈훈하면 그날 하루 시작이 조금은 덜 춥겠다 싶어서였다.
빗자루 끝에 눈이 사각사각 밀려나는 소리, 난로에 불이 붙으며 퍽 하고 올라오는 기름 냄새, 그리고 마당을 졸졸 따라다니는 하얀 녀석.
그게 문경에서 맞은 나의 첫 아침들이었다.
점심은 공장 식당에서 다 같이 먹었는데, 커다란 양푼에 담긴 된장찌개와 김치, 그날그날 동네에서 나는 나물 몇 가지가 전부인 소박한 밥상이었다.
처음 며칠은 낯을 가리느라 조용히 밥만 먹었는데, 누군가 팔복이 이야기를 꺼내면서부터 자연스럽게 말이 섞이기 시작했다.
낯선 사람이 오면 일단 거리를 두는 녀석이었는데, 며칠 지나자 직원들 발소리에도 꼬리부터 흔들었다.
일주일이 지나고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했다.
재료를 다듬어 씻어 소금물에 절이는 일이었는데, 겨울 물은 손이 끊어질 듯 차가웠고 하루 종일 쪼그려 앉아 있다 보면 허리가 내 것이 아닌 것 같았다.
일하는 동안 팔복이는 기숙사 옆 마당에 매어 두었다.
점심시간 종이 울리면 밥보다 먼저 녀석에게 달려가 줄을 풀어줬고, 녀석은 그때마다 마당을 두어 바퀴 돌고 나서야 내 옆에 와서 섰다.
밥을 먹고 남은 시간에는 팔복이를 데리고 공장 뒤 개울을 따라 한 바퀴씩 걸었다.
얼음 밑으로 물 흐르는 소리가 났고, 눈 덮인 논두렁에는 고라니 발자국이 길게 찍혀 있었다.
팔복이는 그 발자국을 따라 코를 박고 한참을 가다가도, 내가 이름을 부르면 어김없이 돌아와 내 왼쪽 무릎 옆에 섰다.
처음엔 진도견이라는 말에 한 발 물러서던 직원들도, 그 모습을 몇 번 보고 나서는 먼저 다가와 녀석 머리를 쓰다듬었다.
몸 쓰는 일이 대부분이라 저녁이면 녹초가 됐지만, 기숙사 문을 열면 기다리던 녀석이 있어서 그 피곤함이 오래가지 않았다.
밤에는 기숙사 작은 방에서 전기장판을 켜고 누워, 발치에 엎드린 녀석의 숨소리를 들으며 잠들었다.
하울링 같은 건 다시 들을 일이 없었다.
같은 공간에 내가 있다는 것, 녀석에게 필요했던 건 정말 그것 하나였던 모양이다.

■ 여사님의 빈집
문경에 온 지 한 달쯤 지나면서부터는 쉬는 날마다 시골집을 알아보러 다녔다.
기숙사가 고마운 자리였던 건 분명하지만, 팔복이에게 마당 넓은 곳에서 뛰게 해주겠다던 약속이 늘 마음에 걸려 있었다.
하루 종일 줄에 매여 있다가 점심시간에야 잠깐 풀려나는 녀석을 볼 때마다, 이건 아직 그 약속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말이면 녀석을 태우고 가은 일대를 한 바퀴씩 돌면서, 길가에 비어 있는 집이 보이면 차를 세우고 담 너머를 기웃거렸다.
그런데 막상 알아보니 외지 사람에게 선뜻 집을 내주는 곳은 생각보다 드물었다.
시골에는 부동산이 있긴 했지만, 마을회관 앞에서 어르신들께 여쭤보는 게 가장 빠른 방법이었는데, 빈집은 여기저기 보여도 주인 연락처를 아는 사람이 드물었다.
어렵게 연락이 닿아도 개를 키운다는 말에 고개를 젓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같이 일하시던 여사님이 넌지시 말씀을 꺼내셨다.
평소 말수는 적어도 손이 빠르고 일 욕심이 많으셔서, 내가 서툴게 일하고 있으면 말없이 옆에 와서 시범을 보여주시던 분이었다.
본인 시골집이 비어 있는데, 손 좀 보면 살 만할 거라고.
사람이 안 살면 집이 금방 상하니까, 누가 들어가서 불이라도 때주면 오히려 고맙겠다고 하셨다.
그날 퇴근하자마자 같이 일하는 형님과 함께 그 집을 보러 갔다.
한동안 사람이 살지 않은 집이라 마당은 좀 어지럽고, 방문을 여니 오래 묵은 냉기와 냄새가 한꺼번에 밀려왔다.
그대로 들어가 살 수 있는 상태는 아니었다.
마루는 군데군데 들떠 있었고, 부엌 문짝은 반쯤 내려앉아 제대로 닫히지도 않았다.
그런데 마당이 있었다.
뒤꼍에는 장작더미가 지붕 높이만큼 쌓여 있었고, 마당 한쪽의 오래된 감나무에는 까치가 쪼다 남긴 감 몇 개가 아직 매달려 있었다.
담장 안쪽으로 팔복이가 마음껏 뛰어도 될 만큼 넉넉한 마당이었다.
형님이 이거 손 좀 많이 봐야겠다며 웃으셨는데, 나는 이미 마음속으로 그 마당에 팔복이를 풀어놓고 있었다.

■ 이사랄 것도 없는 이사
그날부터 일주일 동안 퇴근하면 그 집으로 가서 청소를 했다.
바닥을 쓸고 닦고, 쌓여 있던 묵은 짐을 한쪽으로 치우고, 막힌 데는 뚫고 덜컹거리는 데는 손으로 붙잡아 맞췄다.
나름 손기술이 있던 터라, 하다 보니 어설프게나마 사람 사는 집 모양이 조금씩 나왔다.
아궁이 쪽을 살펴보니 오래 불을 넣지 않아 구들이 다 식어 있었고, 구석구석에서 쥐가 드나든 흔적도 나왔다.
하나 치우면 또 하나가 나오는 식이라, 밤늦게 기숙사로 돌아오면 손끝이 다 갈라져 있었다.
그래도 이상하게 힘들다는 생각보다는 내일은 어디를 손볼지가 먼저 떠올랐다.
청소하는 동안 팔복이는 마당에 풀어두었는데, 녀석은 감나무 밑을 파헤치고 장작더미 사이를 들쑤시며 하루 종일 바빴다.
일을 마치고 나오면 흙 묻은 코로 내 손등을 쿡 찌르고는 또 마당 끝으로 내달렸다.
형님도 퇴근길에 몇 번이나 들러서, 내가 혼자 끙끙대던 문짝을 몇 분 만에 바로 세워 놓고는 아무렇지 않게 돌아가셨다.
그 무렵 문경에서 내가 아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였는데, 그 몇 사람이 다 이렇게 고마웠다.
일주일 만에 겨우 잠은 잘 수 있는 집이 됐다.
이사 전날 읍내에 나가 냄비 하나와 수저 몇 벌, 두꺼운 이불 한 채를 더 샀다.
계산대 앞에서 그 몇 가지를 담은 봉지를 받아 드는데, 이게 내 살림의 전부라는 게 우습기도 하고 홀가분하기도 했다.
그것까지 합쳐도 이삿짐이라고 해봐야 가방 몇 개와 이불 두 채, 팔복이 밥그릇과 사료 포대가 전부였다.
차 한 대에 다 실리고도 남았으니 이사랄 것도 없는 이사였다.
짐을 내려놓고 대문을 닫은 뒤 팔복이 목줄을 풀어줬다.
녀석은 잠깐 나를 올려다보더니 그대로 마당 끝까지 내달렸다가, 다시 내 옆으로 돌아와 섰다.
그 모습을 한참 동안 서서 바라봤다.
예전 원룸의 그 산책길에서 마당 넓은 데서 뛰게 해주겠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직 다 지킨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그 약속 쪽으로 한 걸음은 온 것 같았다.
그날 밤은 집 안 공기가 기숙사보다 훨씬 차가웠는데, 팔복이는 마루 끝에 엎드려 밤새 마당 쪽으로 귀를 세우고 있었다.
새 집의 첫날 밤을 녀석이 지켜주는 것 같아서, 나는 이불을 끝까지 끌어올리고 마음 편히 잠들었다.
그해 겨울, 나는 마흔 초반이었다.
"Non quia difficilia sunt non audemus, sed quia non audemus difficilia sunt."
(어려워서 감히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감히 하지 않기 때문에 어려운 것이다.)
로마 제국 시대, 네로 황제의 스승이자 스토아 철학자였던 세네카는 친구 루킬리우스에게 보내는 편지를 평생에 걸쳐 써서 남겼다.
그중 104번째 편지에서 그는, 사람들이 큰일 앞에서 망설이는 이유는 일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시작할 용기를 내지 않기 때문이라고 적었다.
—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Lucius Annaeus Seneca, 기원전 4년경~기원후 65). 로마 제국의 철학자·정치가. 『도덕 서한(Epistulae Morales)』 104편.
막상 한 발을 내디디면 생각보다 길이 보이는데, 결단을 미룰수록 같은 일도 점점 더 어려워 보인다는 뜻이다.
때를 기다린다는 핑계로 망설이는 동안, 정작 때는 조용히 지나가 버린다.
준비가 됐다 싶을 때 미루지 않고 움직이는 사람에게 길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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